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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1. 752. 모든 것의 종말 1, 2 (존 스칼지)

나는 이 작품을 읽었다는 사실을 자주 까먹는다. 결말이 인상적이지 않았나 보다. 그래도 다시 읽을 때에는 ‘아, 이거 읽었었지’ 하고 바로 알아차리는데 도입부가 인상적이어서 그렇다. 중반에는 테러와의 전쟁을 빗대는 것처럼 보였는데, 후반에 가니 1차 세계대전 직전이 연상된다. ‘전쟁을 끝내기 위한 전쟁’도 나오고.

모든 것의 종말 1
모든 것의 종말 1
749, 750. 휴먼디비전 1, 2 (존 스칼지)

  노인의 전쟁 시리즈 외전. 같은 세계관이라도 여러 시점으로 진행되는 데다, 인물들이 대부분 회색지대에 있는 직업 관료들이고 모험의 성격도 복잡한 첩보극이라 새로운 박력이 있다. 클라이맥스가 아주 호쾌하다. 그런데 결말은 ‘다음 편에 계속.’

휴먼디비전 1
휴먼디비전 1
23-043 | 사가와 치카, 계절의 모노클

읻다 넘나리 1기 (230924~231015)


❝ 별점: ★★★★☆

❝ 한줄평: 시들은 생생히 움직이는 하나의 풍경이 되고

❝ 키워드: #계절 : 봄, 여름, 가을, 겨울 | #밤 #바다 #사랑 #삶 #죽음 #순환 #장송곡 

❝ 추천: 시집 한 권에 담긴 사계절 같은 시인의 생애가 궁금한 사람, 밤을 사랑하는 사람


❝ 그것은 계절처럼 흘러가는 인생이었다. ❞

/ 옮긴이의 말 | 바다로 내달려 발광하라 (p.195)


📝 (23/10/16) 시집을 다 읽고 나서 ‘계절의 모노클’이라는 시집의 제목이 정말 잘 어울린다는 생각을 했다. 시들을 읽는 동안 사계절의 풍경을 두 눈으로 직접 보는 것보다, 한쪽 눈으로 렌즈를 통해 바라보는 듯한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총 4부로 되어 있는 시집은 시인의 생애 첫 시와 마지막 시로 시작하고 끝을 맺으며, I는 봄, II는 여름, III는 가을, 그리고 IV는 겨울을 느낄 수 있는 시들로 구성되어 있어 시집과 함께 사계절의 흐름, 그리고 시인의 삶의 흐름을 느낄 수 있었다.


  시를 읽으며 우리는 ‘장미를 흩뿌리는 봄’(「눈을 뜨기 위하여」)을 지나 ‘태양의 뜨거운 시간을 기다리는’(「대화」) 여름을 건너 ‘추억이 버려지듯이, 잎사귀에서 멀어지는 나무’(「잠들어 있다」)들이 가득한 가을을 통과해 마침내 ‘이파리 한 장 없는 마른 나뭇가지가 위로 쭉 뻗어 있는 벌거벗은 숲’에 모두가 ‘천천히, 천천히 점점 더 깊은 잠에 빠지’(「겨울의 초상」)는 겨울에 도달한다. 하지만 겨울의 끝은 봄의 시작이듯, 계절은 돌고 돌아 겨울에 죽어 있던 것들을 다시 되살려내는 봄을 맞이하며 끝없이 순환한다. 


  밤과 달에 관심이 많았던 시인. 밤을 좋아했던 시인. 시인은 산문 <나의 밤>에서 ‘세상 모든 것은 밤의 어둠 속으로 녹아들고, 나의 귓가에는 바늘로 집듯이 시간이 흘러갈 뿐’(p.188)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결국 밤의 시간도 영원하지는 않고, 태양이 뜨고 낮이 찾아오기 마련이다. 


  사계절, 밤과 낮, 그리고 죽음과 삶에 있어서 시작과 끝의 구분은 무의미하지 않을까. ‘계절처럼 흘러가는 인생’에 우리는 결국 죽음이라는 마지막을 맞이하게 되겠지만, 우리 또한 자연의 일부가 되어 끝없이 순환하게 되는 것은 아닐까.


