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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진아 장편소설 『미러볼 아래서』(민음사)

작품 속 주인공은 답답한 인물이다.

문제가 생기면 침묵하고 회피하는 성격인 데다, 누군가와 처음으로 만나면 자기도 모르게 거짓으로 자신을 소개하는 버릇을 가지고 있다.

이 같은 성격과 습관은 오해를 부르고 주인공을 외톨이로 만든다.

누군가에게 쉽게 마음을 내보이지 못하는 주인공이 오로지 진실하게 대할 수 있는 대상은 키우는 고양이뿐이다.

그런데 그 고양이가 사라졌다.


주인공이 사라진 고양이를 찾으며 좌충우돌하며 그동안 인연을 맺었던 이들과의 관계를 돌아보는 계기를 갖는다.

상처만 입은 줄 알았던 자신이 자신도 모르게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는 존재였을 수도 있다는 점을 깨닫고, 오해로 얼룩졌던 인간관계를 조금씩 회복하는 과정이 설득력 있게 그려진다.

주인공은 비록 소중한 존재를 잃었지만, 새로운 존재를 받아들임으로써 과거와 다른 긍정적인 사람으로 조금 성장한다.

책장을 덮을 때 잔잔한 장편 독립영화 한 편을 감상한 기분을 느꼈다.


최근 들어 신간을 읽으며 느끼는 문학계의 변화 중 하나는 영화계 출신 작가의 증가다.

영화계 출신 작가가 없지는 않았다.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면 천명관이라는 걸출한 작가가 있었고, 꾸준히 활발하게 작품을 내놓으며 베스트작가 반열에 오른 김호연 작가도 있다.

<아몬드>로 영어덜트의 지평을 연 손원평 작가, 지난해 한경신춘문예 장편소설 부문에 당선된 정대건 작가는 연출자 출신이다.

정지돈 작가나 서이제 작가처럼 대학에서 영화를 전공한 작가도 보인다.

이 작품을 쓴 강진아 작가도 단편과 장편 영화 다수를 연출한 영화계 출신이다.


나는 영화계 출신 작가가 늘어나는 원인을 크게 두 가지로 본다.

첫 번째, 일단 영화를 만들기가 너무 어렵다.

투자를 받기가 어렵고, 어렵게 투자를 받아도 중간에 엎어지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영화 하나에 매달리다가 10년 세월이 금방 흘러가고, 지나간 세월을 누가 보상해주지도 않는다.

시간을 투자해서 영화를 만들었다고 해서 흥행이 보장되지도 않는다.

두 번째, 연출자들은 대부분 각본 집필을 겸하는 이야기꾼들이다.

시나리오는 각색하면 충분히 소설이 될 수도 있다.

각색은 영화 촬영처럼 큰돈이 들어가는 작업도 아니다.


영화계 출신 작가가 쓴 소설은 문학이나 문예창작을 전공한 작가의 소설과 결이 다르다.

읽으면 쉽게 영상이 눈앞에 그려지고, 뜬구름 잡는 이야기를 하는 경우가 드물다.

무엇보다 이들 작가의 큰 장점은 대체로 잘 읽히고 재미있는 작품을 쓴다는 점이다.


어쩌다 보니 작품보다는 작품 이외의 이야기를 더 많이 했다.

나는 영화계 출신이든 누구든 다른 분야 출신 작가가 많아졌으면 좋겠다.

최소한 알아먹을 소설을 쓰니 말이다.

종종 작가가 자신이 무엇을 쓰는지 알고 쓰는지 의문이 드는 작품을 접할 때면 한숨이 나온다.

작품 마지막에 평론을 더하는 자들은 과연 그 작품에 정말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서 의미를 부여하는 걸까.

소설을 쓴다는 작가 중에서 나보다 많이 신간을 챙겨 읽는 작가는 드물 거라고 본다.

신간을 챙겨 읽으면 읽을수록 한국문학이 지금 이 사회에 무슨 의미가 있는지 의문만 늘어나고 있다.

점점 게토화되고 있다는 기분이 나만의 기분일까.

미러볼 아래서
미러볼 아래서
이유리 소설집 『브로콜리 펀치』(문학과지성사)

나는 이 소설집 마지막 페이지를 넘기며 칡을 떠올렸다.

첫맛은 쓰지만, 씹을수록 혀 위에 은은한 단맛이 감도는 칡.

