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걸상 함께 읽기] #47.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

D-29
남자들은 전쟁에 다녀왔기 때문에 승리자요, 영웅이요, 누군가의 약혼자였지만, 우리는 다른 시선을 받아야 했지. 완전히 다른 시선...... 당신한테 말하는데, 우리는 승리를 빼앗겼어. 우리를 승리를 평범한 여자의 행복과 조금씩 맞바꾸며 살아야 했다고. 남자들은 승리를 우리와 나누지 않았어.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 우리집엔 두 개의 전쟁이 산다...,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 지음, 박은정 옮김
전선에서 남자들은 따뜻하고 선량했어. 다른 모습은 본 적이 없어. 그런 건 아예 알지도 못했지. 그런데 전쟁이 끝나고 나서는? 차라리 아무 말 않겠어...... 아무 말도...... 무엇이 우리의 추억을 훼방 놓는 줄 알아? 그 추억들을 견딜 수가 없다는 점이야......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 전화기는 사람을 쏘지 않잖아...,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 지음, 박은정 옮김
이 책 읽으면서 틈틈이 ‘소녀 동지여 적을 쏴라’를 읽었어요. 세계사에 무지한지라 소설 읽으며 대략 독소전쟁에 관한 내용 찾아보면서 같이 읽으니 소녀동지도 좋았어요. 마지막에 그 책과 이 책이 이어지는 부분에서 왠지 울컥했어요. 이 책이야 물론 더할나위없이 훌륭한 책이지만 ‘소녀동지’도 저처럼 무지한사람에게는 이 책을 시작하게 만들 충분한 동력을 주는 좋은 소설이었습니다.
화제로 지정된 대화
오늘(12월 8일)부터 주말(12월 9일, 12월 10일)까지는 '우리는 작은 메달을 받았어'와 '그건 내가 아니었어'를 읽습니다. 이 장에서는 의무병으로 참전했던 이들의 목소리가 저마다 다른 색깔로 펼쳐집니다. 저는 이 부분을 읽다가 여러 번 멈췄어요. 주말에 천천히 읽으시길 바랍니다.
전투가 끝나면 사람들 얼굴을 쳐다보지 않는게 차라리 나았어. 다들 평소에 보는 보통 사람의 얼굴이 아니었으니까. 완전히 딴 얼굴이 되어 있었으니까. ... 짐승 같은 뭔가가 번뜩였다고 할까.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 262,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 지음, 박은정 옮김
화제로 지정된 대화
오늘(12월 11일)과 내일(12월 12일)은 '지금도 그 눈길이 잊히질 않아'를 읽습니다. 이 장에서는 벨라루스의 전쟁 영웅 바실리 바하로비치 코르시(1899~1967)의 가족, 특히 참전했던 두 딸과의 인터뷰가 있습니다. 전쟁 전에 이미 "벨라루스의 전설"로 불렸던 영웅 가족이 전쟁 중에 특혜를 받지 않고서 두 딸이 참전했다는 사실이 놀라웠고, 두 딸이 담담히 털어놓은 전쟁 경험도 인상 깊었던 장이었어요. 두 딸은 애초 의사를 꿈꿨었는데, 참전 경험 때문에 그 꿈을 포기하게 됩니다.
전쟁은 재빨리 자신의 모습을 사람들 속에 새겨 넣었다. 자신의 초상화를 그려 넣었다.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 286쪽,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 지음, 박은정 옮김
우리는 모두 전쟁만 끝나면, 그 숱한 눈물만 그치면 멋진 삶이 우리를 기다릴 거라고 믿었어요. 아름다운 인생이. 승리만 하면. 이날들만 견뎌내면. 모든 사람이 한없이 선해지고 서로 사랑만 할 거라고 믿었죠. 모두 형제자매가 될 거라고. 우리가 얼마나 그날을 기다려왔는지. 그날이 오기를 간절히 기다렸어요.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 296쪽,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 지음, 박은정 옮김
전쟁 중에도, 전쟁이 끝나고도 슬픈 일들은 끝나지 않더군요. 전쟁의 여운이라고 해야 할까요. 그게 얼마나 길게 가는지를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한국전쟁 참전자 내지 경험자들이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고 합니다. 이렇게 잊게 되는게 아닌가 싶습니다.
아버지가 도와주셨죠. 아버지는 현명한 분이셨어요. 우리 메달과 훈장, 지휘부의 감사패를 다 가져다 감춰버리고는 말씀하셨어요. - 전쟁이 났고 우리는 싸웠다. 이젠 잊어버릴 때다. 전쟁은 지나갔고 이제 다른 삶을 살아야 한다. 구두를 신어라.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 293,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 지음, 박은정 옮김
찾아보니 동명의 다큐멘터리가 찍혔고, 그 전체가 유투브( https://youtu.be/IpNq7WO3dUI )에 올라와 있더군요. 총 7편으로 이뤄져 있고 1편이 '그건 내가 아니었어'의 올가 오멜첸코입니다. 아무래도 영어나 한국어 자막은 없지만 영상이라도 보고 싶은 분을 위해 올려봅니다. (다시 알고보니 다큐멘타리가 먼저 1981년부터 1984년까지 방영되었고, 책이 1984년에 나오게 되었다고 합니다.)
