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히려 다정한 사람들이 살고 있다

D-29
책을 같이 읽으며 자신의 생각을 맘껏 펼치시기 바랍니다. 읽다가 떠오른 영감을 맘껏 적으세요.
인간으로 살며 무소유는 그냥 이론과 이상으로만 존재하는 것 같다. 필요한 것은 갖되 너무 많이 안 가지면 된다. 너무 많이 가지려다가 문제가 터지는 것이라고 본다. 평균적인 삶을 살다가 인간으로서 자기만 가진 최고의 희열과 보람, 의미를 가지는 게 좋은 것 같다. 그러려면 어떻게 해야 한다? 자기에게 주어진 것을 살면서 맘껏 실현하는 것이다. 바로 자아 실현이 인간에게 가장 소중한 가치 같다. 주어진 자기 한도 내에서 맘껏 펼치는 것.
인간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나 사실 인간과 인간 세상은 믿을 게 못 된다. 어떻게 보면 인생은 고해(苦海)에 불과하고 세상에서 변하지 않고 영원한 것은 없다. 모든 게 변한다는 것만이 진리다. 잘 변하지 않는 자기 멋에 겨워 사는 게 그나마 맞다. 인간 세상에 미련을 두지 말고 한쪽 발만 인간이 사는 현실에 살짝 담그고 (페르소나를 갖고, 가면을 쓰고, 가식을 겸해서) 사는 동안 인간으로서 가장 치열하게 자기 이상(理想)을 향해 고개를 들고 있어야 한다. 발은 현실에, 머리는 이상에 두고 있어야 한다. (그러면서, 유사시에 대비해 발은 항상 뺄 준비를 하고 있어야 한다. 그러니 푹 담그면 안 된다. 그렇지 않으면 그들이 내 발목을 잡고 물고 늘어질 것이다. 그들은 쓸데없는 곳에만 악바리로 달려들기 때문이다.) 내 이상을 이해하지 못하는 인간들에게 발설해 봐야 이해도 못할뿐더러 비웃음만 사거나 나를 자기의 변하고야 마는 인간 세계로 못 끌어들여 안달일 것이다. 그러면서 내가 그리로 가면, “그렇게 잘난척하더니, 너도 별수 없네!” 하고 온갖 모욕을 퍼부을 것이다. 원래 인간들은 자기 그룹에 나중에 합류한 약자를 밟고 비웃는 맛으로 산다. 자기 나라에 밀려드는 인종에 대한 차별이나 텃세를 보면 안다. 인간 세상의 본질을 모르고 순진하게 그들에게 내 숭고한 이상을 설명하고 설득하느라 너무나 많은 에너지가 소모되어 정작 내 이상을 실현하는데 기운이 빠져 시작도 못 할 수 있다. 이게 뭔가, 남는 게 뭔가. 선택해야 한다. 내 이상을, 이루어질 가능성도 없는, 그들에게 설명하는데 내 귀중한 인생 다 허비할 것인가, 혼자서라도 이상을 실현하는데 모든 에너지를 집중할 것인가. 모든 내 말은, 그 말을 알아들을 수 있는 사람에게만 해야 한다. 그들과 연대해야 한다. 그들을 한없이 아끼고 소중히 여겨야 한다. 그들은 이 지구가 더이상 썩지 않게 하는, 한 줌의 소금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 외의 나머지에겐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헛수고에 불과하다.
소설은 그래도 혼자 쓰는 거라 좋을 것 같습니다. 영화는 혼자 만드는 게 아니라 여러 사람이 딸려 작품성 같은 자기 욕심만 부릴 수 없습니다. 그러나 소설은 안 팔리고 망해도 나 혼자 망하는 거니까 부담이 적은데 봉준호나 이창동, 홍상수가 아니면 그냥 작품성만 신경 쓸 수 없는 것도 사실입니다. 흥행을 해서 돈이 들어와야 스패프들에게도 돈이 돌아가니까요. 그래서 작품성보단 이상하지 않고 권선징악, 정치적 올바름에 다다를 수밖에 없는 오직 관객에게만 호소하는 작품만 나와 안타깝습니다.