  생생히 살아 움직이는 듯한 하나의 풍경이 되는 시들을 읽으며 삶과 죽음, 계절과 순환에 관해 사유해 볼 수 있었다. 원문이 함께 실려 있으나 일본어를 알지 못해 원문과 함께 번역을 음미할 수 없어서 아쉽다. 이 아름다운 시집, 그리고 아름다운 시인이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지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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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체중이 나를 떠나   망각의 구멍 속에 되돌려 놓는다 이곳 사람들은 미쳐 있다   슬퍼하는 것도 말을 거는 것도 의미가없다   눈은 녹색으로 물들었다 믿음은   불확실해지고 앞을 보는 일은 나를 초조하게 한다


  내 뒤에서 눈을 가리는 것은 누구인가?   나를 잠에 빠뜨려다오.

/ 「녹색 불꽃」 (p.65)


 —무거운 리듬 아래 깔려 있는 계절을 위해 신은 손을 들리라. 일렁이는 파도가 기어 나오는 해안선에는 소금 꽃이 피었다. 세상 모든 생명의 율동을 갈망하는 고풍스러운 건반은 먼지투성이 손가락으로 태양의 뜨거운 시간을 기다리고 있다.

/ 「대화」 (p.99)


❝ 붉은 소요가 인다


   저녁이면 태양은 바다와 함께 죽는다. 그 뒤를 따라 옷이 흐르지만 파도는 잡을 수 없다.

/ 「낙하하는 바다」 (p.117)


❝ 밤눈에도 하얗게 떠오른 눈길, 그곳을 지나간 사람은 두 번 다시 돌아오지 못할 것 같다. 눈은 금세 몇몇 사람들의 발자국을 지워버린다. 죽음이 그 근처에 있었던 것이다. 사람들이 깨닫지 못하는 사이에 몰래 다가와 하얀 손을 흔든다. 죽음은 짙은 발자국을 남기고 지나쳐 갔다. 상냥했던 사람의 시체는 어디에 묻혔을까. 우리의 잃어버린 행복도 어딘가에 숨겨져 있다. 아침, 눈 덮인 지상이 아름다운 것은 그 때문이었다. 우리의 꿈을 파내는 것만 같은 삽 소리가 들린다.

/ 「겨울의 초상」 (p.151)


 그날,

   하늘은 소년의 살결처럼 슬프다.

   영원은 우리 사이를 갈라놓는다.

   저 너머에서 나는 여러 개의 영상을 놓쳐버린다.

/ 「순환로」 (p.1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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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좋았던 시


I

✎ 「푸른 말」

✎ 「아침의 빵」

✎ 「오월의 리본」

✎ 「초록」

✎ 「눈을 뜨기 위하여」 ⛤

✎ 「꽃 피는 드넓은 하늘에」

✎ 「봄」 ⛤

✎ 「별자리」

✎ 「전주곡」 ⛤


II

✎ 「기억의 바다」

✎ 「녹색 불꽃」 ⛤

✎ 「The street fair」

✎ 「꿈」 ⛤

✎ 「대화」 ⛤

✎ 「단편」

✎ 「여름의 끝」

✎ 「구름의 형태」

✎ 「Finale」


III

✎ 「잠들어 있다」

✎ 「낙하하는 바다」 ⛤

✎ 「태양의 딸」

✎ 「계절의 모노클」

✎ 「종이 울리는 날」 ⛤

✎ 「검은 공기」

✎ 「녹슨 나이프」 ⛤


IV

✎ 「산맥」

✎ 「겨울의 초상」 ⛤

✎ 「순환로」 ⛤

✎ 「계절」


(*읻다 출판사 서포터즈로 선정되어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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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절의 모노클
계절의 모노클
[그믐밤] 15. 13일의 금요일에 만나요 @사계리 서점

2023년 10월 13일 (음력 8월 29일) 19시 29분에 제주도 서귀포시에 '사계리 서점'에서 호러 소설을 읽고 이야기하는 그믐밤이 열렸습니다.

