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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집] [그믐밤] 16. 하루키 읽는 밤 @수북강녕

2023년 11월 12일(음력 그믐날) 열여섯 번째 그믐밤은 은평한옥마을 책방 수북강녕에서 열립니다.


이번 그믐밤은 하루키와 함께 해요. 그믐밤에서는 하루키의 최신간에 그치지 않고 그의 모든 작품을 아우르려 합니다.


오프라인 그믐밤에 앞서 먼저 열리는 온라인 그믐밤에서는 각자 하나씩 하루키 작품을 선택하고, 29일 동안 읽습니다. 읽었던 책을 다시 읽어도 좋고, 새롭게 읽어도 좋아요. 소설도 좋고 에세이도 좋습니다. 하나로 부족하시면 여러 권 읽으셔도 좋습니다. 각자의 진도에 따라 읽어나가며 문장 수집이든 감성 폭발이든, 무엇이든 자유롭게 맘껏 나누어 보면 좋겠습니다. 모임이 진행되는 동안에는 수북강녕 책방지기님이 게릴라 퀴즈도 많이 낼 예정이에요, 많이 참여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믐밤을 통해 원래 하루키를 좋아하시던 분도, 이번 기회에 새로 만나시는 분도 모두 뜻깊은 시간 보내실 거라 믿어 의심치 않아요.


11월 12일에 열리는 오프라인 그믐밤에서는 하루키에 관한 저마다의 키워드를 가지고 자기 소개와 책 이야기를 나눌 텐데요. ‘내 청춘의 하루키’, ‘내 인생의 구원자’, ‘노벨상과 하루키’, ‘처음 만나는 하루키’ 등 저마다의 하루키를 소개해 주시면, 유쾌한 공감과 신선한 호기심으로 채워지는 모임이 될 거예요.


☾ 열여섯 번째 온라인 그믐밤


-모임 기간 : 10월 22일(일) ~ 11월 19일(일) (총 29일간)


[온라인 그믐밤 참여하기] 16. 하루키 읽는 밤 @수북강녕


☾열여섯 번째 오프라인 그믐밤

*온라인 그믐밤에 참여하지 않으셔도 신청하실 수 있는 모임이에요!


-언제 : 11월 12일 (음력 그믐날) 일요일 저녁 7시 29분 (약 1시간 29분 진행 예상)

-인원 : 15명

-어디서 : 수북강녕 (서울 은평구 진관길 4 1층) https://naver.me/xjilI35I


-진행 방식

1) 하루키에 관한 자신만의 키워드를 준비해 주세요. 예시) ‘내 청춘의 하루키’, ‘나의 인생책 노르웨이의 숲’, ‘노벨상과 하루키’, ‘왜 좋아하는지 모르겠는 하루키’ 등

2) 키워드와 사연을 알려주시고 그의 책 중 가장 좋아하는 책 한 권에 대한 이야기를 공유해 주세요.


-참가 비용 : 10,000원

*16회 그믐밤 참가 비용 전액은 수북강녕에 전달됩니다. 참가비 1만원은 당일 책 구매하실 경우 적립금처럼 사용 가능해요. (예를들어 1만 5천원 도서 구매시 5천원에 책을 드려요. 환불은 어려우니 마음에 드시는 책을 골라 보세요~)


-신청 방법 : https://forms.gle/jCYQBut6QyHgnpVGA

그믐 공식 인스타그램 계정 관련해 공지 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지식공동체 그믐입니다.


그믐의 공식 인스타그램 계정이 해킹으로 인해, 현재 접속할 수 없습니다.

그믐의 소식을 전하기 위해 그믐 임시 계정을 개설했습니다. @gmeum_29


계정이 복구될 때까지 그믐의 임시 인스타그램 계정과 다른 SNS 계정으로 소식을 전하도록 하겠습니다.


다음은 그믐의 SNS 계정입니다.


*인스타그램(임시) https://www.instagram.com/gmeum_29/

*페이스북 https://www.facebook.com/gmeum

*트위터 https://twitter.com/gmeum29불편을 끼쳐드려서 죄송합니다.


그믐의 공식 인스타그램 계정이 다시 복구되면, 빠르게 소식 전하겠습니다.

그믐에 대한 문의사항은 contact@gmeum.com 로 메일 보내주세요.

감사합니다.


