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언스 이즈 컬처』 혼자 읽기

D-29
앨런 라이트먼_ 기술이 가진 나쁜 점 가운데 하나는 생활의 페이스가 너무 쉽게 빨라진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스타인이 말한 지루함이 들어설 자리가 없어지는데, 지루함이야말로 창의력에서 매우 중요하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사람들은 그저 빨리빨리 뛰어다니기만 하고 있습니다. 생각할 시간이 없다는 뜻이죠. 이는 창의력에 좋지 않을 뿐만 아니라 우리가 누구인지, 우리의 가치관은 무엇인지, 어디로 가고 있는지에 대해 생각할 시간조차 빼앗아버립니다. 저는 그게 아주 걱정돼요. 이런 생각을 하려면 고요하고 방해받지 않는 공간이 필요한데 말이죠.
사이언스 이즈 컬처 - 인문학과 과학의 새로운 르네상스 3장 시간, 노엄 촘스키 & 에드워드 윌슨 & 스티븐 핑커 외 지음, 이창희 옮김
오늘까지 읽은 부분에서 인상적인 내용을 알려 주세요.
라이트먼_ 20세기 예술사를 들여다보면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이 있습니다. 예술이 시각으로부터 시간으로 옮겨가는 모습이죠. 세잔이나 피카소처럼 급진적인 예술가의 경우에서조차도 이들의 강점은 시각예술이었습니다. 그러다가 바넷 뉴먼과 리처드 세라 쪽으로 옮겨갔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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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트먼_ 저는 아인슈타인이 현대 예술가들에게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합니다. 리처드 세라를 비롯하여 두어 명의 조각가들은 대형 설치미술을 합니다. 이런 작품을 감상하려면 실제로 그 속으로 걸어 들어가야 하는데, 10~15분이 걸리기도 하죠. 회화작품 같으면 대개 작품과 감상자가 즉각 상호작용을 합니다. 오랫동안 서서 볼 수도 있겠지만 말이죠. 그러나 이런 설치미술을 감상하려면 수백 미터를 걸어야 합니다. 작품을 만든 조각가들 중 일부는 상대성원리로부터 영향을 받았다고 공공연히 밝히기도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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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트먼_저술가 중에서도 이런 사람들이 있습니다. 나보코프의 단편 『에이다』에서 주인공인 반 빈은 상대성이론, 그리고 자기가 이해하는 시간에 대해 길게 독백을 합니다. 상대성은 상대적인데도 불구하고 시간을 너무 심하게 옭아맨다고 불평하기도 하죠. 상대성이 시간을 지나치게 수량화한다고 하기도 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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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트먼 _ 버지니아 울프가 아인슈타인을 읽었는지는 모르지만, 제가 좋아하는 『댈러웨이 부인』이라는 책을 보면 시계가 가리키는 시간과 사람이 느끼는 시간을 멋지게 대비시켜놓았습니다. 이 소설은 시간 배경이 24시간입니다. 이 책처럼 사람이 순간을 인식한다는 것이 무슨 뜻인가를 상세히 들여다본 문학작품은 과거에는 본 적이 없습니다. 내가 살아 있고 의식이 있다는 게 무슨 뜻인가가 느낌으로 다가오는데, 사실 이러한 경험은 주관적이면서 시간과는 무관한 경험이죠. 이 소설에서 하루가 경과하는 동안 등장인물들은 두 시간마다 시계상의 시간이 경과함을 알리는 빅벤의 소리를 듣습니다. 빅벤에서 규칙적으로 흘러나오는 노래는 인체 밖에서 흘러가는 인공적인 시간의 골격 같은 것임과 동시에 의식의 자유로운 움직임, 그리고 시간과는 무관한 내면적 삶 같은 것이기도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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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트먼 _ 좀전에 시간을 공간처럼 쓰는 조각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소설은 시간의 경과를 통해 향수하는 예술 형식이죠. 소설은 시간입니다. 읽는 데 몇 시간 또는 그 이상이 걸리고, 그 시간 동안 우리는 시간을 떠난 상태가 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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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트먼_예술가들은 과학으로부터 새로운 아이디어를 얻는 것을 매우 좋아합니다. 왜냐하면 예술가들은 세상을 거꾸로 보고 싶은데 과학이 그 수단을 제공하거든요.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 및 하이젠베르크와 슈뢰딩거의 양자론은 직관적으로 지극히 터무니없고, 따라서 예술가들에게는 풍부한 소재를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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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트먼 _ 예술이 과학자에게 도움이 되는 측면 중 하나는 비유나 이미지 등 언어에 관한 것입니다. 이런 것들을 이용해서 과학자들이 이해하려 몸부림치는 대상을 표현할 수 있죠. 실험 장치를 보면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 틀림없이 일어나고 있는데도 직관적으로 이를 이해할 길이 없습니다. 그래서 과학자들은 언어와 이미지를 찾아 헤매고, 이 과정에서 예술이 일부 도움을 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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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트먼 _ 어떤 젊은 시인이 “저에게 시인의 소질이 있습니까?”라고 묻자 라이너 마리아 릴케가 했다는 유명한 대답이 있죠. “문제 자체를 사랑할 줄 알아야 합니다. 문이 잠긴 방, 전혀 모르는 외국어로 쓰인 책 같은 문제를 말이죠.” 예술이란 대부분 이처럼 문제 자체에 관한 것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답보다 의문이 더 중요하죠. 그래서 예술가들이 불확실성과 함께 사는 데 더 익숙한가 봅니다.
