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믐북클럽] 10. <이효석문학상 수상작품집 2023> 읽고 사유해요

D-29
대부분 혼자 떠났고, 또 스스로 그것을 즐긴다고 믿었지만, 돌이켜보면 여행지에서 내가 진짜로 혼자였던 적은 거의 없었다. ...(중략)...그 시절 나는 이 도시에서 저 도시로 옮겨 다니며 우연한 만남이 주는 즐거움을 만끽했다. 허리를 쭉 펴고, 타인들이 베푸는 호의를 공기처럼 들이마셨다. 그런 공기가 희박해질 때면 환경을 바꿔 처음부터 다시 시작했다.
이효석문학상 수상작품집 2023 - 애도의 방식 p 104., 안보윤 외 지음
138. 서로 무언가를 주고받는 과정에서 우리 안의 농도가 달라지는 것을 느끼는것. 그 일시적인 감흥이 우리가 도달할 수 있는 최선 아니겠느냐고.
마흔 이후의 삶은 내리막길을 달리는 스쿠터처럼 무서운 가속도로 우리를 흔들었다.
이효석문학상 수상작품집 2023 - 애도의 방식 -뱀과 양배추가 있는 풍경-, 안보윤 외 지음
원주민 아이들의 천진난만한 얼굴을 클로즈업한 신파조의 인물 사진도 거슬리긴 마찬가지였다. 아이들을 향한 그 애정 어린 시선에서 사진이 세상을 변화시키리라 기대하는 그의 순진한 믿음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나는 뭐라고 반응해야 좋을지 몰라 고민하다가 캐릭터 이모티콘으로 적당히 대답을 대신했다.
이효석문학상 수상작품집 2023 - 애도의 방식 -뱀과 양배추가 있는 풍경-, 안보윤 외 지음
오 반장이 어떤 부류인지 알 것 같았다. 게스트하우스라는 작은 사회에서 어른 행세를 하고 있지만 실은 사회에서 낙오되어 물가 싸고 춥지 않은 나라를 떠돌고 있을 뿐인, 여행이 곧 삶이 되어버린 중년 남지. 여행하던 시절 숱하게 봐온 스테레오타입이었다.
이효석문학상 수상작품집 2023 - 애도의 방식 -뱀과 양배추가 있는 풍경-, 안보윤 외 지음
현오의 깍듯한 태도는 예의나 존중의 표현이라기보다 마음에 들지 않는 타인을 슬며시 밀어내는 기교에 더 가까웠다.
이효석문학상 수상작품집 2023 - 애도의 방식 117p, 안보윤 외 지음
나는 그때 약간 모욕감을 느꼈는데, 그가 나를 부르는 방식이나 내가 단지 미혼이고 나이 들었다는 이유만으로 짝이 필요한 외로운 여자라고 단정 짓는 경솔한 태도 때문만은 아니었다. 오 반장이 은연중에 나와 자신을 동급으로 여기고 있다는 것. 자기 눈에 대단해 보이는 것이 내 눈에도 그럴 거라고 확신하는 것. 설사 그게 사실이 아니라 한들, 그런 기미를 느끼는 것만으로도 속이 꼬이고 비위가 상했다.
이효석문학상 수상작품집 2023 - 애도의 방식 114p, 안보윤 외 지음
세속의 가치에 얽매이지 않고 자신의 창조성을 생계와 부드럽게 연결시키는 삶. 그런 삶이 세상에 그렇듯 흔하다는 걸 나는 현오와 만나며 알게 되었다. 우리 같은 사실혼 관계를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이는 사람이 한국에 그렇게 많다는 것도. 현오의 친구들은 언제나 예술을 인생의 최우선 가치로 삼았고, 정상 가족 형태의 평범한 삶이 부럽다고 말하면서도 실은 우습게 여졌다. 그들에게 결혼은 세상에서 가장 시시한 이벤트였다.
