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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채색 삶이라고 생각했지만> -김동식 작가님-

처음 김동식 작가를 만난 건 평택 한책에 선정되었을 때다. 그 때 내가 속한 독서모임에서 김동식 작가의 <회색인간>을 선정해 독서토론을 했는데, 독서모임에 오래 계셨던 선배 한명이 말했다. “난 왜 이 책이 한책에 선정됐는지 이해할 수 없고, 이 책으로 우리 지역 학생들이 독서토론을 해야 하는데 무슨 토론을 하라는 건지 모르겠네요” 평소 항상 단아하고 이성적인 선배가 이렇게 토론 중 찬물을 끼얹는 발언을 하니 난 이 책이 어떤 책인지 작가는 누구인지 궁금했다. 제대로 된 작가 경험 없는 그를 등단이라는 말조차 과분하다는 말까지... 선배는 덧붙였다.

그일 후 김동식 작가님의 북토크가 우리 동네에서 열린다는 말에 딸아이를 데리고 참석했다. 작가님의 이야기가 끝나고 독자들의 발표시간이 되었다.

독자: “작가님, 전 작가님의 ... 작품에서 ....란 문장표현을 쓰셨는데 이 부분이 정말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런 단어는 어떤 의도로 선택해서 쓰신 걸까요?”

김동식 작가: “아, 그 단어가 그런 표현이었나요.몰랐네요.전 그냥 듣기 좋아서. ”

 

이날 북토크는 예전의 작가님들과의 북토크와는 느낌이 달랐다. 정말 신선한 느낌이었다. 박학다식하고 해박한 지식의 향연, 일말의 문장의 오류도 허용하지 않을 듯한 다른 작가님들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그러다 얼마 전 김동식작가의 <회색인간>이 100쇄를 찍었다는 소식을 접했고 이번에 김동식작가의 첫 에세이가 나온다는 말에 얼른 도서관에 신청해서 대출했다.


작가님의 문장은 여전히 현란한 수식어구나 해박한 지식으로 넘쳐나지 않았다. 문장은 짧고 소박하고 미안함과 그리고 작가로서의 자신감 등등 진심어린 마음들이 느껴졌다.

무엇일까? 읽는 내내 궁금했다. 출중한 실력에도 불구하고 김동식 작가님만큼의 대중성을 가지지 못한 내가 좋아하는 작가님들도 계신데...

에세이에도 나오지만 우선은 중학교 중퇴하고 평생 공장에서 일만 했던 사람이 작가로 데뷔한 서사에 대한 응원이 기본적인 자산이 되었다고. 하지만 분명 그 서사만이 아니다. 왜냐하면 대중들에게 궁금증을 불러일으킬 수는 있지만 그들의 시간을 가져올 수 있는 건 그의 작품의 매력이기 때문이다. 에세이를 읽으면서도 큰 교훈이나 극적인 사건이 없음에도 독자눈과 손이 그의 작품으로 잡아두는 것은 김동식 작가의 능력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의 과거 중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는 가난한 가정형편 때문에 학교와 친구집놀러갔을 때 무언가가 사라지면 그의 주머니를 가장 의심받았다는 이야기였다. 누군가가 나를 의심해 아무렇지 않게 내 주머니를 뒤질 수 있다는 것은 상상이 되지 않는다. 친하다고 생각한 친구의 부모님과 선생님에게 이런 부당한 의심을 항상 받아야 한다면 이런 상황을 어떻게 견딜 수 있을까?

그리고 그는 강연회 때 왠만한 청중의 부탁을 들어주는 데, 춤과 노래, 그리고 그날 속옷 색깔에 대한 질문도 그냥 쿨하게 모두 들어준다는 거다.(이런 상황들이 가능하다고!!)

꽤나 힘든 상황들이 여러 번 있었던 거 같은데도 그는 여지껏 욕을 한번도 하지 않았다는 것도 신기했다. 외로움을 잘 느끼지 못한다는 것도,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지도 이번에 에세이를 쓰면서 알았다는 것도..

나이를 들어도 상황에 의연해지지 못하고 감정의 소용돌이 속에 휩쓸리는 내 자신이 한심했다. 그러다 다른 사람들의 삶이 궁금하다는 생각에 김동식 작가님의 에세이를 읽게 되었는데 그의 상황과 의연함에 절로 고개가 숙여졌다. 과연 이런 상황들이 모두 가능할 수 있다고!!

