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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 이 찜찜한 맛의 웃음기와 카메라 앵글은 뭘까 싶다가 크레딧을 보니 사프디 형제의 각본과 기획. 기가 빨려서 시리즈 끝까지는 보지 못할 듯.

완벽으로부터의 해방

이 책에 관심이 생긴 이유는 「독서 기록법」이라는 단어 때문이었다.

올해도 벌써 5월이고, 나는 작년말에 연례행사처럼 다이어리를 구입했다.

그것도 올해는 세 권이나!

2024년 다이어리, 3년 다이어리, 5년 다이어리.

매년 예상과 같이 점점 빈 곳이 많아지다가 최근 두세달은 뭉터기로 비어 있다.

책에 대해서도 수십년 전부터 독서기록을 하겠다고 했지만 여기저기 흩어진 그 기록들을 찾을수도 없다.

재작년부터는 Notion이라는 앱도 사용해 보려 했는데 그것도 IT바보라 실패.


이런 사람들은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도구와 방법을 찾아 헤매기 마련이다.

좋은 도구와 방법만 있으면 나도 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


우연히도 4월과 5월에 걸쳐 읽은 다섯 권의 책이 하나의 세계처럼 엮이는데

『하루의 책상』 은 『빅토리 노트』와 함께 기록에 대한 태도와 의미에서 큰 발상의 전환을 주었다.


-완벽으로부터의 해방


하루를 빠뜨리거나 완성에서 멀어졌을 때 실패라고 생각하며 포기하게 되었고

그것이 쌓였을 때 나에게 실패자의 타이틀을 하나 달아 주었다.

나는 그것을 못하는 사람, 나아가 중도포기가 나의 주종목처럼 만들었다.


그런데 『하루의 책상』의 하루 작가님도, 『빅토리 노트』의 이옥선 작가님도 빈 곳은 빈 곳으로 두고 넘어가고 다음으로 나가간다.

그렇게 쌓인 빈 페이지와 쓰여진 페이지가 쌓여 한 권이 되고 두 권이 되었다.


독서노트의 어떤 페이지를 완성하지 못했다고 해도 거기까지 기록하는 동안 내가 보낸 시간은 없어지지 않는다. 목표를 세우고 시작했던 순간, 무언가 해보려고 구상하고 노력한 마음. 생각했던 것과 다른 결과가 나왔다고 그 시간이 모두 지워질 수는 없다. - p,82


-사적인 자아에 시선 맞추기


계속 끝까지 할 수 있는 힘은 좋아하는 것을 좋아하는 것.

결과와 보여지는 것에 목표를 두기보다는 내가 좋아하는 것을 좋아하겠다는 마음으로 하는 것이다. 그리고 나의 마음과 생각을 더 존중하고 우선순위에 놓아야 계속 할 수 있다.


어디까지 나를 보여줄 것인가.
그걸 스스로 정한다고 생각했던 건 착각이었다. 실은 상대방이 보고 싶어 하는 모습을 보여주려고 노력했다.(중략)오히려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한 공적인 자아를 너무 완벽하게 유지하려 애쓰고 허덕이는 동안 사적인 자아는 공허에 가까워졌다. -p.132


일기도, 독서기록도 SNS도 어쩌면 공적인 자아에 더 맞춰 솔직해지지 않는 것 같다.

나의 만족과, 나의 내면을 만나기 위한 기록의 시간이 될 때야 말로 journal이 될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나의 회복과 치유의 시간이 될 수 있는 것 같다.


-출발점 행동


방법이라는 측면에서 가장 새로웠던 건 「독서-전 기록」이다.

모든 일에서 ‘내가 왜 이것을 시작하게 되었나?’를 잊는 경우가 많다.

그것을 잊을 때 목적지를 잃을 수도 있고, 내가 변질될 수도 있다.

기원을 아는 것은 신비로운 힘이 있는 것 같다. 그래서 사람들은 신화를 좋아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하루 작가님의 「독서-전 기록」을 보며 이마를 탁 쳤다.

너무 재미있고 흥미로웠다. 가끔 내가 왜 그 책을 읽게 되었을까 궁금할 때가 있었기 때문이다. 후에 독서기록을 다시 읽는다면 이 부분이 더 재미있을 것 같아 꼭 독서기록이 하고 싶어졌다.


『하루의 책상』은 처음 기대했던 자기계발 서적의 모습은 아니었다.(아침달 출판사에서 나나왔으니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독서기록방법 100선!

이렇게 기록하라!

