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믐북클럽] 10. <이효석문학상 수상작품집 2023> 읽고 사유해요

D-29
안전을 바라는 마음? 보호해야 한다는 믿음? 그거 혐오였어. 헷갈릴 것도 없고 선해할 것도 없어. 장희가 나를 향하던 눈빛만큼이나 선연한 목소리로 덧붙였다. 그래서 동성애 하라는 거야? 아니잖아. 남자랑 섹스하라는 거야? 아니잖아. 거기에 무슨 자유가 있고 해방이 있는데? 그런데도 나는 그 마음을 사랑이랍시고 놓지를 못했던 거야. 그게 나를 어떻게 좀먹는지도 모르고, 나를 반쯤 죽여서 딱 반만 살게 하는 줄도 모르고······ 어떻게든 이해해보려고 했던 거야. 나는 그랬던 거야.
이효석문학상 수상작품집 2023 - 애도의 방식 p.164, 안보윤 외 지음
우리는 하나씩 줄어드는 숫자를 숨죽이며 지켜봤다. 그리고 카운터가 0을 가리키는 바로 그 순간에, 한 시절의 끝이자 시작을 알리는 것 같은 바로 그 순간에 눈을 들어 서로를 바라봤다. 장희가 먼저 웃으며 말했고 내가 따라 웃으며 들었다.
이효석문학상 수상작품집 2023 - 애도의 방식 p.172, 안보윤 외 지음
나를 죽게한게 병이 아니고 사람이었다는것을
이효석문학상 수상작품집 2023 - 애도의 방식 안보윤 외 지음
그리고 몇 초 뒤에, 서로를 향하는 눈짓과 손짓, 표정에서 스며 나오던 아쉬움이 두 사람을 어떠한 양감으로 살짝 움켜쥐었다 편 것처럼 주춤하게 했을 때 통화는 예기되었음에도 예기치 않은 것처럼 갑자기 종료되었다.
이효석문학상 수상작품집 2023 - 애도의 방식 안보윤 외 지음
처음에는 삐뚤빼뚤한 글씨로 나중에는 단정해진 글씨로 기다리고 있을 테니 언제든 우리 집에 또 오라는 말을 잊지 않았어. 그 말이 나는 참 좋았고.
이효석문학상 수상작품집 2023 - 애도의 방식 <세월은 우리에게 어울려>169쪽, 안보윤 외 지음
나를 죽게 한 건 병이 아니고 사람이었다는 걸. 그러니 아를 살게 할 수 있는 것도 약이 아니고 사람이라는 걸.
이효석문학상 수상작품집 2023 - 애도의 방식 P.154, 안보윤 외 지음
나는 그 순간 장희의 어깨를 툭 하고 건드려보았다. 이영서 씨에게서 어떤 소중한 것을 건네받은 듯한 느낌이 들었는데, 장희 역시 그것을 놓치지 않기를 바라서였다.
이효석문학상 수상작품집 2023 - 애도의 방식 p 154, 안보윤 외 지음
그리고 어느 해부터인가 장희 니가 한글을 배우기 시작했는지 카드 안에 추신처럼 한두 문장을 더 적었지. 그때 너는 또 오라고 썼어. 처음에는 삐뚤빼뚤한 글씨로 나중에는 단정해진 글씨로 기다리고 있을 테니 언제든 우리 집에 또 오라는 말을 잊지 않았어. 그 말이 나는 참 좋았고.
이효석문학상 수상작품집 2023 - 애도의 방식 169p <세월은 우리에게 어울려>, 안보윤 외 지음
어떤 날들은 말해지지 않아야만 간신히 멀어질 수 있으니까.
이효석문학상 수상작품집 2023 - 애도의 방식 162, 안보윤 외 지음
나는요, 형님을 만나고 나서 알게 됐어요. (중략) 나를 죽게 한 건 병이 아니고 사람이었다는 걸. 그러니 나를 살게 할 수 있는 것도 약이 아니고 사람이라는 걸.
이효석문학상 수상작품집 2023 - 애도의 방식 p.154 <세월은 우리에게 어울려>, 안보윤 외 지음
나를 죽게 한 건 병이 아니고 사람이었다는 걸. 그러니 나를 살게 할 수 있는 것도 약이 아니고 사람이라는 걸.
이효석문학상 수상작품집 2023 - 애도의 방식 -세월은 우리에게 어울려-, 안보윤 외 지음
도저히 안으로 들어 갈 수도 없고 이대로 떠날 수도 없어서 누군가 내 목에 줄이더라도 채워놓은 것처럼 숨 막혔던 밤들. 눈물이 나는데도 어떻게든 몸을 움직여보겠다며 걷는 사람들이 그러하듯이 한 걸음 한 걸음 내딜 때마다 물에 젖었다. 그대로 얼어버린 신발이라도 신은 것 마냥 비참했던 밤들.
이효석문학상 수상작품집 2023 - 애도의 방식 -세월은 우리에게 어울려-, 안보윤 외 지음
안전을 바라는 마음?보호해야 한다는 믿음? 그거 혐오였어. 헷갈릴 것도 없고 선해할 것도 없어.
이효석문학상 수상작품집 2023 - 애도의 방식 -세월은 우리에게 어울려-, 안보윤 외 지음
어떤 날들은 말해지지 않아야만 간신히 멀어질 수 있으니까.