지식공동체 그믐 드림

내 술상 위의 자산어보
밤이 깊어간다. 나는 외로움을 느낀다. 하루종일 사람 없는 바닷가에서 내가 내는 소리를 종일 듣고 사는데 제기랄, 어찌 안 그러겠는가. 이곳은 듣는 것으로 하루가 간다. 새벽에 일찍 깨어 바람 소릴 듣는다. 파도치는 소리도 들린다. 해가 뜨면 새 지저귀는 소리가 들린다. 날이 좋으면 관광객들 지나가는 소리 또한 들린다. 그것 말고는 내가 내는 소리들뿐이다. 포장을 벗기면 똑같은 모양과 표정을 하고 있는 스무 개비의 담배처럼 하루하루가 그렇다.   이렇게 가만히 시간을 보내는 것이 사는 것일까. 혼자 묻는다. 그리고 답한다. 글쎄, 이게 아니면 뭐겠어. 휼륭한 몇몇을 제외하고는 사람들은 무언가를 안 하는 게 가장 좋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냥 단순한 삶을 노련하게 사는 것만 있을 뿐이다.   최소한 이게 평화다. 전쟁이 나면 우리는 지난 시절의 무료한 일상을 평화였다고 말한다. 동화나 영화에서 "평화로운 마을이 있었습니다"라고 했을 때 아무런 일이 일어나지 않는 심심한 곳이라는 소리이다. 아주 평화로운 마을은 아주 따분한 곳이라는 소리도 된다. 그러니까 전쟁의 반대말은 일상이다. 우리가 행복과 쾌감을 느끼는 게 이 일상 속에서이다. 물론 당시는 모른다. 그게 깨진 다음에야 그 의미를 획득하는 것. 낚시도 비슷하다. 물고기를 낚아올리는 순간이 짜릿하다고는 하지만 말 그대로 순간이다. 조금 지난 다음 그때를 떠올려보며 그랬었지, 하게 된다. 이거, 어떤 면에서는 불행이다. 또 한잔 마신다. 오늘 잘 들어간다. ㅡ page 65   선수에 서다.   이곳에 오면 엔진 소리 하나 들리지 않는다. 바람과 파도가 부드럽게 갈라지는 소리만 난다. 나는 물방울 행성의 얇은 껍질을 미끄러지고 있는 중이다. 내가 원하는 자유는 이 정도이다. 하늘을 날기 원하는 것도 아니고 돌고래처럼 수심을 제집으로 삼고자 하는 것도 아니다. 바다와 허공의 경계인 얇은 막, 수면이면 거처로 충분하다.   땅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사람 몸으로 최대한 높이 뛰어봐도 1.5m. 죽어서는 딱 그만큼의 구덩이를 판다. 두더지처럼 굴을 파고 살자는 것이 아니다. 땅과 허공의 접점인 지면, 거기가 삶의 터전이다. 아프리카 최남단 희망봉에서 시베리아까지 걸어간다 하더라도 지표면 외에는 밟을 게 없다.   이렇게 이질적인 세상이 만나고 있는 접점에서 우리는 산다. 2차원적이다. 3차원을 인식하는 2차원적 생물. 그게 나다. 자유는 금기와 질서의 형태가 만들어진 상태에서 행하는 것. 더 이상의 자유는 불편이고 죽음이다. 물고기는 공기에서 익사하고 새는 물속에서 질식사하게 된다.   그러면서 두 세계의 경계는 또한 얼마나 아름다운가. 고매한 신부님과 오찬을 나누고 나오는 길에 부랑자와 같이 쪼그려 앉아서 빠는 꽁초의 고소함. 콘크리트 타설 작업 뒤에 만나는 주모의 손. 오아시스가 보이는 모래언덕. 비 그친 뒤의 햇살. 단식과 식사. 감금과 탈출. 만남과 이별. 흑과 백. 농과 담. 그렇게 두 세계 사이에서의 진자 운동.   오늘 새벽 느닷없이 발기한 물건도 내 두 다리 사이에 있다. ㅡ page 105   오후에 휴게소에서 만난 선원은 술을 좋아할 것 같았다. 나는 말했다.   웬걸요. 저도 엔간히 마시고 살았습죠. 버릇처럼 손이 가고 거부당하지도 않고 새삼 덧붙일 정이 있는 것도 아닌데 아직 붙어 산다는 점에서 저와 술은 그쪽분과 부인 같은 관계일 겁니다.   술, 하면 우선 비틀거리며 귀가하는 집안 어른에 대한 추억부터 떠올리쟎습니까? 그런 경우 손에 무언가 맛있는 게 들려 있곤 하니까요. 하지만 우리 집은 알코올과 친해보지 못한 이들이 대를 이어 왔길래 그런 사람이 없었습니다.   아무도 없었기에 제가 마시기 시작했죠. 저라도 마셔야 했죠. 술 마시는 사람이 한 명도 없다면 그게 집구석이겠어요? 감옥 아니면 수도원이지. 십대 후반부터 시작했으니 삼십 년 넘게 꾸준히 장복해 온 셈입니다. 그 부분만큼은 성실했죠. 좀 일찍 까진 편이었지만 지금에서야 따질 성질의 것은 아니죠. 술 담배 전혀 안 하고 착실하게 공부만 하던 친구 중에는 벌써 죽어 버린 애도 있으니까요.   일년 365일 중에서 안 마신 날 꼽아보면 손가락이 남아 돌 정도니 제가 들었던 잔의 횟수만 가지고도 고차원 수학방정식 몇 개 만들어낼 만할 겁니다. 이 정도면 환급까지는 아니더라도 소주 회사에서 감사패 정도는 받을 만하지 않겠어요?   그러니 술과 관련된 많은 추억이 있습니다. 