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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정은 연작소설 『연년세세』(창비)

이 작품의 중심에는 한국전쟁 이후 질곡의 현대사를 버티며 살아낸 70대 할머니 '순자'가 있고, 그녀의 딸들이 이야기에 가지를 뻗어 나간다.

얼핏 등장인물만 보면 영화 <국제시장> 같은 가족 이야기처럼 보이는데, 책장을 넘길수록 그런 느낌이 사라지고 가슴이 서늘해졌다.

이는 처음부터 끝까지 등장인물 사이에 일정한 거리를 두는 연출에서 비롯된 효과다.

가족이라는 관계는 이 작품에선 역으로 '개인'에게 관계란 어떤 의미가 있는가를 묻는 장치로 쓰인다.

이 같은 연출은 등장인물을 한 발짝 떨어져 바라보게 함으로써, 우리가 일상에서 겪는 슬픔과 고통을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 돌아보게 한다.

담담한 듯하면서도 묵직하고, 때로는 날카롭게 파고드는 문장이 놀라웠다.


사실 나는 이 작품을 사다 놓고 책장에 꽂아둔 뒤 꽤 오래 방치했다.

작가의 전작인 <디디의 우산>을 읽고 고개를 갸우뚱했었기 때문이다.

<디디의 우산>은 마치 조남주 작가의 <82년생 김지영>처럼 소설보다는 르포를 읽는 듯한 느낌을 줬다.

그런 기억 때문에 <연년세세>에 쉽게 손이 가지 않았다.

서사나 플롯이 확실하게 드러나지 않는 소설에 거부감을 느끼는 내 취향도 뒤늦게 책장을 펼치는 데 한몫을 했다.

하지만 작가들이 좋은 소설이라고 치켜세우는 이유가 분명히 있을 거란 생각에, 뒤늦게 책장을 펼쳤다.

늦게나마 책장을 잘 펼쳤다는 생각이 들었다.


p.s. 고백하자면, 이 작품에서 가장 마음에 든 부분은 작가 소개다.

이름만 적혀 있고, 사진이나 그 어떤 이력의 나열도 없는 작가 소개.

멋있었다.

연년세세 - 황정은 연작소설
연년세세 - 황정은 연작소설
조해진 소설집 『환한 숨』(문학과지성사)

조해진 작가의 장편소설 『단순한 진심』은 내가 문화일보에서 문학 담당 기자로 일했던 기간(고작 10개월이지만)에 기사로 다뤘던 소설 중 가장 감동적으로 읽은 작품이다.

대한민국 사회의 외진 곳과 그곳에 속한 약한 사람들을 다루면서도, 인간을 향한 믿음과 희망을 버리지 않는 작가의 시선이 내게 뭉클한 감동을 줬었다.

작가의 신간을 기다려왔는데, 신간이 출간됐을 때는 내가 새 장편을 집필하던 시기여서 뒤늦게 책을 펼쳤다.

역시나... 좋았다.


작가는 눈앞에 보이지만 손에 닿지 않는 부조리한 풍경을 문장으로 구체화해 독자 앞에 풀어놓는다.

산재로 중태에 빠지거나 죽어갔던 미성년 근로자들, 계약 해지를 앞둔 비정규직, 직장 내에서 서로 싸우는 '을'들, 이유 없이 멸시당하는 장애인, 성범죄를 저지른 후 잠적한 아버지 때문에 오랫동안 고통받는 자매와 피해자 등.

이 소설집에 담긴 아홉 단편의 등장인물들은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안타까운 현실에 놓여 있다.

작가는 등장인물들이 처한 현실을 개연성 있게 풀어나가며, 평범해 보이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평범하지 않게 들려준다.

소설에 담긴 이야기 하나하나가 사실 새롭지는 않다.

아니, 익숙하다는 말이 더 정확하겠다.

소설은 그저 우리가 그런 현실을 애써 외면해왔음을 아프게 깨닫게 한다.