이효석문학상 수상작품집 2023 - 애도의 방식 162p, 안보윤 외 지음
그분이 말씀하시기를 삼촌이 예전부터 내 얘기를 자주 하셨대. 금호동 고모네 집에 정말 힘들게 태어난 애가 하나 있는데 어찌나 순한지 계속 안고 있어도 힘들지가 않았다고. 한번은 그 아이가 자기를 힘껏 안아주던 순간에 뭔가 간신히 참고 있던 게 무너져 눈물을 쏟은 적이 있는데, 그 이후로 사는 게 너무 무섭거나 참담한 날에는 그 순간을 한번씩 떠올리게 됐다고.
이효석문학상 수상작품집 2023 - 애도의 방식 안보윤 외 지음
5-2. p.168 장희야. 예. 장희야. 예, 삼촌. 말씀하세요. 너 엄마한테 잘했지? 잘했을 거야, 그렇지? ...... . p.168-169에서, 두 사람 사이의 엄마의 모습, 엄마의 태도, 엄마의 표현이 남긴, 이제 어쩌지 못하는 시간이 느껴져서 먹먹했습니다.
5-2. 138p 서로 무언가를 주고받는 과정에서 우리 안의 농도가 달라지는 것을 느끼는 것, 그 일시적인 감흥이 우리가 도달할 수 있는 최선 아니겠느냐고. 149p 그분이 말씀하시기를 삼촌이 예전부터 내 얘기를 자주 하셨대. 금호동 고모네 집에 정말 힘들게 태어난 애가 하나 있는데 어찌나 순한지 계속 안고 있어도 힘들지가 않았다고. 한번은 그 아이가 자기를 힘껏 안아주었던 순간에 뭔가 간신히 참고 있던 게 무너져 눈물을 쏟은 적이 있는데, 그 이후로 사는 게 너무 무섭거나 참담한 날에는 그 순간을 한 번씩 떠올리게 됐다고. 154p 나를 죽게 한 건 병이 아니고 사람이었다는 걸. 155p 그 시절 장희는 도대체 왜 이런 취급을 받으면서도 가만히 있느냐며 나를 한심해했지만, 사실 나는 가만히 있었던 게 아니다. 나는 최선을 다해 나를 증명해 보였던 것이다. 내가 기다리라면 기다리고 믿으라면 믿는 그런 충직한 사람이라는 걸 보여주기 위해서, 나는 당신들 못지않게, 아니 당신들보다 휠씬 더 도덕적이고 모범적이며 무해하므로 내게도 자격이 있다는 걸 입증하기 위해서 기꺼이 참고 견뎠던 것이다. 오직 내가 원했던 단 한 자리, P의 곁에 있기 위해서. P의 마지막을 지키기 위해서.
화제로 지정된 대화
[선택] 5-3. 김병운 작가의 질문 이 단편의 마지막 문장은 “장희가 먼저 웃으며 말했고 내가 따라 웃으며 들었다.”인데요. 곁에서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의 존재를 선명히 드러내고자 ‘들었다’로 끝맺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누군가 내 이야기를 제대로 듣고 있다는 것을 실감하는 것만으로도 살아갈 힘을 얻곤 하는데요. 여러분은 최근에 언제 자신의 이야기가 제대로 가닿았다고 느끼셨는지, 혹은 그 반대로 누군가의 이야기를 제대로 들었다고 느끼셨는지 궁금합니다.
5-3. 내 이야기를 들어주고 이해해주는 사람이 세상에 한 명만 있어도 사람은 잘 살 수 있다는 말이 있듯이 참 어려운 일인 것 같습니다. 그래서 누군가를 만나 대화를 나누고 오는 길은 울렁거릴 때가 많습니다. 내 이야기가 제대로 가닿지 못함으로 인해 받을 수 있는 오해같은 것들이 자꾸 생각나기 때문인 것 같아요. 더불어 누군가의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듣지 못했다는 자괴감도 만만치 않습니다. 엊그제도 모임을 하고 돌아와 그런 연유로 속이 울렁거리는 걸 거둬내느라 힘들어서인지 작가님이 긍정적인 질문을 하셨음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불가능했던 일만 떠오르네요. 인간의 고질병이 아닌가 싶습니다.(저만 그런가요? :)) 아주 가끔 제대로 가닿았다는 생각이 들 때면 마음이 편한데, 그때를 기억해보면 대화 주제가 중요한 것도 아니고, 상대가 나와 같은 생각을 해서도 아니고, 그저 내 말을 자신의 언어로 번역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들어주고, 혹여 이해되지 않은 부분은 다시 물어봐주면서 자신의 의견도 말해줄 때였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다른 사람 말을 듣고 자신의 언어로 번역하지 않기가 참 쉽지 않은 것 같아요. 그래서 결국 잘 통한다는 것은 번역하는 언어가 비슷한 사람이 아닐까 생각하곤 하는데 그런 사람을 만나는 게 쉽지 않은 일 같아요.
저도 그렇습니다. 말을 많이 한 날은 내가 말하려던 게 그런 게 아니었던 것 같다는 생각에 괴롭고 많이 들은 날에는 다 소화할 수 없다는 생각에 또 괴롭고요. 나와 잘 통하는 누군가와의 대화도 어떤 날은 참 좋지만 어떤 날은 그렇지 않은 걸 보면(저는 그렇더라고요, 같은 사람과도 늘 잘 통할 수는 없는 것 같아요) 대화야말로 살아있는 생물처럼 그때 그때의 조건과 환경에 영향을 참 많이 받는 것 같아요. 통했다는 그 찰나의 순간이 더더욱 소중하게 느껴지는 건 아마도 그게 정말 희귀하기 때문인 것 같고요. 내가 말할 준비가 되어 있다고 해서 통하는 것도 아니고 들을 준비가 되어 있다고 해서 또 통하는 것도 아니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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