철도 레일 따라 걸으며 깡소주 마시던 시절도 있었고 동네 거지 형님하고 비 맞으면서 밤새 나눴던 비닐 소주잔 풍경도 있었고 심지어 아예 포장마차를 하면서 술을 팔기도 했으니까요. 그 많은 사건과 장면들을 어떻게 다 말하겠어요.   어느 정도 가깝게 지냈는지는 소주가 없어져보니까 알겠습디다.  처음 외국여행에서 돌아왔을 때 짐 부려놓고 부리나케 중국집으로 달려가 아줌마 짬뽕, 소주부터 먼저, 외치게 되더군요. 눈보다 무서운 게 입입디다. 허기도 그런 허기가 없지요.   근해이긴 했지만 어선을 타고 먼바다로 나간 게 20대 중반이었습니다. 혹시 어선도 타셨나요? 아, 바로 상선으로 오셨군요. 잘하셨습니다. 공연히 고생할 필요 없지요.   어선이라는 게 생각보다 훨씬 더 험한 곳입니다. 배멀미, 좁아터진 선실, 깨끗한거라고는 단 한 톨도 없는 주변 환경, 끝없는 일, 거친 선원들, 자 어떻게 버틸까요.   먼저, 당연히 멀미합니다. 경험해보셨겠지만 몸에 병이 하나도 없는데 죽고 싶어질 때가 바로 멀미할 때입니다. 특히 풍랑속의 낡은 어선이라면 더 심각하죠. 약은 하납니다. 소주를 마시죠. 잔이나 종지로는 어림도 없습니다. 이런 바가지에 댓병 하나 가득 따르고 원샷을 억지로 시킵니다. 일은 해야 하니까 죽자 사자 마십니다. 좋아지거나 아주 나빠지거나 둘 중 하나죠.   일하다가 배고픕니다. 소주 마십니다. 외롭습니다. 소주 마십니다. 힘듭니다. 소주 마십니다. 일이 남았는데 잠 쏟아집니다. 소주 마십니다. 다칩니다. 소주로 씯어내고 소주 마십니다. 선장이 지랄 합니다. 소주 마십니다. 선장 저도 마십니다. 동료와 시비 붙습니다. 소주 마시면서 화해 합니다. 그러다 다시 싸우고 또 소주 마십니다. 여자 생각 간절합니다. 소주 마십니다. 고기가 잘 잡힙니다. 소주 마십니다. 고기가 안 잡힙니다. 소주 마십니다. 항구로 돌아옵니다. 소주 마십니다.   그곳에서는 술이 가진 기본 영역, 그러니까 관계형성과 에로티시즘을 넘어선 물리적인 치료약으로 쓰입니다. 물론 좀 극단적인 경우입니다만, 우리 일상에서도 술이 가진 파급효과는 팔백 쪽짜리 법전 보다도 크고 쎄죠.   살다보면 생기는 이런저런 문제를 가장 빨리 해결해 내는 것이 술 아니겠어요? 술 말고 무엇이 낯선 것을 곧바로 익숙하게 하고, 우울한 마음을 풀어주고, 아픈 것을 잊게 해주며 미운 것을 용서하게 해줄 수 있을까요. 무엇이 그 변화무쌍한 능력을 대신할 수 있겠어요.   그렇지만 그 반대에도 고스란히 존재합니다. 마시다 보면 익숙한 것이 낯설어지고, 용서한 사람을 다시 미워하게 되고, 괜챦았던 마음이 슬퍼지고, 나았던 몸이 다시 아프게 되기도 하죠. 물리학 이론 중에 '열역학 2법칙'이라고 있습니다.  간단하게 말해 질서와 무질서는 같은 비율로 공존한다는 이론이쟎아요? 제 생각에는 술 마시다가 만들어낸 것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악마가 바쁠 때 술을 대신 보낸다고 합디다만 악마가 그렇게 떠벌리는 것을 직접 보았다는 증인은 없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 느닷없는 변화를 '소주 한 병의 무서움'이라고 부릅니다. 그럴 수밖에요. 때려 죽이고 싶은 놈하고 엉뚱하게도 어깨동무를 하고 노래를 부르게 되는가 하면 즐거웠던 분위기가 갑자기 살벌해지는 이 변신의 동기는 늘 소주 한 병입니다. 참 알쏭달쏭해요.   비슐라르라고 평생 끙끙대다가 늙어버린 철학자가 있었는데, 이 양반이 이른바 4대 원소라는 물 불 흙 공기에 대한 이미지 연구 중에 술 때문에 아주 곤욕을 치뤘답니다. 모양은 물이면서 성질은 불이라서요. 뭐, 약이 되는 독, 독이 되는 약, 그런 소리일 수도 있겠지만 그 양반, 그런 고민도 한잔 마시며 했으면 쉬웠을지도 모르죠. 고민이 안 풀리면 마시는 게 또 술이니까요.   그래서 저는 술에 취했을 때 아름다운 사람을 최고로 칩니다. 흥취가 솟아났는데도 부드럽고 조심스럽다면 그 사람은 진짜입니다. 그런 사람은 꼭 붙들고 평생 친구로 지내야 합니다. 그런 친구 있나요? 저는 몇 명 있습니다. 그런 친구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합니다. 그러니 어찌 함께 안 마실 수 있겠어요. 아름다운데.   내 이야기를 들은 그가 소주 세 병을 가져다주었다. ㅡ page 106~110   그런 바다가 나보다 먼저 있었다. 바다가 태어나고 수십억 년 뒤에 내가 태어났다. 파도도 나보다 먼저 있었다. 쉬지 않고 파도는 밀려 온다. 언젠가 나는 파도의 수를 세어보다가 그만 둔 적이 있다. 