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걸상 함께 읽기] #47.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

D-29
개인적으로 구술사를 꽤 좋아하고 열심히 찾아 읽는 편입니다. 스바틀라나 알렉시예비치를 저번 [체르노빌] 드라마를 통해 알게 되었고, 이런 일을 오래 해온 러시아 작가를 발견해 좋았습니다. 이 책의 초반부에 그가 왜 구술사를 하게 되었는지 구구절절 설명하는데 많은 공감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페레스트로이카가 진행되면서 이 책도 발간 되었다는데, 과거의 모든 영광들이 끔찍한 진실 위에 씌워져 있다는 사실을 알게된 러시아 인들의 충격이 떠오릅니다.
오래 전에 빌려 10% 정도 읽다가 반납했던 것 같은데, 새삼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 상황에서 다시 읽으니 저자의 출신이 굉장히 마음 아프게 다가왔습니다. 우크라이나 어머니와 벨라루스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나 전쟁을 겪은 이들에게 구술사를 모았는데 현 상황이라니. 현재 벨라루스의 입장과 함께 이 책을 쓰게 된 감명을 준 책이 벨라루스 작가들의 책이었다는 것도 아이러니컬 합니다.
알렉시예비치의 최근 생각들을 확인해보니 두 개의 기사가 뜹니다. https://www.asahi.com/ajw/articles/14811082 (2023. 1. 25) https://voxeurop.eu/en/svetlana-alexievich-we-are-confronted-with-russian-fascism/ (2023. 2. 23 - 부분 공개) 영어 위키백과에 따르면 알렉시예비치는 현재 독일에 망명하여 거주 중인듯 합니다. 마지막으로 쓰던 책은 2020년의 벨라루스 민주화 운동에 대한 책이었던 것으로 보이는데 주요 야당 후보 캠프의 주요 위원이었던 알렉시예비치는 형사 소송을 당하고 복면을 쓴 이들에게 납치 당할 뻔하기도 합니다. 전에 이 책을 읽었다 말았던 때는 전쟁 중이지 않았던 시기라, 그런 시간들이 너무 아련하게 느껴지기도 하네요. 아사히 뉴스에서 마음에 들어오는 내용을 옮겨봅니다. (기계 번역) [질문자: 아프가니스탄에서 싸우다 사망한 소련 군인의 어머니나 체르노빌 원전 사고로 사망한 군인의 유족 등 비참한 경험을 한 사람들을 인터뷰하셨습니다. 어떻게 하면 사람을 그러한 절망에서 구원할 수 있습니까? 알렉시예비치: 가까운 사람을 잃었거나 절망의 벼랑 끝에 서 있는 사람들이 의지할 수 있는 것은 다름 아닌 일상입니다. 예를 들어, 손자의 머리를 쓰다듬거나 아침에 커피 한 잔을 마시는 것입니다. 인간은 인간이라는 단순한 행위로 구원을 받습니다.]
찾아보신것 공유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무래도 지금 상황이 상황이다보니 더 와닿는 부분이 있다고 생각해요. 마지막 인터뷰 대답에 울림이 있네요. 어떻게 보면 평범한 말인데, 상상조차 어려운 극한 상황을 경험한 사람들을 수없이 인터뷰한 저자가 이렇게 답하니 믿(고싶)게 됩니다.
행복이 뭐냐고 한번 물어봐주겠어? 행복…… 그건 죽은 사람들 사이에서 기적처럼 산 사람을 발견하는 일이야……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 144, 안나 이바노브나 벨라이, 간호병,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 지음, 박은정 옮김
거의 다리 전체를 들어내는 수술이 자주 있었는데, 수술이 끝나면 절단된 다리를 세면대로 가져가야 했어. 무겁기도 무거워서 다리를 안다시피 해서 간신히 가져가곤 했지. 다리를 내갈 땐 부상자가 듣지 못하도록 조용조용 움직였어…… 어린아이 다루듯 조심해서 내갔지… 무릎 위까지 절단한 다리일 경우엔 특히 더 조심했고.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 168, 마리야 셀리베르스토브나 보조크, 간호병,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 지음, 박은정 옮김
'애들아, 더 자라서 오렴 ...'까지 읽었습니다. 모두 하나의 짧은 일화 혹은 누군가가 기억나는대로 말하는 이야기 자체일 뿐 아니라 시간이나 공간 순서가 아니기 때문에 모든 것이 기억에 남지는 않되 아주 여러 번 덧칠된 유화처럼 전체적인 상이 구성되어 갑니다. 다른 구술사와 달리 유독 눈에 띄는 것은 수많은 말줄임표 들입니다. 화자는 오랜 과거에서, 말을 고르고, 피하고 싶은 상념을 피하며 이야기를 꺼내 놓습니다. 다들 너무 어렸고, 명분이 더 강했으며 희생자가 많아 복수하고 싶었던 전쟁이라 자발적인 참여자들도 많았네요. 우러 전쟁으로 인해 익숙해진 우크라이나 지명이 나올 때마다 가슴이 아픕니다.
