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믐북클럽] 10. <이효석문학상 수상작품집 2023> 읽고 사유해요

D-29
8-1. 1980년대판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를 읽는 느낌이었습니다. 그 작품에서도 별볼일 없고 약간은 촌스럽지만 young함을 무기로 한 나와 PX의 실세 티나 박(이름이 맞는지는 모르겠습니다.)의 구도와 비슷해서였을까요? 그리고 항상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그런 화려한 여성들의 뒷면에 비루한 현실들이 자리 잡고 있는 건 2000년대 이전의 정형화된 모습이었던 것 같습니다. 분시와 배설을 강조한 어머니의 모습까지.... 처음에 물이 고인 웅덩이를 버릴 수밖에 없었던 첫사랑과 본인의 과거라고만 생각했는데 읽으면서 여러 의미가 더 느껴졌습니다. 확실히 뭐라고 표현하기엔 제 내공이 부족하지만요. 가난 때문에 수치스러워, 숨기고만 싶은 과거를 다루는 소설은 항상 짜안한 여운을 남겨 좋습니다. ^^
성자와 조옥의 이야기보다 구덩이와 이무기에 계속 마음이 가더라구요. 저 또한 지방에 몸을 누인 사람이어서 그런가봐요. 이무기는 사랑인 동시에 향수인 것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누군가를 애틋하게 그리워하는 마음은 고향을 그리워하는 마음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아요. ㅎㅎ
8-1. 시대극을 방영했던 TV소설 프로그램 분위기로 상상하며 읽었습니다. 성자의 청춘에 조옥이 있었구나, 돈보다 그리운 것은 그 시간이겠구나 생각이 들었습니다.
화제로 지정된 대화
8-2. 이 단편을 읽으면서 좋았던 문장을 적어주세요.
북쪽에서 돈을 벌고 고향으로 돌아오는 사람. 북명에 머물다 자신이 온 곳으로 돌아가는 사람. 때가 되면 조옥 또한 이곳을 떠나 고향으로 돌아갈것이라는 생각에 벌써부터 그날이 그리워지는 기분이었다. p246
이효석문학상 수상작품집 2023 - 애도의 방식 안보윤 외 지음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야 나는 그 구덩이를 사랑했다는 걸, 절망한 이무기와 이별과 실패한 오욕이 고인 빈 연못을 한없이 원했다는 걸 깨달았다. 사랑이 뭔지도 모를 때부터.
이효석문학상 수상작품집 2023 - 애도의 방식 242쪽, 안보윤 외 지음
나는 구덩이 앞에 다가가 고개를 숙여 안을 들여다봤다. 골목 끝에서 켜진 가로등 빛이 희미하게 구덩이 안을 비췄을 때 나는 똑똑히 보았다. 그곳에 물이 차오르는 것을. 빛에 반사된 물방울이 반짝거리며 수면 위로 튀어 오르는 것을. 이무기가 살던 멀고 먼 옛날처럼, 연못이 흘러넘치던 꿈속 풍경처럼. 나는 무릎을 꿇고 구덩이 바닥에 고인 검은 웅덩이를 오래도록 바라보았다.
이효석문학상 수상작품집 2023 - 애도의 방식 270쪽, 안보윤 외 지음
나는 똑똑히 보았다. 그곳에 물이 차오르는 것을. 이무기가 살던 멀고 먼 옛날처럼, 연못이 흘러넘치던 꿈속 풍경처럼. (중략) 물에 비친 내 얼굴이 낯설어 알아볼 수 없을 때까지, 가로등이 꺼지고 온 세상에 어둠이 내릴때까지. 이무기가 돌아올 때까지.
