이청준의 [벌레 이야기]

D-29
전자책 읽는 편입니다만 한국 방문 때마다 중고 서점에서 종이책을 몇 권씩 구입해 가져오곤 합니다. 지난 여름에 구입해서 책꽂이에 머물던 책입니다. 내용을 굳이 살펴보지 않아도 믿음이 생기는 이청준 작가의 소설입니다. 시작합니다.
화제로 지정된 대화
싱글챌린지는 자신이 직접 정한 책으로 29일간 완독에 도전하는 과정입니다. 그믐의 안내자인 제가 앞으로 29일 동안 10개의 질문을 던질게요. 책을 성실히 읽고 모든 질문에 답하면 싱글챌린지 성공이에요. 29일간의 독서 마라톤, 저 도우리가 페이스메이커로 같이 뛰면서 함께 합니다. 그믐의 모든 회원들도 완독을 응원할거에요. 계속 미뤄 두기만 했던 책에 도전해 볼 수 있는 싱글챌린지! 자신만의 싱글챌린지를 시작하고 싶은 분들은 아래 링크로 접속해 주세요. https://www.gmeum.com/gather/create/solo/template
싱글챌린지로 왜 이 책을 왜 선택했나요?
책을 읽는 기준은 없습니다. 책이 손에 잡히거나 눈에 보이거나 기회가 닿으면 작가 먼저 확인하고 읽는 편입니다. 외국 생활이 오래라 구입이 쉽지 않지만 전자책보다는 종이책의 바삭거림을 좋아합니다. 인생의 부분부분을 과한 포장 없이 간결하게 풀어내는 이청준 작가의 모든 작품들을 참 좋아합니다. 그의 모든 작품은 별처럼 빛이 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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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로수씨의 마지막 심술]을 시작으로 1980년대 한국의 의료보험 서비스 정책의 소외계층에 속하는 가족의 안타까움과 우리가 일상 속에 느끼고 사는 부끄러움을 드러낸 [젖은 속옷]과 이중섭 화가를 떠올릴 수 밖에 없는 소설 [나들이하는 그림]까지 읽었습니다. 이중섭 화가의 은박지 그림을 새로운 구성으로 풀어낸 것이 저는 좋습니다. 제주도 서귀포시에는 이중섭 미술관과 거주지가 있습니다. 초가집 한 켠의 작은 방, 성인 한 명이 누워도 좁을 그곳에서 네 식구가 살았다는 사실이 매번 믿기지 않습니다. 사랑하는 아이들과 게와 물고기와 복숭아를 담뱃갑 은종이에 그릴 수 밖에 없던 그의 가난과 가족을 그리워하며 애태우던 그의 모습이 이 소설에 그대로 반영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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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화밀교]를 읽고 있습니다. J읍에서 태어나 자란 화자가 역시 J읍에서 나고 자란 선배이자 민속학자인 조승호 선생의 반강제 + 권유로 J읍에서 행해지는 새해맞이 풍습에 참석하게 되면서 벌어지는 감정적 깨달음에 대한 내용입니다. 한 해를 마치는 날 저녁이 시작되면 J읍의 주민들이 읍을 둘러싼 제왕산에 올라 새해를 맞이하는 풍습이 있다는 걸 화자는 조승호선생과의 동행을 통해 알게 됩니다. 산 꼭대기 분지에서 벌어지는 횃불 행사는 산 아래에서는 절대 알아챌 수 없습니다. 과연 그들을 모이게 하고 또 긴 세월 동안 행사를 이어가게 하는 원동력은 무엇인지 화자는 궁금해 합니다. 또한 행사가 품은 의미는 무엇인지 조승호 선생께 묻습니다. J읍에 지금 살고 있든 외지에 나가 살다가 행사에 참석하든 상관치 않고 그들은 횃불을 들고 분지 위를 걸으며 마주치는 모든 이웃에게 안부를 묻습니다. 