인간은 다 자신 중심으로 살아간다. 자기가 아는 한도 내에서 모든 것을 판단하는 어리석은 것들이다. 그게 세상의 다인 줄 안다. 그러니 끊임없이 사고하고 성찰하고 반성하고 언제 어디서든 겸손해야 한다.
전쟁처럼 사람이 무더기로 죽는 것도 한 사람의 신앙, 이념, 정치적으로 다 이용된다. 그속의 국민은 죽을 수도 안 죽을 수도 있는데 ,그게 다 정치적인 힘의 작용으로 영향을 받는다. 한 체제 안의 사람 목숨은 정치적인 것에 달렸다. 그래서 정치가 중요한 것이다. 자기 목숨과 같은 것이니까.
개고기 나는 개고기를 즐겨 먹는다. 보신탕집이 요즘엔 많이 줄어 그렇게 자주 먹지는 못한다. 여름철에 땀을 많이 흘려 기력이 없을 때 삼계탕보단 개고기가 더 잘 내 체질에 맞는다. 물론 내가 개고기를 즐겨 먹어 못 먹게 하는 인간들을 안 좋게 보는 건 맞지만, 그럼 흑염소도 안 먹어야지? 왜 개고기만 갖고 그러냐? 이건 인간 중심적인 사고에 불과해 나는 안 지켜도 그만이고 너무나 당당하고 떳떳하다. 비논리적인 말은 절대 들을 필요가 없다. 그런 말은 여기선 맞을지 몰라도, 다른 곳에 가면 틀릴 수 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나는 반골 기질이 있어, 하지 말라면 더 한다. 단지 개만 인간하고 가깝고 친하다고 그것만 못 먹게 하고 대신 소나 돼지, 닭은 그야말로 작살을 내니, 무슨 조상 중에 고기 못 먹고 죽은 귀신 있나, 왜 모두 고길 못 먹어 환장들인가. (이게, 미국이 이스라엘과 친하다고 일방적으로 편들어주고 하마스는 테러 집단으로 규정하는 것과 뭐가 다른가.) 그들의 말은 앞뒤가 안 맞는다. 자기 위주로 한 말에 불과하다. 특정한 동물만 못 먹게 하지 말고 그냥 인간도 동물이니까 안 먹고는 못 사니까 적당히 식량 차원에서 아무거나 적당히 먹는 사람들이 현시대엔 더 옳은 거고, 위선적이지 않다고 생각한다. 반대하는 인간들은 모두 자기에게만 맞게 정당화하는 것에 불과하다. 대구는 또 뭐냐? 이슬람교 혐오하느라고 회교도 성당 앞에서 삶은 돼지 고지를 펼쳐놓고 파티하는 꼴이라니, 정말 가증스럽고 역겹다. 자기 종교가 소중하면 남의 종교도 소중한 거 아닌가. 이런 인간들보다 내가 더 당당하고 큰소리 뻥뻥 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적어도 나는 다른 사람의 식성과 신념에 대해선 욕하거나 혐오하진 않으니까. 모두 존중한다. 문화나 취향, 신앙 차이로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한다. 자기 일이나 똑바로 하지, 왜 남의 일에 감 놔라 배 놔라 간섭이냐? 나는 상대적인 걸 신봉하고 인간 사회에서 다양성을 최고의 가치로 친다. 획일적이고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 자기 앞으로 헤쳐모여, 하는 인간을 경멸한다. 내가 킬러라면 가서 암살하고 싶다. “자기가 뭔데?” 인간의 가치는 시대나 장소에 따라 얼마든지 변하기 때문에 절대적인 가치는 없다. 왜 못 먹게 하냐고 내 주장을 떠들고 다니면, 쓸데없는 소음에 시달릴 것 같아 그냥 조용히 먹기만 하는 것이다. 똥이 무서워 피하냐, 더러워서 피하지. 나는 개고기를 적당히 먹는다. 이젠 실컷 먹을 곳도 점점 사라지고 있어 안타까울 뿐이다. 개고기 요리사도 점점 줄고 돼지나 소처럼 개고기도 부위 별로 세분화하고 더 맛있게 레시피를 개발하고 해야 하는데 탕 아니면 수육뿐이니, 이젠 유명한 식당을 일부러 찾아다니며 먹는다. 개고기 맛집 순례다. 그래도 나는 행복하다.
