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믐북클럽] 10. <이효석문학상 수상작품집 2023> 읽고 사유해요

D-29
그러니까 사십을 앞둔 여성 둘의 잠적과 대기의 상태에 대해,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설계된 낙오와 조난 상태에 대해. 하지만 결론은 영 엉뚱한 지점에서 맺어졌다. 가상 세계와 마찬가지로 현실 세계 역시, 내가 고려할 수 있는 변수는 거의 없다는 거였다.
이효석문학상 수상작품집 2023 - 애도의 방식 217쪽, 안보윤 외 지음
뜨거워졌다 얼어붙었다 하는 기분을 억누르며 나는 나와 진주에게 공통으로 닥친 불행의 인과관계를 생각했다. 그러니까 사십을 앞둔 여성 둘의 잠적과 대기의 상태에 대해.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설계된 낙오와 조난 상태에 대해. 하지만 결론은 영 엉뚱한 지점에서 맺어졌다. 가상 세계와 마찬가지로 현실 세계 역시, 내가 고려할 수 있는 변수는 거의 없다는 거였다.
이효석문학상 수상작품집 2023 - 애도의 방식 p.217, 안보윤 외 지음
낯선 질문들이 입 속을 맴돌았다. 뭐가 있다고 치는 것. 없는데 있다고 치는 것. 치자, 치자, 치자, 중얼거리다가 나는 나도 모르게 흠칫 놀라고 말았다. 그러고 보니 거짓말도 치는 거고, 사기도 치는 거고, 뒤통수도 치는 거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지금 실종된 친구를 두고 무슨 생각을 하는 건가, 싶으면서도 집요하게 피어오르는 의심을 막을 길이 없었다. 곧이어 갑자기 사라진 진주에게 내내 뒤통수를 얻어맞고 있었다는 기분이 들었다. 진주야, 도대체 왜, 어디로 사라진 거니? 갑자기 벌도 나비도 하기 싫어서? 네가 가졌던 꿀이 몽땅 사라져서? 도대체, 왜? 나는 다가오는 여행 날짜를 떠올리며 입술을 깨물었다. 엉뚱하게도 이 모든 더러운 기분들이 허니쿠키를 향해 맹렬하게 솟구쳤다. 빙글거리는 저 얼굴을 차갑고 딱딱하게 만들고 싶다고 생각했다. 취기 때문인지 머릿속에서 윙윙 벌이 날아다니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이효석문학상 수상작품집 2023 - 애도의 방식 p.224-225, 안보윤 외 지음
나는 한동안 그림자처럼 앉아 소금 캐는 여자를 봤다. 검은 피부에 날렵하고 단단해 보이는 팔, 일을 하는 데 허튼 구석이 없는 손길, 가장 정확한 방법으로 가장 정확한 것을 움켜쥐는 동작이 반복되었다. 쉽지도 빠르지도 않았지만 그렇게 움직이는 것을, 낡은 소금 자루가 천천히 채워지는 것을 지켜봤다. 그러면서 종종 여자의 눈과 마주쳤다. 피할 수 없을 만큼 맑고 투명한 눈이었다. 무엇인가 실재하지 않는 것, 보이지 않는 것이 인간을 흔들기 이전의 눈, 그런 눈이 나를 차분하게 올려다보곤 했다. 나는 그 눈을 바라보다 조용히 중얼거렸다. 사막 한가운데서, 나는 누구보다 나 자신을 믿고 있어.