읽는 내내 외롭고 서글픈 기분이 들었지만, 그 기분에 매몰되지는 않았다.

그 이유는 소설집의 제목 『환한 숨』 때문이었다.

이 소설집에는 표제작이 따로 없다.

대신 제목이 모든 작품을 느슨하게 엮는 실과 같은 역할을 한다.

작가는 소설을 통해 누군가가 날숨이 자신의 들숨과 섞이고, 자신의 날숨이 누군가의 들숨과 섞이며, 그 숨에는 죽은 자의 숨과 산 자의 숨도 뒤섞여 있음을 환기한다.

생각해보면 당연한 사실인데, 그 당연함을 인식하지 못하고 살아왔다.

우리는 어떤 식으로든 모두 연결돼 있으며, 우리를 구원하는 건 결국 연대라는 사실을 말이다.


한집에서 한솥밥을 나눠 먹는 사람을 식구라고 부른다.

그렇다면 이 땅에서 서로의 숨을 공유하며 사는 우리도 넓은 의미에서 식구라고 부를 수 있지 않을까.

밤새 읽던 책의 마지막 장을 넘기며 문득 든 생각이다.

환한 숨
환한 숨
박솔뫼 소설집 『우리의 사람들』(창비)

서사가 소설의 전부까지는 아니어도 7할 이상은 차지한다고 믿는 나로서는, 서사가 뚜렷하게 보이지 않는 소설이 힘들다.

하지만 그런 소설을 사랑하는 독자도 많기 때문에, 왜 좋은지 느껴보려는 시도는 멈추지 않고 있다.

안타깝지만 이번에도 실패했다.

배수아, 한유주, 정지돈, 오한기 등의 작품을 읽었을 때와 비슷한? 마치 늪에 빠진 기분을 느꼈다.

앞으로도 나는 이들 작가의 세계를 끝까지 이해하지 못한 채로 이해하려는 시도만 되풀이할 것 같다.

아마도 영원히 이해하지 못 할듯.

우리의 사람들
우리의 사람들
김호연 장편소설 『불편한 편의점』(나무옆의자)

이 작품은 서울의 대표적 슬럼가 중 하나인 청파동의 한 편의점을 배경으로 다양한 인물에 얽힌 사연을 따뜻한 시선으로 풀어낸다.

정년퇴임 교사 출신 편의점 사장, 사업자금을 마련하려고 편의점을 노리는 사장의 아들, 성실한 20대 아르바이트생 시현, 야외 테이블에서 혼술로 고단함을 잊는 회사원, 작가 자신을 반영한 캐릭터인 희곡 작가, 그리고 이들 사이를 잇는 미스테리한 노숙자 출신 편의점 직원이 있다.

등장인물 우리 주변에 있음 직한 인물이면서도 개성이 넘친다.

그만큼 생생하며 공감하기 쉽고, 읽기도 편했다.

작가가 마치 처음부터 연극을 의도하고 쓴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장면 하나하나가 무대처럼 느껴졌다.

영상보다는 무대에 올려질 때 훨씬 매력적인 결과물이 나올 듯하다.


재미있는 작품인 건 분명하지만, 『망원동 브라더스』보다는 아쉬웠다.

소설의 주연급 등장인물인 노숙자 '독고'를 조금 더 개연성 있는 인물로 그리면 좋지 않았을까 싶다.

소설을 읽는 동안 '독고'가 어떤 사람인지 궁금해 페이지를 넘기는 속도가 빨라지는데, 막상 정체가 드러났을 때는 고개를 갸웃거릴 수밖에 없었다.

'독고'는 사회적으로 큰 파장을 일으킬 만한 거대한 사건과 연결돼 있는데, 소설의 분위기와 잘 섞인다는 느낌을 받지 못했다.

작가가 처음 집필 의도와 달리 '독고'를 사건과 엮어서 정리하는 데 꽤 애를 먹었을 것 같다.

조금 힘을 뺐으면 훨씬 더 감동적인 결과물이 나오지 않았을까.