물자 지원을 하는 선진국은 아마 이것만 바랄 것이다. 아니 틀림없다. 아프리카를 실질적으로 도울 필요는 없고, 그걸 통해 자기들의 우월감을 다시 한번 확인하고, 세계에서 자신의 이미지만 각색하면 되는 것이다. 진짜 바라는 것은 자기에게 유리한 정부를 세우고 자기들에게 협조하는 권력만 암암리에 지원하는 것.
흥행 작품 이름 없는 연출자나 작가의 드라마나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었다는 건, 그 모양이 아무런 색깔이 없고 무덤덤하다는 말이다. 작품이 맹탕이란 말이다. 드라마가 너무 내용이 음울하고, 깊고, 어두우면 남에게 (이런 작품은 현세엔 안 맞고 한 세대가 지난 후 베스틀셀러가 될 수는 있다.) 아니, 친구에게까진 소개할지 모르지만, 자식이나 부모에게까지 소개하지 못한다. 그러니 친구까지만 보고 마는 것이다. 관객이나 독자는 거기서 더 나아가지 못한다. 내용이 사랑하는 가족에게까지 추천하긴 뭐해 그런 것이다. 내용이 영 이상한데 자기 가족에게 가서 보라고 하겠나. 그 작품은, 남녀노소 누구나 소화 가능한 무난한 작품이란 말이다. 누구나 불만 없고 굳이 욕할 수 없는 작품이다. 그러나 그게 그들의 뇌리엔 오래 가지 못하고, 그렇게 큰 영향을 주지도 못하는 것도 어쩌면 너무 당연하다. 정규 방송 황금 시간대에 방영되는 드라마가 대부분 여기에 딱 들어맞는다. 우린 그걸 굳이 따지지 않고 소파에 누워 가볍게 본다. 그러다가 스르르 잠이 든다. 너무 여러 층을 만족시키려고 하면 아무런 맛이 없는 작품이 될 수밖에 없다. 영화도 어느 정도 흥행하려면 너무 잔인하거나 선정적인, 하드보일드한 내용보단 ‘범죄도시’처럼 단순히 통쾌만 하고 권선징악적인 그런 게 삽입되어야 한다. 그래 감독의 주장이 아닌 관객의 눈치를 보고 자기 검열과 사회적 검열을 반드시 거친다. 그런 작품을 보면 내용이 뻔하다. 결론을 이미 예상하고 그러려니 하고 본다. 혹시나 했으나 역시나인 것이다. 내 예상을 절대 뛰어넘지 못한다. 예상을 뛰어넘은 작품이라면 베스트셀러가 될 수 없었다. 보여주는 게 지금 정서에 너무나 잘 들어맞는 지당하신 말씀뿐이다. 세상 문제에 근본적으로 접근하지 못하고 피상적으로 단세포적 재미만 선사하고 제공한다.