그저 안부를 묻고 인사를 하고 다시 걷기를 반복합니다. 잊고 살던 먼 친척을 만난 화자는 잠깐 걸음을 멈추고 그에게 그간 이야기를 듣기도 합니다. 새해를 앞두고 이웃들에게 묻는 안부와 인사를 떠올리며 저는 새해 첫날 해맞이를 위해 정성을 쏟는 많은 사람들이 생각났습니다. 그릇을 채우기 위해서는 먼저 그릇을 비우는 일이 필요합니다. 산에 올라, 바다를 보며, 언덕 위에서 새해를 맞이하며 한 해의 기원을 쏟아내는 그들의 모습.... 어쩌면 우리는 새해를 맞이하기 전, 지난 한 해 동안 미안한 일, 안타까운 일, 서러운 일에 대해 마음을 정리하고 또 우리 이웃들의 안부를 물어야 하는 건 아닐까요. 혹시 나로 인해 한 해 동안 서운한 일은 없었는지 불쾌한 적은 없는지 사과해야 할 일은 없었는지 묻고 만약 엉킨 실타래가 있다면 새해가 오기 전에 그걸 먼저 풀어야 하는 게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비화밀교]는 76쪽이나 되는 소설입니다. 단편으로는 제법 긴 분량입니다. 저도 아직 읽는 중이라 이야기가 어떻게 맺어질 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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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114 '눈에 보이는 세상사의 뒤엔 가시적 현상 세계의 질서로서는 한 번도 떠올라본 적이 없는 어떤 숨은 힘, 어쩌면 전혀 질서나 의미가 없는 혼돈의 상태처럼 보이면서도, 그러나 나름대로의 엄연한 질서를 지니고 그것을 행사해 나가고 있는 힘의 지하 세계가 따로 있다는 말일세.....' p116 '뭣보다도 우리 삶이나 이 세계는 논리와 논리 아닌 것, 혹은 일상의 삶의 덕목으로 선택된 질서와 그것이 아닌 것, 눈에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다시 말해서 실체와 그림자 그런 두 겹의 힘의 질서로 이루어져 나간다는 게 나의 인식이니까. 현상의 세계와 소망의 세계의 관계라고 할까.' p119 '수맥을 숨겨 간직하지 못한 샘터는 더 이상 샘물이 괴어 흐를 수가 없거든. 우리한텐 그래 가뭄에 상관없이 언제나 수맥이 끊기지 않고 땅속을 적셔 흐르는 숨겨진 샘 같은 게 소용되고 있는 게지.' 세상으로 감춰진 J읍 주민들만이 알고 그들끼리만 행하는 새해맞이 횃불모임에서 빠져나와 화자에게 설명하는 민속학자 조승호 선생의 말입니다. 올해의 행사에는 행사 특유의 은밀함을 거스르고 폭발하려는 성향을 가진 젊은이들과 그들의 기대에 호응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그는, 이 풍속이 과연 이대로 숨겨진 채 지속되어야 하는지 혹은 세상에 드러내야 하는지 그 당위성에 대해 화자에게 묻습니다. 세상의 흐름에 대해 생각해 봅니다. 오래된 주택을 부수고 건물을 새로 짓는 일, 전봇대를 넘어뜨리고 전깃줄을 땅 속에 매립하는 일, 골목을 넓히는 일..... 더이상 인구가 늘지 않아도 세상의 낡은 것들은 신기술을 토대로 시시각각 바뀌고 있습니다. 의사를 만나거나 영화를 보려면 앱을 통해 예약을 하고 주차권도 핸드폰으로 발급 받는 시대입니다. 변화가 두려워 머뭇거리다가는 더 높아진 계단을 기어 올라야 할 지도 모릅니다. 그게 무엇이든 아무리 숨기고 감추고 덮고 가려봐도 사회를 이루고 사는 한 언젠가는 드러나기 마련 아닐까 싶습니다. 드러내고 싶지 않은 간절함이나 기대를 폄하하는 건 절대 아닙니다. 