온갖 기상천외한 이야기가 난무하는 이 소설집에는 이런 뜬금없는 감상을 남기는 게 어울려 보인다.


오른손이 브로콜리로 변한 남자친구, 사람 말을 할 줄 아는 이구아나, 말하는 돌멩이, 화분이 된 아버지, 반투명인간이 된 자신 등...

이 소설집에는 밑도 끝도 없이 황당한 설정이 뻔뻔하게 등장하는데, 등장인물 모두 이를 당연하다는 듯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어서 환상과 현실의 경계를 모호하게 한다.

웃기고 허무맹랑한데 묘하게 현실적이다.


그런데 이 소설집이 그저 웃픈 이야기 모음으로 끝나지 않는 이유는 문장 곳곳에 깃든 온기 때문이다.

이 소설집의 등장인물은 모두 마음에 깊은 상처를 가지고 있다.

읽을 때는 황당한 설정에 홀려 무심코 지나칠지 모르지만, 등장 인물을 자세히 뜯어보면 모두 우울증을 피하기 어려워 보일 정도로 힘겨운 현실에 직면해 있다.

황당한 설정은 독자가 힘겨운 현실을 힘겹게 바라보지 않도록 완충재 역할을 하고 소설에 온기를 불어넣는다.

당의정과 비슷한 역할이랄까?

소설집을 읽는 내내 왠지 모르게 위로를 받는 듯한 기분을 느꼈다.


지난해 등단한 작가가 벌써 단행본을 냈다는 건 그만큼 이 바닥에서 주목을 받는다는 증거다.

이 소설집이 최근에 읽은 신인 작가의 작품 중 가장 좋았다는 말은 못 하겠다.

하지만 가장 개성적인 작품이었다.

다들 대놓고 말을 안 해도 알지 않나?

문학과지성사 스타일의 작품 중에 재미있는 작품이 드물다는 걸 말이다.

문학동네, 창비와 비교해 사세가 많이 약해진 이유도 그 때문이고.

이 소설집은 문학과지성사에서 나온 소설집답지 않게 재미있어서 흥미로웠다.

브로콜리 펀치
브로콜리 펀치
김초엽 소설집 『방금 떠나온 세계』(한겨레출판)

작가의 두 번째 소설집을 손꼽아 기다렸다.

첫 번째 소설집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이 보여준 서정적인 상상의 세계(언젠가 나는 이를 '심장을 가진 SF'라고 표현했다)에 매료된 독자라면 다들 비슷한 마음이 아니었을까.

독자 뿐만이 아니다.

문학동네, 문학과사회 등 각 단편이 실렸던 지면을 밝힌 마지막 페이지를 보면 작가가 기성 문단에서도 얼마나 환영받는 존재인지 알 수 있다.


이번 소설집은 전작처럼 다채로운 이야기를 담고 있으면서도 주제 의식에 통일감을 갖춘 게 특징이다.

작가는 지금까지 장애를 작품 전반에 걸쳐 다양하게 변주해 다뤄왔다.

언어 대신 후각으로 소통하고, 기술로 감각을 느끼는 영역을 확장하는 등 작품 속에서 작가는 장애를 결함이 아니라 세상을 다르게 감각하는 방식으로 바라본다.

신체 일부의 장애는 다른 신체의 감각을 더욱 민감하게 만들어 세상을 평면적이 아니라 입체적으로 바라보게 하는 열쇠가 되고, 나아가 신체의 한계를 넘어서는 계기로 작용한다.

이 같은 시선이 신선하면서도 묵직하게 느껴졌다. 


<지구 끝의 온실>의 소재였던 환경 오염도 작품 곳곳에서 주제 의식을 환기하는 중요한 요소로 쓰인다.

작가는 작품 속에 등장하는 여러 장애가 대부분 환경오염으로부터 비롯됐다고 묘사한다.

이미 수많은 뉴스를 통해 환경 오염이 부른 장애를 접했지만, 소설로 묘사한 장애는 뉴스보다 훨씬 실감이 난다. 

우리에게 주어진 삶은 이 행성의 시간을 잠시 빌려온 것에 불과하다고 역설하는 '오래된 협약'의 메시지가 강렬하게 다가온다.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보다 사회 문제를 다루는 태도가 구체적이어서 작가 특유의 서정적인 묘사를 기대했다면 당황할지도 모르겠다.