 

10월 13일의 금요일, 제주에서 열린 15번째 그믐밤은 사계리 서점 김수현 책방지기와 함께 <기이한 것과 으스스한 것>, <바깥 세계>, <귀신이 오는 밤>을 읽고 이야기를 나눴어요. '가장 무서웠던 단편'과 '가장 마음에 들었던 단편'에 대한 이야기도 나누었어요. 참석해 주신 분들 모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온라인으로 열린 그믐밤 15회는 아직 진행 중이에요. 13일의 그믐밤에 대한 후기도 나누고 있어요. 그리고 14일부터 20일까지는 앤솔로지인 <귀신이 오는 밤>을 읽고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


[그믐밤] 15. 13일의 금요일에 만나요 @사계리 서점


"열다섯 번째 그믐밤이 열린 사계리 서점은 제주에 위치한 장르 전문 서점입니다. 좋아하는 작가들의 책들을 적극 영업하기 위해 서점을 시작했어요. 이렇게 저와 만난 여러분, 함께 장르 소설에 대해 여러 이야기 나누어 보아요. 장르 소설이 처음인 분들도 환영합니다! 순한 맛 코지부터 4단계 마라맛 호러까지 다양하게 준비되어 있습니다."(김수현 책방지기) https://www.instagram.com/four_seasonbookstore/
748. 조이 이야기 (존 스칼지)

이 작품과 『마지막 행성』을 합쳐서 한 편으로 썼다면, 그리고 ‘협상하는 용기’라는 주제를 여기에 쏟았다면 훨씬 더 좋지 않았을까 싶다. 번역자가 바뀌었는데, 전작 번역본들에서는 늘 존댓말을 썼던 히코리 디코리가 갑자기 반말을 써서 당황했다. 내용상으로도 말이 안 된다. 조이를 숭배하는 종족인데. ‘신경쇄약’ 같은 오자도 민망.

조이 이야기
조이 이야기
747. 마지막 행성 (존 스칼지)

가족을 잃은 남자가 군인을 거쳐 정치 지도자가 되면서 새 가족을 다시 일구는 것으로 노인의 전쟁 3부작이 마무리된다. 뒷부분에서는 작가가 그 새 가족을 너무 편애하는 바람에 이야기가 종종 덜컹거렸다.

마지막 행성
마지막 행성
초보 독자를 위한 서비스 설문조사

초보 독자를 위한 서비스 설문조사



안녕하세요! 


세종대학교 창업 수업을 수강 중인 [책GPT] 팀입니다.



저희는 해당 수업에서, 독서에 익숙하지 않은 초보 독자들을 위한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플랫폼을 기획하고 있습니다🙂


더 나은 서비스를 기획하기 위해 간단한 설문조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 예상 소요시간: 3분


응답해 주신 내용을 꼼꼼히 살펴보고 서비스에 반영할 예정이니, 잠시만 시간을 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해당 설문지에서 ‘책’은 종이책, 전자책, 오디오북 등 모든 형태의 책을 포함합니다.

감사합니다.

*해당 설문조사는 세종대학교 수업의 일환으로 창업 프로젝트를 위해 진행하는 것이며, 이외의 목적으로 사용되지 않습니다. 또한 설문은 익명으로 진행되며, 개인정보를 수집하지 않습니다. 

https://walla.my/survey/yMdzO46yPidnVnU0i9GM

746. 유령여단 (존 스칼지)

장엄한 비극이고, 노인의 전쟁 시리즈 작품 중 가장 뛰어난 걸작이라고 생각한다. 특정 용도로 만들어진 도구였던 재러드 디렉과 제인 세이건이 인간성을 획득하는 과정이 설득력 있게 그려진다. 선악이 모호한 것도 높은 작품성에 한 몫 한다. 작가의 유머를 좋아하기는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 작품의 어둡고 건조한 톤이 그 유머보다 더 좋다.