아쉬운 소리가 길어진 이유는, 그만큼 『망원동 브라더스』가 내게 준 즐거움이 컸기 때문일 것이다.

불편한 편의점 (벚꽃 에디션)
불편한 편의점 (벚꽃 에디션)
최진영 장편소설 『내가 되는 꿈』(현대문학)

과거의 나, 혹은 미래의 나와 이야기를 주고받는 상상은 늘 씁쓸하다.

그런 상상은 보통 현재의 나에 만족할 수 없는 현실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은 어떨지 몰라도 나는 그랬다.


나는 주로 과거의 나를 윽박질러 현재를 바꾸는 상상을 했다.

연애 경험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 굳이 모든 사람에게 좋을 사람일 필요는 없다, 먹지 못하는 사과를 파는 회사의 주식을 사야 한다, 비트코인을 열심히 채굴해라, 영끌해서 어떻게든 서울 내 아파트를 장만해라 등...

이 작품은 그런 상상을 현실로 끌어왔다.

그렇다고 이 작품 속 상상이 내 상상처럼 속물적이란 말은 아니다.


이 작품은 30대 직장인인 '태희'가 어린 시절의 자신과 편지를 주고받으며 서로에게 영향을 주는 과정을 담담하게 그린다.

태희는 자신을 인격적으로 존중해주지 않는 회사 조직과 배신한 연인 때문에 자존감을 잃은 상태다.

지친 태희가 별생각 없이 자신에게 보낸 편지가 어린 시절의 자신에게 닿고, 어린 시절의 자신이 쓴 답장이 현재의 주인공에게 닿는다.

설정만 보면 타임슬립물인데, 읽으면 딱히 그런 느낌이 들지 않는다.

어린 시절의 주인공과 현재의 주인공은 자신이 받은 편지가 자신이 쓴 편지란 걸 확실하게 인지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조금 너그럽게 읽으면 영화 <러브레터>처럼 이름만 같은 누군가에게 서로의 편지가 닿는 설정이라고 우겨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흔이 넘은 뒤, 어른이 된다는 게 뭔지 생각하는 일이 많아졌다.

어린 시절에 나는 어른만 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되고 탄탄한 미래가 펼쳐질 줄 알았다.

그건 완전한 착각이었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지금의 나는 10대, 20대, 30대 때와 다를 게 없다.

달라진 건 나이 든 몸뿐이다.

50대, 60대, 70대가 돼도 몸만 늙어갈 뿐 몸 안의 내가 달라지진 않을 것 같다.

지금까지 쌓아온 내 삶의 방식이 극적으로 달라질 리도 없으며, 딱히 세상에 의미 있는 무언가가 될 것 같지도 않으니 말이다.


그렇게 살아가도 괜찮은지 의문에 사로잡힐 때가 종종 있는데, 작품이 꽤 위안이 됐다.

아무도 내가 될 수 없고 나도 남이 될 수 없다고.

내가 될 수 있는 건 나뿐이라고.

꼭 무언가가 되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우리는 늘 미련을 쌓고 후회를 반복하지만, 이를 인정하고 마주해야만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고.

작가는 태희의 입을 빌려 사려 깊은 메시지를 전달한다.


작가는 나와 성이 다르지만 이름은 같고, 나이도 같다.

작품 속 태희의 고민은 어쩌면 작가의 고민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오랜만에 만난 어린 시절 친구로부터 너는 너대로 그냥 살아도 괜찮다는 말을 들은 기분이 들었다.

내가 되는 꿈
내가 되는 꿈
박희아 인터뷰집 『직업으로서의 예술가』(카시오페아)

음악, 연기, 연출, 소설, 시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 중인 예술인 52명의 인터뷰를 담은 책이다.

이 인터뷰집에 실린 인터뷰이 모두 각자의 분야에서 어느 정도 경지에 오른 예술인이다.

내 경험을 비춰 보면, 그런 수준에 다다른 예술인은 배울 것도 많을 뿐만 아니라 사람도 훌륭한 편인 경우가 많았다.