인간이 하는 일은 다 그 사정을 들어보면 그럴듯한 게 많다. 모두 자기만의 사정이 있다. 아프리카에서 소수민족이 저항하는 데도 다 이유가 있고 다수민족이 그들을 제압하는 데도 다 명분과 사정이 있다. 인간들은 끝없이 이러다가 인생 다 허비하는 것 같기도 하다. 별 거 없는 것 같다. 그런 인간들의 하찮은 짓을 뛰어넘을 더 큰 이상을 찾고 그것을 향해 가면 흔들리는 일은 없을 텐데 나 또한 인간 중 하나 아닌가. 인간들이 하는 것에서 나 하나가 벗어나는 것은 그래서 어려운 일이고, 그건 인간임을 포기해야 가능할 것도 같다. 하여간 인간들이 하는 짓거리는 모두 어리석은 짓처럼 보인다. 그래서 어쩌겠다는 것인가.
종교를 가진 자의 글 종교를 가지고 글을 쓰면 그 안에서밖에 쓸 수 없을 것 같은데, 아무래도 종교적인 냄새가 나고 그것을 뛰어넘는 글을 못 쓸 것 같은데, 글을 쓴다는 것은 그 궁극이 인간이 만든 모든 한계를 뛰어넘는 그것으로 향해야 하는 거 아닌가. 그런 점에서 종교가 방해되는 거 아닌가. 작가의 글은 자기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반영될 수밖에 없기에. 신앙이 깊은 자는 자기 종교를 중요하게 생각하고 우선시 하는 면도 없지 않기에. 특히 기독교는 믿는 자들이 종이고 신은 모든 것이므로 감히 신자가 모든 것일 수는 없기에 아무리 해도 자기는 종이지 주인이 절대 안 되는 거다. 불교가 성불하라면서 자신도 부처가 될 수 있다고 하는데. 그게 비록 인간 중 절대 다수가 믿는 신앙이라도. 아무래도 그들은 다수에 속하는 자들이기에, 오히려 그것을 안 믿는 자들이 소수자일 수 있으므로 오히려 글은 더 그들을 대변해야 하는 거 아닌가. 그러니 종교를 갖도 글을 쓰면 아무래도 다수를 대변하는 거 아니냐고. 그러니 글에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다고. 고정 틀을 부수어야 하는 글과 다수보단 소수자를 대변하는 글의 목적에 비추어서는.
뭘 해야 하나 인간들과 섞여 살면서, 자신이 궁극으로 해야 할 일을 제대로 찾는 게 중요한 것 같다. 사실 군인은 사람을 죽여 전쟁에서 승리하는 게 목적이다. 다른 나라가 쳐들어오기 전에, 나라를 지킨다고 하지만 결국은 사람을 많이 죽여야 이긴다. 매일 훈련 하는 게 사람을 더 잘, 많이 죽이는 기술과 방법을 익히는 것이다. 검사는 범인을 잡아 그에게 법을 사용해 벌을 받게 하는 게 목적이다. 그러나 실은 사람을 가려 고무줄처럼 법을 적용하고, 사람을 죄가 있나 없나로 분류한다. 이들은 사람을, 현재 죄인과 앞으로 죄인이 될 개연성이 있는 자로 구분한다. 후자는 다만 아직 죄를 안 지은 것뿐이다. 죄를 지을 가능성이 농후한 자이다. 그는 이미 죄를 지었을지도 모른다. 아니 지었다. 불법을 안 저지른 자가 누가 있겠나. 아직 밝혀지지 않은 것뿐이다. 인간은 둘 중 하나란다. 이렇게 단순 논리를 가진 자가 복잡한 정치 지도자로 당선되었다. 이들은 권력의 개로서 민주주의 발전과 반대의 길을 걸어왔다. 따라서 그들을 부러워할 하등의 이유가 없다. 그들은 명분(名分)이 약하다. 선생의 목적은 무엇인가. 