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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의 힘, 슬픔을 견디기 위한 힘
모든 슬픔은, 그것을 이야기로 만들거나 그것들에 관해 이야기를 하면 견뎌질 수 있다. by 이자크 디네센 (1957년 11월 3일 뉴욕타임스 인터뷰) 한나아렌트가 인간의 조건(1958) 5장의 제사로 사용하면서 유명해진 문장이기도 하다.


견디기 위해 이야기를 한다.

슬픔이 견뎌질 수 있게.


삶은 한 사람이 "살았던 것 자체(fact)"가 아니라, 현재 "그 사람"이 "기억하고(감정)" 있는 것이며, 그 삶을 얘기하기 위해 "어떻게(마음, 태도)" 기억하느냐 하는 것이다.


서로의 대화에서 팩트체크가, 시시비비를 가리는 것이 아무 의미없는 이유. 그 사람이 기억하는 것은 그 때의 객관적 사실이 아니라 "지극히 주관적인 감정"이다. 두 번 세 번 반복하여 말해주더라도 어차피 그에겐 가닿지 않고 튕겨져 나온다. 그의 감정에 닿지 않는 사실을 백날 이야기해 본들 결국 나에게 부메랑처럼 되돌아 와 나를 다치게 할 뿐이다. 사실을 이야기했는데 왜 내가 이 부메랑에 맞아야 하나 그것이 못내 억울해 또 그 말을 주워들어 다시 던지는 짓은 이제 그만 하겠다. 내가 잘못했다. 시시비비를 가려 내가 틀렸소가 아니라, 내 그 방식이 틀렸다는 거다. 알아듣지 못하는데 계속 같은 방식을 고수하는, 다른 방법을 모색하지 않는 내 완고함 혹은 게으름이 잘못되었다는 것이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그 일 자체를 따지는 팩트 체크도 아니고, 그 사람이 왜 그렇게 기억하고 있는지 따져물을 것도 아니고, 그의 이야기와 별도로 나의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그 이야기를 "어떻게" 할 지만 유일하게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나쁜 놈 무식한 놈 욕을 하든

오래된 소파로 취급을 하든

나의 억울함과 서운함을 내려놓고

그 사람의 마음을 들여다보기 위해

나의 마음을 내어 노력을 하든지간에


내가 어찌할 수 있는 것은

내 마음, 내 태도 뿐이다.

마지막 후자의 마음이 들지 않는다면

노엽고 억울한 내 마음을

호수 들여다보듯 물멍하듯

그냥 두고 보면 된다.

한나절 그냥 쭈그려앉아 쳐다보고 있으면 뭐 하나의 마음은 집어들 수 있을 거다. 이런 시간 없이 바로 집어들면 처음의 마음이겠지만 시간을 두고 천천히 집어들면 혹시 아나, 기특하게도 세번째 마음을 집어들지..


그의 소설을 읽으면 우리가 살아가면서 '이야기란 무엇인가'에 대해 최소한 세 번은 고민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 먼저 '세계'라는 이야기에 대해, '나'라는 이야기에 대해, 결국에는 '우리'라는 이야기에 대해. by 신형철 문학평론가


세계에 대해, 나에 대해, 결국 우리에 대해... 이야기의 이 순서가 정말 맞구나 하는 생각이 들자 이게 사랑이구나 일순간 뭉클해진다.


객관적 사실, 지식, 인지적 영역에 대해 이야기하다가 어느 순간 세상이 아니라 나를 들여다보게 된다. 시선이 세상에서 나로 좁아지는 것이 아니라, 시선이 나로 향함으로써 깊어진다. 세상에 대한 비판, 원망, 분노, 때로는 선망과 찬탄이 나에게로 향하면서 혐오나연민 혹은 자긍심이나 희망을 읽어내기도 한다. 나에 대한 시선이 우물처럼 깊어지면 이제야 내 우물에 내려온 두레박을 보게 된다. 물처럼 깊어져 두레박을 채워줄 수도 혹은 두레박에 담겨갈 수도 있는 것이다. 두레박 없는 우물이 무용하듯 내가 아닌 '우리'에 대해 생각하는 그 순간이 바로 사랑이구나.