소설집 전체를 감싸는 주제를 한 문장으로 요약하면 '상대방을 이해하려는 노력'이다.

누군가를 이해한다는 말은 거짓에 가깝지 않나?

이해하려고 노력한다는 말이 진실에 가깝지 않은가?

'로라'는 이를 잘 드러내는 작품인데, 사랑하지만 끝내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을 받아들이는 등장 인물의 태도가 감동적이었다.

전작과 마찬가지로 이번 소설집 또한 결국 SF라는 형식으로 풀어낸 사람에 관한 이야기다.


사실 나는 작가의 전작이자 첫 장편인 <지구 끝의 온실>을 읽고 고개를 갸우뚱했었다.

가독성은 좋았지만 이보다 훨씬 분량을 줄여도 되는 이야기를 늘렸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기 때문이다.

이번 소설집에서도 지나치게 설명이 많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었다.

장편보다는 단편에 장점을 많이 가지고 있는 작가라고 생각했는데, 이번 소설집을 읽은 뒤 그 생각이 굳어졌다.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아 보이는데, 그 이야기를 자신만의 호흡으로 정리해 풀어놓기에는 단편이 더 적절해 보인다.


p.s. 여담인데 천선란 작가는 단편보다 장편이 좋았다. 또 여담인데 최근 몇 년 사이에 읽은 SF 서사 중에선 문목하 작가의 장편소설 <돌이킬 수 있는>이 정말 압도적으로 좋았다.


[큰글자도서] 방금 떠나온 세계
[큰글자도서] 방금 떠나온 세계
천선란 장편소설 『나인』(창비)

분량이 상당하지만 쑥쑥 읽히는 페이지터너여서 분량을 느끼기 어려웠다.

페이지를 넘기는 내내 신비로운 분위기를 품은 풍경이 눈앞에 그려져 즐거웠다.

들꽃 덕후인 내게 작품 전면에 등장하는 식물 묘사는 무척 흥미로웠다.

식물이 서로 대화를 나누고, 인간의 일거수일투족을 다 지켜보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상상은 나도 자주 해봤으니 말이다.

 

이 작품을 한 장르로 구분하기는 어렵지 않을까 싶다.

작가의 전공인 SF이기도 하고, 스릴러이기도 하고, 학원물이기도 하며, 성장물이기도 하다.

작가는 전작인 <천개의 파랑>에서 인간이 아닌 존재로 세상의 부조리를 들여다봤는데, 이 작품에서도 인간이 아닌 존재(핵심 내용이어서 스포하지 않겠다)로 세상의 부조리를 꼬집는다.

 

작가는 청소년인 여러 등장인물의 눈으로 잘못을 저지르고도 반성하지 않으며 진실을 은폐하는데 급급한 어른들의 모습을 통렬하게 비판한다.

꼬집는 강도가 전작보다 강하고 내용이 현실과 밀착해 있어서 어떤 면에서는 사회파 소설을 닮았다는 느낌을 주기도 했다.

특히 사람을 거주지로 등급을 나눠 다르게 대하고, 뭐든 돈으로 해결하려는 어른의 태도가 아이에게 대물림되는 모습은 익숙한 모습인데도 끔찍하게 느껴졌다.

그만큼 작가의 서사 전개가 설득력 있었다.

특히 후반부에 몰아붙이는 서사 전개가 압권이었다.

 

선한 의지를 따르고, 세상을 지키는 건 서로가 서로를 향한 믿음이라고 믿는 순수한 아이들의 모습은 감동적이면서도 사랑스러웠다.

다른 게 틀린 게 아니란 걸 잘 알고, 부조리를 차마 외면하지 못하며, 끝까지 약자의 편에 서는 아이들 앞에서 "세상은 원래 그래"라며 이런저런 일을 적당히 뭉개고 넘어갔던 내 모습이 떠올라 뜨끔해졌다.

아마 이 작품을 읽고 나와 비슷한 기분을 느끼는 독자도 많으리라고 본다.

작가에게 유명세를 가져다 준 작품은 <천개의 파랑>이지만, 나는 이 작품이 더 좋았다.

나인 (양장)
나인 (양장)
김태용 장편소설 『러브 노이즈』(민음사)

소설이라기보다는 음악을 닮았고, 음악 중에서도 전위음악에 가깝다.