까지는 아니지만 마지막 부분에 기본적인 안내가 있는데 충분하다.


방법을 대하는 태도가 더 자유로워졌고

무엇보다 어중간하다고 생각했던 나의 마음과 인생이 위로받았다.

최근 애매하고 어중간한 나의 사회적 위치에 대해 많이 생각했었는데

나와 같은 마음을 가진 사람이 존재한다는 것에 대한 위로.

그리고 책을 사랑하며 책과 동네를 산책한다는 동질감이 위로가 되었다.


작고 가벼워 함께 산책하기 좋은 책이다.

여행할 때, 산책할 때 잠시 엉덩이를 붙이고 쉬며 읽으면 마음과 생각이 바람과 함께 살랑이게 될 것이다.


진보정치의 실패를 어떻게 보아야하는가?

총선이 끝난지도 한 달이 지났는데도 여전히 구독하는 신문에서는 정의당의 총체적 실패에 충격을 받는 기사와 투고들이 많이 나타나고 있다. 죽은 아들로 시작하는 한국 속담을 연상케하는 태도다.


아무튼 한국 진보정치은 이로서 씁쓸한 결말을 맞았다. 모두가 짐작하고 있었지만 바라지는 않았던 결과다. 일본의 옛 와카를 빌리자면 "언젠가는 갈 길이라고는 생각했지만 어제오늘의 일일줄은 몰랐구나." 라는 말이 그대로 들어맞는다.


개인적으로 정의당에게 있어서 결정적인 분기점은 전직 정권의 법무장관 파동 당시였다고 생각한다. 정의당은 자신들의 원칙에 의거해서 당시 집권 정당과 거리를 두는 행보를 보였다. 정통적인 지지자들에게는 동의할만한 행보였지만 그 결과는 파국이었다. 그 이후로 정의당은 민주당의 적이 되었고 그들 중 몇 명은 본부중대보다 2중대를 더 증오하게 되었다.(이번 총선으로 정의당이 몰락했으니 이제 그 분들도 화를 좀 푸시고 정신병원에 가셨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그 이후 정의당은 민주당의 대안이 될 가능성을 완전히 상실해버렸다. 그리고 그렇게 해서까지 지켜낸 집토끼들은 달토끼마냥 천방지축 뛰면서 여성,청년등의 정체성 정치와 개별적인 사안에 집착하는 행보를 보이게 되었다. 그 와중에 미래를 만들기 위해 영입한 신진인재들이 집에 불을 지르고 전향한 사실은 그들에게는 희극이고 우리에게는 비극으로 보이기까지 한다.


따라서 정의당의 실패는 진보정치의 몰락이라기보다는 1990년대 초창기 사회격변의 유산의 한 부분이 청산됨과 동시에 정체성에 따른 정당정치라는 원칙이 한국에서 현재의 상황에서는 통용될 수 없다는 사실을 확인한다고 봐야 한다. 진보적 의제는 창당 이래 혁신적인 변화를 가지지 못했다. 한국의 현실이 변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감안해도 유권자에게는 매력적이지 못한 태도였다.


결국 우리는 불편한 진실을 받아들어야한다. 진보정치의 유산은 옛날에 이미 사라졌고 지지자들은 그저 대안부재와 도덕적 명분론때문에 진보정당에 투표했다는 사실을 말이다. 설사 그것이 진실이 아니더라도 오늘날과 같이 정체성이라는 개념이 희박해진 세상에서 정체성과 공동체에 근거한 정치는 통용되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정의당은 그 난관을 스스로 이겨나갈 힘이 없었고 결국 진보적 민주당 지지자들이 이탈하자 무너져내리고 만 것이었다.


우리가 앞으로 맞이할 세상은 더욱 깜깜하다. 민주주의를 높게 부르짖는 자들은 민주주의를 상대방을 합법적으로 제거할 수단으로 생각하고, 민주주의를 유지해야할 시민들은 민주주의에 냉소적으로 대응한다. 권력자들은 상대방이 불의라고 주장하면서 자신의 존재가 불의를 존속시키는 가장 결정적인 이유라는 사실을 외면한다.


어쩌면 우리는 민주주의가 무엇인지도 몰랐으면서 민주주의를 외쳤을지도 모른다. 이제는 우리가 새로운 민주주의를 만들어야할 때가 왔을지도 모른다.