나는 어디쯤 왔을까. 세상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가 이제야 나를 이야기하기 시작하는데 몇 년이 지나도 나를 이야기하는 것이 쉽지 않아서 이야기하다보면 또 세상을 이야기하다 내 얘기하다 하는 단계인 것 같다. 나를 들여다보고 잠잠히 이야기하는 것도 서툴어 내게 닿아있는 두레박에까지는 시선을 두지 못하고 있다. 그 두레박이 혼자 성을 못 이겨 이리저리 요동을 쳐도 저게 왜 저러나, 정신 사납게 왜 저래 하고 시선을 돌리고만다. 사랑하지 않는다. 두레박이 요동치는 이유를 알려고 노력하지 않는다. 그 두레박도 요동치는 우물을 들여다보지 않는다. 두레박은 두레박 대로, 우물은 우물대로 제각각 요동만 치며 가까이 있어도 결국 닿지 못하고 진자처럼 서로 양극단으로 멀어진다.












인간의 조건(개정판)(한길그레이트북스 11)(양장본 HardCover)
인간의 조건(개정판)(한길그레이트북스 11)(양장본 HardCover)
스토리 설계자

헤밍웨이의 초고는 쓰레기, 조셉 캠벨의 영웅의 여정 등 작법서의 몇 가지 클리셰를 디스하고 시작하는 덕분에 근래에 읽은 작법서 가운데 초반 흡인력이 가장 높다. 2부 중반의 스토리 설계하기부터 텐션이 떨어지는데 말하는 거야 쉽지 스토리 설계라는 게 생각만큼 잘 안 되기 때문.

스토리 설계자
스토리 설계자
#6. AI 지도책 - 케이트 크로포드

공대 출신이라 하기도 쑥스러울만큼 새로운 기술, 기계에 관심 없이 살고 있는데, 최근 ChatGPT는 조금 다르게 느껴진다. 사람이 하는 많은 일을 AI가 대신 하는 날이 올거란 건 충분히 생각하고 있었지만, 예상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거대하게 밀려오는 느낌이랄까. 아무리 언론이나 sns에서 Chat GPT 에 대한 담론을 논해도, 당장 내 주변에서 활용하는 사람이 없다보니 그닥 와닿지 않았는데, 역시나.. 변화의 속도는 내 예상보다 항상 빠르다.

이제는 더이상 모른 채 있으면 안되겠다는 두려움 반, 호기심 반에 집어든 책인데, 아이코.. 책을 잘못 선택했다. AI 가 무엇인지, 얼만큼 개발되어 있고, 어떻게 활용해야 하는지를 알려주는 책이 아닌, AI가 생산, 채택되고 활용되는 방식에 대해 우리에게 거대한 질문을 던지는 책이었다.


전체 6장 중 1~4장은 그닥 새롭지 않아 다소 아쉬웠는데, 미국에서 출간된 직후인 2021년에 바로 읽었어도 비슷하게 느꼈을지 궁금하다. 최근 2년의 시간 속도와 코로나 이전의 속도는 확연히 다르고, 특히나 AI와 같은 기술 혁신 부분에 있어서는 제곱, 세제곱의 지수 함수 형태로 빨라졌을테니 고작 2년 전 책 내용도 새롭게 느껴지지 않은 것 같다. 어디선가 이미 접해본 내용 같은.


다만 5장 <감정> 부분은 아주 흥미롭게 읽었는데, '표정은 실제로 감정을 표현하는가', '얼굴에서 감정을 읽는 접근법은 가능한가' 라는 질문 때문이었다. 코로나 기간 동안 지문은 물론 얼굴 인식 정보까지 수집되는 상황에서 개인 권리에 대한 질문은 했었어도, 기본 전제인 위의 질문에 대해서는 한번도 궁금해한 적이 없었다. 작가는 위의 질문에 대해 불가능하다고 말하며,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부정확한 데이터가 수집, 분류, 사용되어 더 큰 문제를 일으킨다고 이야기한다. 그동안 전제에 대한 사실 확인 없이 곧장 윤리적, 사회적 질문으로만 넘어간 것 같아 새롭게 생각해 볼 만한 부분이었다. 마치 친환경 에너지로의 전환이 지구 환경 문제의 만능 해결책인 것처럼 믿고 이야기하는 것처럼.