이효석문학상 수상작품집 2023 - 애도의 방식 p.270, 안보윤 외 지음
내가 구덩이라면, 혹은 진흙이라면, 물과 바람을 따라 자유롭게 변한다면, 진득한 몸으로 어디든 달라붙을 수 있다면, 아니 연못이라면, 흐르고 넘쳐 원하는 곳 어디로든 갈 수 있다면, 뛰어들 수 있다면, 녹아서 사라질 수 있다면, 이성자가 아닌 무엇이라면, 내가 조옥이라면, 그런 열망이 예기치 않게 급습할 때면 오한이 나듯 몸이 떨리고 추위가 밀려왔다. 무언가를 이루려면 몸의 허락이 필요했다. 자꾸 나에게 묻고 비밀을 되새겨야 했다. 바깥은 봄인데 내 몸 어딘가는 여전히 겨울이었다. 나는 팔짱을 끼고 집으로 돌아갔다.
이효석문학상 수상작품집 2023 - 애도의 방식 안보윤 외 지음
그곳은 오직 저 너머, 오래된 복명을 떠난 상태에서만 볼 수 있다. 여기서부터도 아주 멀로 되돌아가는 길이나 단서 따위 없으므로 누구도 그곳을 찾을 수 없다. 이제 나는 복명으로 되돌아가는 길을 모른다. 길을 잃은 남편의 머릿속처럼 나의 기억 또한 너무 먼 미래에 와 있으므로.
이효석문학상 수상작품집 2023 - 애도의 방식 안보윤 외 지음
먼 훗날, 육체가 부서지고 서로의 살이 녹는 고통 속에 아니가 먼 곳으로 떠난 뒤 서로의 생각을 알 수 없게 되어 결국 세상에 나 혼자 남겨지는 고통을 겪에 되리란 걸 아직 모른다. 흔적 없이 사라진 노른자처럼, 어느 깊은 밤, 잠에서 깬 남편이 허공을 향해 낯선 이름을 부르면 나는 그에게 약을 먹인 뒤 돌아오지 않는 잠의 꽁무니를 바라보며 아침이 오길 기다린다. 기술적으로 빼낼 수 없는 머릿속 골짜기에 같혀 오도 가도 못하는 그의 기억들을 생각한다. 어디에도 없고 오직 당신의 머릿속에만 존재하는 시간이 왜 하필 그곳인지도. 나는 그의 눈꺼풀을 들어 올려 검고 탁한 동공을 들여다본다. 그의 눈동자 어디에서도 나와이 지난 시간을 떠올린다는 단서는 없다. 내가 누구야? 말해봐, 나는 눈을 감고 나의 골짜기를 떠올린다.
이효석문학상 수상작품집 2023 - 애도의 방식 안보윤 외 지음
독한 타르 연기가 냄새를 내뿜으며 그와 나 사이에 피어오른다. 그때 나는 아주 잠깐 어머니를 이해한다. 사랑과 증오가 담배 속처럼 한데 말려 도저히 분리할 수 없는 상태를.
이효석문학상 수상작품집 2023 - 애도의 방식 <북평 너머에서> 268쪽, 안보윤 외 지음
당시 어머니가 주문처럼 외던 말이 떠오른다. 분시를 모르면 배설이 뒤집혀. 그건 자기 분수에 맞춰 살아야 한다는 뜻이자 헛된 희망- 주로 성진에게-의 위험을 경고하는 말이기도 했다.
이효석문학상 수상작품집 2023 - 애도의 방식 -북명 너머에서-, 안보윤 외 지음
해마다 고향 마을에 들를 때면 나는 이무기가 아직도 그곳에 있는지, 없다면 어디로 갔을지 궁금했다. 변해버린 지질과 환경에 혼란스러워하며 어두운 땅속을 헤맬지, 슬픔에 빠져 헤어진 연인을 찾고 있을지.
이효석문학상 수상작품집 2023 - 애도의 방식 -북명 너머에서-, 안보윤 외 지음
남편의 주위를 떠도는 유령은 누구일까. 그의 과거?전우들?그럼 내 유령의 이름은 뭘까. 조옥?구덩이? 혹은 이런 것들. 에꼴드빠리, 엘튼 존, 작은새, 모닝커피. 그리고 청자와 추자와 이무기가 몸속 어딘가에 고여 어떤 기술로도 빼낼 수 없듯 박혀 있다면.
