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임
블로그
글 쓰기
19. 부데요비츠키 부드바르와 도서관 탐방

HJ와 함께 이웃 동네의 구립도서관에 갔다. 걸어서 편도 40분이 넘게 걸리는 거리다. 우리는 그 구(區)에 살지도 않는다. 집에서 그보다 더 가까운 거리에 있는 도서관이 두 곳 있는데도 이곳에 가보기로 한 이유는, 가는 길이 무척 편하고 주변 경치가 아름답기 때문이다. 적어도 지도상으로는 그래 보였다.

공원 안에 있는 보행 전용로를 따라 자동차 걱정 없이 나무와 개천을 바라보며 갈 수 있다. 3킬로미터 가까이 걸어야 하지만 집에서 도서관까지 신호등이 있는 교차로는 두 번만 지나면 된다. 자전거를 타고 가기에도 좋다. 주변에 분위기 좋은 카페와 식당도 많다.

여기를 우리가 주로 이용하는 도서관으로 삼을까? HJ가 제안했고 가는 길이 정말 괜찮을지, 왕복 한 시간 반을 산책하는 일이 부담스럽지는 않을지 직접 가보면서 알아보기로 했다. 마침 날씨가 포근한 토요일이었다.

아침에 헬스장에 가서 달리기를 하고 돌아온 뒤 곧장 집을 나섰다. 책을 빌리게 될지 아닐지 몰랐지만 일단 가방은 챙겼다. 점심은 걷다가 내키는 곳에서 먹기로 했다. HJ는 우리가 가려는 구립도서관 주변에 유명한 우동 소바 전문점과 청국장 가게가 있다고 했다.

공기는 온화함을 넘어서 약간 덥게 느껴질 지경이었다. 나는 점퍼를 벗어서 가방과 등 사이에 끼워 넣었다. 설렁설렁 산책로를 걷고 있는데 웬 동상이 하나 나왔다. 18세기 유럽 복장과 헤어스타일을 한 남자가 책을 들고 앉아 있는 모습이었다. 가까이 가 보니 칸트라고 적혀 있었다. 양 옆에 칸트의 명언이라는 글귀가 새겨진 금속판도 있었다.

그 중 하나에 적힌 문구는 이랬다. ‘행복의 원칙은 첫째, 어떤 일을 할 것, 둘째, 어떤 사람을 사랑할 것, 셋째, 어떤 일에 희망을 가질 것이다.’ HJ는 그 말이 너무 마음에 든다고 했다. 나는 행복해지려면 그것만으로는 부족하고 건강과 돈도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나저나 칸트가 정말 저런 말을 했을까? HJ도 나도 고개를 갸웃했다. 『순수이성비판』이나 『실천이성비판』 중간에 들어가 있기에는 꽤 뜬금없는 말 아닌가?

“일을 하고 사람을 사랑하고 희망을 가져도 치질이 너무 심하면 행복할 수 없다고” 같은 말을 하며 설렁설렁 걷는 사이 도서관에 도착했다. ‘어라, 벌써?’ 하는 정도의 거리감이었다. 도서관 앞마당에는 여러 가지 모양의 의자와 테이블이 놓여 있었는데, 날이 풀리면 거기서 차나 맥주를 마시며 책을 읽는 것도 좋을 것 같았다.

건물 정문에는 우주선 도킹 시스템마냥 한 사람씩 들어가 체온을 측정하고 온 몸에 소독약을 뿌려야 하는 작은 밀폐 구역이 있었다. 그곳을 지나 도서관 현관에 들어서면 책상이 있고 거기서 개인정보를 담은 QR 코드를 찍거나 사는 동네와 전화번호를 적어야 했다. 책상 너머에 사서가 한 사람 앉아 있었다.

나부터 밀폐 구역을 통과해 로비에 들어섰는데 자리에 앉아 있던 사서가 나를 보자마자 “혹시 장강명 작가님 아니세요?” 하고 물었다. 내가 유명한 사람도 아니고, 비니와 마스크를 쓰고 있었는데 어떻게 눈만 보고 사람을 알아볼 수 있지 하고 신기한 마음이 들었다. 놀라긴 했지만 그렇게 나를 알아보고 반겨주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이 반갑기도 했다.

