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걸상 함께 읽기] #47.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

D-29
"시간이나 공간 순서가 아니기 때문에 모든 것이 기억에 남지는 않되 아주 여러 번 덧칠된 유화처럼 전체적인 상"이 그려진다는 말씀, 이 책의 특징을 정확하게 설명하신 것 같아요. 멋진 비유라서 저도 곱씹어 봅니다.
현재 우크라이나는 4만 3천명의 여성이 복무하고 있으며, 올 해 11월 9일에 여성 나이 제한을 40세에서 60세까지 늘려 더 많은 여성을 징집하기로 했다고 합니다. 러시아에서도 현재 4만명의 여성이 군에 복무 중이며 러시아에서 말하는 '특별작전', 즉 우러전에는 1100명의 여성이 참전 중이라고 합니다. 이 책의 전쟁에서는 약 백만 명이 참전했다고 알려져 있다고 하니... 곱씹게 되니 더욱 씁쓸합니다.
-이 꼬맹이는 뭐야? 네가 여기서 뭘 하겠다는 거지? 엄마한테 돌아가서 더 자라면 오는 게 어때? 그때 나는 이미 엄마가 안 계셨어……폭격에 돌아가셨거든……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 얘들아, 더 자라서 오렴… 너희는 아직 어리단다… p.96,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 지음, 박은정 옮김
@김새섬 님 등께서 이 책의 구성을 문의해 주셨는데요. 저자가 나름대로 장마다 테마(중심 질문)를 정해 놓았어요. 그리고 그 테마에 맞춤한 목소리를 재구성해서 수록하는 식입니다. 알렉시예비치의 작업이 단순히 구술을 늘어놓은 녹취록이 아니라 저자의 새로운 창작으로 평가할 수 있는 대목이 이 부분인 것 같아요. 똑같은 내용의 목소리라도 어떤 맥락에 위치시키느냐에 따라서 독자에게는 전혀 다른 효과를 불러일으킬 테니까요.
저도 말줄임표에서 같은 생각을 했어요. 원래 구술부분을 읽으면 말의 속도로 빠르게 읽히는 편인데, 말줄임표가 많으니 빨리빨리 읽지 못하고 그 부분에서 자꾸 멈추고 생각해보게 되더라구요.
화제로 지정된 대화
오늘은 12월 1일입니다. 다들 12월에 2023년을 즐겁게 보내길 바랍니다. 오늘과 주말(12월 2일, 3일)에는 2장 '애들아, 더 자라서 오렴' 편을 읽습니다. 70쪽 분량입니다. 이 장에서 저자는 도대체 그 소녀들은 어디서 왔는지, 왜 전쟁에 참여하게 되었는지 묻습니다. 그녀가 들려주는 목소리에 한번 귀를 기울여 보세요.
1941년의 소녀들. 무엇보다 나는 그 소녀들은 대체 어디서 왔는지 묻고 싶다. 그것도 그렇게나 많이. 그들은 어떻게 남자들과 똑같은 무기를 들고 싸울 생각을 했을까?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 90쪽,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 지음, 박은정 옮김
어쩌면 그때 우린 눈이 멀었던 건지도 몰라. 그리고 그때 우리가 많은 것을 놓치고 보지 못했다는 사실도 부인하지 않겠어. 하지만 우리는 눈이 멀었으면서도 동시에 순수했어. 우리는 두 개의 세상, 두 개의 인생을 사는 사람들이라는 것, 당신은 그걸 꼭 알아야 해......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 얘들아, 더 자라서 오렴... 너희는 아직 어리단다...,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 지음, 박은정 옮김
저도 이 문장에 밑줄을 그었어요. 삶을 사랑했고, 살고 싶으면서도 무릎을 꿇고 사는 삶은 거부하는, 우리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서라는...
문장수집하고보니 여기도 이 문장이 있네요.
앞의 맥락까지 같이 수집해 주셔서 더 와 닿는것 같아요. ♡
'나 혼자만...'까지 읽고 보니 진도를 너무 빨리 나갔네요. 주말에는 잠깐 쉬어야겠습니다. 최대한 다양한 부류의 여자 병사들을 만나겠다는 원칙이 나옵니다. 그 이야기를 듣고보자 무라카미 하루키의 [언더그라운드]와, 맥스 부르스의 [세계 대전 Z]가 떠오릅니다. 어떤 대 사건의 실체라는게 '세계 2차대전'처럼 하나의 정의로 축소되는게 아닌 각양각종의 경험과 관점들, 수많은 이들의 일화와 침묵으로 들을 수 없는 기억들로 영원히 발산됩니다. 그리고 이 장에서 남성 참전자들의 관점은 당혹스럽습니다. 같이 전투를 보낸 동등한 위치의 여성들과는 애정을 주고 받는게 불가능하다는 고백을 합니다. 이만큼이나 가부장적 위계질서가 적나라한 적이 있었는지... 뒤의 일화는 앞의 이야기가 무색할만큼 고통스럽습니다.
나는 행복했어...... 내가 다른 누군가를 미워할 수 없는 사람이라는 사실이 기뻤어.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 157,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 지음, 박은정 옮김
독일군 포로 속 어린 남자애를 보고, 자신도 모르게 빵 하나를 건네주는 자신의 모습에 스스로 놀라는 마음이란.
위생병 소녀가 처음으로 폭격에 부상당한 부위를 보고 토하는 장면에서, 부상병이 물좀 마시라고 말해주잖아요. ㅠㅠㅠㅠ 비정한 전쟁의 곳곳에 사람사는 얘기가 끼어 있어서 눈물났어요.
화제로 지정된 대화
주말 잘 보내셨나요? 오늘(4일)과 내일(5일)은 '나 혼자만 엄마한테 돌아왔어' 장을 읽습니다. 앞에서 @서정 님께서도 잠시 언급하셨듯이 이 장의 앞 부분에서 저자가 정한 인터뷰 원칙이 나옵니다. 그러고 나서, 새로운 인터뷰이를 만나러 가는 과정에서 만난 참전 경험이 있는 남성의 목소리, 그리고 니나 야코블레브나 비시넵스카야와의 인터뷰가 길게 이어지죠. 이 장부터 본격적으로 전쟁을 기억하기를 둘러싼 당혹스러운 진실이 독자에게 전달됩니다.
나는 내가 가진 주소들을 분류한 다음, 나 자신을 위한 하나의 원칙을 세웠다. 되도록 다양한 부류의 여자 병사들을 만나 기록할 것.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 162쪽,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 지음, 박은정 옮김
그런 여자들이랑 정찰은 같이 갈 수 있을지 몰라도 결혼은 하지 않을 거요.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 166쪽,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 지음, 박은정 옮김
우리는 정말 어떤 사람들일까. 무엇으로, 어떤 재료로 만들어졌을까? 고통을 이겨낸 사람은 어떤 단단함을 가지고 있는지, 알고 싶다. 그걸 알기 위해 나는 이곳에 왔다.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 170쪽,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 지음, 박은정 옮김
이후에도 나는 한 사람 안에 동시에 존재하는 이 두 진실과 적잖은 갈등을 겪어야 했다. 의식 저 밑으로 쫓아버린 사실 그대로의 진실과 시간의 흔적이 스며든 공통의 진실.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 187쪽,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 지음, 박은정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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