그것은 눈 깜박임이나 호흡의 수를 세는것 만큼이나 의미 없는 짓이었다. 바다와 나의 차이 만큼이나.   사람들이 묻는다. 그런 바다에서 계속 살 생각이 드느냐. 나는 되묻는다. 조부모나 부모가 입원했다가 죽어버린 그 병원으로 당신은 또 찾아가지 않는가. 사람이란 오랫동안 부모가 죽었던 집에서 자신의 죽음을 숙명적으로 기다리머 살아온 존재들 아니었던가.   또한 바다는 움직임을 멈추면 권태의 덩어리가 되는 존재이다. 여행 온 사람들은 바다가 보이는 창문에 거의 목숨을 걸다시피 하지만, 그런 방을 구하지 못한 가장은 무능력하다고 낙인찍히곤 하지만, 삼십 분만 지나면 아무도 창밖을 보지 않는다. 커튼 닫고 텔레비전이나 휴대폰을 바라본다. 저 변화 없는 수평이 부담스러운 것이다.   그러나 그 순간을 견디고 더 오래 바라보면 보통의 따분함과는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된다. 아주 맑은 권태라서 저절로 바닷가에 눕게 된다. 누워서 옆으로 보는 바다. 바다와 같은 자세를 하다보면 마침내 내가 이것이 되어도 좋고 저것이 되어도 상관없는 지경이 되기도 한다. 그렇게 극한의 정적이 되면 움직이는 것은 시간 뿐이다. 그때 들리는 어떤 소리. 바다의 호흡일 수도 있고 시간 자체가 흘러가는 소리일 수도 있고 내 몸의 세포가 미세하게 늙어가고 있는 소리일 수도 있다. 뭐라고 해도 상관없다.   밤 깊어 달 떠오른다. 달빛이 수평선에 어른거린다.   숱한 배가 지나갔지만 저곳엔 아무 흔적이 없다. 바다는 흔적을 지우기 때문에 대상을 매 순간 독립체, 독자이자 고아로 만들어 버린다. 누구나 고스란히 한 존재가 된다. 달 하나에 나 하나. 그리고 수면의 달빛. 아름답다. 이 행성에서 인간이 독하게 살아 남은 이유는 이를테면 이런 풍경을 좋아하기 때문일 것이다. 이 시간이면 갈매기와 살모사는 눈감고 자고 있다. 수달은 먹이 쫓느라 정신없을 것이다. 개와 고양이도 큰 차이 없다. 사람만 이 처연한 풍경을 사랑하는 것이다. 슬픔과 아름다움. 그건 삶을 인식하니 죽음도 인식할 수밖에 없는 능력 때문이다. 그것 때문에 종교와 철학과 문학이 생겼다. 음악과 미술도. 그리고 짐작.   200년 전, 한 사람이 이 자리에서 지금의 나처럼 막연히 바다를 바라보았을 것이다. 그는 어떤 생각을 했을까. 70년 전 어떤 사람도 이곳에서 이렇게 밤마다 달빛을 보았을 것이다. 지금은 내가 이러고 있다. 그들의 고민이나 한숨은 어디에도 흔적이 없다. 그러고 보면 바다와 시간은 닮아 있다. 사십년 뒤에 이 자리에서 이러고 있게 될 사람은 이제 막 가갸거겨를 배우기 시작했거나 아니면 아직도 우주를 유영하며 이 물방울 별로 흘러오고 있을 것이다.   나는 언젠가, 우주의 무한한 시간을 견디기 위해 릴레이 선수 처럼 대를 잇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기 때문에 우리는 자식을 낳는다고 말한 적 있다. 당장, 별의 수명과 인간의 그것이 워낙 차이가 나기 때문. 바다를 대하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한 사람 생애로는 터무니 없이 짧아 순서대로 이렇게 이 자리에 앉아 있는 것이다.   나는 그중 한 명일뿐이라서 새로운 사람이 찾아오기 전에 이미 이 행성에서 사라져 있을 것이다. 죽음 뒤의 모습에 대하여 내 예감은 몇 번 바뀌었다. 아이들 장래희망처럼 말이다. 지금 이렇게 무언가를 생각하고 느끼는 스스로가 종적도 없이 사라진다는 상상이 되지 않아 혼령으로나마 남을 것이라 생각했고, 그렇다면 그동안 지구에서 살다가 죽은 현생인류가 모두 990억 명이라는데 그들 혼은 모두 어디 가 있는 거지? 따져보다가 그런 것은 없겠군, 그냥 소멸하는 거겠군, 생각하기도 햇다.   이 행성에 스며들었을 때 나는 보이지도 않는 한 점이었다. 지금은 75킬로그램이다. 죽으면 이 몸무게는 사라지게 된다. 아마 나는 아주 작은 세포로 나뉘어서 흩어질 것이다. 우주에 떠 있는 별의 숫자만큼 쪼개져서 나무나 풀, 새와 물고기, 흙덩이나 다른 사람의 작은 부분이 될 것이다. 아주 먼 훗날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생각지도 못한 모습으로 재조립되기 전까지 그럴 것이다. 하지만 새로운 모습으로 다시 만들어질 가능성은 거의 없다.   달이 높아지자 수평선에서 이곳까지 수많은 잔파도가 달빛에 드러난다. 보기에 좋다. 나의 바다 이야기는 여기까지이다.   배가 한 척 생긴다면 당신은 어떤 행로를 하겠는가. ㅡ page 344~347
밤이
밤이
한석준의 말하기 수업