사서가 도서관을 안내해주겠다고 제안했지만 사양하고 HJ와 둘이서 건물을 구경했다. 유능한 건축가가 신경 써서 지은 건물 같았다. 구조가 독특했고, 코로나19 바이러스 사태 때문에 사용할 수는 없었지만 열람실이나 카페, 야외 테라스가 정말 근사했다. 2, 3층 바깥은 바닥부터 천장까지 HJ가 좋아하는 통유리창으로 되어 있어 개방감이 뛰어났다. 어린이 책들이 있는 서가에는 아이들이 신을 벗고 들어가 뛰어놀 수 있는 메자닌 구역도 있었다.

“태어나서 가 본 도서관 중에 제일 예뻐” 하고 HJ가 말했고 나도 동감이었다. 강연을 하느라 전국 여러 도서관을 다녔지만 이곳이 최고였다. 장서가 많은 것 같지는 않았지만 서가가 널찍하고 재미있게 배치되어 있었다. 책장 곳곳에 도서를 검색할 수 있는 터치스크린이 걸려 있었다.

모든 곳이 너무 깨끗하고 새 것 느낌이 났다. “이 도서관은 새로 지은 거야?” 내가 묻자 HJ는 “아닐 텐데, 지금 우리가 사는 집으로 이사 왔을 때에도 분명히 이 건물이 있었거든” 하며 고개를 갸웃했다. 나중에 집에 와서 확인해보니 이 도서관은 우리가 이 동네로 이사 온 바로 그 달에 문을 열었다. 개관한 지 이제 겨우 15개월째였다.

도서관에서는 책을 세 권 빌렸다. HJ는 미국 주식 투자에 대한 책을 빌렸다. 그녀는 “소설가의 아내가 빌리는 책이 주식 투자 서적”이라며 겸연쩍게 웃었다. 소설가인 내가 빌린 책 중 한 권은 모든 페이지마다 그림과 말풍선이 있는 어린이용 콩트집이었다. 제목은 『5초 후 의외의 결말 1』이었다.

유명하다는 소바 전문점 앞에는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서 있었다. 우리는 도서관 옆의 커피점에 들어가 앉아 쉬면서 그 책들을 읽었다. 이곳 역시 벽 전체가 HJ가 좋아하는 통유리였다. 내부 인테리어나 나오는 음악도 고급스러웠고 커피 맛도 수준급이었다.

옆 자리 손님이 데려 온 개가 너무 귀여워서 나는 계속해서 곁눈질을 했다. 심지어 밖에서 지나가던 행인들조차 지나가다 걸음을 멈추고 카페 안의 개를 쳐다보았다. 그러면 주인은 친절하게 개에게 인사를 시켰다. 개는 그런 일에 무관심해 보였지만.

한 시간 남짓 커피를 마시며 『5초 후 의외의 결말 1』을 다 읽었다. 재미있었고 은근히 시니컬했다. HJ도 주식 투자 서적을 다 읽었다고 했다. 도서관에 가서 그 두 권을 바로 반납했다. 도서관 정문 옆에 수시로 책을 반납할 수 있는 무인 반납기가 설치돼 있었는데, 그런 설계도 마음에 들었다.

소바 전문점 앞에는 여전히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었다. 심지어 브레이크 타임이었는데도. 도대체 얼마나 맛있는 가게인 걸까? 조금 떨어진 청국장 가게에 찾아갔는데, 토요일에는 영업을 하지 않는 모양이었다. 길가에 양과 대창이 전문이라는 고깃집 간판을 보고 들어가 양밥 2인분을 주문했다. 맛은 그저 그랬다.

집에 돌아와서 HJ는 샌드위치와 스콘을 먹었고, 나는 냉동만두를 네 점 전자레인지로 데워서 먹었다. HJ가 공포 영화를 한 편 같이 보자고 했다. 주변 사람 여럿에게서 추천을 받았는데, 혼자 보기 무섭다면서. 나는 제목을 처음 듣는 영화였다.