스스로를 마카롱에 비유하며 어떤 중학생 독자가 작가님 책은 뒤로 갈수록 재미없다고 한 말도 책에 담으며 ‘심심풀이’작가가 목표라고 당당하게 이야기 하고 있다. 소설로 하고 싶은 말이나 무슨 상을 타겠다는 목표도 없고 그냥 대중적인 재미를 보여주고 싶다고 말하고 있다. 김동식 작가에 대한 궁금한 이야기나 따뜻하고 유머러스한 이야기들이 한껏 담겨있던 책은 그의 다른 작품들처럼 소소한 재미와 공감과 조언이 있다.

빵 터진 에피소드가 있는데 그는 자신의 외모를 ‘도맛집’이라고 표현했다. “길 걷다가 ‘도를아십니까’에 많이 붙잡힐 것 같이 생겼어.”란 말이다. 나도 역 앞의 있는 그녀들이 수많은 사람들을 헤치고 나에게 달려올 때 ‘내가 그렇게 만만하게 생겼나??^^;;’라는 생각을 했는데 이게 ‘도맛집’이라니 재미있었다.

그리고 작가 본인의 인복이 좋다는 이야기에서는 요다 출판사에 대한 찬양처럼 여겨지는 여러 칭찬이 가득한데, ‘요다 출판사’에 대해 궁금해졌다.

 

“그래서 난 내가 어떻게 잘됐는가를 묻는다면 두 가지만큼은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꾸준히, 그리고 많이. 이것이 내가 살면서 깨달은 성공의 진리다. 무언가를 꾸준히 하면서도 아무런 변화가 없는 듯해 불안하다면, 지금 난 시간의 위대함을 쌓아가는 중이라고 생각하면 좋겠다.” 


-김동식 작가의 <무채색 삶이라고 생각했지만> 에서-

20240314 빠져있는 것들

<이슬아 작가의 녹색정의당 마포을 장혜영 의원 지지 선언>


이슬아 작가의 녹색정의당 마포을 장혜영 의원 .. : 네이버블로그 (naver.com)


'미래는 결국 약자의 얼굴을 하고 올 수밖에 없다. 그건 약자들이 옳아서가 아니라,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가장 본질적인 특징이 바로, 연약하게 태어나서, 늘 누군가에게 의존해 살다가, 다시 연약한 존재로 돌봄을 받고 이 세상을 떠나는 것이 인간의 운명이기 때문이다. 약자를 배제해서 얻을 수 있는 미래는 거부하겠다. 그것은 미래가 아니라 너무나 지겹게 반복되온 과거다.'


'그러나 세계는 이야기만으로 바뀌지 않고, 반드시 법과 시스템의 한계 속에서 움직입니다. 우리가 지키고 싶은 소중한 가치를 수호하거나 망칠 힘이 국회의원에게는 있습니다. 그 중요한 힘은 아주 신중하고 사려깊은 사람에게 주어져야만 합니다.'


-

나를 망치고 고치려는 것에 사랑을 쏟고, 시간을 쏟고, 돈을 썼다. 쏟은 만큼 나를 바라봐주길 바랐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헛된 바람은 이뤄지지 않았다.


이제야 제대로 바라본다.


내가 나로서 살아갈 수 있는 곳에 마음을 쓰고 싶다.

재촉하지 않고 다그치지 않는다.

모자란 나를 알고 모자란 그대로 둔다.


끝내 벗어나지 못한 여기에 내가 있다.

아직도 비틀거리는, 낫지 않은 마음을 품고.


-

풀리지 않은 마음들이 엉켜 있다.

행간에 둔 아직 설명하지 못한 여백들.


-

일어선다.