이효석문학상 수상작품집 2023 - 애도의 방식 109p, 안보윤 외 지음
검은 부분이 하얘지고 하얀 부분이 검어진다. 검은 얼굴의 우리를 태우고 강물을 가르는 흰 코끼리.화면 가득 하얗게 발광하는 그것은 게스트하우스 마당에 있던 기괴하게 큰 코끼리 조각상을 떠오르게 한다
이효석문학상 수상작품집 2023 - 애도의 방식 안보윤 외 지음
4-2. 114p 오 반장이 어떤 부류인지 알 것 같았다. 게스트하우스라는 작은 사회에서 어른 행세를 하고 있지만 실은 사회에서 낙오되어 물가 싸고 춥지 않은 나라를 떠돌고 있을 뿐인, 여행이 곧 삶이 되어 버린 중년 남자. 129p 자리에서 일어나 서너 걸음 뒤로 물러난 호경이 무릎을 꿇고 앉아 손깍지를 끼고 팔꿈치를 바닥에 내려놓았다. 그런 다음 고개를 들고 우리를 보며 씩 웃더니, 깍지 낀 손 앞 바닥에 정수리를 대고 길게 뻗은 다리를 하나씩 들어 올려 ‘머리 서기’ 자세를 취했다. 남자들의 입이 딱 벌어졌다. 나는 아무리 연습해도 할 수 없던 자세였다. 135p 모든 것이 전보다 쉽지 않았다. 중심에 속하기 위해 안간힘을 써야 했다. 예상을 벗어난 결과 앞에서 평정을 가장하는 일이 늘어났다. 우리는 각자의 영역에서 작은 실패를 맛보고 작은 성공으로 그것을 갈음하길 거듭하며 나이에 어울리는 표기와 체념을 얼굴에 새겼다.
그 춤은 사실 고대 부족사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원무이며, 이를 통해 자신이 보여주려 한 것은 소통의 가능성보다 오히려 그것의 불가능성에 가까운 것 같다고 부연했다.
이효석문학상 수상작품집 2023 - 애도의 방식 139p, <뱀과 양배추가 있는 풍경>, 안보윤 외 지음
번개가 치고 천둥이 우르릉거리면 그것은 네거티브필름처럼 변한다. 검은 부분이 하얘지고 하얀 부분이 검어진다. 검은 얼굴의 우리를 태우고 강물을 가르는 흰 코끼리. 화면 가득 하얗게 발광하는 그것은 게스트하우스 마당에 있던 기괴하게 큰 코끼리 조각상을 떠오르게 한다.
이효석문학상 수상작품집 2023 - 애도의 방식 139p, <뱀과 양배추가 있는 풍경>, 안보윤 외 지음
4-2. p.117 현오의 깍듯한 태도는 예의나 존중의 표현이라기 보다 마음에 들지 않는 타인을 슬며시 밀어내는 기교에 더 가까웠다. p.129 자리에서 일어나 서너 걸음 뒤로 물러난 호경이 무릎을 꿇고 앉아 손깍지를 끼고 팔꿈치를 바닥에 내려놓았다. 그런 다음 고개를 들고 우리를 보며 씩 웃더니, 깍지 낀 손 앞 바닥에 정수리를 대고 길게 뻗은 다리를 하나씩 들어 올려 '머리 서기' 자세를 취했다. 남자들의 입이 딱 벌어졌다. 나는 아무리 연습해도 할 수 없던 자세였다. p.138 여자의 말을 듣는 동안 나는 내 인생의 작은 모험 정도로 치부해왔던 그 시간이 여자에게는 그보다 더 축소된, 작은 모험의 전주곡에 불과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알 수 없는 무력감에 젖어 내가 극장 의자에 몸을 파묻었을 때 현오가 귓속말로 "그래도 저 여자는 자기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고 있는 것 같다"고 짧게 평했다.
화제로 지정된 대화
[선택] 4-3. 강보라 작가의 질문 A. 소설 속 화자인 ‘나(재아)’는 여행지에서 평소와 다르게 말하고 행동합니다. 이처럼 그룹의 성격에 따라 말과 행동이 달라진 경험이 있다면? 그 자리에서의 생각과 감정이 어땠는지, 그믐북클럽 여러분의 솔직한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어요! B. 소설에 나오는 인물들 중 술이나 차 한 잔 같이 하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한 명도 좋고, 그 이상도 가능!) 만나서 구체적으로 어떤 이야기를 나누고 싶으신가요? (ex. “재아야, 너 현오랑 헤어지는 거 어떻게 생각하냐......”)
A. 분위기를 보면서 행동하는 편이에요. 진지한 사람들이 많으면 말을 아끼고 장난치는 분위기면 주도하는 식으로요. 진지한 것보다는 즐겁고 유쾌한 모임이 좋아요. 그래도 호경씨나 오 반장처럼의 말투를 쓰는 사람이 모임에 있다면 선을 그을 것 같아요. B. 송기호랑 차 한 잔 하고 싶네요. 한국에 돌아와서 재아랑은 이제 더 연락 안하니? 요즘은 어떤 사진 찍어? 근황이 어떠니?