빔 프로젝터를 설치하고 영화를 틀었다. 줄거리를 전혀 모르고 봤는데 의외로 불쾌한 고어 장면도 없고 관객을 깜짝 놀라게 하지도 않으면서 생각할 거리를 던지는 준수한 작품이었다. 그래도 HJ는 영화를 보다가 중간에 한번 크게 비명을 질렀다.

일요일 낮에는 HJ와 세 시간 가까이 인터넷 지도를 들여다보았다. 우리가 사는 아파트의 전세 가격도 1년 새 미친 듯이 올랐다. HJ의 회사와 가까운 주거지를 찾다가 오게 된 동네인데, 이제 주변 아파트 중에 우리가 전세로 들어갈 수 있는 집은 거의 없다. 임대차보호법 덕분에 올해 말 재계약은 넘긴다 하더라도 2년 뒤에는 어찌될지 모른다. 그때까지 서울 아파트 가격이 이 수준으로 오른다면 쫓겨나든지, 월세를 살아야 한다.

서울 각 지역 아파트 매매가와 전세가를 비교해 보기도 하고, 우리 동네의 괜찮은 오피스텔을 검색해 보기도 했다. 그래도 뾰족한 해결책은 안 나왔다. 사실 HJ가 최근 몇 달간 혼자 몇 번이나 한 일이었다. 그녀는 마포나 신도림에 살 때 대출을 받아 집을 구매할 생각을 하지 못한 게 뼈저리게 후회된다고 했다.

“이제 노동으로 부자가 되기는 틀린 시대인 거 같아.”

HJ가 말했다. 정곡을 찌르는 말이었다. 그게 사람들, 특히 젊은이들의 사고방식에도 분명히 심오한 영향을 끼치리라 생각했다. 저녁에 그녀는 친정에 갔다. 다음날 오전에 반차를 내고 장모님과 함께 친정에서 쓰는 청소기를 수리점에 맡기러 간다고 했다.

차도 없고 아이도 없고 수입도 건강한 우리가 이 모양인데 요즘 청년들은 얼마나 좌절감이 심할까. 그래서 비트코인을 사나. 그런 이야기를 하며 HJ를 지하철역까지 바래다주었다. 15년 전에 우리가 얼마나 궁핍했던가, 그때는 여차하면 고시원에서 살 각오도 했는데 이제 그런 걱정은 안 하잖나, 그런 얘기도 했다.

지하철역에서 HJ를 보낸 뒤 나는 헬스장으로 갔다. 저녁 풍경을 즐기고 싶어 일부러 길을 돌아 공원을 통과해서 갔다. 전셋값 상승분을 마련하지 못하면 멀어질지도 모르는 풍경이었다. 그때는 예쁜 구립도서관과도 멀어지겠지. ‘집과 직장의 거리가 가까워야 한다’든가 ‘주택 임대료를 걱정하지 말아야 한다’도 행복의 조건에 포함돼야 할 것 같은데.

운동을 하고 집에 돌아와 혼자 블루스를 들으며 부데요비츠키 부드바르를 마셨다. 안주 없이 마셨다. 버드와이저의 모태라고도 하고, 버드와이저와 상표권 분쟁으로도 유명한 체코의 필스너 맥주다. 회사가 있는 체코의 소도시 이름이 체스케부데요비체인데, 부데요비체를 독일어로 하면 부드바이스, 이를 영어로 읽으면 버드와이저가 된다.

맛이 과연 얼마나 다른가 문득 궁금해져서 버드와이저도 한 캔 땄다. 확연히 다른 맛이었다. 눈 감고 마셔도 구분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버드와이저는 구수한 맛이 났다.

 

체스케부데요비체

가 보지도 않았는데 좋아하는 동네

거기도 집값 비싸려나

 

270. 어디서 살 것인가 (유현준)

건축가에게는 도시가 커다란 책과 같겠구나 싶다. 한국 학교 디자인, 초고층 빌딩, 상가 교회에 대한 분석도 신선하고, 서울숲과 로데오거리를 잇는 보행교는 진심으로 생기면 좋겠다. 11장 ‘포켓몬고와 도시의 미래’에 나온 여러 가지 아이디어들도 흥미로웠다. ‘건축 리모델링은 재즈와 같다’는 문장에 밑줄.