다만, 지키고픈 마음으로 아낌없이 노력을 기울이다가도 세상의 흐름에 어쩔 수 없이 놓아야 할 때는 분노가 일고 안타깝더라도 그 순간을 받아들여야한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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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레 이야기]를 읽고 있습니다. 책표지에는 '그 사람은 이미 용서를 받고 있었어요. 나는 새삼스레 그를 용서할 수도 없었고 그럴 필요도 없었지요. 하지만 나보다 누가 먼저 용서합니까.'라고 적혀 있습니다만 (이것은 영화 <밀양>을 본 사람이면 누구나 또한 저도 기억하는 내용입니다) 사실 저는 설마 영화 <밀양>의 원작이 이청준 작가의 [벌레 이야기]라는 걸 몰랐습니다. 그리고 읽으면 읽을수록, 영화를 보기 전에 소설을 먼저 읽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아쉬웠습니다. 영화는 주인공이 느끼는 분노와 배신감을 처절히 밖으로 표출했고 소설의 그녀는 꾸욱꾸욱 누르며 하얗게 타버릴 한을 차곡차곡 쌓았습니다. 영화는 소설과는 그 배경이 많이 다르지만 깊이 인상에 남은 탓인지 소설을 읽으며 자꾸 영화가 오버랩되는 바람에 집중하기가 쉽지는 않습니다. - 우리 구세주 예수님 앞으로 나오세요. 그래서 그분의 사랑에 의지하도록 하세요. 주님께선 모든 힘든 이들의 무거운 짐을 함께 져주십니다. 그리고 모든 상처 받은 영혼들의 아픔을 함께해 주시며, 그것을 사랑으로 치유해 주십니다. 알암이 엄마는 지금 혼자서는 도저히 감당해 갈 수 없는 크나큰 영혼의 상처를 입고 있어요. 애엄마 혼자서는 그 짐을 절대로 감내해 나갈 수가 없어요........ > 알암이가 유괴되기 전부터 알암이 엄마를 교회로 전도하기 위해 끊임없이 애써온 이웃 김 집사가 알암이가 유괴되어 살해된 채 발견된 후에 알암이 엄마에게 한 말입니다. - 두고 보세요. 내 언제고 알암이 엄마를 우리 주님께로 인도하고 말 테니까. 알암이 엄마라고 어렵고 마음 아픈 일이 안 생길 수 있겠어요. 애 엄마한테도 언젠가는 반드시 주님의 손길이 필요한 때가 찾아오게 될 거예요. 내 그땐 반드시..... > 알암이 엄마에게 전도를 시작하며 김 집사가 끈질기게 반복하던 말입니다. 이런 마음가짐으로 전도를 일삼는 종교인들에게 저는 약간의 환멸을 느낍니다. '어렵고 마음 아픈 일이 안 생길 수 있겠어요?' 라니요. 전도를 이유로 이웃에게 저주를 하는 건가 싶을 만큼 김 집사의 행위 그리고 신앙은 값 없어 보입니다. - 김 집사는 마치 그거 보라는 듯, 혹은 기다리던 때라도 찾아온 듯 아이의 실종 사고가 생기자 금세 다시 아내에게로 달려왔다. 그리고는 이런 저런 걱정의 말끝에 다시 아내의 믿음을 권해 왔다. > 먹이를 노리던 하이에나처럼 김 집사는 알암이 엄마의 괴로움과 아픔을 파고 듭니다. 걱정의 말을 한다고는 하지만 과연 김 집사가 아이를 잃어버린 알암이 엄마의 숨이 넘어가는 안타까움과 괴로움을 100분의 1이라도 느꼈을지 의혹이 생깁니다. 주님의 사랑을 전하는 사람이 이웃의 아픔에 함께 공감해 위로하지 않고 '거 봐라. 내가 뭐랬어. 딱 걸렸지.'라는 마음으로 알암이 엄마의 마음을 후벼파는 신앙이라니. 예전에 읽은, 어느 전도사의 이야기가 떠오릅니다. 그는 복음을 전하는 전도사로 중국의 작은 마을들을 찾아다니며 전도를 하고 있었습니다. 