그들이 어떤 과정을 거쳐 그런 경지에 오를 수 있었고, 지금은 어떤 생각으로 살아가고 있는지 엿보는 일이 흥미진진했다.


인터뷰에서 오가는 이야기의 밀도가 매우 높고, 온도도 따뜻하다.

인터뷰이는 그동안 하지 못한 말을 털어놓으며 눈물을 흘리고, 저자는 인터뷰이의 눈물을 닦아주며 함께 눈시울을 붉히기도 한다.

저자가 인터뷰이의 마음을 여는 방법은 꼼꼼한 사전 준비와 인터뷰이를 향한 애정이다.

음악 분야 인터뷰이 중에는 내가 기자 시절에 인터뷰로 만났던 예술인도 꽤 있었다.

그들의 인터뷰를 읽으며, 당시 내가 기사 마감에 급급해 취재를 너무 성의 없이 했던 게 아닌가 하는 반성을 했다.


저자는 인터뷰를 '고백과 자각' '열정과 통찰'이라는 부제로 두 권에 나눠 담았다.

두 권을 합치면 나름 벽돌책 분량인데, 그렇다고 읽기도 전에 지레 부담을 가질 필요는 없다.

인터뷰집이기 때문에 책의 어느 페이지를 먼저 펼쳐 읽어도 문제가 없으니 말이다.

술술 읽히는 데다 이런저런 뒷이야기도 많아서, 처음부터 끝까지 순서대로 읽어도 소설처럼 재미있다.


분야는 달라도 인터뷰이들이 던지는 메시지에는 중요한 공통점이 있다.

예술은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게 아니라 일상에서 시작되는 것이라고.

그렇다면 자신의 분야에서 최선을 다해 살아가면, 우리의 삶도 얼마든지 예술이 될 수 있는 게 아니냐고.

[세트] 직업으로서의 예술가 : 고백과 자각 + 열정과 통찰 - 전2권
[세트] 직업으로서의 예술가 : 고백과 자각 + 열정과 통찰 - 전2권
손병현 소설집 『쓸 만한 놈이 나타났다』(문학들)

가슴 아픈 소설집이다.

이 소설집은 1980년 5월에 광주에서 벌어진 비극이 지금까지 어떤 형태의 상처와 아픔으로 남아있는지 전한다.

무자비한 고문의 후유증이 남긴 트라우마에 시달리다가 주변인을 괴롭히고 스스로 삶을 등지는 사람들, 의도치 않게 비극의 중심에 섰거나 혹은 주변부에서 떠돌던 사람들의 생생한 고백이 첫 페이지부터 끝까지 이어진다.

여기에 생생한 호남 방언이 읽는 맛을 더하고, 실제 유가족과 시민의 증언이 소설에 현장감을 부여한다.

작가는 비극의 상처와 아픔을 과장하거나 축소하지 않고, 누군가를 무작정 매도하거나 연민하지도 않는다.

그저 소설과 적당히 거리를 둔 채 40년 전 광주에서 벌어진 비극의 과거와 현재를 들여다볼 뿐이다.

먼저 흥분하거나 울지 않는 작가의 태도는, 독자가 비극을 한 발짝 떨어져 바라보며 성찰할 수 있게 한다.


세월호 참사 추모가 지겹다는 말이 나온 지 오래다.

40년 전에 벌어진 비극을 아직도 추모하는 게 지겹다는 말이 나온 지는 그보다 훨씬 오래됐다.

작가는 40년이 지났든 그보다 오랜 세월이 지났든 비극을 추모해야 할 이유는 차고 넘친다고 소설로 말한다.

아직도 당시 비극을 기억하고, 그 비극으로 상처 입은 수많은 사람이 살아있기 때문이다.

한강 작가의 『소년이 온다』가 그랬듯이, 소설은 기억과 역사에 생명력을 더하는 방식 중 하나다.