어디서 살 것인가 - 우리가 살고 싶은 곳의 기준을 바꾸다
어디서 살 것인가 - 우리가 살고 싶은 곳의 기준을 바꾸다
269. 도시는 무엇으로 사는가 (유현준)

유현준 교수의 책을 좋아한다. 크고 작은 공간이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 삶에 이렇게 깊이 영향을 미치고 있었구나 하고 놀란다. 건축이나 공간에 관한 게 아닌 내용도 다 재미있게 잘 쓰신다. 골목이 많은 거리는 ‘이벤트 밀도’가 높고, 그만큼 보행자는 다양한 가능성과 주도권을 누리게 된다는 이야기가 흥미롭다. 한국인의 주거 환경이 바뀐 만큼 부엌을 창가로 옮겨야 한다거나 아파트 동과 동 사이를 띄우는 건축 규제를 손봐서 발코니가 많이 들어서게 해야 한다는 주장에도 끄덕끄덕.


도시는 무엇으로 사는가 - 도시를 보는 열다섯 가지 인문적 시선
도시는 무엇으로 사는가 - 도시를 보는 열다섯 가지 인문적 시선
<자기앞의 생>

자본주의를 넘어 돈이 지배하는 황금만능주의적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에게, 몇십년전 프랑스에서 펼쳐진 모모와 로자 아줌마가 살아낸  삶은, 돈과 지위 보다 순수하고 따뜻한 마음이 훨씬 더 필요하고도 소중하다는 당연한 진실을 퍼뜩 다시 깨닫게 한다.


그들의 삶이 때론 처참하고 비루하기도 했지만, 그 고된 삶속에서 서로를 위하는 진정한 마음으로 살아갈 때 생이 한없이 숭고해진다는 것을 느낀다.


우리와는 다른 문화, 다른 환경, 다른 시대를 배경으로 한 이야기이기에 이질감이 없지 않지만, 이성과 감정을 가진 기쁨과 슬픔을 느끼는 인간이라는 동일한 생명체로서, 그들의 인간적인 삶에 진심으로 존경을 표한다.


에밀 아자르의 삶에 대한 깊은 고뇌와 다양한 경험으로부터 우러났을, 웃기지만 웃을 수 없는 슬프고도 해학적인 장면들과 삶의 지혜를 간직한 표현들은, 읽음을 잠깐잠깐 멈추게 하고 삶을 돌아보게 하는 울림이 있다.


본인 강아지를 팔아 번 거액을 하수구에 버린 사건으로 로자 아줌마가 모모가 정신적으로 이상하다며 카츠 선생님에게데려갔을 때 오히려 아줌마에게 신경안정제를 처방한 의사의 모습에서, 지금 이시대의 어른들이 어린아이에 비해 오염되고 비인간적인 삶으로 인해 정신적으로 불안정한 것이 아닐까하는 자기반성을 하게 된다.


고통을 함께 나눠 가질수 있으니 또 지금 결혼하면 서로 미워할 시간도 없으니 로자 아줌마와 하밀 할아버지의 결혼을 바라는 모모의 순수한 결혼관에서는 우리가 결혼을 통해 얼마나 많은 것을 원하는지 그 큰 욕심을 들여다 보게 된다.


큰 죄를 짓고 남남으로 떨어져 살아온 기간마저도 아이가 본인이 가진 종교를 가졌어야만 한다고 생각하는 모모 아빠의 종교적 집착을 보면서 또 그로 인해 정신적 육체적으로 고통에 빠지는 장면에서 과연 인간에게 종교란 무엇인가 라는 고민을 하게한다.


로자 아줌마가 많이 아파 힘들어할 때 집밖을 뛰쳐나가 상상속의 힘센 경찰을 불러내는 모모의 모습에서,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현실적인 노력이 우선이겠지만 때론 현실을 벗어나 이상을 꿈꾸는 상상의 나래가 도움이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힘든 환경에서 삶의 깊은 애환을 느끼면서 고되게 살아가지만 인간적으로 서로를 위하며 살아가는 그들을 보면서, 마음 한 구석이 아려오는 깊은 슬픔과 절망이 느껴지기도 하지만 한편으로 오히려 그들이 있기에 이 세상은 살아갈만한 곳이 아닐까 생각한다.