돌산을 넘어가다가 비를 만난 그는 저녁 늦게라도 예정된 다음 마을에 도착하기 위해 걸음을 서두르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마주오는 어느 주민을 만났습니다. "어디 가는 길이십니까?" "저는 주님의 복음을 전하는 사람입니다. 마을을 찾아가고 있습니다." "어떤 복음을 전하시나요?" "죄송하지만 제가 좀 바쁩니다. 말씀을 나눌 시간이 없습니다. 어서 다음 마을로 가야하거든요." 그의 말을 듣던 주민이 물었습니다. "당신은 내게 복음을 전하는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나는 당신의 복음이 궁금해 듣고 싶어졌습니다. 그런데 당신은 다음 마을에 가야 해서 내게 복음 전할 기회를 저버리겠다는 겁니까?" 전도사는 아차하는 마음에 자세를 고치고 그와 길에 앉아 복음을 전했다는 이야기입니다. 어려울 때 매달리는 것만이 신앙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이청준 작가는 어쩌면 신의 손길보다 이웃의 손길이 더욱 가깝고 따뜻하다고 말하려는 게 아닐까 싶을 만큼 김 집사의 말에는 사람의 체온이 전혀 느껴지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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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레 이야기]를 끝냈습니다. - 그 사람은 이미 용서를 받고 있었어요. 나는 새삼스레 그를 용서할 수도 없었고, 그럴 필요도 없었지요. 하지만 나보다 누가 먼저 용서합니까. 내가 그를 아직 용서하지 않았는데 어느 누가 나 먼저 그를 용서하느냔 말이에요. 그의 죄가 나밖에 누구에게서 먼저 용서될 수가 있어요? 그럴 권리는 주님에게도 있을 수가 없어요. 그런데 주님께선 내게서 그걸 빼앗아가 버리신 거예요. 나는 주님에게 그를 용서할 기회마저 빼앗기고 만 거란 말이에요. 내가 어떻게 다시 그를 용서합니까. 1인칭 관찰자 시점으로 씌여진 소설이지만 제게는 마치 3인칭 관찰자 시점으로만 느껴집니다. 그는 아이를 잃어버린 아버지의 크나큰 아픔이나 아내의 처절한 고통에 함께 괴로워하기보다 다만 멀찍이 서서 보이는 것을 서술할 뿐입니다. 김 집사가 전도를 위해 아내를 찾아와 '그의 주님을 빌려' 마치 주문을 외듯 위로를 전할 때도 그는 그녀가 '진심'으로 아내를 위로한다고 서술합니다. 알암이 엄마가 교도소로 범인 김도섭을 찾아가겠다고 할 때는 '왠지 거기 대해 선뜻 동의를 하고 나설 마음이 내키지 않았'으면서도 '막연히 아내를 만류'할 뿐 결국 김 집사가 알암이 엄마와 동행해 다녀오겠다는 말에는 '맡겨두고 따르는 수 밖에 없'다고 합니다. 소설 속 화자인 알암이의 아빠가 왜 영화 [밀양]에서는 배역에서 아예 빠져 있는지 잘 알 것 같습니다. 만약 그가 아내의 아픔에 더 공감하고 함께 울었더라면, 범인을 만나기 위해 교도소를 방문하려는 아내를 제지하려 좀더 노력했더라면, 행여 아내의 고집을 꺾을 수 없었다 해도 차라리 그 자리에 함께 있어줬더라면, 아내가 배신감에 허망함에 아무 말도 하지 못하던 순간에 대신 범인에게 소리지르며 벽을 치는 소동을 피워줬더라면, 알암이 엄마에게 필요한 건 주님도 김 집사도 아니라 오롯이 '내 편'이었다는 걸 알아챌 수 있었더라면.... 알암이 엄마가 그렇게 세상을 뜨지 않았을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되었습니다. - 이번에는 전날처럼 저주 어린 복수심이나 분노의 감정 같은 것도 찾아볼 수 없었다. 