작가가 결국 가장 이야기하고 싶어한 부분인 6장 <국가> 와 함께 후반부는 아주 재밌게 읽었는데, 과연 이러한 담론은 세상 어디에서 이야기 되고 있을까.. 새삼 궁금해진다. 아무리 좋은 책을 읽어도 어떤 책은 함께 이야기하고 듣고 토론하는 과정이 있어야 완독한 느낌이 드는데, 이 책이 그런 책 중 하나인 것 같다.



page 258 AI는 볼리비아의 소금 호수와 콩고의 광산에서 탄생하여, 크라우드 노동자들에 의해 라벨링되며 인간의 행동과 감정과 정체성을 분류하려 드는 데이트 집합으로 구성된다. 예멘 상공에 드론을 날리고 미국에서 이민자 단속을 지휘하고 전 세계에서 인간의 가치와 위험에 대한 신용 점수를 조정하는 데 이용된다. 이 중첩하는 체제와 맞서려면 AI를 광각적이고 다규모적인 관점에서 바라봐야 한다.


page 267'가능한 일은 실현될 것이다'라고 말하는 기술 불가피론 서사에 반대하는 것이다. 단순히 가능하다는 이유로 AI가 어디에 적용될 것인지 묻는 게 아니라 '왜' 적용되어야 하는지에 방점을 찍어야 한다. 우리는 '왜 인공지능을 이용하는가?' 라고 물음으로써 통계적 예측과 이윤 축적의 논리, 즉 도나 해러웨이가 '지배의 정보과학'이라고 부른 것에 모든 것이 종속되어야 한다는 생각에 의문을 제기할 수 있다. 사람들이 예측 기반 치안을 해체하고 얼굴 인식을 금지하고 알고리즘적 점수 산정에 항의하는 쪽을 선택할 때 우리는 이 저항의 어렴풋한 모습을 본다.


AI 지도책
AI 지도책
[서울국제작가축제X그믐] 7월 함께읽기 챌린지 시작합니다!

📢서울국제작가축제에 참가하는 전 세계 작가들의 책 함께 읽기! (07.10 – 07.28)

예고드린대로 함께읽기 챌린지 모집을 시작합니다! 


챌린지를 참여하는 두 가지 방법! 


첫 번째, 출판사들의 독서모임에 참여!

[서울국제작가축제X와우컬처랩] 진은영 작가님의 <훔쳐가는 노래>(출판사 창비)함께 읽어요.

[서울국제작가축제X비채] 버나딘 에바리스토의 <소녀, 여자, 다른 사람들> 함께읽기 챌린지

[서울국제작가축제X율리시즈] 자일리 아마두 아말 작가님의 <참지 않는 여자들> 함께읽기

[서울국제작가축제X푸른숲] 위화 작가님의 <인생> 함께읽기 챌린지 

[서울국제작가축제X은행나무] 황모과 작가님의 <서브플롯> 함께읽기 챌린지

[서울국제작가축제X문학과지성사] 임솔아 작가님의 <아무것도 아니라고 잘라 말하기> 함께읽기

[서울국제작가축제X작가정신] 정지돈 작가님의<땅거미 질 때~> 함께읽기 챌린지


두 번째, 직접 모임 개설하여 챌린지 도전!


❗ 모임지기 미션 : 챌린지 도서 목록에 있는 책 선택해서 모임만들기, 모임 제목은 ‘[서울국제작가축제 챌린지 참여] 000작가의 『』함께 읽어요’ 

❗ 참여자 미션: 문장 수집 2회, 서울국제작가축제 기대평, 완독 리뷰 필수!



첫 번째, 두 번째 함께읽기 챌린지에 참여하는 독서쟁이들을 위한 미션 및 완독 수행 리워드!