유령여단
유령여단
745. 노인의 전쟁 (존 스칼지)

앤디 위어의 『마션』과 함께 개인 블로그에 연재한 소설이 상업적으로 큰 성공을 거둔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위키피디아에 따르면 밀리터리 SF 장르가 시장성이 있을 거라고 생각해서 전략적으로 쓰기 시작했다고. 노인의 전쟁 시리즈 후반부 작품과 다른 빠른 호흡도 그런 전략적 선택이었을지 궁금하다. 아무튼 재미있다. 펼치면 빨려 들어가게 된다.

노인의 전쟁
노인의 전쟁
조력사망에 대한 찬반- 논쟁인가 현상인가

도서팟캐스트 <책걸상>에서 강양구 기자님이 추천한 책. 전자책을 다운받아 읽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별로 구미가 당기는 책은 아니었다. "나는 (뭔가 신기한 일을 하는 사람) 입니다"라는 제목으로 독자의 구미를 당기려는 시도가 솔직히 구태의연하다는 생각이 들었고, (원제는 '이것이 조력사망이다 (This is Assisted Dying)') 이 책의 저자는 서울신문에서 "금기된 죽음, 안락사" 기획기사에서 조력사망을 지지하고 그것을 시행하는 입장에서 인터뷰를 한 인물이기도 하다.  기획기사는 나의 인터뷰도 포함되어 있다. 나를 포함한 대부분의 암 전문의 및 호스피스 의사들은 최근 법안 발의가 된 "조력존엄사"에 대해 상당히 비판적인 입장이다. 우리 사회에서 죽음에 대한 논의가 구체성이 결여된 채 질병과 노년의 삶에 대한 공포에 이를 회피하려는 수단으로 여겨지고 있다고 보고 있는 것이다. 사실 책을 읽은 지금도 그 생각에는 큰 변화는 없다. 질병을 가지고 살아도, 나이가 들어도, 누군가 나를 돌봐줄 수 있고 내가 그 돌봄을 받을 권리가 있다는 생각을 할 수 있는 사회라면 소위 '안락사'가 그렇게 많은 이들의 지지를 받지는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런 이유에서 이 이슈는 ‘논쟁’이라기보다는 ‘현상’에 가깝다고 보인다. 삶의 고통과 팍팍함을 나타내는 현상. 


물론 나 역시 이 사회를 살아가는 한 사람이기 때문에 그런 생각에서 자유롭지 않다. 얼마전 읽은 두 권의 책 <각자도사사회>와 <그렇게 죽지 않는다>에서 그려진 요양원의 치매노인들의 모습에 나는 그렇게 죽고 싶지는 않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암으로 인한 사망은 대체로 수일-수주 정도의 기간에 걸쳐 급격히 악화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나는 그런 경우 웬만해선 조력사망을 택하지는 않을 것 같다. 정말 고통스럽다면 완화적 진정 (palliative sedation)이라는 방법도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물론 책에 나온 한 말기암 환자는 이것도 거부하고 조력사망을 택한다). 그러나 언제 끝날지 기약없는 고통이 기다리고 있다면, 그리고 더 이상 나였던 사람이 아닌 미래가 기다리고 있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여기에도 수많은 불확실성이 있을 것이고 고통의 모습도 모두 다 다른 얼굴을 하고 있을 것이겠지만, 끝까지 살아낼 자신이 있다고 말하기에 인생의 고통은 너무나 예측하기가 어려운 것이다.

아무튼 죽음의 구체성을 접하지 않은 채 죽음에 대해 논의하는 것만큼이나, 조력사망의 구체성을 접하지 않은 채 조력사망에 반대하는 것 역시 공허한 일임에는 분명하다. 그런 마음에서 책을 읽기 시작했다.