그저 망연스런 자기 상실감 속에 바닥 모를 절망감만 짓씹고 있었다. 분노도 복수심도 잊어버린 아내는 심신이 온통 절망의 덩어리 그 자체였다. > 가족은 커녕 먼 이웃으로서의 체온도 전혀 느껴지지 않는 화자의 서술은 김 집사의 그것과 매한가지입니다. 상대가 겪는 아픔의 깊이를 이해할 깜냥도 안 되면서 섣불리 위로하겠다고 나서는 건 어쩌면 무뢰하고 횡포한 행위일 수 있다 싶어 마음을 가다듬게 됩니다. 게다가 '주님을 빌려' 위로를 하다니요. '알암'은 '밤이나 상수리 등이 충분히 익어 저절로 떨어질 정도가 된 상태나 그런 열매'라는 뜻이라고 합니다. 알암이가 어린 나이에 부모에게서 떨어져 흉한 일을 당한 게 혹시나 이름 때문은 아니었을까 해서 알암이 엄마가 더 많이 아파하고 후회하진 않았나 싶어 제 마음이 아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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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레 이야기]의 마지막 문장입니다. - 아내도 끝내는 더 견디지를 못하고 제 손으로 혼자 약을 마셔버린 것이었다. 자기를 끝까지 돌보아온 김집사에게는 물론 내게마저 유서 한 조각 남기지 않은 채였다. > 눈으로 뒤덮힌 세상에서 거센 눈보라를 온몸으로 맞으며 걸어가듯 춥고 무섭고 외로웠을 알암이 엄마의 심정이 가장 잘 나타나지 않았나 싶습니다. 그녀의 아픔 한 조각 이해하지 못했던 그녀의 남편은 그야말로 '남'편이었군요. [흐르는 산]은 이청준 작가의 다른 단편집에서 읽었던 소설입니다. 작가나 책명을 잘 기억하지 못하는 제가 제목만으로도 내용이 기억나는 소설입니다. 이청준 작가의 신앙 혹은 신과 인간의 관계는 이런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사람 사는 세상에서 멀리 떨어져 독야청청하지 않는 신앙, 우러르거나 숭배하지 않아도 되는, 갓난아기가 자는 방문 손잡이에 빨간 끈 묶는 할머니의 마음처럼..... 죄를 짓고 절로 숨어든 도섭은 무불 스님이 와선을 한다는 소문의 진실(?)을 밝혀내기 위해 밤잠을 자지 않고 스님의 와선소를 어슬렁거립니다. 도를 깨친들 무불 스님도 사람일진대 매일 앉아서 잠을 잔다니 믿을 수가 없는 까닭입니다. 더우기 스님께서 와선을 하며 고생을 하신들 그 행위가 과연 굶주리고 춥고 고생하는 세상 중생들에게 어떤 은혜를 입힐 수 있느냔 말입니다. 이런 도섭의 질문에 무불 스님은, "산이 높아야 물이 멀리 흐르는 법이니라." 대답하십니다. 소설의 초미부터 저도 궁금했지만 스님의 대답은 이해가 어렵습니다. 도섭도 저처럼 혼란스럽기만 했던 것 같습니다. 기필코 스님이 누워서 주무시는 모습을 보고 말리라 결심한 도섭은 하룻밤도 빠짐없이 밤마다 자처해 순찰을 돕니다. 그렇게 일 년 가까이 밤순찰을 도는 와중에 수상한 그림자를 발견하기도 하고 그 사실을 절에 숨어든 신도들에게 알려주기도 하다가...... 광복을 맞이합니다. 수수께끼는 풀리지 않았지만 더이상 절에 숨어 있을 이유가 없어진 도섭은 무불 스님께 하직 인사를 하고 산을 내려갑니다. 그리고 읍내 거리에 닿은 도섭은 마침내 스님의 말씀이 어떤 뜻이었는지, 그간 도섭이 품고 궁금해했던 수수께끼의 답을 이해합니다. 세상의 종교가 모두 그렇게 흐르면 좋겠습니다. 어쩌면 스님의 와선을 지켜보기 위해 긴 세월 동안 많은 도섭들이 밤순찰을 돌지 않았을까 생각되었습니다. 그리고 자신도 산을 흐르게 하는 한 줄기 시냇물의 역할을 해냈다는 걸 깨달은 도섭이 읍내 거리에 환한 표정으로 서 있는 모습이 떠올라 미소가 지어집니다. 