GO
권투란 자기의 원을 자기 주먹으로 뚫고 나가 원 밖에서 무언가를 빼앗아오고자 하는 행위다. 원 밖에는 강력한 놈들도 잔뜩있어. 빼앗아오기는 커녕 상대방이 네 놈의 원 속으로 쳐들어와 소중한 것을 빼앗아갈 수도 있다. 게다가 당연한 일이지만 얻어 맞으면 아플 것이고, 상대방을 때리는 것도 아픈 일이다. 아니 무엇보다 서로 주먹을 주고받는다는 것은 무서운 일이다. 그런데도 넌 권투를 배우고 싶으냐? 원 안에 가만히 있는 편이 편하고 좋을 텐데. p66
권투란
권투란
20240314

<홍승은의 무해한 말들>


은유 작가님 칼럼을 읽다가 흘러왔다. 읽으면서 와닿는 내용이라 옮긴다. '지금의' 나는 이런 내용에 사로잡혔다는 것. 놓치지 않도록 야금야금 모아야지.


[홍승은의 무해한 말들] 서로의 떨림에 접속하기 | 예스24 채널예스 (yes24.com)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작가의 눈을 바라보았다. 가끔 멈칫하며 당황하는 작가에게 그 자리에 있는 모두가 “작가님 충분히 좋아요!” 같은 응원을 전하기도 했다. 2부에서는 각자에게 엄마가 어떤 의미인지 돌아가며 나눴다. 나는 엄마 이야기를 하다가 펑펑 울어버렸다. 모두가 내 눈물이 부끄럽지 않도록 품어주었다. 작가에게 정말 좋은 시간이었다고 꾸벅 감사 인사를 전하고 책방을 나섰다. 밤바람이 상쾌했다. 내 처음처럼, 작가에게도 그날이 긴장과 설렘, 할 수 있다는 믿음으로 남길 바랐다.


얼마 뒤 내가 두 번째 단행본을 낼 무렵, 출판사에서 사전 서평단을 모집하는 이벤트를 열었다. 서평단 지원서를 쭉 읽다가 익숙한 이름을 발견했다. 김은화 작가였다. ‘제가 처음 북토크를 했을 때, 승은 님은 따뜻한 눈으로 저를 바라봐주었어요. 이번에는 제가 승은 님의 떨림을 응원하고 싶어요.’ 내가 계속 말할 수 있었던 건, 내 약하고 소심한 마음을 알아주는 마음들 덕분이었다. 서로의 품에서 숨지 않고 말할 힘을 무럭무럭 기르던 ‘우리’를 떠올리며, 나는 바란다. 당신의 처음과 떨림에 기꺼이 접속하고 싶다고.'

전설 뒤의 추악함과 역사적 의미들을 돌아보다

호스티스 후마니 제네리스. 익숙하지 않아서 주문같이 들리는 이 국제법 용어 - 인류 모두의 적 - 도 그렇고, 해적이라는 소재는 전설부터 소설, 영화까지 뭔가 낭만적이다. 그러나 기본 해적을 다룬 논픽션들은 낭만은 커녕 일단 경악할만한 비위생과 잔학함으로 가득하며, 이 책의 내용도 핵심은 한 해적을 둘러싼 역사적 맥락이다만 크게 다르지 않다.

뜬소문을 퍼뜨릴 출판문화의 태동과 맞물려 해적 본인들의 자기 pr이 확산되는 걸 보면 속도나 규모의 차는 있어도 지금이랑 크게 다를 것도 없다는 점에 일단 한숨 쉬고, 역사에 만약이란 없지만 그래도 계속 아쉬움을 느끼는 대목들을 접하게 된다. 헨리 에브리가 공격한 것이 어디 다른 동네 배였다면 동인도회사의 운명이 완전히 달라졌을 것이며 인도 사람들은 훗날의 수난을 당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 이익의 분배면에서는 다른 집단들보다 평등한 면이 있었다고는 해도, 자기들끼리 평등하고 남을 해하면 그게 무슨 덕목이 되겠는가. 재판으로 영국이 이제 우린 해적 국가가 아니라고 천명했다만, 결국 제일 나쁜 놈은 재판도 걸지 못했고 훗날 해적질이랑 별로 다를 것도 없는 행위를 했으니 뭐...

모든 사실이 다 씁쓸하지만, 덮으면서 저자의 다음 책을 또 기다리게 되니 재미있음은 틀림없다. 다음 책은 좀 덜 씁쓸하길...