이효석문학상 수상작품집 2023 - 애도의 방식 -북명 너머에서-, 안보윤 외 지음
가끔 이무기가 살던 연못이나 연인들이 나오는 꿈을 꿀 때면 그곳에 내가 있었다는 환시가 아침까지 생생하게 이어졌다. 꿈에서 연못의 물은 흘러넘쳤고 사랑에 빠진 이무기와 수많은 사람들이 환한 대낮 거리를 가득 메우고 있었다. 이무기를 떠난 처녀가 나였더라면 우리는 옛날이야기와는 다른 선택을 했을까?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야 나는 그 구덩이를 사랑했다는 걸, 절망한 이무기와 이별과 실패한 오욕이 고인 빈 연못을 한없이 원했다는 걸 깨달았다. 사랑이 뭔지도 모를 때부터. 새벽마다 마음 졸이며 아버지가 죽거나 사고를 당한 건 아닐까 괴로워하던 어머니처럼. 그게 사랑이라면 날마다 지나치는 구덩이를 향해 뛰어들고 싶은 마음도 사랑이 아니었을까? 그게 사랑이 아니면 뭐겠어? 얼마나 많은 시체와 이루지 못할 마음이 묻혔든지 간에. 저 텅 빈 구덩이만큼 안락한 공간은 어디에도 없을 거라고, 그것만으로 모든 걸 포기할 수 있다고 매일 아침마다 생각했다면. 몸이 터져버릴 것 같은 시간을 그곳을 지날 때마다 겪고 또 겪었다면.
이효석문학상 수상작품집 2023 - 애도의 방식 p.242-243, 안보윤 외 지음
내가 구덩이라면. 혹은 진흙이라면. 물과 바람을 따라 자유롭게 변한다면, 진득한 몸으로 어디든 달라붙을 수 있다면. 아니 연못이라면. 흐르고 넘쳐 원하는 곳 어디로든 갈 수 있다면. 뛰어들 수 있다면. 녹아서 사라질 수 있다면. 이성자가 아닌 무엇이라면. 내가 조옥이라면. 그런 열망이 예기치 않게 급습할 때면 오한이 나듯 몸이 떨리고 추위가 밀려왔다. 무언가를 이루려면 몸의 허락이 필요했다. 자꾸 나에게 묻고 비밀을 되새겨야 했다. 바깥은 봄인데 내 몸 어딘가는 여전히 겨울이었다. 나는 팔짱을 끼고 집으로 돌아갔다.
이효석문학상 수상작품집 2023 - 애도의 방식 p.250, 안보윤 외 지음
나는 구덩이 앞에 다가가 고개를 숙여 안을 들어다봤다. 골목 끝에서 커진 가로등 빛이 희미하게 구덩이 안을 비췄을 때 나는 똑똑히 보았다. 그곳에 물이 차오르는 것을. 빛에 반사된 물방울이 반짝거리며 수면 위로 튀어 오르는 것을. 이무기가 살던 멀고 먼 옛날처럼, 연못이 흘러넘치던 꿈속 풍경처럼. 나는 무릎을 꿇고 구덩이 바닥에 고인 검은 웅덩이를 오래도록 바라보았다. 물에 비친 내 얼굴이 낯설어 알아볼 수 없을 때까지, 가로등이 꺼지고 온 세상에 어둠이 내릴 때까지. 이무기가 돌아올 때까지.
이효석문학상 수상작품집 2023 - 애도의 방식 p.270, 안보윤 외 지음
무언가를 이루려면 허락이 필요했다. 자꾸 나에게 문고 비밀을 되새겨야 했다. 바깥은 봄인데 내 몸 어딘가는 여전히 겨울이었다.
이효석문학상 수상작품집 2023 - 애도의 방식 안보윤 외 지음
동생들이 모두 대학에 가면 좋겠지만 가도 문제였다. 그런 와중에 사촌이 백화점에서 일해보지 않겠냐고 물었을 때 나는 어떤 기회가 왔다는 것을, 살다 보면 한 번쯤 만나는 그런 행운이 스물셋의 봄, 나에게 찾아온 것을 직감했다.
이효석문학상 수상작품집 2023 - 애도의 방식 p.239, <북명 너머에서> 중, 안보윤 외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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