근데, 정말 매일 앉아서 잠을 자는 게 가능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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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여자를 찾습니다] 지적 장애와 경계성 지능장애자에 대해 반푼이, 덜 떨어진 사람, 미련둥이, 멍청이 정도로 이해하던 1960년대 이후를 배경으로 하며 경계성 지능을 지닌 세 살 손위 누이를 찾는 남동생의 실종신고 책자 내용을 소재로 한 1인칭 관찰자와 전지적 시점을 넘나드는 소설입니다. 일반인의 지능보다 조금 낮은 경계성 지적장애자의 기준은 지능지수 71~85이며 해외 통계로 보면, 전체 인구의 13%에 해당한다고 합니다. 30-40호가 모여 사는 마을이면 경계성 혹은 지적 장애자가 한두 명쯤은 있는 확률입니다. 그녀, 장순씨는 경계성 지능을 가진 장애인입니다. 당시로는 그저 순박하고 거짓을 모르는 덜 떨어진 여성입니다. 그녀가 23살의 나이로 65세 할아버지의 후취로 들어간 것은 무엇보다 어린 남동생 장덕의 안정된 미래를 위함이었습니다만, 늙은 남편을 독살했다는 죄를 덮어쓰고 공정치 않은 재판을 거쳐 결국 교도소에 들어갔다가 가석방됩니다. '생김새나 말씨나 행실들이 하나같이 반편스런' 누이를 어릴적부터 부끄럽고 창피해하던 장덕씨는 한참이 지난 후에야 장순씨가 교도소에 간 이유가 억울한 누명 때문이었다는 걸 깨닫습니다. 그는 누이를 찾기 위해 그간의 사연을 적은 책자를 발간했고, 화자는 대한민국이 유엔에 단독적으로라도 가입해야 한다는 장덕씨의 주장을 함께 싣는 조건으로 책자 내용을 차용하기로 했다고 설명합니다. 도대체 실종된 누이를 찾는 일과 장덕씨의 유엔 가입 주장이 무슨 연관이 있는 도통 이해가 되지 않는다며 능청을 떠는 화자의 모습에서 작가의 장난스런 유머가 느껴집니다. 모든 삶이 아름답기를 바라 마지않는 이청준 작가.... 이 소설이 씌여진 연도는 1990년입니다. 유엔이 아동권리보호협약을 채택한 건 1989년입니다. 유엔은 이 협약을 통해 아동의 생존권과 보호권, 발달권과 참여권에 대해 주장합니다. 그중 보호권은 아동은 '모든 형태의 학대와 방임, 차별, 폭력........ 등 어린이에게 유해한 것으로부터 보호받을 권리'입니다. 대한민국의 아동복지법에서 정한 아동의 나이는 만 18세 미만이며, 아버지가 죽고 어머니가 가출한 당시 장순의 나이는 16세, 장덕의 나이는 13세였습니다. 우리나라의 수 많은 장순이와 장덕이를 보호하고 지켜주기 위해서는 대한민국이 유엔에 가입해야 하고 아동권리보호협약을 비준해야 한다고, 너무도 어린 나이에 부모는 커녕 어느 누구의 도움 하나 없이 하루 하루를 견디고 버텨내야 했던 장순씨와 장덕씨의 지난했던 삶을 통해 작가는 주장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 생각됩니다. 1991년 가을, 작가의 바람대로 남한과 북한은 각각 독립된 국가로서 유엔에 가입합니다. 그리고, 대한민국은 아동권리보호협약을 비준하고 이에 따라 5년마다 협약 이행에 관한 국가 보고서를 유엔에 제출하고 있습니다. 그로부터 이십 년을 훨씬 지났지만 한국은 아직까지, 앞으로 언제까지일지도 모르지만, 모든 아이들이 온전히 보호받고 권리를 인정받는 나라는 아닙니다. 애통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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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소고龍沼考]를 읽고 있습니다. 