자기 앞의 생
자기 앞의 생
조지 오웰과 증오의 시대

증오, 증오의 시대다. 온 세상에 타인에 대한 증오가 흘러 넘치고 있다. 여기서는 저들의 잘못된 선택이 정치권력의 상실을 가져왔다고 하고 저기서는 사회적인 신분을 획득하지 못한 이들이 그 대상을 사물화시키며 물욕을 드러내고있다. 흥미로운 점은 저들이 말하는 증오의 대상이 언제나 애매모호하다는 점이다. 항상 『그들』이라고 언급되는 존재의 오류로 인하여 자신들이 고통당하고 있다고만 말하고 있을 뿐이다. 아마 그들이 누구인지는 아마 자신들도 모르는 듯했다.


현재에 대한 안정, 사회에 대한 신뢰, 미래에 대한 비전이 모두 결여된 이 세상에서 가장 활발하게 진행되는 놀이는 징벌이다. 특정한 오류를 공개적으로 반박하면서 타인을 깔아뭉개는 행위는 자신이 올바른 행위를 한다는 느낌을 주게한다는 점에서 수지맞는 장사이다. 지불하는 대가는 없을뿐더러, 다수가 즐거워하는 놀이를 왜 그만둬야한단 말인가?


이런 놀이야 이 세상에서 하루에도 여러 번씩 언급되지만 특히나 자꾸 맴도는 글이 하나 있다. 얼마 전 인터넷에서 '조지 오웰의 소설은 우익 자유주의적 프로파간다'라는 글이 작성되었다. 물론 조지 오웰에 대하여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 글이 오류가 있다는 사실 정도야 쉽게 알아챌 수 있다. 그리하여 명예로운 오웰의 지지자들이 결연히 일어나 해당 포스트에 잔인한 폭격을 가했다.


반박의 요지는 간단했다. 오웰의 글은 프로파간다가 아니라고 당당히 선언하는 것이다. 물론 조지 오웰이 사회주의자였음을 지적하는 글도 있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옵션이었을뿐 대부분의 사람들은 조지 오웰의 소설이 '고전'이지, 괴벨스나 즈다노프와 같은 존재는 아니었다고 주장했다.


『그들』에게 조지 오웰이 "동물농장은 정치적 글쓰기와 예술을 결합한 최초의 시도였다."라거나 "이 시대에 정치적이지 않은 글을 쓴다는 것은 허튼 소리다."라고 발언한 것은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이 글을 읽고 빅 브라더(오웰의 키는 180cm를 훌쩍 넘겼다.)를 공격하는 오브라이언을 2분동안 증오하는 것이다. 그리고 2분이 지나면 어슬렁거리면서 사라지는 것이다. 그 동안 풍요부의 배급량 감소, 애정부의 통제 강화, 평화부의 전쟁 준비에 대한 부조리는 어떠한 방해도 받지 않은 채 자신들의 할 일을 열심히 한다.


여기까지 작성하니 나도 어느새 증오의 놀이에 합류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다만 한가지 첨언하고싶은 것이 있는데 오류를 지적하는 것은 생각보다 생산적인 활동이 아니라는 것이다. 생산적인 활동을 하라는 뜻이 아니다. 오류를 지적하는 행위가 말초적인 감정의 응어리를 해소하는 욕구의 충족을 넘어서는 이상인 경우가 드물다고 말하고 싶을 뿐이다. 그런데 세상 사람들은 그러한 감정의 표출이 마치 정당한 행위고 의미를 가진다고 착각하는 경우가 너무 많다. 실제로는 그 공간에 존재하는 사람들에게 순간적으로 회람될 뿐인데도 말이다. 그러한 행위에서 증오란 현실의 부조리에 도전하지 못하는 비겁한 사람들이 그 문제점을 어느 순간 선언된 '약자'를 공격하는 것으로 해소시키려는 미완의 행위에 지나지 않는다.