가상의 세계들을 다룬 작품들의 즐거운 목록

멋들어진 제목이니 안 읽을 수가 없다. 강력히 추천하는 가상세계 배경의 소설 100(실제로는 약간 모자란다)이라는 제목이었다면 전달은 쉬웠겠지만서도. 완전히 작가가 세계 전체를 만들어낸 작품부터, 대체 역사 속에서 다른 모습이 된 도시들까지 흥미로운 배경을 가진, 그리고 당연하지만 유명하고 재미있다고 집필진들이 추천하는 책들이 관련 삽화들과 더불어 소개되어있다.

그냥 소개하는 게 아니라 중요한 분석이나 잡학, 중요한 삽화나 지도 등이 실려있으니 이미 알거나 본 책이 나오더라도 충분히 새롭고 재미있다. 고전이 비교적 최근에 나온 책에 영향을 준 게 있으면 알려주는 부분도 좋았고. 동양 쪽 책은 소개가 정말 적은 게 아쉽지만 서양 책이니 어쩔 수 없나 싶다. 사실 이런 책들은 보고나면 책 욕심만 확 늘어나서 안 보는 게 나은데...루드비 홀베르처럼 작가 이름을 아예 처음 들은 경우도 있고, 읽은 지가 너무 오래되어 인용하는 대목이 아예 기억이 안 나서 다시 봐야할 책도 있고...디스크월드 시리즈는 너무 궁금하지만 저걸 다 구해읽으려면 돈 시간 공간이...능력도 안 되면 욕심이라도 버려야 하는데 내가 참 뭘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그러나 이리 좋으니 읽으라고 부채질하는 책을 무슨 수로 이기겠는가. 집어든 내 잘못이지...


문학으로의 모험 - 역사상 가장 위대한 가상 세계들로의 여행
문학으로의 모험 - 역사상 가장 위대한 가상 세계들로의 여행
더스쿠프에 『인성에 비해 잘 풀린 사람: 월급사실주의 2024』 서평이 실렸습니다.

더스쿠프에 『인성에 비해 잘 풀린 사람: 월급사실주의 2024』 서평이 실렸습니다. 감사합니다!

 

《이 단편집은 다양한 직업군의 먹고살기 위한 고충을 담고 있다. 비정규직, 돌봄노동, 정규직 전환의 꿈, 프랜차이즈와 조직생활, 위계서열, 20대 남자와 학벌주의, 그리고 비트코인, 프리랜서와 바이럴마케팅까지 다변화한 우리 사회의 먹고사니즘을 들여다본다. 단순히 노동자로 퉁치기에는 조금 복잡해진 우리의 노동현실이 이곳에 있다.》

 

#월급사실주의 #월급사실주의2024 #인성에비해잘풀린사람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665/0000002986?sid=103

 

 


인성에 비해 잘 풀린 사람 - 월급사실주의 2024
인성에 비해 잘 풀린 사람 - 월급사실주의 2024
20240513-낭독기초반-송정희성우-6

🚩6주차 완료/이번주 미션


📍 '내 목소리에 보내는 편지'를 녹음파일로 올려주세요.


녹음파일은 유튜브에 올라갈 예정이니 원치 않으시면 말씀해주세요~

(다음주 월요일(5/20) 오후 3시전까지)

케이크를 자르지 못하는 아이들(미야구치 코지)

한 모임에서 읽게 된 책. 모임 회원인 상담선생님이 '케이크를 삼등분 못하는 아이들'에 대해 말할 때는 피상적으로 이해하고 있었는데 책 띠지를 보는 순간 확 이해가 되었다. 세 사람이 동일하게 먹을 수 있게 선을 그어보라고 하는데 이렇게 긋는다고....?

이와 같이 케이크를 제대로 자르지 못한 아이는 초등학교 저학년도 지적 장애도 아니다. 저자가 소년원에서 만난 범죄 청소년이다. 지적 장애(IQ 69 이하)는 아니지만 IQ 70~84의 경계선 지능을 의심하게 하는 경우이다. 경계선 지능 아이들이 전체 학생의 14%(일본도, 우리도) 정도라고 한다. 스무 명 학급이면 그 중 3명 정도.


일본의 아동정신과 의사 미야구치 코지가 의료 소년원에서 근무한 경험을 바탕으로 인지 기능 강화 트레이닝도 개발하고 이 책도 썼다. 의료 소년원에서 만난 한 다루기 힘든 소년에게 그림을 따라 그리게 했다가 터무니없이 뒤틀리게 그리는 것을 보고 충격을 받은 그는 어쩌면 실제로 흉악범죄를 저지른 소년들 중 이런 아이들이 상당한 비율을 차지하는 것은 아닐까, 성인 범죄자의 경우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생각하게 된다. 장애가 있다고 해서 범죄 행위를 용인해 주어서는 안 되지만 적절한 교육 프로그램을 통해 어쩌면 범죄 행위를 줄일 수 있지는 않을까?

