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믐북클럽] 10. <이효석문학상 수상작품집 2023> 읽고 사유해요

D-29
낯선 질문들이 입 속을 맴돌았다. 뭐가 있다고 치는 것. 없는데 있다고 치는 것. 치자, 치자, 치자, 중얼거리다가 나는 나도 모르게 흠칫 놀라고 말았다. 그러고 보니 거짓말도 치는 거고, 사기도 치는 거고, 뒤통수도 치는 거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지금 실종된 친구를 두고 무슨 생각을 하는 건가, 싶으면서도 집요하게 피어오르는 의심을 막을 길이 없었다. 곧이어 갑자기 사라진 진주에게 내내 뒤통수를 얻어맞고 있었다는 기분이 들었다. 진주야, 도대체 왜, 어디로 사라진 거니? 갑자기 벌도 나비도 하기 싫어서? 네가 가졌던 꿀이 몽땅 사라져서? 도대체, 왜? 나는 다가오는 여행 날짜를 떠올리며 입술을 깨물었다. 엉뚱하게도 이 모든 더러운 기분들이 허니쿠키를 향해 맹렬하게 솟구쳤다. 빙글거리는 저 얼굴을 차갑고 딱딱하게 만들고 싶다고 생각했다. 취기 때문인지 머릿속에서 윙윙 벌이 날아다니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이효석문학상 수상작품집 2023 - 애도의 방식 p.224-225, 안보윤 외 지음
나는 한동안 그림자처럼 앉아 소금 캐는 여자를 봤다. 검은 피부에 날렵하고 단단해 보이는 팔, 일을 하는 데 허튼 구석이 없는 손길, 가장 정확한 방법으로 가장 정확한 것을 움켜쥐는 동작이 반복되었다. 쉽지도 빠르지도 않았지만 그렇게 움직이는 것을, 낡은 소금 자루가 천천히 채워지는 것을 지켜봤다. 그러면서 종종 여자의 눈과 마주쳤다. 피할 수 없을 만큼 맑고 투명한 눈이었다. 무엇인가 실재하지 않는 것, 보이지 않는 것이 인간을 흔들기 이전의 눈, 그런 눈이 나를 차분하게 올려다보곤 했다. 나는 그 눈을 바라보다 조용히 중얼거렸다. 사막 한가운데서, 나는 누구보다 나 자신을 믿고 있어.
이효석문학상 수상작품집 2023 - 애도의 방식 p.232, 안보윤 외 지음
가혹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뭐가 가혹해? 하면 아무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그래, 하고 나는 혼자 중얼거렸다. 소금 안에 사람이 있었다는 거, 이렇게 만져지고 따뜻하다는 거, 그런 것들로 이루어진 게 실은 우리가 살던 세상이었다는 것을 아무도 알아차리려고 하지 않는 것이 서글펐다. 훨씬 복잡하고 섬세한 무엇인가가 소금 속에 있다는 것이 우주에서 나만 아는 비밀 같았다. 가슴에서부터 무엇인가 뜨거운 것이, 뜨거우면서도 차가운 것이 동시에 올라오는 기분이었다. 나는 숨을 깊이 들이마셨다. 날이 저물고 있었다. 부지런히 손을 움직이던 여자가 묵직한 소금 자루를 자전거 뒤에 싣는 것이 보였다. 여자 앞에 자리를 잡은 아이가 나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페달을 밟자 묵직한 소금의 무게가 여자의 발에 실렸다. 여자가 석양을 등지고 사막 저편으로 멀어지고 있었다. 마음속에 소용돌이치는 말들 중 어떤 것도 쉽게 꺼낼 수가 없었다. 나는 길게 늘어지는 여자의 그림자를 사진 속에 담았다. 말 대신 꼭 보여주고 싶었다. 진주에게 그리고 허니쿠키에게도. 마지막 실족에서 물러서게 하는 것, 걸음을 멈추고 끝 너머로 눈을 돌리는 것, 그게 최후에는 꼭 자기 자신이었으면 하는 마음을 담아.