아이들을 기능인(技能人)으로 만들어 사회에 나가 당장 쓸모있는 인간이 되게 하는 것인가, 아니면 자아를 실현하고 타인과 사회에 도움이 되는 인간을 만드는 것인가? 수동적 인간으로 키울 것인가, 주체적 인간으로 만들 것인가. 이 정도 직업이면 그래도 괜찮다. 할만하다고 생각한다. 어디 가든 그 목적이 떳떳하다. 하지만 임용고시라는 바늘구멍을 통과했다고 해서 아이들을 가르칠 때도 공부 잘하는 애들만 자기가 그랬으니까 그들에게만 관심을 가져선 안 된다. 누구나 자기와 비슷한 사람을 지지하기 때문에 아무리 선생이라도 이걸 지키는 건 쉽지 않다. 그런 생각을 갖고 있다면 선생이 안 되는 게 나을 수도 있다. 요즘엔 이제 학부모가 그들을 무시한다. 그걸 보고 아이들도 따라 한다. 스승으로 잘 대접해야 하는데 자기 자식만 홀대할까 봐 눈에 쌍심지를 켜고 그들을 감시한다. 저학년일수록 선생의 역할이 더 중요한 것 같다. 아이들이 받아들이는 게 더 많고, 기능적인 것보다 더 근본적인 걸 배우니까. 사는데, 가장 필요한 기본적인 것. (인간은 이런 것에서 벗어나기가 쉽지 않다. 자기 위주에서. 정 코스를 밟아 한 번에 공무원이 된 사람이 운동하다가 부상을 입어 운동을 더는 못 하게 되어 건달 노릇을 하는 사람을 따르고 존경하겠는가. 너무 다른 세계여서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작가는 유명한 선배 작가를 따르고, 교수는 국립대학에서 한 자리 차지하고 있는 종신 교수를 따른다. 지금 인간 세상에서 잘나가는 의사도 돈 잘 버는 성형외과 의사를 따르지, 세상 이치에 통달한 거리의 철학자를 따르진 않는다. 이스라엘이 하마스를 상대로 인종 청소를 하겠다고 선언하는 것도, 다 자기 위주에서 못 벗어나 그런 것이다. 인간이 이것에서 못 벗어나는 것은, 내 ‘영혼(靈魂)’이 나와 늘 함께 있고 남의 몸에 그 영혼이 절대 붙지 않고 그가 아닌 나와만 하루 24시간을 보내기 때문에, 오직 나만 이해하기 때문에 일어나는 속성이다. 내 영혼이 내 몸에만 붙어 다녀서 그런 것이다. 다른 이유는 없다. 남의 삶을 살지 못해 그런 것이다. 자기 위주에서 벗어나는 것이, 이래서 쉽지 않은 것이다. 해결법은 기술이 더 발달해, 영혼을 이식해 다른 사람의 몸에 붙이는 것이다. 영혼이 자기 몸뚱어리를 버리고 다른 사람의 몸과 함께 살아보는 것이다. 인류가 이것에서만 벗어나도 지금 일어나는 문제의 반 이상은 해결될 것이다.) 그럼 작가는? 내가 보기엔 인간들이 사는 세상에서 쉽게 해결 안 되는 문제에 뛰어드는 게 작가라는 직업에 가장 어울리는 것 같다. 자기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자기 생각을 마구 토해내니까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직업이라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돈이 없다. 현실적으로 힘들다. 그러나 자기 잘난 맛에 살고 자기에 대한 자부심이나 명예가 없으면 사실 궁핍해서 현실을 견디기 힘들다. 