인류 모두의 적 - 해적 한 명이 바꿔놓은 세계사의 결정적 장면
인류 모두의 적 - 해적 한 명이 바꿔놓은 세계사의 결정적 장면
954. 아프기만 한 어른이 되기 싫어서 (강인식)

저자는 이 이야기가 ‘장애인의 인간승리’로 소개되는 걸 원치 않는다고 했다. 박현묵의 서사에도 전형적인 요소는 있다. 그러나 여기에는 뜻밖의 기이한 에너지와 낯선 유쾌함도 있다. ‘찐덕후 감성’도 그 중 하나다. 나는 박현묵은 아라고른이고, 김준범 교수는 간달프, 박현묵의 어머니는 갈라드리엘, 책을 쓴 강인식 기자는 레골라스나 김리라고 상상하기도 했다. 톨킨이 창조한 캐릭터건, 여러 문화권에서 오랜 과거부터 내려온 전승 속 인물이건 간에, 우리가 영웅이라 부르는 존재에게는 몇 가지 공통점이 있다. 그들은 자신만의 가혹한 시련을 겪고, 조력자를 만나 성장하며, 소명을 깨닫고 도전해 불가능해 보였던 일을 해낸다. 그 과정은 언제나 설레고 감동적인데, 아마 우리가 그런 삶을 소망하면서 그렇게 살지 못하기 때문일 것이다.

아프기만 한 어른이 되기 싫어서 - 난치병을 딛고 톨킨의 번역가가 된 박현묵 이야기
아프기만 한 어른이 되기 싫어서 - 난치병을 딛고 톨킨의 번역가가 된 박현묵 이야기
953. 부스러졌지만 파괴되진 않았어 (김가을)

‘아버지 폭력’이라고 불러야 하는 범죄가 있다는 저자의 주장에 동의한다. 우리가 모두 알지만, 어떻게 분류하고 명명해야 할지 몰랐던 폭력 범죄. 훈육, 엄부(嚴父) 같은 단어 뒤에 숨었던. 이 기록과 고백은 투쟁 서사이며, 성장 서사이며, 영웅 서사인 동시에 구원 서사다. 저자는 희생자와 생존자의 자리에 머물지 않는다. 자신의 현실을 깨닫고, 거기에 맞선다. 다른 희생자를 설득하고 돕는다. 김가을 작가는 마침내 적을 쓰러뜨린다. 그리고 놀랍게도 그는 적을 이해하고 구하려 나선다. 그 과정에서 이 투사이자 구원자에게 독서가 무기가 되었다는 사실이 특히 무겁게 다가왔다.

부스러졌지만 파괴되진 않았어 - 아버지폭력에 맞선 스물넷 여성의 내밀하고 치밀한 지적 통찰
부스러졌지만 파괴되진 않았어 - 아버지폭력에 맞선 스물넷 여성의 내밀하고 치밀한 지적 통찰
요새 읽은 책

한 노래 좋아하던 영사기사의 딸이 세계적인 프리마돈나가 되고 그 여정의 동반자들을 만나고 마침내 음악과 하나되기까지 그려낸 감동적 이야기.

나나 무스꾸리 자서전 - 박쥐의 딸
나나 무스꾸리 자서전 - 박쥐의 딸
20240313 빠져있는 것들

은유 작가님 칼럼 <은유의 다가오는 것들>


은유 작가님의 칼럼들이 미치게 좋다. 그냥 다 주옥 같다.


하찮은 만남들에 대한 예의 | 예스24 채널예스 (yes24.com)

청첩장을 여러 번 받게 되면서 결혼에 대한 꺼림칙한 마음이 자꾸 들었는데 이 글이 가렵던 내 의문을 긁어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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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좋아하는 이성과 맺어지는 것이 행복하다고 생각한다. (…) 그래서 축복한다. 결국 여기에는 좋아하는 이성과 맺어진 일이 당사자뿐만 아니라 세상 일반에 행복한 일이라는 사고방식이 전제로 깔려 있다. 이러한 사고방식, 어법, 축복의 방식은 동시에 좋아하는 이성과 맺어지지 못한 사람들은 불행하다든가, 아니면 적어도 이 두 사람만큼 행복하지 않다는 의미를 필연적으로 띠고 만다.”(111쪽)

 

저자는 두 사람의 결혼을 축복한다는 것 자체가 독신이나 동성애자에게는 저주가 된다며 “좋은 것과 나쁜 것을 나누는 규범을 모조리 갖다 버려야 한다. 규범이란 반드시 그것에 의해 배제 당하는 사람들을 산출하기 때문이다”(112쪽)라고 일갈한다. 뭔가 후련했다. 좋음과 나쁨의 전복이 아닌 규범의 용도 폐기. 누구도 소외되지 않으니 배려도 필요치 않은 상태. 누가 결혼했든 이혼했든 합격했든 실직했든 발병했든 서툰 연극 배우처럼 구는 짓은 이제 그만이다.'