이효석문학상 수상작품집 2023 - 애도의 방식 p.232, 안보윤 외 지음
가혹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뭐가 가혹해? 하면 아무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그래, 하고 나는 혼자 중얼거렸다. 소금 안에 사람이 있었다는 거, 이렇게 만져지고 따뜻하다는 거, 그런 것들로 이루어진 게 실은 우리가 살던 세상이었다는 것을 아무도 알아차리려고 하지 않는 것이 서글펐다. 훨씬 복잡하고 섬세한 무엇인가가 소금 속에 있다는 것이 우주에서 나만 아는 비밀 같았다. 가슴에서부터 무엇인가 뜨거운 것이, 뜨거우면서도 차가운 것이 동시에 올라오는 기분이었다. 나는 숨을 깊이 들이마셨다. 날이 저물고 있었다. 부지런히 손을 움직이던 여자가 묵직한 소금 자루를 자전거 뒤에 싣는 것이 보였다. 여자 앞에 자리를 잡은 아이가 나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페달을 밟자 묵직한 소금의 무게가 여자의 발에 실렸다. 여자가 석양을 등지고 사막 저편으로 멀어지고 있었다. 마음속에 소용돌이치는 말들 중 어떤 것도 쉽게 꺼낼 수가 없었다. 나는 길게 늘어지는 여자의 그림자를 사진 속에 담았다. 말 대신 꼭 보여주고 싶었다. 진주에게 그리고 허니쿠키에게도. 마지막 실족에서 물러서게 하는 것, 걸음을 멈추고 끝 너머로 눈을 돌리는 것, 그게 최후에는 꼭 자기 자신이었으면 하는 마음을 담아.
이효석문학상 수상작품집 2023 - 애도의 방식 p.233, 안보윤 외 지음
말 대신 꼭 보여주고 싶었다. 진주에게 그리고 허니쿠키에게도, 마지막 실족에서 물러서게 하는 것, 걸음을 멈추고 끝 너머로 눈을 돌리는 것, 그게 최후에는 꼭 자기 자신이었으면 하는 마음을 담아.
이효석문학상 수상작품집 2023 - 애도의 방식 - 작은 방주들-, 안보윤 외 지음
근면 성실이 더는 성공의 무기가 될 수 없다는 걸, 심지어 무능도 전략적으로 증명해야 실업 급여라도 받을 수 있다는 걸, 나는 초현실적인 형벌을 받으며 복기했다.
이효석문학상 수상작품집 2023 - 애도의 방식 -작은 방주들-, 안보윤 외 지음
가상 세계와 마찬가지로 현실 세계 역시, 내가 고려할 수 있는 변수는 거의 없다는 거였다. 나는 하루종일 별서듯 텅 빈 바탕 화면을 노려봤다. 시위를 하듯 점심 식사도 거른 체 퇴근 시간을 맞았다. 온 마음이 사막처럼 황량했다.
이효석문학상 수상작품집 2023 - 애도의 방식 안보윤 외 지음
무보직 대기발령 AI의 밀린 상사
이효석문학상 수상작품집 2023 - 애도의 방식 안보윤 외 지음
얘야, 가보지도 않은 곳이 그리울 수도 있단다.
이효석문학상 수상작품집 2023 - 애도의 방식 p219, 안보윤 외 지음
나는 나와 진주에게 공통으로 닥친 불행의 인과관계를 생각했다. 그러니까 사십을 앞둔 여성 둘의 잠적과 대기의 상태에 대해.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설계된 낙오와 조난 상태에 대해. 하지만 결론은 영 엉뚱한 지점에서 맺어졌다. 가상 세계와 마찬가지로 현실 세계 역시, 내가 고려할 수 있는 변수는 거의 없다는 거였다.
이효석문학상 수상작품집 2023 - 애도의 방식 217p, 안보윤 외 지음
사막 한가운테서, 나는 누구보다 나 자신을 믿고 있어. 물론, 여자의 생각이 그런지는 알 수 없었다. 다만 밀도 끝도없이 그 눈빛이 그렇게 보였다. 모멸감도 죄책감도 담겨 있지 않은 맑고 단단한 눈. 느닷없이 눈물이 핑 돌았다. 얼른 손등으로 눈가를 홈쳤다.
이효석문학상 수상작품집 2023 - 애도의 방식 232p, 안보윤 외 지음
말 대신 꼭 보여주고 싶었다. 진주에게 그리고 허니쿠키에게도. 마지막 실족에서 물러서게 하는 것, 걸음을 멈추고 끝 너머로 눈을 돌리는 것, 그게 최후에는 꼭 자기 자신이었으면 하는 마음을 담아.