그것으로 겨우 견디고 버틴다. 작가는 글을 쓰면서 이런 것들을 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는 왜 사는가? 인간은 이 지구상에 진정 필요한 존재인가? 그들이 꼭 있어야 하는가, 차라리 없는 게 더 낫지 않나? (인간보단 동물이라면 있어야 한다. 먹이사슬을 위해 필요하다. 동물은 다른 개체 생존에도 필요하기 때문에 반드시 존재할 필요가 있다. 알고 보면 필요 없는 것은 없다. 동물은 잔인하지 않다. 증오를 모른다. 냉혹하고 잔인해 보이지만 그냥 자연에 의존해 본능에 충실할 뿐이다.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본능 그 자체다. 따라서 동물의 행동은 예측이 가능하다. 그러나 인간은 ‘감정’이란 게 있어 무슨 일을 저지를지 모른다. 감히 상상도 못 할 짓을 할 수 있다. 그들이 사는 세상에서 일어나지 않을 일은 없다고 생각해야 제대로 살아갈 수 있다. 아마 그 감정의 작용으로 지구를 파괴할지도 모른다. 그 결과 모두가 죽을 수 있다. 몰살당하는 것이다.) 어차피 다 우주적으로 정해진 수순이라 그냥 둬도 우주적으로 그들의 영향력은 미미하기 때문에 굳이 건드릴 필요도 없는가? 건드리지 않는다면 타인과 어떻게 같이 살아가야 하나? 인간들의 잡다한 골칫거리에 내가 어떻게 반응해야 하나? 그들에게 협조해야 하나, 아니면 하는 짓이 뻔하니 그럴 필요가 없나? 인간의 진정한 목적이 뭐라 생각하나? 그들이 실제 가는 곳과 진짜 가고 싶은 곳이 같은가? 인류는 어느 방향으로 가야 옳은가? 지금 인간 사회에서 일어나는 문제를 어떤 식이나 방향을 갖고 해결해야 옳으며, 과연 인간들이 그럴 능력이 있다고 보는가? 그들에게 맡기면 전부 다 망하는 거 아닌가? 모두가 다 몰살하는 거 아닌가? 알고 보면 인간이 사는 세상에서, 유치원에서 배운 대로 하면 아무 문제 될 게 없는데, 그건 안 하고 어른들은 엉뚱한 짓을 하며 세월을 허송하고 있는데 도대체 이들은 왜 이렇게 어리석은 행동을 반복하는가? 과연 고칠 수 있다고 보나? 혼이 나면서도 어리석은 짓을 반복하는 것 같다. 자기들이 어리석다는 것을 스스로 알면서도 그런다. 옳은 방향은 아는데 그대로 실천을 안 한다. 왜 아는 것과 실제 행동이 다른가? 이것도 자기 위주와 현실을 더 중히 여겨 그런 것인가? 어리석어서. 그들이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현실인가, 그들의 이상인가? 그러나 그들은 이상을 알면서도 자기들이 세워놓았으면서도 그걸 버리고 엉뚱한 짓을 한다, 오늘도. 참! 구제 불능이다.
인간 세상에서 나무만 보고 숲을 보지 않으면 일을 그르칠 수 있다. 종합적으로 판단한 후 실행해야 한다. 전문가가 자기 분야만 생각해 인간 세상에서 벌어지는 일을 진단하고 그것에 근거해서만 실행하면 아무리 선의라고 해도 엄청난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 그래서 종합적으로 판단하는 사람이 필요한 것이다. 요즘엔 너무 전문가만 있다. 그러다가 선무당이 사람잡는다고 큰일날 수 있다.