지적 장애로 판정받으면 여러 지원을 받게 되지만 경계선 지능의 경우는 모르고 넘어가는 경우도 많다. 인지 기능(보는 힘, 듣는 힘, 상상하는 힘)과 신체 기능이 약한 아이들이 일반 교실에서 보통 아이로 있으면 그 아이는 바보 취급을 당하거나 따돌림을 받고, 불성실하다는 말을 듣게 된다. 그런 일이 반복되면 학교를 가지 않거나 폭력, 절도 등 다양한 문제를 일으키게 되는 것이다. 더구나 학교를 벗어나면 그야말로 아무도 돌봐주지도 이해해 주지도 않게 된다.


내가 책을 읽고 놀란 내용 중 하나는 인지 기능이 약한 경우 실행 기능(계획을 세우는 힘)이 부족하여 무엇이든 생각나는 대로 행동하는 상태가 된다는 것이다. "지금 가진 돈이 없는데 일주일 후까지 100만원을 준비해야 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어떤 방법이든 상관없으니 생각해보세요."라는 말에 '친척에게 빌린다, 소액 대출을 받는다'와 '훔친다, 은행을 턴다, 남을 속여 돈을 뺏는다'가 아무렇지도 않게 나란히 나온다고 한다. 윤리의식이 없나? 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빌린다'와 '훔친다'가 동등하게 인식되는 것은 그 이전의 문제이다. 계획을 세우는 힘이 약하면 내가 한 행동이 불러올 결과를 예측하기 어려워 과정이 더 간단해 보이는 '훔친다'를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와우.... 책 초반에 저자는 소년원의 어떤 아이들은 '반성 이전의 문제'를 겪고 있다고 말하는데, 정말 그렇지 않은가. '빌린다'와 '훔친다'가 특별히 다르지 않은데 절도 행위를 저지르고 반성할 수 있을까?


책을 읽으면서 좀 의아한 부분도 있었다. 저자는 아이에 대한 직접적 지원을 ‘학습적인 면, 신체적인 면, 사회적인 면’ 크게 세 가지로 나누고 상당수 교사들이 아이에게 가장 중요한 지원이 ‘사회적인 면’이라고 말하지만 학교 교육에서는 체계적으로 갖춰진 사회적인 면의 교육이 없다고 지적한다(170쪽). 처음에는 고개가 끄덕여졌지만 과연 그렇다면 사회적인 면의 체계적 교육을 어떻게 할 것인가를 생각해 보니 선뜻 그려지지 않았다. 학교는 학습기관이다. 물론, 앞서 언급한 학습, 신체, 사회적인 면 전반의 발달과 성장을 위한 기관인 것은 맞지만, 그렇다고 사회적인 면의 교육이 ‘학습’이나 ‘신체’면의 교육과 별도로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일까? 오히려 학습면, 신체면의 교육을 하는 과정에서 사회적인 면의 교육이 동시에 일어나는 것은 아닐까? 그리고 학교에서 이루어지는 여러 프로그램이나 자치 활동 등이 바로 사회적 기능 발달을 위한 과정이 아닌가? 특별히 사회적 기능이 떨어지는 학생들을 위한 별도의 학교가 아니라면, 기존의 커리큘럼만으로도 충분하지 않을까. 다만 상급 학교로 갈수록 학습적인 면에만 치우친다든지, 학습 방법 자체가 협력이나 주도성에 기반하지 않는 것은 문제이므로 개선이 필요하다. 또한 교육을 담당하는 교사들 역시 학습과 신체면의 교육이 사회성 발달을 위한 교육이기도 하다는 점을 인식하고 그에 맞게 전문성을 기를 필요가 있을 것이다. 더불어, 이 부분에 대해서는 초등학교와 고등학교의 상황이 다를 수 있다는 생각도 든다.

 

7장 「하루 5분으로 바뀔 수 있다」 부분은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할지 아이디어를 주는 부분이라 꼭 읽어볼 만하다. 특히 소년원에서 변화를 보이는 아이들의 경우가 나에게 주는 시사점이 많았다. “처음에는 반성하는 척만 했지만 지금은 다르다. 변화할 기회는 지금뿐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하는 아이들에게 변하고 싶다고 생각한 계기가 무엇인가를 물어보아 그 생각을 정리한 것이 다음과 같다.