울더라도 정확하게 말하는 것 | 예스24 채널예스 (yes24.com)

회사에서 점심 회식 후 오늘(3월 8일) 여성의 날이라고 내가 언급했고, 그 상황에서 여성전용주차장 폐지되었다고 차장님(남성)이 말했다. 그 말이 화두가 되어서 여성들의 의견이 분분해졌다. 이렇게 흘러간 대화 맥락에 이후에도 계속 기분이 나빴는데, 이 글을 읽고 겨우 다잡는다. 지독하고 지겹게 익숙한 흐름이다. 울더라도 정확하게 말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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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낯설고 익숙한 상황, 이야기의 전후 맥락을 살피기보다 자신을 불쑥 내세우는 남성성의 노출에 난 또 찔렸다. 이번엔 정신을 집중해 말했다. 내 몸을 통과한 폭력의 기억에 대한 가치 폄훼를 바로 잡아야 했다. 당신의 발언은 내가 폭력의 당사자여도 문제, 아니어도 문제다. 용기 내어 자기 아픔을 터놓고 그 아픔에 같이 아파하고 감응한 사람들에 대한 결례이자 업신여김이다. 폭력의 피해를 개인의 박복과 불운으로 취급하는 것, 수치심을 심어주어 침묵을 강요하고 사적인 문제로 돌리는 관습이 얼마나 많은 폭력을 양산하고 방치하는지가 오늘 강의 주제라고 정리해주었다.

 

물론 냉정하고 초연하지 못했다. 맥없이 터진 눈물을 꾹꾹 누르며 말했고 그는 주저 없이 사과했다. 자신이 강의 중간에 들어와서 앞의 이야기를 못 들었고 인문학을 배운 지 얼마 안 돼서 잘 몰라서 그렇다는 말도 덧붙였다. 선량한 눈매를 가진 그의 사과를 의심하진 않지만 그럴수록 그의 언행은 이해하기 어려웠다. 강의 내용 파악이 어렵고 공부가 부족하다고 여기면서도 스스로 말하도록 허락했고 기어코 한 수 가르치려 들었으므로.'



슬픔을 공부해야 하는 이유 | 예스24 채널예스 (yes24.com)

분명 해야할 공부다. 제대로 배우지 못하고 오히려 슬픔을 거세하도록 종용하는 사회가 자주 힘겹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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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에 간 아이가 휴가를 나왔다가 들어간 다음 날, 빨래를 개키다가 멈칫했다. 아이가 입던 양말이랑 팬티가 손에 잡혔다. 사람은 가고 없는데 옷가지만 남아 있는 게 영 이상했다. 당분간이겠지만 임자 없는 옷들. 그것을 만지작거리다가 나는 ‘최초의 빨래’를 생각했다. 2014년 4월 16일 이후 처음 돌아간 세탁기에서 나왔을 옷들. 아이가 수학여행 가기 전 벗어놓은 허물들. 그것을 빨고 말리고 개켜도 입을 사람이 더는 없음을 알았을 때, 참사 이전의 일상을 완강하게 간직한 그 옷들은 다시 젖어가지 않았을까.'


'『금요일엔 돌아오렴』은 평범한 사람들의 각성과 저항의 서사로 빛난다. “아이랑 함께 했던 공간과 시간을 아이 없이 모두 다 새로 시작해야 한다”(213쪽)는 사실에 인생 초보가 된 사람들.'



우리는 왜 살수록 빚쟁이가 되는가 | 예스24 채널예스 (yes24.com)

'가난은 상대적이나, 한 존재에게 중요한 것들을 뺏어간다. 밥부터 포기시키고 밥이 매개하는 관계와 건강을 무너뜨린다. 가난은 말을 가로챈다. 감추고 싶은 것은 강제로 노출시키고, 말하고 싶은 것은 들어주지 않는다. 먹고살기 바빠 일일이 사정을 말할 기회가 없다.'