저도 이 책을 읽으며 말줄임표가 유독 많다고 생각하며, 그 여백이 주는 여러 마음과 말로 표현하지 못하는 감정을 느끼게 됩니다.
말줄임표가 이렇게 많은 생각을 하게해줄지 몰랐어요.
"시간이나 공간 순서가 아니기 때문에 모든 것이 기억에 남지는 않되 아주 여러 번 덧칠된 유화처럼 전체적인 상"이 그려진다는 말씀, 이 책의 특징을 정확하게 설명하신 것 같아요. 멋진 비유라서 저도 곱씹어 봅니다.
현재 우크라이나는 4만 3천명의 여성이 복무하고 있으며, 올 해 11월 9일에 여성 나이 제한을 40세에서 60세까지 늘려 더 많은 여성을 징집하기로 했다고 합니다. 러시아에서도 현재 4만명의 여성이 군에 복무 중이며 러시아에서 말하는 '특별작전', 즉 우러전에는 1100명의 여성이 참전 중이라고 합니다. 이 책의 전쟁에서는 약 백만 명이 참전했다고 알려져 있다고 하니... 곱씹게 되니 더욱 씁쓸합니다.
-이 꼬맹이는 뭐야? 네가 여기서 뭘 하겠다는 거지? 엄마한테 돌아가서 더 자라면 오는 게 어때? 그때 나는 이미 엄마가 안 계셨어……폭격에 돌아가셨거든……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 얘들아, 더 자라서 오렴… 너희는 아직 어리단다… p.96,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 지음, 박은정 옮김
@김새섬 님 등께서 이 책의 구성을 문의해 주셨는데요. 저자가 나름대로 장마다 테마(중심 질문)를 정해 놓았어요. 그리고 그 테마에 맞춤한 목소리를 재구성해서 수록하는 식입니다. 알렉시예비치의 작업이 단순히 구술을 늘어놓은 녹취록이 아니라 저자의 새로운 창작으로 평가할 수 있는 대목이 이 부분인 것 같아요. 똑같은 내용의 목소리라도 어떤 맥락에 위치시키느냐에 따라서 독자에게는 전혀 다른 효과를 불러일으킬 테니까요.
저도 말줄임표에서 같은 생각을 했어요. 원래 구술부분을 읽으면 말의 속도로 빠르게 읽히는 편인데, 말줄임표가 많으니 빨리빨리 읽지 못하고 그 부분에서 자꾸 멈추고 생각해보게 되더라구요.
화제로 지정된 대화
오늘은 12월 1일입니다. 다들 12월에 2023년을 즐겁게 보내길 바랍니다. 오늘과 주말(12월 2일, 3일)에는 2장 '애들아, 더 자라서 오렴' 편을 읽습니다. 70쪽 분량입니다. 이 장에서 저자는 도대체 그 소녀들은 어디서 왔는지, 왜 전쟁에 참여하게 되었는지 묻습니다. 그녀가 들려주는 목소리에 한번 귀를 기울여 보세요.
1941년의 소녀들. 무엇보다 나는 그 소녀들은 대체 어디서 왔는지 묻고 싶다. 그것도 그렇게나 많이. 그들은 어떻게 남자들과 똑같은 무기를 들고 싸울 생각을 했을까?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 90쪽,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 지음, 박은정 옮김
어쩌면 그때 우린 눈이 멀었던 건지도 몰라. 그리고 그때 우리가 많은 것을 놓치고 보지 못했다는 사실도 부인하지 않겠어. 하지만 우리는 눈이 멀었으면서도 동시에 순수했어. 우리는 두 개의 세상, 두 개의 인생을 사는 사람들이라는 것, 당신은 그걸 꼭 알아야 해......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 얘들아, 더 자라서 오렴... 너희는 아직 어리단다...,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 지음, 박은정 옮김
저도 이 문장에 밑줄을 그었어요. 삶을 사랑했고, 살고 싶으면서도 무릎을 꿇고 사는 삶은 거부하는, 우리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서라는...
문장수집하고보니 여기도 이 문장이 있네요.
앞의 맥락까지 같이 수집해 주셔서 더 와 닿는것 같아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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