이효석문학상 수상작품집 2023 - 애도의 방식 p.233, 안보윤 외 지음
뭐가 있다고 치는 것. 없는데 있다고 치는 것. 치자, 치자, 치자, 중얼거리다가 나는 나도 모르게 흠칫 놀라고 말았다.
이효석문학상 수상작품집 2023 - 애도의 방식 <작은 방주들>224쪽, 안보윤 외 지음
사막 한가운데서, 나는 누구보다 나 자신을 믿고 있어. 물론, 여자의 생각이 그런지는 알 수 없었다. 다만 밑도 끝도 없이 그 눈빛이 그렇게 보였다. 모멸감도 죄책감도 담겨 있지 않은 맑고 단단한 눈. 느닷없이 눈물이 핑 돌았다.
이효석문학상 수상작품집 2023 - 애도의 방식 232p, 안보윤 외 지음
질투와 아쉬움이 역력한 허니쿠키의 얼굴을 보는데 희열이 느껴졌다. 내가 그의 마음 한구석에 예리한 구멍을 낸 느낌이었다.
이효석문학상 수상작품집 2023 - 애도의 방식 신주희 <작은 방주들>, 안보윤 외 지음
근면 성실이 더는 성공의 무기가 될 수 없다는 걸, 심지어 무능도 전략적으로 증명해야 실업 급여라도 받을 수 있다는 걸, 나는 초현실적인 형벌을 받으며 복기했다.
이효석문학상 수상작품집 2023 - 애도의 방식 신주희 <작은 방주들>, 안보윤 외 지음
7-2. 213p 남으면 줍고, 모자라면 버티고, 이제는 좀 쉬엄쉬엄하자는 나를 비웃듯 진주는 꾸준히 뭔가를 배우고 실행하는 일에 시간을 썼다. 216p 인사 발령은 회사 고유의 조치예요. 직원의 동의 없이도 할 수 있고, 은재 님을 벽만 보게 앉혀놔도 법적으론 문제가 없어요. 224p 낯선 질문들이 입 속을 맴돌았다. 뭐가 있다고 치는 것. 없는데 있다고 치는 것. 치자, 치자, 치자, 중얼거리다가 나는 나도 모르게 흠칫 놀라고 말았다. 그러고 보니 거짓말도 치는 거고, 사기도 치는 거고, 뒤통수도 치는 거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232p 사막 한 가운데서, 나는 누구보다 나 자신을 믿고 있어. 233p 진주에게 그리고 허니쿠키에게도. 마지막 실족에서 물러서게 하는 것, 걸음을 멈추고 끝 너머로 눈을 돌리는 것, 그게 최후에는 꼭 자기 자신이었으면 하는 마음을 담아.
7-2. p.218 '너 친구, 우유니에 와 있을지도 모르잖아?' 하던 서툰 한국어 발음이 귓가에 울리는 것 같았다. 이어 진주가 했던 말들이 떠올랐다. 가보지도 않은 곳이 그리울 수도 있단다, 했던 것이.
화제로 지정된 대화
[선택] 7-3. 신주희 작가의 질문 저는 무엇인가가 힘들 때 시원한 맥주 첫 모금, 퇴근길에 들을 좋은 음악, 때로는 보고 싶은 사람의 어떤 표정이나 말 등을 떠올립니다. 그것으로 잠시 괴로움을 버틸 수 있는 위안을 얻지요. 하지만 그렇게 시시한 것으로 받는 위안이 결코 구원이 될 수 없다고 생각했던 때가 있었습니다. 둘은 엄연히 다르다고 구분하던 때가요. 물론, 지금은 그렇지 않습니다. 제가 거창하게 생각했던 구원은 점점 더 작고 사소해지고 있으니까요. 그래서 문득 궁금해졌습니다. 여러분들의 생각은 어떨까. A. 여러분들에게 구원이란 무엇일까요? B. 구원이 있다면, 그건 가능한 것일까요? C. 작고 소박한 위안을 주고받는 것만으로는 가능하지 않는 것일까요?