◦가족의 고마움, 괴로움을 알게 되었을 때 ◦피해자의 관점에서 생각할 수 있게 되었을 때 ◦장래 목표가 생겼을 때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을 만났을 때 ◦다른 사람과 대화할 자신이 생겼을 때 ◦공부할 수 있게 되었을 때 ◦중요한 역할을 맡았을 때 ◦집중할 수 있게 되었을 때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해보겠다는 마음이 들었을 때 ◦집단생활 속에서 자신의 모습을 깨달았을 때 (194쪽)

저자는 이런 아이들이 태도 변화가 ‘자기 자신을 알게 된 것’과 ‘자기 평가가 향상된 것’에서 비롯되었다고 정리한다. 학교에서 문제 행동을 하는 아이들을 대할 때 기억해두면 제법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다. 교실에서 막된 행동을 하고도 아무렇지도 않은 그 아이는 지금 자기가 어떤 모습을 보이고 있는지 잘 깨닫지 못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제대로 소통하지 못하여 문제를 일으키는 아이의 마음 속에는 자신이 할 줄 아는 게 아무것도 없다는 열등감이 들끓고 있는지도 모른다.

 

교육에 대한 이런저런 이론과 관점이 있다. 그 중에서도 처음 들었을 때 세게 머리를 맞은 것 같았던 말이 ‘단 한 명의 아이도 소외되지 않는 교실’이다. 학습자 주도성을 강조하고 개별화 수업을 강조하는 지금의 교육 트렌드에서 마지막까지 소외되는 단 한 명이 있다면 느린 학습자일 것 같다. 그리고 그 학생들은 어느 교실에나 반드시 있다. 단 한 명의 아이도 소외되지 않는 교실, 적절한 조치를 통해 각자가 제 몫의 삶을 살 수 있는 사회를 위해 일단은 이 책을 읽는 것으로 시작하자.

케이크를 자르지 못하는 아이들 - 모든 것이 왜곡되어 보이는 아이들의 놀라운 실상
케이크를 자르지 못하는 아이들 - 모든 것이 왜곡되어 보이는 아이들의 놀라운 실상
박찬일 산문집 『밥 먹다가, 울컥』(웅진지식하우스)

80년대 말 장마가 내리던 어느 날, 나는 밥그릇을 엎었다.

며칠째 장맛비가 추적추적 내려서 밖으로 나가서 놀지 못하는데, 밥상에는 반찬 하나 없이 매끼 간장과 밥만 올라왔다.

처음에는 어머니께서 마가린을 밥에 같이 비벼주셔서 잘 먹었는데, 이틀쯤 지나자 마가린이 떨어졌는지 간장만 밥상에 올라왔다.

나는 반찬 투정을 부리다가 밥그릇을 엎었고, 어머니는 나를 모질게 때렸다.

그날 이후 밥상에 반찬으로 간장만 상에 오르는 일은 없었다.

간장을 보면 문득 떠오르는 오래된 일이다.


바나나킥과 양파깡을 보면 어린 시절 잠결에 봤던 어머니의 뒷모습이 떠오른다.

밤중에 나는 뭔가 부스럭거리는 소리를 듣고 잠에서 깼다.

어머니는 나와 동생의 머리맡에 바나나킥과 양파깡을 두고 조용히 밖으로 나갔다.

잠에서 깨어난 나와 동생은 눈치 없이 좋다고 과자 봉지를 뜯었다.

이후 며칠 동안 어머니는 집에 돌아오지 않았다.

나중에 들어보니 어머니는 아주 안 들어올 작정이었다더라.


잡곡밥에 섞인 좁쌀을 보면, 시장에서 파는 좁쌀베개를 슬픈 눈으로 바라보던 어머니가 생각난다.

어머니는 어린 나를 먹여야 하는데 집에 먹을 게 아무 것도 없어서 베개를 뜯어 좁쌀을 꺼내 불려 나를 먹였다고 담담히 말했다.

나는 지금도 우는 아들을 달래려고 좁쌀베개를 뜯는 어머니의 마음을 도저히 헤아릴 수가 없다.


이 산문집에 담긴 여러 이야기는 그동안 세월에 묻어두고 살았던 많은 기억을 되살려준다.

작가는 다양한 음식을 매개로 음식에 관한 해박한 지식을 친절하게 풀어놓으며 자신의 오래된 기억을 소환한다.