멜로디가 선명하진 않은 문장이어서 소설 제목처럼 잡음에 가깝게 들린다.

소설은 5부로 이뤄져 있는데, 각 부마다 다양한 형태의 비전형적인 사랑을 보여준다.

각 부의 이야기는 마치 돌림노래처럼 다음 부의 이야기 속에 차례로 스며들어 실체를 확실하게 가늠하기 어려운 덩어리를 이룬다.

의식의 흐름처럼 연결되는 이야기는 마치 즉흥연주처럼 느껴졌다.

매우 실험적인 소설이다.

하지만 그리 즐겁지는 않았다.

나는 서사도 멜로디도 선명한 게 좋다.

러브 노이즈
러브 노이즈
윤성희 소설집 『날마다 만우절』(문학동네)

이 소설집에는 단편 11편이 실려 있는데, 대여섯 편은 이미 문예지나 앤솔로지 등을 통해 접한 작품이었다.

읽지 않은 작품은 정독하고 읽은 작품은 통독한 덕분에, 읽어야겠다고 마음만 먹었다가 자꾸 다른 책에 손을 대는 패턴을 끊을 수 있었다.


작가는 가족이나 주변인으로부터 배신을 당하거나 상처를 받은 이들의 일상과 심리를 작품마다 다양한 형태로 변주한다.

작품 속에 죽음, 질병, 상실 등 온갖 비극적인 상황이 넘쳐나는데 희한하게도 소설집의 전체적인 분위기는 전혀 어둡지 않다.

오히려 경쾌하고 페이지를 넘기는 내내 마음이 따뜻해지는 기분을 느꼈다.

특별하지 않은 사건이 특별하게 보이고, 특별한 사건을 특별하지 않게 보인다.

서사 전개에 큰 굴곡이 없고 문장이 화려하지 않은데도 읽는 재미가 쏠쏠했다.

어떤 모양의 재미인지 비유하자면, 마치 '인간극장'을 여러 편을 한꺼번에 시청한 기분이랄까.


어떤 분야에 있든 고수들의 공통점은 힘을 뺄 줄 안다는 점이다.

읽을 때는 페이지가 술술 넘어가서 몰랐는데, 책을 덮고 시간이 조금 흐른 뒤에야 강호의 절정 고수를 마주쳤음을 깨달았다.

이 소설집을 읽고 힘을 빼고 글을 쓰는 게 어떤 경지인지 조금이나마 엿볼 수 있었다.

한 방 세게 먹었다.


날마다 만우절
날마다 만우절
박상영 장편소설 『1차원이 되고 싶어』(문학동네)

박상영 작가는 데뷔 때부터 민감하면서도 무거운 소재인 퀴어 서사를 유쾌하면서도 감각적으로 풀어내며 주목을 받아왔다. 

나는 몇 년 전 문화일보 신춘문예 업무를 맡았을 때 퀴어 서사를 다룬 많은 응모작을 접수하며 작가의 영향력을 실감했다.

그만큼 작가의 첫 장편소설을 향한 기대감이 컸다


작가의 전작이 많은 독자에게 거부감 없이 받아들여진 이유는, 성소수자의 사랑 속에서 보편적인 사랑의 감정을 끌어내는 과정이 신선하고 설득력 있게 느껴졌기 때문이 아닐까.

이 작품에서도 그런 작가의 장점이 잘 드러난다.

그리고 대단히 재미있다.


작가가 묘사하는 2000년대 초반의 학창시절은 내 경험한 90년대 중후반의 학창시절과 상당히 비슷해 쉽게 작품에 몰입할 수 있었다.

서로에게 많은 상처를 주고받으면서도, 사랑에는 진심인 등장인물들의 감정이 읽는 내내 절절하게 다가왔다.

10대들의 사랑을 묘사하지만, 어지간한 성인 로맨스 뺨을 칠 정도로 감정의 깊이가 상당하다.

이 작품이 주된 배경인 2000년대 초반의 대중문화 묘사도 실감 나서 작품에 생생함을 더한다.

여기에 작품을 끝까지 읽기 전에는 쉽게 파악할 수 없는 스릴러의 요소까지 자연스럽게 스며드니 다음 페이지가 궁금해 몸이 달았다.

분량이 요즘 장편답지 않게 상당한 편인데도(원고지 1300매) 페이지가 쑥쑥 넘어갔다.