“문장 수집 2회, 서울국제작가축제 기대평을 작성해주세요.”


리워드 ① 커피 기프티콘 

리워드 ② 서울국제작가축제 프로그램 참여 시 앞자리 제공


“완독 리뷰까지 완료하면”

리워드 ③ 기부자의 벽 성명 기재 서울국제작가축제 굿즈 제공 (현장 수령)


더 다양한 소식은 서울국제작가축제의 그믐 블로그에서도 보실 수 있습니다.많은 참여 부탁드려요. 감사합니다.

애도 일기(리커버 에디션)
이런 말이 있다. 시간이 지나면 슬픔도 차츰 나아져요. :아니, 시간은 아무것도 사라지게 만들지 못한다. 시간은 그저 슬픔을 받아들이는 예민함만을 차츰 사라지게 할 뿐이다.
이런
이런
646. 책과 열쇠의 계절 (요네자와 호노부)

고등학교 도서관의 도서위원 두 친구가 풀어내는 소소하고 알찬 미스터리 여섯 편. 흔하고 가벼운 설정 같지만 마지막에는 제법 묵직해진다. 왓슨 역의 화자도 추리 실력이 만만치 않다.

책과 열쇠의 계절(양장본 HardCover)
책과 열쇠의 계절(양장본 HardCover)
645. 진실의 10미터 앞 (요네자와 호노부)

프리랜서 기자를 주인공으로 삼은 연작 추리 단편집. 이 책 한 권 읽고 바로 작가의 팬이 되었다. 여섯 편이 다 재미있고 주제 면에서도 가볍지 않다. 특히 고독사와 이웃의 죄책감을 다룬 「이름을 새기는 죽음」이 울림이 있어서 여러 번 되풀이해서 읽었다.

진실의 10미터 앞(양장본 HardCover)
진실의 10미터 앞(양장본 HardCover)
『당신이 보고 싶어하는 세상』 작가의 말

  새 책을 냈습니다. ‘STS SF’라고 이름 붙인 SF 소설집입니다. 심훈문학대상 수상작 「당신이 보고 싶어하는 세상」을 표제작으로 삼았고, 성운상 후보에 올라가 있는 「알래스카의 아이히만」, 장편영화 판권이 팔린 「데이터 시대의 사랑」 등을 담았습니다.

  이번 책을 내면서는 유독 생각이 많았네요. 조금 길지만 ‘작가의 말’을 함께 올려봅니다. 초기에 구매하시는 분들께는 서울대 과학학과 홍성욱 교수님과의 대담과 미니픽션 세 편을 담은 코멘터리 북을 드린다고 합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꾸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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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전방에 급커브―속도를 줄이시오’라고 적힌 표지판을 들고 길옆에 서 있는 사람이다.

- J. G. 밸러드

(Mick Brown, ‘From Here to Dystopia: Interview with J. G. Ballard’, Telegraph Magazine 2 September 2006: 16-22, p.20.)

 

이 책에 실린 글 일곱 편 중 네 편은 전에 몇 년 전에 출간한 단행본에 실려 있었다. 2년 전 그 소설집을 절판했는데 사연이 궁금하시다면 인터넷에서 ‘장강명 인세’로 검색해보시면 관련 기사가 여러 건 나온다.

책을 절판하고 끙끙 앓으면서 SF라는 방법론으로 어떤 소설을 쓰고 싶은가 생각했다. 이를테면 나는 소설가로서 외계문명에 큰 관심이 없다. 아니, 상상의 한계를 느낀다고 표현하는 편이 더 정확하려나. 내가 외계문명에 대해 뭘 상상하든 지구에 이미 존재하는 생물이나 문화의 모습을 벗어나지 못할 것 같다. 그리고 대개의 경우 문어나 홍해파리, 개미 군체의 생태가 외계인에 대한 내 상상보다 훨씬 더 흥미롭다. 게다가 그런 소재가 주는 경이로움을 추구할수록 내가 쓰려는 주제―당대 인간의 삶과 사회―에서 멀어지게 된다. 반대로 그다지 기이하지 않은, 우리와 닮은 외계문명을 현실의 은유로서 사용할 때는 그런 비유가 현실을 묘사하는 노력을 피하기 위한 편의적 발상이 아닌지 스스로 의심하게 된다.