오랜 시간에 걸쳐 그런 작업을 해온 작가의 노고에 경의를 표한다.


p.s. 이 소설집에 담긴 단편의 대화를 인용한다.

이 대화가 지금까지 당시의 비극을 매도해 온 사람들의 솔직한 심정이 아닐까.


"그때는 나도 대학을 이 년 댕겼던 때라서 뭘 쪼매 알긴 알았지. 뭣이 옳은 것인지 알긴 알겠는데 요상하게 그걸 인정하고 싶지 않은 기라. 그냥 빨갱이 새끼들로 매도해 뿌리는 기 내 맘이 편했든 기지. 그라이까네 뭔가 복잡한 생각이 일어날라카는 기를 단순한 걸로 덮어 뿐 거라. 와? 내 편할라꼬, 내 자존심 안 상할라꼬, 내 꿀리기 싫어가. 이때껏 그냥 쭉 그래 살아왔던 기라. 그라면서 또 홍어들을 짓밟았지. 너덜언 내 진실의 거울 같은 존재거던. 거울이 깨져 삐야 내 진실이 비치지 않을 거 아이가."(92~93페이지 '생선매운탕' 중)

쓸 만한 놈이 나타났다 - 손병현 소설집
쓸 만한 놈이 나타났다 - 손병현 소설집
김탁환 장편소설 『당신이 어떻게 내게로 왔을까』(해냄)

어른의 사랑을 그린 독한 연애소설이다.

읽는 내내 머릿속에 배경 화면처럼 떠오른 색깔은 보라색이었다.

섬세하면서도 날카롭고, 매혹적이면서도 위험하며, 외면하고 싶은데 궁금한 이야기의 연속이었다.

적지 않은 분량인데도 페이지가 술술 넘어갔다.

이야기의 힘이다.


여기에 충분한 취재가 없으면 불가능한 기업소설의 요소가 어우러져 재미를 더한다.

가방과 관련한 업계의 다양한 용어와 방대한 설명은 마치 패션 잡지를 들여다보는 듯한 기분을 느끼게 했다.

끝까지 이야기를 궁금하게 하는 구성은 추리소설을 연상케 한다.

소설 속에 담긴 또 다른 소설(이건 작품 읽어야 무슨 의미인지 알 수 있다)의 매력이 상당하다.


주인공인 '다정'을 비롯해 캐릭터들의 입체적인 성격도 다음 페이지 내용을 예상하지 못하게 하는 매력적인 부분이었다.

애정, 애증, 질투, 욕망 등 서로가 서로에게 느끼는 복잡한 감정을 표현하는 문장이 무척 섬세했다.

작가가 어떤 사람인지 모르고 읽으면 여성 작가의 작품으로 아는 독자가 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양한 결을 가진 이야기를 쓸 수 있다는 게 부러웠다.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자연스럽게 영상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머지않아 이 작품을 영상으로 감상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예감이 들었다.


p.s. 가장 매력적인 캐릭터였던 '비컨'이 조금 멋있게 소설에서 퇴장하면 좋지 않았을까.

[세트] 당신이 어떻게 내게로 왔을까 1~2 - 전2권
[세트] 당신이 어떻게 내게로 왔을까 1~2 - 전2권
최영기 『이런 수학은 처음이야』(21세기북스)

이 책에는 머리 아픈 공식 따위는 등장하지 않는다.

이 책은 도형을 설명의 중심에 놓고 점과 선, 그리고 면이 펼쳐내는 세계를 흥미롭게 풀어낸다.

페이지를 넘기다 보면 그저 외우기만 해서 어렵게 느껴졌던 수학 개념이 쏙쏙 머릿속에 들어온다.

직각이 왜 90도이며 원의 중심각이 왜 360도인지, 삼각형의 내각은 왜 180도이며 모든 다각형의 내각은 왜 360도인지 등 다양한 수학적 개념을 이 책을 통해 비로소 이해할 수 있었다.

이 책의 타깃은 중학생 이하로 보이는데, 어른이 읽어도 즐겁다.