이 정도 분량의 이야기를 처음부터 끝까지 온전히 손에 틀어쥐고 흔들다니.

놀라웠다.


이 작품이 작가의 전작 『대도시의 사랑법』을 넘어선 작품이라고 말은 못 하겠다.

하지만 이 작품을 읽고 작가가 퀴어 서사라는 다소 한정적인 소재만 다룰 줄 아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의 상당 부분을 덜어냈다.

다음 작품이 더 기대된다.

1차원이 되고 싶어 (0차원 에디션)
1차원이 되고 싶어 (0차원 에디션)
테드 창 소설집 『숨』(엘리)

다시 읽는데도 시간 가는 줄을 몰랐다.

재미도 재미지만 품격이 느껴지는 SF다.

작가는 새로운 기술이 변화시킨 세상과 그 세상을 바라보는 인간의 변화를 깊이 있게 탐구한다.

소설마다 다채로운 설정과 전개로 새로운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내는데 그 상상력이 대단하다.


책의 문을 여는 ‘상인과 연금술사의 문’부터 비범하다.

마치 ‘아라비안나이트’를 연상케 하는 신비롭고 이국적인 배경에 시간여행이라는 소재를 더하다니.

과거로 돌아가도 미래를 바꾸지 못하며, 그저 과거를 더 잘 알게 될 뿐이란 설정 또한 클리셰를 반복하지 않아 신선하다.


표제작 ‘숨’은 ‘엔트로피’ 개념에 착안해 무분별한 에너지를 사용의 위험성을 경고하고, ‘소프트웨어 객체의 생애 주기’는 인간과 인공지능 사이의 유대 관계를 심도 있게 다루며 피할 수 없는 기술의 발전 앞에서 인간은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지 생각해보게 한다.


‘사실적 진실, 감정적 진실’ 은 우리가 완전무결하고 정확한 기억을 가지는 게 옳은지 질문하고, ‘우리가 해야 할 일’과 ‘불안은 자유의 현기증’은 인간의 자유의지를 고찰하며 인간의 가능성과 한계를 묻는다.


책의 마지막에 실린 창작 노트에는 작품 속에서 이해하기 어려웠던 개념이 짧고 명료하게 정리돼 있어 이해를 보탠다.

이렇게 친절하기까지 하다니.


그런데.

작가 이름을 보면 자꾸 영화 <극한직업>에 출연한 배우 오정세가 떠올라서 피식하게 된다.

나만 그런가?

젠장.

숨
숨
장은진 장편소설 『날씨와 사랑』(문학동네)

재개발로 철거를 앞둔 오래된 장갑 공장, 그곳에서 가족의 생계를 위해 중노동에 시달리며 청춘을 보낸 여자, 오래전에 가출한 어머니를 찾아 헤매는 아버지, 소싯적에 온갖 사고를 치며 다니다가 이제는 장송곡 같은 노래나 만드는 인디 뮤지션이 된 동생...


배경과 등장인물의 삶은 하나 같이 어둡고 팍팍하지만, 작품에서 느껴지는 온도는 따뜻해 마치 동화 한 편을 읽은 듯한 기분이 들었다.

작품에서 나오는 온기는 퉁명스럽게 굴면서도 은근히 서로를 챙기는 등장인물 사이의 정에서 비롯된 것일 테다.

이 작품이 동화처럼 느껴지는 이유는, 맑은 날에도 우산을 쓰고 다니며 공장 앞 광장을 배회하는 이름 모를 남자 때문일 테고.

띠지에 '감성 연애소설'이라는 표현이 보이는데, 연애소설보다는 가족소설이나 성장소설에 더 가깝게 느껴졌다.

한 단어로 이 작품을 요약하면 '쉼표'다.


그런데 몇몇 표현이 눈에 거슬렸다.

예전 같았으면 눈에 거슬리지도 않았을 표현이다.

하지만 이제는 짚고 넘어가야 할 것 같아서 몇 마디를 보탠다.


이 작품에 등장하는 아버지는 대단히 무능력해 늘 두 딸의 구박을 받는다.

두 딸의 구박이 어떤 맥락에서 이뤄지는지 모르는 건 아니다.

이 지적은 작품 전체의 맥락에서 벗어난 지엽적인 것이다.