'젊어서 고생은 사서 한다는 말. 아마 그건 고생 끝에 낙이 온 사람에게만 발언권이 주어졌기 때문일 거다. “성실한 나라에서 살아남기 위해 성실했다가 개죽음을 당한”(189쪽)이들은 말이 없다. 특정 지역이 사교육 시키기 좋다는 말. 사교육으로 엘리트 코스를 밟아 기득권층이 된 이들의 언어일 것이다. 사교육에 실패했거나 애초에 사교육을 받을 수 없는 이들의 말은 배제됐다. 재개발이 지역 발전에 좋다는 말도 마찬가지. 매매차익으로 부를 축적한 중산층과 그것을 조장한 토건재벌의 말이다. 쫓겨난 원주민의 말은 무음 처리다. 사회적 편견은 그렇게 생산ㆍ유통 된다.'



글쓰기는 나와 친해지는 일 | 예스24 채널예스 (yes24.com)

“지금까지 제 글이 이상하고 못났던 것은 배움이 부족해서라고 생각했어요. 필사를 하지 않아서, 단어를 많이 몰라서, 독서량이 부족해서. 그게 아니더라고요. 나를 생각하지 않아서였어요. 나를 바라볼 수 있을 만큼의 고독과 외로움이 괴로워서. 그럴 때 늘 찾았던 친구들, 드라마, 영화, 책이 문제였어요. 나 자신과 생각보다 서먹한 사이라는 걸 알았습니다.”



알려주지 않으면 그 이유를 모르시겠어요? | 예스24 채널예스 (yes24.com)

'좀 합리적이 되라고 말하는 변호사, 네 병은 내가 안다고 말하는 의사. 그걸 꼭 알려주지 않으면 하나도 모르고, 알려주어도 들으려고도 하지 않는 그들은 이 시대의 전문가들이다. 타인의 사정을 헤아리기 위해 진득한 노력을 기울이는 인내심이 부족하고, 한 인간의 복잡한 내면을 자기 지식으로 성급히 단순화해버리는 재주에만 능하다.'


'합리성으로 포획되지 않는 삶, 실패로서만 확인되는 앎이 있다. 그것은 나를 원점으로 돌려놓는다. 아내의 병을 고치겠다는 의지가 확고한 남편이 정작 아내의 말을 듣지 못하듯이, 어떤 목표에 사로잡히면 사람이 들어설 자리가 없다. 성실함의 중단, 합리성의 거부를 실천한 바틀비처럼 나도 성실함과 합리성의 스위치를 몸에서 꺼두어야 할까 보다. 그래야 사람이 보일 것 같다.'



성폭력 가해자에게 편지를 보냈다 | 예스24 채널예스 (yes24.com)

'용서는 신이 지급하는 쿠폰이 아니고 인간의 용기를 거름 삼아 자라는 나무라는 것. 그래서 가해자와 피해자, 공동체 구성원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용기 내어 정성스럽게 가꾸어야 한다는 것 말이다. 살아있음 자체가 용기다. “삶은 계속된다. 한껏 이용하라. 네가 가진 게 별로 없다 해도 삶만은 네 것이다.”'

타인의 고통에 응답하는 공부 / 김승섭

이 책을 읽게 된 계기가 떠오르지 않는다.

평소 자주 가는 도서관에 없어서 상호대차를 해서 읽었다.

한 번 책을 빌리면 서너 권을 같이 빌리는 터라 읽기까지 꽤 묵혀두었던 책이다. 사실 책장을 펼치고 목차를 보았을 땐, 아차 싶었다. 내가 상상했던 책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분명 어떤 인상을 가졌기 때문에 이 책을 고르게 됐을텐데 이상하게도 기억이 없다.)


덜컥 겁이 났다. 나는 괜찮은 사람처럼 보이고는 싶지만 딱히 약자, 소수자들에 대해 깊게 생각해본 적이 없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책에서 그들에 대해서 콕 집어 얘기하겠다고 하니... '읽지 말고 반납할까?'하는 생각도 들었다.


기왕 빌린 책이니 한 번 읽어보고 정 아니다 싶으면 반납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리고 하루 만에 거의 다 읽었다.