龍 용 용, 沼 못 소, 考 생각할 고..... 제 한자 실력으로는 도저히 뜻을 알아챌 수가 없습니다. 소설을 다 읽고 나면 알 수 있을까요. 초장부터 영 편안한 분위기가 아닙니다. 괜히 저까지 조마조마합니다. 화자만큼이나 어떤 일을 과장하거나 오해 받는 일을 극도로 싫어하는 성향인 까닭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말은 더듬지만 자신의 업무에 너무도 충실하고 무거운 사명감까지 느껴지는, 반월정에서 시중을 드는 젊은이가 백산 장강수에 비해 훨 미덥고 듬직하다 싶은 게 저만의 느낌일지 모르겠습니다. 이 젊은이에 대한 작가의 표현이 재미있습니다. - 한눈에 어딘지 함량이 좀 모자란 듯싶어 보이는 친구였다. 어느 나라 궁성 앞의 근위병의 그것을 연상시키는 괴상한 차림새나 그 꼭두각시 같은 뻣뻣한 거동들이 좋게 보아주어서 그저 멋진 복장에 반해 어떤 특수군 부대의 입대를 지원했다가 불의의 낙방을 하고 돌아와서 아직도 그 꿈을 버리지 못하고 계속 혼자서 그런 흉내질을 즐기고 있는 위인쯤 되어 보였달까. > 깡패들에게서 마을을 구한 영웅이라는 오해를 받고 부담을 느껴 마을을 떠났던 장강수가 이십 년만에 다시 마을을 찾아 본인이 누구였는지 밝히는 행동은 물론, 마치 진짜 영웅인 마냥 친구들까지 대동하고 거드름을 피우는 내용까지 읽은 저로서는 이 문장이 과연 식당의 젊은이 한 명을 가리키는 걸까 싶습니다. * 흠, 싱글챌린지의 도우리님 질문은 열 개 인걸로 기억합니다만 벌써 아홉 번째 질문이 끝났군요. 제 그믐은 아직 열사흘이나 남았고요. 😝저는 그믐에 맞춰 끝내기 위해 페이지를 나눠서 읽어야 하나 고민중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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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믐연뮤클럽의 서막 & 도박사 번외편]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 이반과 스메르자코프"[그믐밤] 10. 도박사 3탄, 까라마조프 씨네 형제들@수북강녕
💌 여러분의 마지막 편지는 언제인가요?
[책 증정] 텍스티와 함께 『편지 가게 글월』 함께 읽어요![그믐밤] 6. 편지 읽고, 편지 쓰는 밤 @무슨서점[이 편지는 제주도로 가는데, 저는 못가는군요](안온북스, 2022) 읽기 모임
🍵 따스한 녹차처럼 깊이 있는 독후감
종의 기원(동서문화사)브로카의 뇌도킨스, 내 인생의 책들코스믹 컨넥션
딱 하루, 24시간만 열리는 모임
[온라인 번개] ‘책의 날’이 4월 23일인 이유! 이 사람들 이야기해 봐요![온라인 번개] 2회 도서관의 날 기념 도서관 수다
🌸 봄에 어울리는 화사한 표지의 책 3
[책증정/굿즈] 소설 《화석을 사냥하는 여자들》을 마케터와 함께 읽어요![책 증정] 블라섬 셰어하우스 같이 읽어 주세요최하나 작가와 <반짝반짝 샛별야학>을 함께 읽어요.
<이 별이 마음에 들어>김하율 작가가 신작으로 돌아왔어요.
[책증정 ]『어쩌다 노산』 그믐 북클럽(w/ 마케터)[그믐북클럽] 11. <이 별이 마음에 들어> 읽고 상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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