윌라 오디오북으로 들었는데 저자 직강 느낌으로 저자인 한석준 아나운서가 직접 낭독한다. 스피치를 소재로하는 자기 개발서.

한석준의 말하기 수업
한석준의 말하기 수업
23-041 | 연여름, 리시안셔스

황금가지 (231001~231011)


❝ 별점: ★★★★☆

❝ 한줄평: ‘꿈같은 빛깔’의 아름다운 이야기 아홉 편

❝ 키워드: 인간성, 반려 | 상실, 극복 | 세탁, 얼룩 | 효율, 즐거움 | 초능력, 히어로 | 좀비, 사회 복귀 | 평행 세계, 차별 | 의식 불명, 이끼 | 고해성사, 기억

❝ 추천: ‘연여름 작가가 마음에 남기는 발자국’이 궁금한 사람


❝ 꿈같은 빛깔의 칵테일 한 잔이었다고 생각해 주세요. ❞

/ 「오프 더 레코드」 (p.384)


📝 (23/10/12) ‘마음에 발자국을 남기는 작가, 연여름이 던지는 인간에 관한 아홉 개의 질문들’이라는 책 표지의 소개처럼, 아홉 편의 단편은 우리가 인간으로 살아가며 고민해 볼 여러 질문들을 마음 한 구석에 가득 남긴다.


  때론 마음이 뭉클해질 정도로 아련하고 슬프지만, 때론 유쾌하고 발랄하다. 때론 꿈 같이 환상적이고 비현실적이지만, 때론 우리의 현실을 닮아 있다. ‘꿈같은 빛깔의 칵테일’을 마신 듯한 몽환적이고도 환상적인 이야기들의 세계. 연여름 작가님이 그려낼 다른 세계들이 더욱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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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시안셔스」 ⛤

: 사랑의 기억만 안고 떠나갈 푸른 길


| 그럴 수도 있을 것이다. 운이 좋다면 조금 더 오래 살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앞으로 규희는 없을 것이다. 나에게 꽃의 이름을 알려 주던 규희는. 나에게 새로운 두려움을 알게 한 규희는. 가끔은 밉거나 나를 슬프게 해도 그것들을 기꺼이 덮을 만한 애정을 갖게 한 규희는. 이런 상처마저도 감수하게 하는 규희는. (p.60-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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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금치 소테」 ⛤

: 망각할 수는 있어도 도려낼 수는 없는 소중한 기억


| 옵션은 상처 난 부분을 지울 뿐, 새로운 행복을 가져와 주는 도구는 아니다. 그건 미하도 이미 알고 있었다. (p.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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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백」

: 마음의 얼룩도 흔적 없이 깨끗하게 세탁할 수 있다면


| 의료진은 환자의 고통을, 휴인은 빨래의 오염을, 관리자는 휴인에게 불필요한 데이터를 제거한다. 빙글빙글 돌아가는 세탁조처럼, 병원은 얼룩을 지우는 반복 속에 있다. (p.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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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오류는 아주 심각한 것 같아요」 ⛤

: 더없이 인간적이어서 슬픈 미레이의 마지막 말


| “즐거움은 효율로 계산할 수 없다고요. 이걸 만들면서 즐거웠잖아요. 미레이 씨도." (p.1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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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빙 라이트」

: 세상은 못 구해도 일상은 구할 수 있는 히어로


| 오늘밤 까지의 공포나 불안 같은 건 이 스파클라로 태워 보내기로 했다. 친애하는 트친님이자 존잘님과 함께. 짧고도 길었던 대정전을 끝내며.

  불붙일 라이터는 따로 필요 없을 것이다. (p.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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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비 보호 구역」

: 좀비 바이러스가 퍼져도 또다시 어떻게든 돌아가는 세상


| "먹고 먹히는 세상이란 말, 좀비 사태 아닐 때도 있었잖아요. 세상이 변했다고 해도 그렇게까지 많이 변한 건 아닐 거예요. 어쩌면.” (p.2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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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아 패스파인더」 ⛤

: 더 나아질 세상을 위해 멈추지 말아야 할 노력


| "그런데도 도와준대?”

  "응."

  “왜?”

  “결국 우린 다 다른 곳에서 왔으니까?" (p.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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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도」

: 기다리겠다던 사람을 기다리는 사람의 일


| 기다리는 건 네가 아닌, 내가 되었다.