나는 외투를 팔지도 못하고 시장을 빠져나왔어요. 그리고 모스크바에 사는 동안, 한 5년 정도 될까, 시장에는 발걸음도 하지 않았어요. 시장의 불구자들 중에서 누군가 나를 알아보고는 '어쩌자고 나를 그때 불길에서 끄집어낸 거야? 왜 구했어?'라고 소리칠까봐 무서웠죠.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 지금도 그 눈길이 잊히질 않아...,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 지음, 박은정 옮김
젊은 우리 병사와 역시 젊은 독일군 병사가 어린 밀밭에 하늘을 보고 누워 있죠...... 하지만 전혀 죽은 사람들 같지 않아요. 그저 누워서 하늘을 보고 있을 뿐...... 나는 지금도 그 눈길이 잊히질 않아요......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 지금도 그 눈길이 잊히질 않아...,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 지음, 박은정 옮김
화제로 지정된 대화
어제(12월 13일), 오늘(12월 14일), 내일(12월 15일) 3일간은 '우리는 쏘지 않았어', '군인이 필요하다는 거야... 아직은 더 예쁘고 싶었는데' 이렇게 두 장을 읽겠습니다. 이런 속도로 읽으면 모임 끝나기 하루 전인 12월 24일까지 완독하는 일정이 될 것 같아요. 연말에 한가롭기보다는 분주하고 마음 쓰이는 일도 많을 텐데(네, 제가 그렇습니다!) 다들 이 책 읽는 동안은 마음도 차분해지는 시간 되시길 바랍니다.
'우리는 쏘지 않았어' 장에서는 전쟁터에서 돌봄 노동을 해야 했던 여성의 목소리를 들려줍니다. 다음 장('군이이 필요하다는 거야...' )에서는 전쟁터에서의 여성성을 놓고서 여러 생각을 들게 하는 증언이 나와요. 뒤에 나오는 다음과 같은 증언은 여러 차례 읽었습니다. '끔찍함의 침묵과 허구의 아름다움.'
전쟁영화를 봐도 사실이 아니고 책을 읽어도 사실이 아닌 거야. 그러니까, 그게 달라. 뭔가가 달라. 그렇다고 전쟁을 직접 겪은 내가 이야기하면 정확하냐. 그것도 아니거든. 전쟁은 그렇게 끔찍하지도 그렇게 아름답지도 않았어. 때론 전쟁터에서 맞는 아침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알아? 전투가 있는 날 아침이면... 주위를 보며 생각했지. '어쩌면 아침을 맞는 것도 오늘이 마지막일지 몰라. 아, 세상은 이렇게도 아름다운데... 공기도... 했살도...'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 367쪽,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 지음, 박은정 옮김
어쩌면 오히려 전쟁터에 더 많은 일상의 삶이 있는지도 모른다. 하찮고 사소한 일들 역시.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 우리는 쏘지 않았어...,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 지음, 박은정 옮김
하지만 전쟁통에 가족을 잃거나 가족이 독일군 치하에 사는 병사들도 많았거든. 그런 병사들은 편지를 받을 수가 없는 거야. 그래서 우리가 익명으로 편지를 썼지. '안녕하세요, 군인아저씨! 이름 모를 소녀가 당신께 편지를 씁니다. (...)' 밤마다 앉아서 편지를 썼어...... 전쟁 내내 그런 편지를 수백 통도 넘게 쓴 거야......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 우리는 쏘지 않았어...,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 지음, 박은정 옮김
여자가 살짝 몸을 일으키더니 나에게 조개로 된 아름다운 분통을 내밀었어. 모르긴 몰라도 가진 것 중에서 가장 값나가는 물건인 것 같더라고. 분통을 열었지. 그러자 사방에 총탄이 날아다니고 포성이 울리는 그 한밤에 분 향기가 퍼지는데...... 아, 그건 정말 특별한 무엇이었어......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 군인이 필요하다는 거야... 아직은 더 예쁘고 싶었는데...,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 지음, 박은정 옮김
화제로 지정된 대화
이번 주말(12월 16일, 17일)에는 '아가씨들! 공병대 지휘관은 오래 살아야 두 달이라는 거, 알고나 있소...'를 읽습니다. 이 장에서는 공병, 특히 특히 전투 공병 경험을 한 여성의 인터뷰가 나옵니다. 전투 공병은 전쟁터에서 지뢰와 같은 폭발물이나 철조망 등을 매설하고 제거하는 일을 주로 하는 군인입니다. 다음 주에 총 다섯 장을 월요일(12월 18일)부터 일요일(12월 24일)까지 읽을 예정입니다. 연말에 분주한 일정이 많으신 분은 이번 주말에 읽을 양이 적으니 미리 다음 주 분량을 읽으면 좀 더 여유가 있을 것 같아요. (물론, 다음 주도 하루 읽을 양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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