처음엔 저자가 산부인과 의사 (정확히는 아마도 산과 영역의 일을 주로 하는 가정의학과 의사인 것 같다)라는 것은 의외였다. 왜 죽음을 접해보지도 않은 사람이 이 일을 시작하였나? 첫 조력사망을 준비하고 시행하는 장면에서의 '50대 이상의 환자를 보살핀 적이 없었다'는 이야기, 간간히 보이는 그의 당황스러움과 서투름의 고백에는 사실 조금 짜증이 나기까지 했다. 임종과정의 돌봄은 의료인에게도 상당히 힘들고 지난한 과정이다. 그래도 여러 번 겪다보면 그 과정에 대해 어느 정도 이해하게 되고 가족들을 잘 안심시키고 죽음을 맞이하도록 돕는 데 어느 정도의 노련함을 갖추게 된다. 그런데 그런 경력이 없는 의료인이 왜 이 일을 시작했을까? 그 배경은 저자가 첫 조력사망 장면 이후에 털어놓는 자신의 죽음과 개인의 권리에 대한 가치관에 대한 이야기에서 납득이 갔다. 네덜란드의 학회에 참석해서 보인 열정은 존경스럽기도 했고, 탄생이라는 일생일대의 사건을 주로 담당해온 경력이 오히려 결국은 도움이 되었다는 이야기도 흥미롭다. 인생은 결국 수미쌍관인 것일까.

무엇보다 아무도 해보지 않았던 일, 누군가를 죽음으로 이끈다는 것 자체가 엄청난 도전이라는 점을 조력사망사례의 구체적인 장면들을 보며 깨닫게 된다. 의료행위는 “루틴”과 “프로토콜”에 의해 누군가의 몸에 손을 댄다는 망설임과 두려움을 극복해가며 익히는 과정인데, 이건 그게 아니지 않은가. 물론 나중에 알고보면 그녀도 구체적인 약의 조합이나 투여 절차, 환자와 가족들에게 설명하는 내용 등등을 어느 정도는 학회에서 배워와서 하는 것임을 짐작하게는 되지만, 서로 다른 사례마다 부딛치게 되는 윤리적 고민과 예기치 못한 상황, 환자의 죽음 뒤에 밀려오는 복잡한 감정의 묘사를 읽다보면 정말 쉽지 않은 일임을 짐작케한다. 더군다나 캐나다에서의 조력사망법이 시행된 직후 비용청구코드 없이 이 일을 시작했다고 하니 실은 당황스럽기까지 했다. 캐나다에선 일단 의료행위를 하면 코드가 만들어져 이후 청구가 가능하다는 믿음(!)이 있는 것일까? 우리같으면 건강보험에 명시된 코드로 (급여가 되던 안되던 간에) 정의되지 않은 의료행위를 하는 것은 보상을 받으리란 보장이 없을 뿐만 아니라 불법이기까지 하다. 의사도 건강보험을 믿지 않고 건강보험도 의사를 믿지 않으니까. 캐나다에서의 의사와 보건당국간에는 좀더 신뢰가 존재하는 듯 보이긴 하지만 어쨌든 그것을 감안하더라도 MAiD가 정말 필요한 환자들이 있고 그들에게 도움을 주는 것이라는 신념이 없다면 할 수 없는 도전적이고 선도적인 시도임엔 분명하다. 실제 우리나라에 조력사망이 입법이 된다고 해도 이런 과감한 선구자들, 운동가의 면모를 띤 의사들이 기꺼이 그 부담을 받아안지 않는다면 실행이 되기는 쉽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법과 사회에 대한 신뢰, 개인의 권리에 대한 단호한 수호 의지는 저자가 부딛치는 어려운 상황 속에서 신념에 따라 일을 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기도 한다. 이것이 우리나라에서와 다른 점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종교적 이유로  MAiD에 반대하며 경찰을 부르겠다고 협박하는 환자의 조카 부부에게 차분히 맞서며 환자의 권리를 옹호하는 용기는 솔직히 나 같으면 낼 수 없다. 환자 본인이 써 놓은 연명의료결정서의 내용에 의료진이 따르려고 해도 가족들이 반대하며 환자를 중환자실에 보낼 것을 고집하면 사실 현장의 의사로서는 무력해지는 것이 보통이다. 법보다 사적인 원망 또는 위협이 더 무서운 것이 우리 사회다. 법에 따른 냉철한 판단보다 '환자는 약자, 생명은 소중한 것'이라는 통상적인 믿음과 직관 또는 여론재판이 더 중요한 기준이 되는 사회에서 원칙에 따라 행동하고자 하는 용기를 내기는 어렵다. 