사이언스 이즈 컬처 - 인문학과 과학의 새로운 르네상스 3장 시간, 노엄 촘스키 & 에드워드 윌슨 & 스티븐 핑커 외 지음, 이창희 옮김
라이트먼 _ 모호함도 예술의 중요한 부분이죠. 여기서도 저는 부분적으로는 예술가로, 부분적으로는 과학자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소설을 쓸 때 저는 제 인물을 완전히 이해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실제로 제가 좋은 인물을 만들어냈다면 그 인물을 결코 완전히 이해하지 못하는 편이 옳죠. 일단 소설 속의 인물을 완전히 이해하고 나면 적어도 저 자신에게 있어서는 이 소설이 죽은 작품이 되어버리니까요.
사이언스 이즈 컬처 - 인문학과 과학의 새로운 르네상스 3장 시간, 노엄 촘스키 & 에드워드 윌슨 & 스티븐 핑커 외 지음, 이창희 옮김
슈테판 자크마이스터_ 제가 보기에는 방금 말씀하신 대로 모든 것이 관점과 맥락에 달려 있는 것 같네요. 예를 들어, 그래픽 쪽에서 보면 많은 문화권에서 수백 년간 잘 쓰여온 만자[卍字]무늬는 훌륭한 디자인임에도 불구하고 히틀러가 이를 나치의 상징으로 사용하면서 맥락이 완전히 바뀌어버린 경우입니다.
사이언스 이즈 컬처 - 인문학과 과학의 새로운 르네상스 4장 설계/디자인에 관하여, 노엄 촘스키 & 에드워드 윌슨 & 스티븐 핑커 외 지음, 이창희 옮김
드루 엔디_ 그러니까 자연 속의 생명체들은 항상 아름다운가요? 그리고 자연이 설계한 것들을 평가해야 한다면 이것은 좋고 저것은 나쁘다고 판단할 수 있습니까? 우리 생물학자들은 어떤 생명체나 그 생명체의 한 부분이 어떻게 작동하는가를 알아내는 어려운 작업은 할 수 있지만 가치 체계가 없기 때문에 이런 질문을 합니다. 달리 말해 “우아, 이거 설계 정말 잘했다”라고 말할 기준이 없다는 뜻이죠.
사이언스 이즈 컬처 - 인문학과 과학의 새로운 르네상스 4장 설계/디자인에 관하여, 노엄 촘스키 & 에드워드 윌슨 & 스티븐 핑커 외 지음, 이창희 옮김
가령 유기체 안에서 놀랍도록 뛰어나 분자 차원의 모터 같은 것을 찾아낼 수도 있지만, 그 모터의 설계를 어떻게 평가해야 할까요? 이것은 미학의 문제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기능으로 평가해야 한다고 말할 것입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그러한 모양이 나오도록 정보를 부호화하는 과정이 얼마나 효율적인가에 따라 판단해야 한다고 하겠죠. 그러니까 대상의 성질을 창조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사이언스 이즈 컬처 - 인문학과 과학의 새로운 르네상스 4장 설계/디자인에 관하여, 노엄 촘스키 & 에드워드 윌슨 & 스티븐 핑커 외 지음, 이창희 옮김
자크마이스터_ 그래픽 디자인 작품을 평가하는 시스템과 유기체를 평가하는 시스템이 크게 다를 것 같지는 않습니다. 아마 같은 시스템을 쓸 수도 있을 것 같아요. 그리고 그래픽 작품을 제가 어떻게 평가하는가에 대해서는 얼마든지 설명해드릴 수 있습니다.