물론 분노가 항상 부정적인 감정이라고 할 수는 없다. 분노가 없었다면 조지 오웰이 '카탈루냐 찬가'를 쓸 생각이나 했겠는가. 하지만 조지 오웰은 자신이 원하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의용군으로 참전했을 정도로 지조있던 사람이었다. 허나 오늘날에는 용기는 커녕 자신의 얼굴과 이름도 드러내지 않은채 인터넷에서만 숨어 누군가를 찌르기만을 원하는 기회주의자들만이 넘치는 판국이다. 이런 세상에서 오웰이 만약 살아있다면 그는 필경 '자신의 지지자'들을 더욱 증오했으리라.


1984
1984
268. 만세전 (염상섭)

만세전(萬歲傳)이 아니라 만세전(萬歲前). 조선에 만세가 일어나기 1년 전인 1918년이 배경이다. 나약하고 감상적이면서 차가운 주인공 이인화는 놀랍도록 현대적인 인물이어서 낯설지가 않다. 그 주인공의 무기력함을 한심하다고 욕하기에는 주변 풍경이 아주 징글징글하게 암담하다. 그렇다 해도 아내에 대한 주인공의 태도는 이해가 안 가고. 냉담한 수준을 넘어 사람이 이래도 되나 싶은 정도다.


만세전 - 염상섭 중편선
만세전 - 염상섭 중편선
267.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조세희)

28년 만에 다시 읽었고, 28년 전보다 더 슬펐다. 이번에도 28년 전과 마찬가지로 문학과지성사에서 나온 책으로 읽었다. 28년 전보다 더 좋았다. 28년 전에 이상하게 여긴 부분은 이상하지 않았다. 오히려 해설이 낯설게 느껴졌다. 하지만 이 작품이 써진 시절과 지금의 한국 사회가 달라진 게 없다는 식의 관성적인 독법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분명히 달라졌다. 나아진 부분이 있고 악화된 면도 있다. 그 다른 점, 우리 시대의 특징을 찾아야 한다. ‘값싼 기계 취급을 받았어, 인간이’라는 문장에 눈이 오래 머물렀다.

‘쇠망치를 든 사나이들은 다음 집으로 건너가기 전에 꼽추네 식구들을 말없이 바라보았다. 아무도 덤벼들지 않았고, 아무도 울지 않았다. 이것이 그들에게 무서움을 주었다.’

‘사람들은 집단 행동에 대해서는 책임을 지지 않아도 되는 것으로 믿고 있었다.’

‘내가 무서워하는 것은 자네의 마음야.’

‘우리의 생활은 전쟁과 같았다. 우리는 그 전쟁에서 날마다 지기만 했다.’

‘그들 옆엔 법이 있다.’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그믐밤] 4.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다시 읽기 @국자와주걱

2022년 11월 22일(음력 10월 29일) 19시 29분에 '국자와주걱'에서 1시간 29분 동안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참석해 주신 분들 모두 감사합니다.


그믐밤 4회 이야기는 아래에 있습니다.

[그믐밤] 4.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다시 읽기 @국자와주걱

북저널리즘에 소개된 그믐 이야기

북저널리즘에 그믐의 이야기가 소개되었습니다.


숏폼의 시대, 긴 사유를 따라서

266. 올드독의 맛있는 제주일기 (정우열)

HJ와 한 달간 제주 여행을 하다 묵은 게스트하우스에서 발견하고 함께 읽은 책. 음식도 맛깔나게 소개하지만 함께 곁들이는 제주 생활 이야기도 재미있다. 정우열 작가를 좋아한다. 이후에 이 책에 나온 음식들을 찾아 읽었는데 덕분에 각재깃국과 빙떡을 알게 됐다. 우리 부부가 엄지손가락을 들어 올리며 감탄한 제주 요리는 몸국.