작성
글타래
화제 모음
지정된 화제가 없습니다
[책나눔 이벤트] 지금 모집중!
[문예출판사/책 증정] 헨리 데이비드 소로 『시민 불복종』 마케터와 함께 읽기
💡독서모임에 관심있는 출판사들을 위한 안내
출판사 협업 문의 관련 안내[모임] 간편 독서 모임 만들기 매뉴얼 (출판사 용)
그믐 새내기를 위한 가이드
그믐에 처음 오셨나요?[메뉴]를 알려드릴게요. [그믐레터]로 그믐 소식 받으세요
드라마 이야기 중!
'모자무싸' 드라마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으신 분들 모이세요"사랑의 이해" / 책 vs 드라마 / 다 좋습니다, 함께 이야기 해요 ^^[2024년 연말 결산] 내 맘대로 올해의 영화, 드라마 [직장인토크] 완생 향해 가는 직장인분들 우리 미생 얘기해요! | 우수참여자 미생 대본집🎈
책도 보고 연극도 보고
[그믐연뮤번개] 2. [독서x관극x번역가 토크] 인간 내면을 파헤치는 『지킬앤하이드』[그믐연뮤번개] 1. [책 읽고 연극 보실 분] 오래도록 기억될 삶의 궤적, 『뼈의 기록』
달빛 아래 필사를
[ 자유 필사 • 3 ][ 자유 필사 • 2 ][ 자유 필사 ], 함께해요
어버이날 반드시 읽어야 할 책
[책걸상 '벽돌 책' 함께 읽기] #34. <아버지의 시간>[책걸상 '벽돌 책' 함께 읽기] #22. <어머니의 탄생>
부처님 오신 날을 맞아
나의 불교, 남의 불교[책 증정] <이대로 살아도 좋아>를 박산호 선생님과 함께 읽어요.
5월 15일, 그믐밤에 만나요~
[그믐밤] 47. 달밤에 낭독, 입센 1탄 <인형의 집>[그믐밤] 46. 달밤에 낭독, 체호프 4탄 <벚꽃 동산> [그믐밤] 45. 달밤에 낭독, 체호프 3탄 <바냐 아저씨>
동구권 SF 읽어보신 적 있나요?
[함께 읽는 SF소설] 12.신이 되기는 어렵다 - 스트루가츠키 형제[함께 읽는 SF소설] 11.노변의 피크닉 - 스트루가츠키 형제[함께 읽는 SF소설] 10.이욘 티히의 우주 일지 - 스타니스와프 렘[함께 읽는 SF소설] 09.우주 순양함 무적호 - 스타니스와프 렘
봄에는 봄동!
단 한 번의 삶방랑자들여자에 관하여
🎁 여러분의 활발한 독서 생활을 응원하며 그믐이 선물을 드려요.
[인생책 5문 5답] , [싱글 챌린지] 완수자에게 선물을 드립니다
우리 입말에 딱 붙는 한국 희곡 낭독해요!
<플.플.땡> 4. 우리는 농담이 (아니)야<플.플.땡> 3 당신이 잃어버린 것 2부<플.플.땡> 2. 당신이 잃어버린 것플레이플레이땡땡땡
학벌이 뭐길래?
성공하면 30억을 받는 대리 수능💥『모방소녀』함께 읽기[📚수북플러스] 5. 킬러 문항 킬러 킬러_수림문학상 작가와 함께 읽어요[슬픈 경쟁, 아픈 교실] 미니소설 10편 함께 읽기
소설로 읽는 기후 위기
[소설로 읽는 기후위기·인류세] 2회차 『로빈슨 크루소』(다니엘 디포, 1719)[소설로 읽는 기후위기・인류세 - 우리는 왜·어떤 다른 세상을 꿈꾸는가?] 1회차-마션[소설로 기후위기/인류세 읽기] 『야성의 부름』 잭 런던, 1903.[소설로 읽는 기후위기·인류세] - (3) 프랑켄슈타인
모집중밤하늘
내 블로그
내 서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