앞에서 적었듯이 나는 당대 인간의 삶과 사회에 관심이 있는데, 과학기술이 우리 삶과 사회에 미치는 영향이 하루가 다르게 커지고 있다. 비유나 무대장치가 아니라 그 자체로서, 초광속 통신이나 항성간 우주선이 아니라 근미래에 정말 등장할 것 같은 기술들에 대해 이야기해보고 싶었다. 증강현실이 미디어 기술과 결합하면 사회는 어떻게 변할까? 저렴한 대체육과 유전자 편집은 동물권 논쟁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뇌공학은 창조력을 향상시킬까? 그러면 예술의 개념도 바뀔까?

이런 질문들을 떠올리며 소설을 썼고, 이미 발표했던 작품도 그런 관점에서 고쳤다. 약(弱)인공지능이 노동시장에 전방위로 충격을 가할 날이 이제 곧 닥칠 것 같은데, 그에 대한 소설은 쓰다가 분량이 길어지는 바람에 따로 단행본으로 내기로 했다.

이런 소설에 새 이름을 붙여도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STS(Science and Technology Studies) SF’라고 부르면 어떨까. STS는 과학과 기술이 사회와 어떤 영향을 주고받는지 탐구하는 학문 분야다. 과학기술은 이제 여러 영역에서 실존적 위기를 일으키고 있고, 나는 문학이 여기에 대응해야 하며, 대응할 수 있다고 믿는다.

어떤 분들은 이미 여러 SF 작가가 그런 작업들을 해왔다고 비판할지도 모르겠다(개인적으로는 사이버펑크 작가들이 1980년대에 벌였던 시도의 덜 우중충하고 덜 히피스러운 2020년대 버전이 ‘STS SF’인 것 같다는 생각도 한다). 하지만 카테고리를 만들고 적절한 라벨을 붙이면 목표와 세부사항이 명확해지는 경우도 있다. 따지고 보면 SF라는 용어도 소설가 휴고 건스백이 만들어낸 것이며, 건스백 이전에도 메리 셸리나 쥘 베른 같은 작가들이 그 용어 없이 SF를 썼다(기실 나는 SF라는 용어가 그다지 정확하지 않다고 보는데 그 이야기는 언젠가 다음 기회에……).

 

 

 

과학기술이 삶과 사회에 미치는 영향이 이렇게 커진 시대에 “기술은 사람이 쓰기 나름”이라는 말만큼 위험한 기만도 없다고 생각한다. 흔히들 칼이 요리사의 손에 들어가면 주방도구가 되고 강도의 손에 들어가면 흉기가 된다고 한다. 그런데 그건 칼이니까 그런 거고, 총으로는 할 수 있는 일이 그리 많지 않다. 실탄이 든 권총이 쓰는 사람에 따라 요리나 예술의 도구가 될 수 있는 물건인가? 그보다는 처지가 불안한 요리사나 예술가를 강도의 길로 유혹하는 물건 아닐까?

나는 오히려 오늘날 시장에 나오는 신기술 대부분에는 개발 주체의 아주 분명한 의도가 깃들어 있다고 본다. ‘돈을 벌고 싶다’ 혹은 ‘힘을 갖고 싶다’는 것이다. 기술 개발에는 돈이 든다. 기업이건 국가건 그 비용을 대는 사람들은 들인 돈 이상으로 수익이나 군사력을 얻을 수 있다는 기대로 기술 개발을 후원한다. 초지능을 처음으로 개발하는 사람이나 기관은 그걸 과연 이타적으로 사용할까?

한데 새로운 기술은 개발자나 투자자의 의도마저 쉽게 벗어난다. 기술을 만드는 사람들뿐 아니라 이용하는 사람들도 창의적이다. 어떤 기술은 사회제도나 문화와 단단히 결합한다. 그런 결합에 사람들은 다시 제 생각과 행동을 맞추고 또 다른 신기술과 사용 방법을 보탠다. 그런 결합은 하나의 거대한 시스템―나의 작가적 테마라 할 만한 바로 그것―이 된다.