신은 존재하는가 나는 무신론자(無神論者)다. 신은 있는가? 나는 없다고 본다. 신자(信者)들은 자기가 모시는 신이 침묵만 한다고 원망하는 데 없으니까 침묵만 하는 거 아닌가. 아이들이 들어도 웃을 일이다. 솔직히 신이 아니라 자연이 존재하는 거 아닌가. 이 우주가. 그냥 우주는 인간의 바람대로가 아니라 자기에게 주어진 궤도를 돌 뿐이다. 괜히 인간들이 허망하니까 거기에 뭔가 의미를 갖다 붙이는 것뿐이다. 우주와 자연은 인간들이 붙인 쓸데없는 의미와는 상관없이 자기에게 주어질 일만 할 뿐이다. 자연이 아무 대답이 없으니까 더 서운하고 그래서 두려우니까 뭔가 대답을 하는 신을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인간이 모시는 것뿐이다. 결국은 인간 존재도 이 우주의 광활하고 영원한 흐름에서 하나의 물거품과 모래에 불과할 따름이다. 그리고 인간은 ‘마음’이란 것이 있어, 앞날과 무지가 두려우니까, 자기의 원죄적 고통에서 벗어나려고 신이라는 위대하고 전능한 것을 만들어 거기에 기대려 했던 거 아닌가. 지금이 고통스럽고 두려울 적마다 자기를 살려달라고 신에게 기도하는 것이다. 신이 인간을 창조했다고 하는데 솔직히 자연이 인간을 잉태했지, 신이 했겠나. 우주의 큰 흐름에서 우연히 인간이 발생한 것이리라. 그리고 인간은 진화를 거듭해 이 골치 아프고 복잡한 ‘마음’이란 게 생겨 자연의 두려움에서 벗어나려고 신을 내세워 거기에 의지해 생을 버텨온 거 아닌가. 자기의 약함을 알수록 거기에 더 기댄다. 나는 그게 맞다, 고 본다. 인간 낳고 신 낳지, 신 낳고 인간 낳지 않았다고 본다. 아마 인간은 이 ‘마음’ 때문에 두려움이란 게 생겨 뭔가 약하디약한 자기를 극복하고 살아남으려고 도구를 만들고 그래 머리는 더 발달하고 해서 지금의 문명도 낳았다고 본다. 인간에게 마음이라는 게 생겨 그 마음엔 공포와 두려움, 불안도 있어 그것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문명을 낳고 이 지구를 지배하는 종이 되었다고 본다. 이런 과정에서 신도 만든 것이고. 이런 데도 자기가 모시는 신이 진짜라며 서로 죽이면서 전쟁을 하니 참으로 어리석은 종자들이다.
인간 다루기 인간은 믿을 게 못 된다. 알아서 하지 못한다. 착한 사람에게 착하게 하고, 악한 사람에게 악하게 해야 하는데 거꾸로 한다. 인간의 더러운 속성이다. 기후 위기를 보면 안다. 알아서 못 한다. 그냥 죽으려고 불로 뛰어드는 부나방 같다. 그래 제대로 정신이 박힌 사람이 일깨워줘야 한다. 그래야 모두가 다 살아남는다. 그냥 두면 다 몰살이다. 스스로 알아서 제어를 못 하니, 아예 제도적으로 인간을 감시하는 걸 만들어야 한다. 그래서 법을 만든 것인데도, 그것을 살살 빠져나가려는 인간들이 있다. 이런 인간들이니 항상 감시하고 견제해야 한다. 놔두면 나라로 치면 독재가 되는 것이고, 재벌로 치면 독점이 되어, 국민과 소비자를 자기 마음대로 주무르려고 한다. 그래, 그냥 두면 안 된다. 인간들에겐 힘의 균형만이 만병통치약이다. 한쪽으로 치우친다 싶으면 약한 쪽에 힘을 실어줘 균형을 잡아야 약한 사람들도 그들이 함부로 못 한다. 다른 건 다 자기 위주로 지껄이는 헛소리에 불과하다.
국민들이 책을 너무 안 읽는다. 얼마 안 남은 힘을 다하는 작가들과 함께 나라의 마지막 남은 희망인 독서에 힘써주기 바랍니다. 그래도 문재인 대통령이 책 보급에 힘쓰니 몰려다니며 골프나 치고 아직 난 살아있음을 외치면서 마지막으로 발악을 하는 인간들과는 그 차원이 다르다. 솔직히 책 말고는 나라를 제대로 세울 방법은 따로 없다. 진짜 마지막 남은 희망이 독서인 것이다. 요즘 노조가 힘을 못 쓰는 것도 다 책을 안 읽어서 더이상 권력에 저항을 안 해서 그런 것이다. 책과 멀어지면 불의에 대한 저항도 멀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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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증정 ]『어쩌다 노산』 그믐 북클럽(w/ 마케터)[그믐북클럽] 11. <이 별이 마음에 들어> 읽고 상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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