A. 지금 이곳에서 이렇게 글을 남기고 있는 "나"도 실제의 "나"와는 다른것 같습니다. 뭔가 자리자리마다 그 상황에 맞는 저의 행동과 생각들이 표현되는 것 같습니다. B. 이 작품을 본 사람들이라면 송기호 아닐까요? 뭔가 양귀자 작가의 모순에서 나오는 그 겔로퍼타고 다니는 남자주인공 처럼 , 송기호도 비슷한 느낌이 들어요. 그를 만난다면 재아를 어떻게 생각했는지 물어보고 싶네요.
A. '난 이런 사람이야.'라는 말로 자신을 하나의 모습으로 정리 혹은 정의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데 가만히 지켜보면 한 사람의 내면에는 여러가지 모습이 있다. 평생 드러나지 않는 모습도 있지만,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다 보면 나도 알지 못했던 나를 발견하게 되는 것 같다. 30대 이전에는 그런 새로운 내가 발견되는 곳이 즐거웠고 그래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기 위해 노력했던 것 같다. B. 오 반장님과 술 마시며 사진 찍는 기호 구경하기~ ^^
4-3 A. 대부분의 많은 사람들이 그룹의 성격에 따라 말과 행동이 달라지지 않을까요?! 저는 어떤 모임에서는 주로 들어주는 역할을 한다면, 어떤 모임에서는 모임을 주도하고 이끄는 역할을 하기도 하거든요. 그렇지만 재아처럼 거짓을 섞어서 말하진 않아요. 여행을 일상에서의 일탈이라고 생각하고 평소와 다르게 말하고 행동하는 것도 한 번쯤 해볼 만한 즐거운 일인 것 같아요. B. 술을 마셔보고 싶은 사람은 기호. 차를 마셔보고 싶은 사람은 호경이요. 기호는 술을 마시면 좀 더 솔직해지지 않을까 싶어서 자신의 작품 세계에 관한 솔직한 대화를 나눠 보고 싶어요. 호경은 솔직하고 직설적 화법을 구사하니까 차를 마시면서 재아에게 느낀 진심에 관해 물어보고 싶어요.
A. 많은 이들이 상황에 따라 다르게 말하고 행동하며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 역시 가면을 쓰고 살아가고요. B. 서로의 속을 분명하게 드러내지 않은 채 많은 대화가 오가서 일까요. 분위기 파악, 사람 파악 잘 못하는 제 성향 탓일수도 있고요. 많은 이들에게 의문이 생겼는데 그중에서도 가장 많은 물음표가 생긴 재아와 커피한잔 하고 싶습니다. 1) 오 반장이 루왁에 대해 설명하는데 그게 왜 '모욕당한 기분이 들었고, 더는 참기 어려웠'는지요. 오 반장은 재아가 커피에 대해 많이 알고 있는지 어떤지 잘 몰랐을 수도 있고, 많은 이들이 자신이 알고 있는 걸 말하길 좋아하고 또 많은 이들이 상대가 얘기하는 정보를 알고 있으면서도 그냥 대충 들어 넘긴다고 생각하는데 오 반장이 늘 거들먹거리고 아는체하길 좋아하는 사람이라서 모욕을 느낀걸까요? 2) 사회적 명성을 얻은 사람들을 끌어내리고 흠집 내는 현오와의 은밀한 놀이를 계속 해나갈건지.. 3) 서호경에게 느낀 당신의 감정은 정확히 무엇이었나요? 우붓에서 그림을 선물받고 왜 아연함보다 불쾌감이 앞섰는지요?
4-3. A. 사실 그룹의 성격에 따라 말과 행동이 달라진 경험이나 달라진 타인을 보는 경우는 굉장히 많은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걸 의식하거나 계산적으로 말과 행동을 바꾼 경험은 없고 대부분 자연스럽게 바뀌고, 그걸 후에 깨닫거나 그 과정에서 깨달아도 응당 그러려니 생각했던 것 같아요. 친한 집단과 낯선 집단, 손아래 사람들과 손윗 사람들, 개인적인 만남과 직장에서의 만남 등이요. 오히려 저 같은 경우는 어떤 부분에서는 그룹의 성격에 따라 확연하게 말과 행동을 달리해야하는데 그렇지 못해서 자신을 책망할 때가 더 많습니다. 재아가 속마음을 숨기고 송기호나 오반장, 호경을 대하는 태도를 보면서 닮고 싶기도 했어요. :) B. 개인적으로 가장 흥미로운 인물은 저와 가장 다른 세계에 살고 있는 호경이지만 그런 이유로 술이나 차 한 잔을 하기에는 감당하기 힘들 것 같아요. 제가 워낙 낯을 가려서요. ㅎㅎ 그래서 적당히 거리를 두고 한번씩 쨉을 날리듯 친근감을 표시해오는 송기호 정도가 좋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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