  네게 남은 나의 기억이 얼마나 될지, 답을 알 수 없는 나만 여기에 덩그러니 남았다. (p.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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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프 더 레코드」 ⛤

: ‘꿈같은 빛깔의 칵테일 한 잔’과 함께 한 아련한 고해성사


| 맞아요. 아무리 두들겨도 결코 납작해지지 않는, 무뎌질 줄 모르는 추억은 누구에게나 있죠. (p.3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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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시안셔스
리시안셔스
23-040 | 구병모, 파쇄

위즈덤하우스 (e-book, 231010)


❝ 별점: ★★★★

❝ 한줄평: 돌이킬 수 없고, 돌아갈 수 없는

❝ 키워드: #훈련 #생각 #행동 #칼 #피 #킬러 

❝ 추천: 『파과』를 재미있게 읽었거나 읽고 싶었던 사람


❝ 일단 마음먹고 칼을 집었으면 뜸 들이지 마. ❞


🎯 첫 문장: 강선을 통과한 탄환이 일으키는 회전의 감각이 팔꿈치를 타고 나선형으로 흐른다. (p.5)


📝 (23/10/10) 장편소설 『파과』의 외전으로, 조각(爪角)이 어떻게 킬러가 되었는지를 다루고 있는 단편이다. 아직 『파과』를 읽지 않았는데 『파쇄』 -> 『파과』 순으로 읽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아 이 작품을 먼저 읽게 되었다.


  ‘심장 한가운데 도달해보기는커녕 아직 피 한 방울 묻혀본 적도, 무언가를 썰거나 끊어본 적도 없는 깨끗한 칼날’(p.13) 같았던 어린 ‘조각’이 그를 가르치는 스승이 ‘지시하거나 재촉하는 대로 변해가며 그가 바로잡아야 하는 몸이 아니라, 그냥 그대로 그의 몸 자체가 되어’(p.33) 마지막에는 결국 ‘과녁 아닌 생명을 쏘며 약탈과 섬멸의 언어로밖에 표현할 길 없는 삶을 시작’(p.42)하게 되는 과정을 그려내고 있는 이 소설은 『파과』의 60대 킬러 ‘조각’의 삶을 너무나도 궁금하게 만든다. 돌이킬 수 없는 한 번의 총성, 그리고 돌아갈 수 없는 이전의 삶. 『파쇄』와 『파과』 사이 ‘조각’의 삶에는 무수한 파괴가 있었을까? 그 사이 시간의 이야기도 문득 궁금해졌다.


  구병모 작가님의 다른 소설들처럼 이 소설의 문장들 역시 매우 감각적이고 유려하단 생각을 했다. 생생히 만져질 것 같은 문장들. 그건 내가 계속 구병모 작가님의 소설을 읽고 싶은 이유다.


———······———······———


| 아니, 둘 다 아니다. 늘 생각하되, 생각에서 행동까지 시간이 걸리면 안 돼.

  생각은 매 순간 해야 하지만, 생각에 빠지면 죽어. (p.6)


| 앞으로의 일을 하기 위해 그녀가 되어야 하는 몸, 이룩해야 하는 몸을 부단히 주입시키며 존재 자체를 전지(剪枝)하여죽음의 과수원을 가꿀 것이다. (p.16)


| 손에 쥔 금속이 땀으로 미끈거린다. 그리고 어쩌면 기회는 한 번이다. (...)

  그녀는 두 개의 손 안에 한 세상을 움켜쥐고 부숴버린다. 세상은 불과 한 번의 총성으로 인해, 짓무른 과일처럼 간단히 부서진다. 그 파열음이 벼락처럼 귓전을 갈기지만 그녀는 소리에 무너지지 않는다. 눈앞이 맵다. 이걸로 그 무엇도 돌이킬 수 없고 어디로도 돌아갈 수 없다. (...) 손안에 쥔—애당초 쥔 게 있었던 적이 있는지는 모르겠으나—과일과 같은 세상은 씨앗조차 남지 않고, 과육은 진작 분해가 끝난 시신과 같이 흔적도 없다. (p.40)


———······———······———

파쇄
파쇄
어셔가의 몰락

올해 저는 모 온라인 북클럽에, 동네 서점으로 참여를 했었습니다.

당시 진행했던 책은 [공포를 보여주마]였어요.


내용을 간략히 소개하자면,

포의 임종 당시 그가 불렀다던 미지의 인물인 “레이놀즈”.

그 이름의 주인공이 누구인지 끝내 밝혀내지 못했어요.

작가는 여기에서 착안하여 포와 그의 가족, 지인들 그리고 레이놀즈를 등장 시켜 하나의 이야기를 완성 했습니다. 그래서 이 책은 제목과는 달리 무섭거나 호러블 하지는 않아요.


북클럽에서 포와 관련된 영화를 보기로 했는데 그 때에는 왓챠에 “어셔가의 몰락”.

이 한 편 뿐이라 날짜와 시간을 정해 왓챠 파티로 함께 봤어요.

(그 외 OTT는 파티로 보는게 안 되거나 아니면 포 관련 드라마, 영화가 없었어요)

1920년대 후반 아방가르드 예술 영화로 칭송 받던 영화로, 영상미는 몹시 훌륭했으나 사실 좀 어려운 영화이기는 했어요. (웃음)(프랑스 예술 영화니 뭐…네…)

흑백 필름으로 촬영 되어 대사도 몇 줄 없었지만 꽤나 고딕 호러적이며 으스스했었죠.