올드독의 맛있는 제주일기
올드독의 맛있는 제주일기
123456789101112131415161718192021222324252627282930313233343536373839404142434445464748495051525354555657585960616263646566676869707172737475767778798081828384858687888990919293949596979899100101102103104105106107108109110111112113114115116117118119120121122123124125126127128129130131132133134135136137138139140141142143144145146147148149150151152153154155156157158159160161162163164165166167168169170171172173174175176177178179180181182183184185186187188189190191192193194195196197198199200201202203204205206207208209210211212213214215216217218219220221222223224225226227228229230231232233234235236237238239240241242243244245246247248249250251252253254255256257258259260261262263264265266267268269270271272273274275276277278279280281282283284285286287288289290291292293294295296297298299300301302303304305306307308309310311312313314315316317318319320321322323324325326327328329330331332333334335336337338339340341342343344345346347348349350351352353354355356357358359360361362363364365366367368369370
[책 나눔 이벤트] 지금 모집중!
[김영사/책증정] 한 편의 소설과도 같은 <닥터프렌즈의 오마이갓 세계사> 함께 읽어요:)[📕수북탐독] 1. 속도의 안내자⭐수림문학상 수상작 함께 읽어요[책 증정] [박소해의 장르살롱] 15. 경계 없는 작가 무경의 세 가지 경계 [책증정] [꿈꾸는 책들의 특급변소] 김호연 작가의 <나의 돈키호테>를 함께 읽어요 [북토크/책 증정]경제경영도서 <소비 본능>같이 읽어요!
💡독서모임에 관심있는 출판사들을 위한 안내
출판사 협업 문의 관련 안내
그믐 새내기를 위한 가이드
그믐에 처음 오셨나요?[그믐레터]로 그믐 소식 받으세요중간 참여할 수 있어요!
🎬 독립 영화 보고 이야기해요.
[인디온감] 독립영화 함께 감상하기 #1. 도시와 고독[그믐무비클럽] 5. 디어 라이프 with 서울독립영화제
[꿈꾸는 책들의 특급변소] 조영주 작가가 고른 재미있는 한국 소설들
[책증정] [꿈꾸는 책들의 특급변소] 김호연 작가의 <나의 돈키호테>를 함께 읽어요 차무진 작가와 귀주대첩을 다룬 장편소설 <여우의 계절>을 함께 읽어요최하나 작가와 <반짝반짝 샛별야학>을 함께 읽어요.
6인의 평론가들이 주목한 이 계절의 소설!
다음 세대에도 읽힐 작품을 찾는 [이 계절의 소설] 네 번째 계절 #1다음 세대에도 읽힐 작품을 찾는 [이 계절의 소설] 네 번째 계절 #2
책장에서 먼지만 쌓여 있던 이 책, 망나니누나와 함께 되살려봐요.
[Re:Fresh] 2.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다시 읽어요. [Re:Fresh] 1. 『원미동 사람들』 다시 읽어요.
이런 주제로도 독서모임이?
혹시 필사 좋아하세요?문학편식쟁이의 수학공부! 50일 수학(상) 함께 풀어요.스몰 색채 워크샵
어서 오세요. 연극 보고 이야기하는 모임은 처음이시죠?
[그믐연뮤클럽의 서막 & 도박사 번외편]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 이반과 스메르자코프"[그믐밤] 10. 도박사 3탄, 까라마조프 씨네 형제들@수북강녕
⏰ 그믐 라이브 채팅 : 5월 16일 목요일 저녁 7시, 편지가게 글월 사장님과 함께
[책 증정] 텍스티와 함께 『편지 가게 글월』 함께 읽어요!
🐷 꿀돼지님의 꿀같은 독서 기록들
권여선 소설집 『아직 멀었다는 말』(문학동네)은모든 장편소설 『애주가의 결심』(은행나무)수전 팔루디 『다크룸』(아르테)최현숙 『할매의 탄생』(글항아리)
🎁 여러분의 활발한 독서 생활을 응원하며 그믐이 선물을 드려요.
[인생책 5문 5답] , [싱글 챌린지] 완수자에게 선물을 드립니다
이 봄, 시집 한 권 🌿🌷
여드레 동안 시집 한 권 읽기 12여드레 동안 시집 한 권 읽기 10여드레 동안 시집 한 권 읽기 9여드레 동안 시집 한 권 읽기 8
모집중
내 블로그
내 서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