저자가 환자들이 조력사망을 원하는 이유가 신체적 고통보다는 주로 자율성과 의미의 상실이라고 말하는 부분은 사실 처음엔 의외였다. 그건 내가 신체적 고통을 줄여주는 것에 주로 초점을 맞추는 내과의사여서 그렇게 느꼈는지도 모르겠다. 통증은 차라리 마약성진통제로 다스릴 순 있지만 호흡곤란, 부종 등의 증상은 좀처럼 환자가 편해지는 수준으로의 조절은 어려워서 늘 애를 먹곤 한다. 호스피스 의료기관에서  MAiD를 진행하게 되는 말기암환자인 레이의 암성 상처 (malignant wound)도 조절이 좀처럼 어렵고 자존감을 크게 떨어뜨리는 증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보다 나의 존재가치를 찾기 어렵다는 실존의 문제가 조력사망을 원하는 이유라니, 그것이야말로 정신건강의학과, 성직자, 자원봉사자들이 협업하는 호스피스 진료로 풀어나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책에 등장하는 환자들은 충분한 호스피스 진료를 받으면서도 해결되지 않는 고통이 있었고 결국 저자의 도움을 필요로 했다. 우리는 이런 상황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많은 이들이 호스피스는 죽으러 가는 곳이라는 부정적인 인식때문에 진료를 거부하기도 하고, 너무 늦게 호스피스에 의뢰되어 기다리다가 사망하기도 하며, 본인의 상황에 맞춘 (집에서의 거리  또는 가정호스피스 제공 여부) 호스피스 서비스를 찾지 못하는 경우도 허다한 우리 실정에서 '할 수 있는 것은 다 해봤지만 그래도 죽음을 원하는' 결론에 다다르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반대로 '할 수 있는게 없어서 죽음을 원하는' 상황이 되지 않을지, 고통에 대한 해답으로 너무 쉽게 주어지는 선택지가 되지 않을지가 걱정이다. 


이 책은 최근 의대생들에게 호스피스 완화의료에 대한 토론 수업을 준비하면서 읽기 시작했는데 다 읽기 전 수업을 하고 그 이후에 후반부를 읽었다. 다 읽고 나서 수업을 했더라면 좋았겠다는 아쉬움이 들었다. 본과1학년 학생들에게 조력 사망에 대한 의견을 물어보았는데 이것이 꼭 필요하다는 의견을 제시하는 이들이 대부분이었고, 여기까지는 일반인의 인식과 비슷하므로 놀랍지는 않았다. 그런데 문제는 조력사망을 개인의 권리를 수호한다는 측면이 아니라 내가 우려하였듯이 고통을 줄여주는 수단으로서만 바라보고 있는 학생들이 일부 있다는 것이었다. 본인의 동의가 없어도 식물인간이나 치매 환자에서도 조력사망을 고려할 수 있다며 너무 멀리 나가버리는 학생들을 보며 좀더 단호하게 말하지 못한 것이 좀 후회가 된다. 자기결정권의 존중이 MAiD를 비롯한 서구 여러 국가에서의 조력사망허용의 가장 중요한 조건이자 이유였다는 것에 대한 이해가 없다면 너무 위험한 결론에 도달할 수가 있는 것이다. 실제 병원에서도 모든 것이 빨리빨리, 대충대충 진행되며 연명의료계획서조차도 종종 의료진과 가족들의 면책수단으로 변질되어버리곤 하는 (실제 책 <그렇게 죽지않는다> 에는 연명의료계획서를 썼다는 이유로 가벼운 질병에도 병원으로 모셔가기를 거부하는 요양원 환자의 가족들이 나온다) 우리 상황에서 개인의 권리에 대한 존중은 너무 쉽게 잊혀지곤 하는 가치가 된다. 책의 영문부제가 'Empowering Patients at the End of Life'라는 데서 볼 수 있듯 생애 말기에 있는 환자에게 자율권과 결정권을 주는 것이 조력사망의 가장 중요한 이유임을 이해한다면 조력사망에 대한 찬반이 반드시 대립되는 가치관의 충돌로만 볼 수는 없을 것 같다. 