다양한 수학적 개념이 어떻게 실생활과 연결되는지도 잘 보여주기 때문이다.


나는 독특하게도 3수를 하던 시절에 수학에 흥미를 느꼈다.

학창 시절에 흥미를 잃었던 수학에 다시 눈을 돌리게 해준 건 교과서였다.

집안 사정이 넉넉했던 적이 없었기 때문에, 나는 입시 관련 사교육을 단 한 번도 받아보지 못했다.

혼자 3수를 준비해야 하니 입시 전략도 혼자 짜야 했다.

가장 큰 난관은 역시 수학이었다.


어떤 수학 교재를 공부해야 하나 고민하다가 나는 서점에서 교과서를 집어 들었다.

나로서는 대단히 실용적인 선택이었다.

당시 나는 응용문제는 그럭저럭 잘 풀었지만, 문제 유형이 조금이라도 달라지면 맥을 못 췄다.

나는 기본기가 엉망이라는 결론을 내리고, 다시 교과서로 돌아갔다.

아무리 참고서가 좋다고 해도, 교과서 집필진보다 우수한 집필진이 참여했을 리는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교과서는 참고서보다 훨씬 가격이 저렴했다.


나는 수학을 처음 접하는 학생의 심정으로 교과서를 처음부터 다시 공부했다.

문제 풀이 대신 교과서로 개념부터 차근차근 잡아나갔다.

그러다 보니 언젠가부터 외우지 않아도 공식이 머릿속에 자리를 잡았다.

자연스럽게 낯선 유형의 응용문제를 푸는 일도 수월해졌고, 실제 수능 시험에서도 수학에서 가장 우수한 성적을 받았다.

공식을 외우고 문제를 열심히 푸는 게 수학이 아니란 걸 그때야 깨달은 것이다.

그걸 뒤늦게 깨닫다니... 억울한 마음이 들었다.


"수학 교과서가 이 책처럼 재미가 있었으면 수포자 여럿을 구제했을 텐데."  

이 책을 마지막 장을 덮은 뒤 든 생각이다.

어쩌면 그 시절에 수학을, 아니 공부를 잘했던 친구들은 이 책에 등장하는 원리를 이해하고 공부했기 때문에 좋은 결과를 냈던 게 아닌가 싶다.


열심히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방법을 알고 열심히 해야 한다.

그래야 오래전의 나처럼 삽질을 안 한다.


이런 수학은 처음이야 - 읽다 보면 저절로 개념이 잡히는 놀라운 이야기
이런 수학은 처음이야 - 읽다 보면 저절로 개념이 잡히는 놀라운 이야기
오후 『우리는 마약을 모른다』(동아시아)

마약의 '마'가 악마를 뜻하는 '마(魔)'가 아니라 마비를 뜻하는 '마(痲)'라는 사실을 이 책으로 처음 알았다.

그 사실을 알게 되니, 내가 마약에 관해 모르는 게 얼마나 많은지 궁금해져 책에 훅 빨려들었다.

이 책은 내가 마약에 관해 아는 게 거의 없을 뿐만 아니라, 상당한 편견도 가지고 있음을 일깨워줬다. 

매우 흥미롭고, 놀라우면서도 생각할 거리를 많이 남긴 책이다.


이 책은 초반에 꽤 충격적인 가설을 소개한다.

인류가 환각물질을 포함한 버섯을 먹으면서, 한마디로 약을 빨기 시작하면서 동물의 차원을 넘어서게 됐다는 가설이다.

검증된 가설은 아니지만, 나름 내세우는 증거에 꽤 설득력이 있다.

구석기인이 살던 동굴에 환각을 유도하는 버섯이 벽화로 그려져 있고, 네안데르탈인 유적에서도 마약성 식물이 발견된다. 

아울러 저자는 거의 모든 문화권에서 마약성 식물이 종교의식과 의료 행위에 쓰였으며, 마약이 지금처럼 터부시된 게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님을 밝힌다.