사이언스 이즈 컬처 - 인문학과 과학의 새로운 르네상스 4장 설계/디자인에 관하여, 노엄 촘스키 & 에드워드 윌슨 & 스티븐 핑커 외 지음, 이창희 옮김
자크마이스터_ 아닙니다. 어쨌든 저희 쪽에서는 강은 하나뿐이고 다들 거기서 낚시질을 합니다. 놀랍게도 고객의 의뢰를 받지 않은 상태에서 실험적인 작업을 하고 있는 사람들도 이 강에서 낚싯줄을 드리우고 있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다국적 기업의 아이덴티티를 디자인한다고 합시다. 그러면 그 디자인을 카라카스에서 하든 오슬로에서 하든 큰 차이는 없겠죠.
사이언스 이즈 컬처 - 인문학과 과학의 새로운 르네상스 4장 설계/디자인에 관하여, 노엄 촘스키 & 에드워드 윌슨 & 스티븐 핑커 외 지음, 이창희 옮김
그런데 실험적인 책을 보아도 스칸디나비아에서 만든 책이나 남아메리카에서 나온 책이나 오늘날은 다 똑같아 보입니다.
사이언스 이즈 컬처 - 인문학과 과학의 새로운 르네상스 4장 설계/디자인에 관하여, 노엄 촘스키 & 에드워드 윌슨 & 스티븐 핑커 외 지음, 이창희 옮김
엔디_ 그러면 왜 이런 일이 벌어진다고 생각하십니까? 우리가 모두 인간이기 때문에 그럴까요? 또는 디자인을 선택하고 평가하는 환경이 너무 비슷해서 그럴까요? 그것도 아니면 디자인을 할 때 동원되는 여러 가지 기술, 표준, 심미적 시스템, 기타 등등이 어떤 공통 요소를 갖고 있기 때문일까요?
사이언스 이즈 컬처 - 인문학과 과학의 새로운 르네상스 4장 설계/디자인에 관하여, 노엄 촘스키 & 에드워드 윌슨 & 스티븐 핑커 외 지음, 이창희 옮김
자크마이스터_ 지금 말씀하신 세 가지가 다 이유가 된다고 봅니다. 제 아버지가 오스트리아에서 성장하실 때만 해도 아버지는 세 마을 건너에 있는 마을에서 무엇을 하는지 모르셨습니다. 왜냐하면 산이 가로막혀 거의 가보지 못하셨으니까요. 그러나 오늘날 저는 실험적 디자인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가를 디자이너 두 명 수준까지 추적할 수 있습니다. 요즘은 워낙 연결들이 잘되어 있어서 말씀하신 대로 모노컬처가 되어버렸기 때문인가 봅니다.
사이언스 이즈 컬처 - 인문학과 과학의 새로운 르네상스 4장 설계/디자인에 관하여, 노엄 촘스키 & 에드워드 윌슨 & 스티븐 핑커 외 지음, 이창희 옮김
아리엘 루이스 이 알타바_ 그러면 과학도 시적인 개념에 바탕을 두고 있다고 보시나요? 호안 폰트쿠베르타_ 아닐 이유가 없죠. 과학의 원천에 이러한 시적 측면이 있는데도 과학이 이를 거부한다는 사실이 저는 좀 언짢았습니다.
사이언스 이즈 컬처 - 인문학과 과학의 새로운 르네상스 5장 객관성과 이미지, 노엄 촘스키 & 에드워드 윌슨 & 스티븐 핑커 외 지음, 이창희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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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믐연뮤클럽] 9. 죽은 자를 묻고 그 삶을 이어갈 것인가 "살아 있는 자를 수선하기"[웰다잉 오디세이 2026] 1. 죽음이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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