나는 죽음을 돕는 의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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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증정] 작가와 작가가 함께 등판하는 조영주 신작 <마지막 방화> 리디셀렉트로 함께 읽기[책 증정] 텍스티와 함께 『편지 가게 글월』 함께 읽어요![책 증정] <고전 스캔들> 읽고 나누는 Beyond Bookclub 5기 [책증정] 페미니즘의 창시자, 프랑켄슈타인의 창조자 《메리와 메리》 함께 읽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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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북구립도서관] 2024년 성북구 비문학 한 책을 추천해주세요. (~5/12)
세계적 사상가 조너선 하이트의 책, 지금 함께 읽을 사람 모집 중!
[책걸상 '벽돌 책' 함께 읽기] #05. <나쁜 교육>[그믐북클럽Xsam] 15. <바른 마음> 읽고 답해요
이 계절 그리고 지난 계절에 주목할 만한 장편소설 with 6인의 평론가들
다음 세대에도 읽힐 작품을 찾는 [이 계절의 소설] 네 번째 계절 #1다음 세대에도 읽힐 작품을 찾는 [이 계절의 소설] 세 번째 계절 #1다음 세대에도 읽힐 작품을 찾는 [이 계절의 소설] 세 번째 계절 #2
직장인이세요? 길 잃은 직장인을 위한 책들 여기 있어요.
[김영사/책증정] 천만 직장인의 멘토 신수정의 <커넥팅> 함께 읽어요![김영사/책증정] 《직장인에서 직업인으로》 편집자와 함께 읽기[직장인토크] 완생 향해 가는 직장인분들 우리 미생 얘기해요! | 우수참여자 미생 대본집🎈[생각의힘] 어렵지 않아요! 마케터와 함께 읽기 《커리어 그리고 가정》
어서 오세요. 연극 보고 이야기하는 모임은 처음이시죠?
[그믐연뮤클럽의 서막 & 도박사 번외편]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 이반과 스메르자코프"[그믐밤] 10. 도박사 3탄, 까라마조프 씨네 형제들@수북강녕
💌 여러분의 마지막 편지는 언제인가요?
[책 증정] 텍스티와 함께 『편지 가게 글월』 함께 읽어요![그믐밤] 6. 편지 읽고, 편지 쓰는 밤 @무슨서점[이 편지는 제주도로 가는데, 저는 못가는군요](안온북스, 2022) 읽기 모임
🍵 따스한 녹차처럼 깊이 있는 독후감
종의 기원(동서문화사)브로카의 뇌도킨스, 내 인생의 책들코스믹 컨넥션
딱 하루, 24시간만 열리는 모임
[온라인 번개] ‘책의 날’이 4월 23일인 이유! 이 사람들 이야기해 봐요![온라인 번개] 2회 도서관의 날 기념 도서관 수다
🌸 봄에 어울리는 화사한 표지의 책 3
[책증정/굿즈] 소설 《화석을 사냥하는 여자들》을 마케터와 함께 읽어요![책 증정] 블라섬 셰어하우스 같이 읽어 주세요최하나 작가와 <반짝반짝 샛별야학>을 함께 읽어요.
<이 별이 마음에 들어>김하율 작가가 신작으로 돌아왔어요.
[책증정 ]『어쩌다 노산』 그믐 북클럽(w/ 마케터)[그믐북클럽] 11. <이 별이 마음에 들어> 읽고 상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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