이 책은 책 곳곳에서 공동체가 소수자들을 혐오로부터 지켜야 하는 이유에 대해 설명한다. 소수자들에는 장애인, 동성애자, 트랜스젠더, 노동자 등이 포함된다. '공동체가 나를 보호해주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만연해지면 결국에는 공동체가 무너지게 된다는 거다.


저자는 우리가 인간으로서 편견을 갖고 있는다는 게 당연하다고 말한다. 하지만 타인의 삶에 대해 판단할 때 조심하지 않는 사회 분위기 걱정스럽다고 지적한다.


안전보건학이라는 존재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없다. 이 분야에서 꾸준히 연구가 이뤄지고 있다는 것도 몰랐다. 이 책은 다양한 분야의 연구 결과를 수치로, 통계로 소수자들의 삶을 보여준다. 그들의 고통의 크기를 숫자로 보여준다.


보고싶지 않다고 외면하던 현실이 내 눈 앞에 펼쳐졌다. 편치 않은 주제임에도 술술 읽히던 건 저자의 조심스럽고도 단단했던 마음 때문일 것이다. 연구 보고서가 아니라 책이기 때문에 더욱 더 신경써서 글을 쓴다던 저자의 말이 떠오른다.


이 책 한 권을 읽었다고 나라는 사람이 크게 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소수자들뿐만 아니라 타인을 대할 때 편견으로 쉽게 재단하지는 말아야겠다는 다짐을 해본다. 상대방의 삶에 대해 조금 더 생각해보는 것, 이해가 어렵다고 해서 포기하지 않을 것. 할 수 있는 만큼만, 조금씩 나아가보기로 한다.

타인의 고통에 응답하는 공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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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사/책증정] 한 편의 소설과도 같은 <닥터프렌즈의 오마이갓 세계사> 함께 읽어요:)[📕수북탐독] 1. 속도의 안내자⭐수림문학상 수상작 함께 읽어요[박소해의 장르살롱] 15. 경계 없는 작가 무경의 세 가지 경계 [책증정] [꿈꾸는 책들의 특급변소] 김호연 작가의 <나의 돈키호테>를 함께 읽어요 [북토크/책 증정]경제경영도서 <소비 본능>같이 읽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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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증정] [꿈꾸는 책들의 특급변소] 김호연 작가의 <나의 돈키호테>를 함께 읽어요 차무진 작가와 귀주대첩을 다룬 장편소설 <여우의 계절>을 함께 읽어요최하나 작가와 <반짝반짝 샛별야학>을 함께 읽어요.
6인의 평론가들이 주목한 이 계절의 소설!
다음 세대에도 읽힐 작품을 찾는 [이 계절의 소설] 네 번째 계절 #1다음 세대에도 읽힐 작품을 찾는 [이 계절의 소설] 네 번째 계절 #2
책장에서 먼지만 쌓여 있던 이 책, 망나니누나와 함께 되살려봐요.
[Re:Fresh] 2.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다시 읽어요. [Re:Fresh] 1. 『원미동 사람들』 다시 읽어요.
이런 주제로도 독서모임이?
혹시 필사 좋아하세요?문학편식쟁이의 수학공부! 50일 수학(상) 함께 풀어요.스몰 색채 워크샵
어서 오세요. 연극 보고 이야기하는 모임은 처음이시죠?
[그믐연뮤클럽의 서막 & 도박사 번외편]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 이반과 스메르자코프"[그믐밤] 10. 도박사 3탄, 까라마조프 씨네 형제들@수북강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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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증정] 텍스티와 함께 『편지 가게 글월』 함께 읽어요!
🐷 꿀돼지님의 꿀같은 독서 기록들
권여선 소설집 『아직 멀었다는 말』(문학동네)은모든 장편소설 『애주가의 결심』(은행나무)수전 팔루디 『다크룸』(아르테)최현숙 『할매의 탄생』(글항아리)
🎁 여러분의 활발한 독서 생활을 응원하며 그믐이 선물을 드려요.
[인생책 5문 5답] , [싱글 챌린지] 완수자에게 선물을 드립니다
이 봄, 시집 한 권 🌿🌷
여드레 동안 시집 한 권 읽기 12여드레 동안 시집 한 권 읽기 10여드레 동안 시집 한 권 읽기 9여드레 동안 시집 한 권 읽기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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