이효석문학상 수상작품집 2023 - 애도의 방식 p.233, 안보윤 외 지음
말 대신 꼭 보여주고 싶었다. 진주에게 그리고 허니쿠키에게도, 마지막 실족에서 물러서게 하는 것, 걸음을 멈추고 끝 너머로 눈을 돌리는 것, 그게 최후에는 꼭 자기 자신이었으면 하는 마음을 담아.
이효석문학상 수상작품집 2023 - 애도의 방식 - 작은 방주들-, 안보윤 외 지음
근면 성실이 더는 성공의 무기가 될 수 없다는 걸, 심지어 무능도 전략적으로 증명해야 실업 급여라도 받을 수 있다는 걸, 나는 초현실적인 형벌을 받으며 복기했다.
이효석문학상 수상작품집 2023 - 애도의 방식 -작은 방주들-, 안보윤 외 지음
가상 세계와 마찬가지로 현실 세계 역시, 내가 고려할 수 있는 변수는 거의 없다는 거였다. 나는 하루종일 별서듯 텅 빈 바탕 화면을 노려봤다. 시위를 하듯 점심 식사도 거른 체 퇴근 시간을 맞았다. 온 마음이 사막처럼 황량했다.
이효석문학상 수상작품집 2023 - 애도의 방식 안보윤 외 지음
무보직 대기발령 AI의 밀린 상사
이효석문학상 수상작품집 2023 - 애도의 방식 안보윤 외 지음
얘야, 가보지도 않은 곳이 그리울 수도 있단다.
이효석문학상 수상작품집 2023 - 애도의 방식 p219, 안보윤 외 지음
나는 나와 진주에게 공통으로 닥친 불행의 인과관계를 생각했다. 그러니까 사십을 앞둔 여성 둘의 잠적과 대기의 상태에 대해.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설계된 낙오와 조난 상태에 대해. 하지만 결론은 영 엉뚱한 지점에서 맺어졌다. 가상 세계와 마찬가지로 현실 세계 역시, 내가 고려할 수 있는 변수는 거의 없다는 거였다.
이효석문학상 수상작품집 2023 - 애도의 방식 217p, 안보윤 외 지음
사막 한가운테서, 나는 누구보다 나 자신을 믿고 있어. 물론, 여자의 생각이 그런지는 알 수 없었다. 다만 밀도 끝도없이 그 눈빛이 그렇게 보였다. 모멸감도 죄책감도 담겨 있지 않은 맑고 단단한 눈. 느닷없이 눈물이 핑 돌았다. 얼른 손등으로 눈가를 홈쳤다.
이효석문학상 수상작품집 2023 - 애도의 방식 232p, 안보윤 외 지음
말 대신 꼭 보여주고 싶었다. 진주에게 그리고 허니쿠키에게도. 마지막 실족에서 물러서게 하는 것, 걸음을 멈추고 끝 너머로 눈을 돌리는 것, 그게 최후에는 꼭 자기 자신이었으면 하는 마음을 담아.
이효석문학상 수상작품집 2023 - 애도의 방식 p.233, 안보윤 외 지음
뭐가 있다고 치는 것. 없는데 있다고 치는 것. 치자, 치자, 치자, 중얼거리다가 나는 나도 모르게 흠칫 놀라고 말았다.
이효석문학상 수상작품집 2023 - 애도의 방식 <작은 방주들>224쪽, 안보윤 외 지음
사막 한가운데서, 나는 누구보다 나 자신을 믿고 있어. 물론, 여자의 생각이 그런지는 알 수 없었다. 다만 밑도 끝도 없이 그 눈빛이 그렇게 보였다. 모멸감도 죄책감도 담겨 있지 않은 맑고 단단한 눈. 느닷없이 눈물이 핑 돌았다.
이효석문학상 수상작품집 2023 - 애도의 방식 232p, 안보윤 외 지음
질투와 아쉬움이 역력한 허니쿠키의 얼굴을 보는데 희열이 느껴졌다. 내가 그의 마음 한구석에 예리한 구멍을 낸 느낌이었다.