하지만 이런 표현을 남성 작가가 여성을 대상으로 했다면, 여성 독자가 과연 맥락에 맞는 표현이라고 너그럽게 받아들일지 궁금해진다.

아마 독자에게 닿기 전에 편집 과정에서 바로 걸러지지 않았을까.


"아버지 얼굴은 아버지의 좆처럼 풀죽어 있었다."

"나는 이제 엄마가 집을 나간 것은 아버지 좆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생활력도 경제력도 없는데 거기다 좆까지 무력해서 엄마가 떠났다. 이것저것 아무리 비교해봐도 가장 무능한 건 그러니까, 아버지의 좆인 것이다."

"아버지는 암컷도 차지 못하는 좆 작은 수사자잖아."

날씨와 사랑
날씨와 사랑
백가흠 소설집 『같았다』(문학동네)

도둑으로 전업한 대학 강사(훔쳐드립니다), 살인을 저지른 승려(타클라마칸), 다른 남자와 함께 남편을 죽이는 아내(같았다), 소설을 쓰지 않는 소설가(그는 쓰다)...

이 소설집의 등장인물은 모두 난감한 처지에 놓여있고, 동시에 선악을 명확하게 구별할 수 없다.

피해자로 보이는 인물에게는 영악함이 있어 마냥 동정하기가 어렵고, 가해자로 보이는 인물에게는 유약함이 엿보여 대놓고 미워하기가 어렵다.

작가는 인간의 욕망을 다양하게 변주해 드러내 보이는 한편, 우리가 그 어떤 상황에서도 윤리적인 생각과 행동을 유지할 수 있는지를 반복해 묻는다.


불편하지만 읽는 내내 끌렸다.

마치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게임>을 활자로 읽는 듯한 기분을 느꼈다.

뭐 하나 즐겁게 끝나지 않는데도 다음 페이지가 궁금해졌다.

책을 덮을 때쯤에는 불편함이 극에 달해 깊은 한숨이 터져 나왔다.

아마도 이 소설집을 읽는 일이 내 마음의 밑바닥을 들여다보는 일처럼 느껴졌기 때문일 테다.

같았다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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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사/책증정] 한 편의 소설과도 같은 <닥터프렌즈의 오마이갓 세계사> 함께 읽어요:)[📕수북탐독] 1. 속도의 안내자⭐수림문학상 수상작 함께 읽어요[박소해의 장르살롱] 15. 경계 없는 작가 무경의 세 가지 경계 [책증정] [꿈꾸는 책들의 특급변소] 김호연 작가의 <나의 돈키호테>를 함께 읽어요 [북토크/책 증정]경제경영도서 <소비 본능>같이 읽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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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증정] [꿈꾸는 책들의 특급변소] 김호연 작가의 <나의 돈키호테>를 함께 읽어요 차무진 작가와 귀주대첩을 다룬 장편소설 <여우의 계절>을 함께 읽어요최하나 작가와 <반짝반짝 샛별야학>을 함께 읽어요.
6인의 평론가들이 주목한 이 계절의 소설!
다음 세대에도 읽힐 작품을 찾는 [이 계절의 소설] 네 번째 계절 #1다음 세대에도 읽힐 작품을 찾는 [이 계절의 소설] 네 번째 계절 #2
책장에서 먼지만 쌓여 있던 이 책, 망나니누나와 함께 되살려봐요.
[Re:Fresh] 2.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다시 읽어요. [Re:Fresh] 1. 『원미동 사람들』 다시 읽어요.
이런 주제로도 독서모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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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믐연뮤클럽의 서막 & 도박사 번외편]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 이반과 스메르자코프"[그믐밤] 10. 도박사 3탄, 까라마조프 씨네 형제들@수북강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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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증정] 텍스티와 함께 『편지 가게 글월』 함께 읽어요!
🐷 꿀돼지님의 꿀같은 독서 기록들
권여선 소설집 『아직 멀었다는 말』(문학동네)은모든 장편소설 『애주가의 결심』(은행나무)수전 팔루디 『다크룸』(아르테)최현숙 『할매의 탄생』(글항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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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책 5문 5답] , [싱글 챌린지] 완수자에게 선물을 드립니다
이 봄, 시집 한 권 🌿🌷
여드레 동안 시집 한 권 읽기 12여드레 동안 시집 한 권 읽기 10여드레 동안 시집 한 권 읽기 9여드레 동안 시집 한 권 읽기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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