이 이야기를 왜하냐면요.

오늘 (10월 12일) 넷플릭스에 [어셔가의 몰락]이 8부작으로 공개 되었기 때문입니다!!

트레버 메이시가 제작했구요 (힐 하우스의 유령 제작한 분)

각 화 제목은 :


1.음울한 한밤중.

2.붉은 죽음의 가면

3.모르그가의 살인 사건

4.검은 고양이

5.고자질하는 심장

6.황금벌레

7.함정과 진자

8.갈까마귀


입니다.


애드거 앨런 포의 현대적 재해석.

엄청 흥미진진하지 않나요.

아직 “힐 하우스의 유령”을 넷플릭스에서 보지 않으셨다면 한 번쯤 보시기를 권합니다.


이렇게 호러의 붐은 차근차근 오는가 봐요.


어셔가의 몰락
어셔가의 몰락
744. 사흘 그리고 한 인생 (피에르 르메트르)

카미유 베르호벤 형사반장 시리즈나 ‘프랑스 현대사 역사 스릴러 연작’과는 별개의 길지 않은 소품. 리안 모리아티의 『허즈번드 시크릿』과 살짝 비슷한 분위기의 드라마다. 사람을 다치게 할까봐 운전도 꺼리는 나에게는 정말 무서운 이야기였다.

사흘 그리고 한 인생
사흘 그리고 한 인생
743. 화재의 색 (피에르 르메트르)

『오르부아르』의 속편이지만 전편을 읽지 않아도 상관없다. 『오르부아르』에서 10년이 지난 1920년대 말을 배경으로 한다. 르메트르는 이런 식으로 프랑스 현대사를 10년 단위로 쪼개 그에 해당하는 장편소설을 한 편씩 발표할 계획이라고 한다. 그 엄청난 야심이 부럽다. 소설은 전편만큼 흥미진진한데 그래도 복수는 조력자 없이 홀로 해내야 제 맛이지 않나 싶다.

화재의 색
화재의 색
55. 코젤 다크와 빨간 조명 바

 아직도 동아일보에 남아 있는 기자 동료 중에 나와 가장 친한 이는 위로는 M 선배, 아래로는 K 후배다. 다른 선후배들이 만나자고 연락을 하면 모르는 척 할 때도 있지만 그 둘의 요청에는 늘 응한다. 회사를 그만두기 전 어느 날 K와 내가 주고받은 문자메시지를 본 HJ는 “둘이 사귀냐”며 웃은 적이 있다.

 제주로 떠나기 전 M 선배와 K 후배가 각각 만나자고 연락을 해 왔고, 서울에 돌아와서 그들을 각각 따로 만났다. 나는 M 선배와 K가 서로 친하지는 않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나와 만나기 전날 그 둘은 함께 밤늦게까지 술을 마셨다고 한다. 술집에서 마시다가 사회적 거리두기 때문에 오후 10시에 문을 닫자 사무실로 들어가서 차를 마셨다나.

 K는 나와 저녁을 먹고 싶어 했으나 내가 점심에 만나자고 했다. 저녁에 만나면 술을 마시게 될 텐데, 특히 K와는 술을 마시고 싶지 않았다. 그와 마시면 즐거워서 항상 과음하게 된다. 작년에 술을 마시다 필름이 끊긴 적이 딱 한번 있는데, 그게 K와 마실 때였다. 게다가 K는 간이 아주 안 좋다. 나는 진지하게 그의 건강을 걱정한다.

 우리는 서울역사박물관 근처에 있는 이탈리안 레스토랑에서 만났다. 날씨 좋은 봄날이었다. 나는 샌들을 신고 나갔고, K는 선글라스를 쓰고 왔다. K가 맥주를 마시자고 꾀었지만 나는 넘어가지 않았다. ‘그냥 저녁에 만날 걸’ 하고 생각을 하기는 했다.

 공교롭게도 K는 출판팀장이 되어 있었고, 문학 담당 후배를 두 사람 데려 왔다. 내가 퇴사한 뒤에 입사한 기자들이었다. 뭐, 나도 취재원이기는 하니까……. 그런데 그 후배들을 두고 K나 나나 옛날이야기들만 자꾸 하게 되었다. 내가 기자였던 시절 만났던 전직 동아일보 기자 선배들과 다를 게 없었다.

 K는 내 신작이 언제 나오느냐고 물었는데 별로 할 말이 없었다. 나는 문학 담당 기자들에게 요즘 출판계의 재미있는 이슈는 뭐가 있느냐고 물었는데, 그들의 답 중에 내 흥미를 끄는 이야기도 거의 없었다. 출판사가 운영하는 카페나 작가가 운영하는 출판사 이야기가 조금 재미있었지만 처음 듣는 것도 아니었다.

 오히려 제주 이야기에 후배들이 반응했다. 한 달 간 그냥 여기저기 머물며 여행했다, 내려갈 때까지만 해도 언제 올라올지 정하지 않고 갔다, 여행 후반부 일정도 제주도에 가서 계획했다는 이야기에 기자들은 꿈같은 소리를 듣는다는 표정이 되었다. 그러고 보면 나도 참 좋은 경험을 한 것 같다.