이효석문학상 수상작품집 2023 - 애도의 방식 신주희 <작은 방주들>, 안보윤 외 지음
근면 성실이 더는 성공의 무기가 될 수 없다는 걸, 심지어 무능도 전략적으로 증명해야 실업 급여라도 받을 수 있다는 걸, 나는 초현실적인 형벌을 받으며 복기했다.
이효석문학상 수상작품집 2023 - 애도의 방식 신주희 <작은 방주들>, 안보윤 외 지음
7-2. 213p 남으면 줍고, 모자라면 버티고, 이제는 좀 쉬엄쉬엄하자는 나를 비웃듯 진주는 꾸준히 뭔가를 배우고 실행하는 일에 시간을 썼다. 216p 인사 발령은 회사 고유의 조치예요. 직원의 동의 없이도 할 수 있고, 은재 님을 벽만 보게 앉혀놔도 법적으론 문제가 없어요. 224p 낯선 질문들이 입 속을 맴돌았다. 뭐가 있다고 치는 것. 없는데 있다고 치는 것. 치자, 치자, 치자, 중얼거리다가 나는 나도 모르게 흠칫 놀라고 말았다. 그러고 보니 거짓말도 치는 거고, 사기도 치는 거고, 뒤통수도 치는 거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232p 사막 한 가운데서, 나는 누구보다 나 자신을 믿고 있어. 233p 진주에게 그리고 허니쿠키에게도. 마지막 실족에서 물러서게 하는 것, 걸음을 멈추고 끝 너머로 눈을 돌리는 것, 그게 최후에는 꼭 자기 자신이었으면 하는 마음을 담아.
7-2. p.218 '너 친구, 우유니에 와 있을지도 모르잖아?' 하던 서툰 한국어 발음이 귓가에 울리는 것 같았다. 이어 진주가 했던 말들이 떠올랐다. 가보지도 않은 곳이 그리울 수도 있단다, 했던 것이.
화제로 지정된 대화
[선택] 7-3. 신주희 작가의 질문 저는 무엇인가가 힘들 때 시원한 맥주 첫 모금, 퇴근길에 들을 좋은 음악, 때로는 보고 싶은 사람의 어떤 표정이나 말 등을 떠올립니다. 그것으로 잠시 괴로움을 버틸 수 있는 위안을 얻지요. 하지만 그렇게 시시한 것으로 받는 위안이 결코 구원이 될 수 없다고 생각했던 때가 있었습니다. 둘은 엄연히 다르다고 구분하던 때가요. 물론, 지금은 그렇지 않습니다. 제가 거창하게 생각했던 구원은 점점 더 작고 사소해지고 있으니까요. 그래서 문득 궁금해졌습니다. 여러분들의 생각은 어떨까. A. 여러분들에게 구원이란 무엇일까요? B. 구원이 있다면, 그건 가능한 것일까요? C. 작고 소박한 위안을 주고받는 것만으로는 가능하지 않는 것일까요?
A. 순간의 구원이 있고, 영원의 구원이 있다 싶습니다. 무덤들과 산과 강을 건너는 네이게이션을 들여다보는 기분이 들 때 마시는 시원한 맥주 한잔이나, 쉬 잠들지 못하는 일요일 밤에 홀로 찾은 심야영화관 같은 순간의 구원. 영원의 구원은 각자가 바라고 믿고 견디는 영혼에 관련된 구원. B. 구원은 있고, 가능하다 여깁니다, 저는. 그래야 지금을 살 수 있다 싶습니다. 순간이든 영원이든 C. 작고 소박한 위안을 주고받는 것만으로 가능할 수도 있지만, 상호 관계에 근거한 것이라 너무나 깨지기 쉬운 구원이 아닐런지.
중요한 말씀을 해주셨어요. 상호 관계가 어쩌면 구원을 영원히 미제로 만드는 핵심이 될 수도 있겠네요. 그렇게 생각하면 좀 슬프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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