대체로 가난하고 서글픈 기억이다.

화려한 요리를 만들면서 정작 제대로 끼니를 때우지 못하는 요리사들의 모습, 케첩에 물을 타서 핫도그에 뿌려주던 어린 시절 노점상의 박한 인심, 맛있는 성게알을 먹기 위해 들어가는 해녀의 수고로움, 중식 요리사와 양식 요리사의 서로 다른 흉터, 먹고살기 위해 다른 생명을 빼앗을 수밖에 없는 운명에 관해 고민했던 순간 등.

여기에 "구도심은 힘이 없다. 해소 기침하는 노인 같다" 같은 시를 닮은 아름다운 문장이 덤으로 올라가 읽는 맛을 더한다.


그 위에 내 기억도 포개져 가슴이 울렁거린다.

동네에서 친하게 지냈던 또래 아이가 푸세식 화장실에 빠져 똥독으로 죽었다는 말을 듣던 일, 달동네에서 지금 살고 있는 집보다 더 좁은 집으로 이사를 가며 리어카로 이삿짐을 나르던 일, 장마철에 잠을 자다가 다급하게 깨어나 쓰레받기로 방까지 밀려 들어온 빗물을 바깥으로 퍼내던 일, 달동네에 산다고 아랫동네 아이들이 던진 돌을 맞아 코가 내려앉았던 일 등.


기쁜 기억보다 슬픈 기억으로 더 많이 채워져 있는 삶이 무슨 의미가 있는 걸까.

글쎄다.

굳이 의미를 찾을 필요가 있을까?

누구도 자신의 선택으로 태어날 수 없다.

살아야 할 이유를 찾는 건 불가능해 보이니 그 시간에 어떻게 살아야 할지 고민하는 게 낫지 않을까?

그래야 조금이라도 더 행복해지지 않을까?

이 산문집을 덮으며 들었던 생각이다.

밥 먹다가, 울컥 - 기어이 차오른 오래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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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디온감] 독립영화 함께 감상하기 #1. 도시와 고독[그믐무비클럽] 5. 디어 라이프 with 서울독립영화제
[꿈꾸는 책들의 특급변소] 조영주 작가가 고른 재미있는 한국 소설들
[책증정] [꿈꾸는 책들의 특급변소] 김호연 작가의 <나의 돈키호테>를 함께 읽어요 차무진 작가와 귀주대첩을 다룬 장편소설 <여우의 계절>을 함께 읽어요최하나 작가와 <반짝반짝 샛별야학>을 함께 읽어요.
6인의 평론가들이 주목한 이 계절의 소설!
다음 세대에도 읽힐 작품을 찾는 [이 계절의 소설] 네 번째 계절 #1다음 세대에도 읽힐 작품을 찾는 [이 계절의 소설] 네 번째 계절 #2
책장에서 먼지만 쌓여 있던 이 책, 망나니누나와 함께 되살려봐요.
[Re:Fresh] 2.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다시 읽어요. [Re:Fresh] 1. 『원미동 사람들』 다시 읽어요.
이런 주제로도 독서모임이?
혹시 필사 좋아하세요?문학편식쟁이의 수학공부! 50일 수학(상) 함께 풀어요.스몰 색채 워크샵
어서 오세요. 연극 보고 이야기하는 모임은 처음이시죠?
[그믐연뮤클럽의 서막 & 도박사 번외편]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 이반과 스메르자코프"[그믐밤] 10. 도박사 3탄, 까라마조프 씨네 형제들@수북강녕
⏰ 그믐 라이브 채팅 : 5월 16일 목요일 저녁 7시, 편지가게 글월 사장님과 함께
[책 증정] 텍스티와 함께 『편지 가게 글월』 함께 읽어요!
🐷 꿀돼지님의 꿀같은 독서 기록들
권여선 소설집 『아직 멀었다는 말』(문학동네)은모든 장편소설 『애주가의 결심』(은행나무)수전 팔루디 『다크룸』(아르테)최현숙 『할매의 탄생』(글항아리)
🎁 여러분의 활발한 독서 생활을 응원하며 그믐이 선물을 드려요.
[인생책 5문 5답] , [싱글 챌린지] 완수자에게 선물을 드립니다
이 봄, 시집 한 권 🌿🌷
여드레 동안 시집 한 권 읽기 12여드레 동안 시집 한 권 읽기 10여드레 동안 시집 한 권 읽기 9여드레 동안 시집 한 권 읽기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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