 이날 저녁에는 집에 돌아와서 HJ와 산책을 나갔다. 그 한 달 사이에 공원 주변으로 못 보던 가게들이 몇 곳 생겨 있었다. 경기가 좀 살아나나? 특히 분위기가 괜찮은 술집이 두 곳 들어서서 반가웠다. 편의점에 가서 맥주를 사 마시려다 그런 바 중 한 곳을 발견했다. 벽면에 통창을 내고 정육점마냥 붉은 조명을 단 인테리어가 근사했다.

 즉흥적으로 들어가서 자리를 잡았다. 손님은 우리뿐이었고, 남녀 직원은 아르바이트생인지 장사에 별로 관심이 없었다. 잘생기고 예쁜 두 젊은 직원이 서로 사귀는 건지 썸을 타는 건지 무척 친근했는데, 보기 좋았다. 어둑어둑하고 붉은 조명 때문에 환상의 공간 같기도 하고 귀신이 나올 거 같기도 했다. 음악도 좋았다.

 그러나 맥주는 테라와 코젤 다크 생맥주, 그렇게 딱 두 종류뿐이었다. 주로 칵테일과 위스키를 파는 매장이었다. 테라도 주문하고 코젤 다크도 시켰다. 안주는 내가 세상에서 제일 좋아하는 음식인 소시지. 코젤 다크는 시나몬 가루가 뿌려져서 제대로 나왔다. 빔 프로젝터에서는 오래된 흑백 디즈니 애니메이션이 나왔다.

 화장실이 가게 밖에 있고, 거기까지 가려면 자물쇠를 두 개나 열어야 한다는 점만 제외하고는 아주 훌륭한 가게였다. 그런데 손님이 하도 없는 데다 이 동네가 젊은이 취향이 그리 먹히는 지역도 아니어서, 머지않아 문을 닫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들었다. 당장 우리부터 바에 가기보다는 집에서 맥주 마시는 걸 더 편히 여기고.

 코젤 다크는 나도 좋아하고 HJ도 좋아한다. 아마 거의 모든 사람이 이 맥주를 좋아하지 않을까? 알코올 도수는 그다지 높지 않고, 적당히 달달쌉쌀하고, 어두운 색도 그럴싸하게 고상해 보이고, 사탄 숭배자가 그린 듯한 염소 그림 로고도 멋지다. ‘코젤’이 체코어로 염소라는 뜻이라고 한다.


 처음 마실 때 놀랐지

 무슨 맥주가 이렇게 달콤해

 아내도 나도 좋아해


 다음날 아침에는 칠레의 라디오 방송국과 줌으로 인터뷰를 했다. 한국 문학을 알린다는 취지로 기획한 시리즈 인터뷰인데, 나를 포함해 한국 작가 10명이 참여했다.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행사를 진행한 이는 나보다 나이가 조금 더 많아 뵈는 칠레의 기자였는데, 우리는 인터뷰 전에 서툰 영어로 한참 수다를 떨었다. 상대의 영어 수준이 딱 내 수준이었다.

 그녀는 칠레에 대해 아느냐고 물었고 나는 거의 아는 게 없다고 고백할 수밖에 없었다. 국토가 아주 길고, 피노체트와 이사벨 아옌데 같은 이름을 들어본 적이 있고, 옆 나라 아르헨티나와 달리 국민들이 꽤 원칙주의자 성향이 있다는 정도……? 그나마도 정확한 얘기인지 모르겠다. 인터뷰를 할 때에는 통역을 통해 했다.

 오후에는 동물병원에 가서 새롱이에게 항체가 제대로 생겼는지 검사를 받았다. 새롱이는 이 동물병원 수의사와 간호사에게 엄살이 심한 개로 찍혀 있다. 원래 이날 동물병원에는 첫째 조카와 같이 가기로 했는데, 조카가 막판에 친구와 놀이터에서 함께 놀기로 했다며 약속을 취소했다. 아이에게도 나름의 일정이 있다는 게 신기하고 재미있었다.

 동물병원에서는 새롱이의 고환이 아래로 다 내려왔다며 다음 주에 중성화 수술을 하자고 했다. 그 말에 나도 모르게 얼굴이 어두워졌나 보다. 중성화 수술이 개를 위한 것이기도 하다며 수의사가 나를 설득하려 들었다. 나는 그 사실을 이미 잘 알고 있었다. 현대 도시에서 살기 위해 인간도 개도 치러야 하는 대가가 있다.

 저녁에는 HJ와 함께 새롱이를 산책시켰다. 봄날, 잎이 무성해진 나무 아래 사랑하는 여인과 사랑하는 개와 함께 걸으니 정말 행복했다. 잊지 않기 위해 이렇게 써둔다.

 부모님 댁에 가서 새롱이를 씻겼는데 개는 아주 질색 팔색을 하며 물을 피하려 했다. 하지만 개를 제대로 씻기지 않으면 어머니가 질색 팔색을 한다. 그런데 어머니가 바닥이 더러워지는 것을 염려하는 게 아니라 그저 나를 몰아붙이는 시간을 즐기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솔직히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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