그리고 그 배경에 종교와 정치, 경제가 복잡하게 얽혀 있음을 드러낸다.


이 책은 교양서(?)라는 타이틀에서 엿보이듯이 마약에 관한 상세한 지식 전달도 잊지 않는다.

저자의 입심이 꽤나 세다.

덕분에 심각한 내용이 심각하게 읽히지 않는다는 부작용(?)이 있다.

저자는 마약의 종류부터 천연마약과 합성마약의 구분법, 마약의 효과, 영화나 드라마 등을 통해 소개되는 마약의 역사, 마약과 관련한 온갖 재미있는 일화 등을 유쾌하게 설명한다.

1954년 월드컵 결승전에 독일 선수들이 약을 빨았다는 등의 이야기를 외면하긴 쉽지 않을 테다.

이 같은 장치는 마약을 바라보는 시선의 전환이 거부감 없이 이뤄지도록 자연스럽게 유도한다.


저자는 마약을 법으로 엄격하게 금지하는 데에 의문을 제기한다.

마약을 국가가 공식적으로 관리하면, 마약 품질을 일정하게 유지할 수 있고, 마약에 세금을 걷어 마약 관련 정책에 사용할 수도 있다?

많은 사람의 강력한 반발을 살만한 태도다.

그러니 누가 봐도 가명인 이름을 저자의 이름으로 내세울 수밖에 없었을 테다.


하지만 저자가 막대한 사회적 비용을 근거로 들어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한다.

저자는 네덜란드, 미국, 포르투갈 등 세계 각국의 사례와 통계를 바탕으로 마약을 법으로 금지했을 때 투입되는 사회적 비용이 그렇지 않았을 때보다 훨씬 크다고 주장한다.


이 책에서 가장 설득력 있었던 부분은 디딤돌 효과에 관한 의문이다.

이미 많이 알려졌지만, 대마는 술이나 담배보다 훨씬 안전하고 중독성도 적다.

그런데도 대마가 법적으로 금지되는 가장 중요한 근거는, 대마가 더 강한 효과를 보이는 마약으로 빠져드는 관문 역할을 하기 때문이라는 거다.

나 또한 지금까지 그렇게 알아 왔기 때문에, 대마를 금지하는 게 옳다고 생각해 왔다.


저자는 술을 예로 들어 디딤돌 효과에 의문을 제기한다.

디딤돌 효과가 사실이라면, 맥주와 같은 저도주를 마시던 사람은 맥주를 버리고 소주에 이어 위스키 같은 고도주에 빠져들어야 한다.

하지만 맥주를 즐기는 사람이 다들 위스키를 좋아하는 건 아니지 않은가.

맥주는 싫어하지만 막걸리를 좋아하는 사람도 있고, 위스키를 싫어해도 와인은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

술에 관한 취향이 서로 천차만별이란 걸 모두 잘 알고 있다.

마찬가지로 저자는 마약 또한 서로 천차만별이어서 마약이란 하나의 범주로 묶기가 곤란하다고 말한다.

저자는 다양한 근거를 바탕으로 대마초를 한 사람이 반드시 헤로인이나 코카인에 손을 대는 건 아님을 밝힌다.

이 부분에선 머리를 한 대 맞은 기분이었다.


마약 중독자를 사회에 복귀시키는 방안에 관한 설명은 시사점이 크다.

세계대전 당시 많은 군인이 진통제로 몰핀을 처방받았다.

몰핀 중독자가 쏟아졌음은 물론이다.

하지만 전쟁 후 일상으로 돌아와서도 몰핀에 의존한 군인은 소수였다.

사회 안전망과 복지, 충분한 여가를 통해 심신의 안정이 이뤄지면 자연스럽게 마약에 손을 대지 않게 된다...

저자가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바로 이것 아니었을까 싶다. 


우리는 마약을 모른다 - 교양으로 읽는 마약 세계사
우리는 마약을 모른다 - 교양으로 읽는 마약 세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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