기술이 디스토피아를 낳는다는 얘기를 하는 게 아니다. 유토피아를 말하는 것도 아니다, 물론. 나는 기술이 우리의 삶과 사회와 복잡한 영향을 주고받으며, 그때 우리는 아주 깊은 차원에서 질적으로 변화할 수 있다는 얘기를 하고 싶었다. 즉, 우리는 기술로 인해 ‘변질’된다. 그 변질을 포착하는 것이 STS SF의 목표다.

인간과 인간 사회의 어떤 긍정적인 잠재력이 기술로 인해 비로소 현실화될 수도 있겠다. 반면 우리가 지켜야 한다고 믿는 가치가 우리가 알아차리지도 못하는 새 훼손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나는 삶의 불확실성을 껴안고 결단을 내리는 행위가 인간에게 꼭 필요하고 또 중요한 일이라고 믿는데, 데이터 예측 분석 기술은 여기에 심오한 영향을 미칠 것 같다.

이런 생각들을 하다 보면 아주 간단한 삼단논법에 이른다.

 

① 오늘날 과학기술은 나의 삶과 내가 사는 사회에 큰 영향을 미친다.

② 나는 좋은 삶을 살고 싶고, 좋은 사회를 만들고 싶다.

③ 그러므로 나는 과학기술을 통제해야 한다.

 

나는 이 결론을 진심으로 믿는데, 이에 대한 이런저런 반박이 거세리라 예상한다. 거기에는 러다이트나 유나바머 같은 이름까지 들어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기계를 때려 부수자거나 기술문명을 무너뜨려야 한다는 주장을 하는 게 아니다. 나는 항생제와 상수도와 수세식 화장실과 비열처리 맥주와 악기와 자전거와 자전거도로를 만드는 기술을 사랑한다. 그 기술들과 더불어 살고 싶다. 하지만 세그웨이나 백린탄 같은 물건은 내게 필요 없다.

다른 사람들과 함께 ‘기술이 우리 삶과 사회를 어떻게 변화시킬까? 그 변화는 바람직한가?’ 하고 폭넓게, 적극적으로 따져 묻고 싶다. 우리가 어떤 기술에 대해서는 개발하거나 사용하지 말자고, 혹은 사용을 제한하자고 합의할 수 있으며, 그렇게 해야 한다고 본다. 사실 우리는 이미 그런 일을 하고 있다. 프레온가스와 DDT, 유연휘발유, 원자력 같은 사례들이 있다. 그런가 하면 언뜻 불쾌하고 기괴해 보이지만 분명히 현실화될 것이기에 불편하더라도 우리가 반드시 미리 논의해야 하는 기술도 있다. 내게는 STS SF가 그런 질문과 논의의 한 창구이다.

 

 

 

「알래스카의 아이히만」은 당연히 해나 아렌트의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의 영향을 받았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알래스카에 유대인 정착촌이 세워진 평행우주가 배경인 마이클 셰이본의 휴고상 수상작 『유대인 경찰연합』(전2권)(김효설 옮김, 중앙북스, 2009)도 참고했다.

「당신은 뜨거운 별에」는 철학자이자 인지과학자인 대니얼 C. 데닛이 쓴 콩트 「나는 어디에 있는가」의 영향을 받았다. 이 콩트는 몸과 뇌를 분리하는 상황을 그린 이야기인데 사이언스북스에서 나온 『이런, 이게 바로 나야! 1』(더글러스 호프스태터, 대니얼 C. 데닛, 김동광 옮김, 사이언스북스, 2001)에 실려 있다.

「데이터 시대의 사랑」의 제목은 가브리엘 마르케스의 『콜레라 시대의 사랑』에서 따왔다. ‘행복은 가속도 센서로 측정할 수 있다’는 주장은 히타치 중앙연구소장 야노 가즈오의 책 『데이터의 보이지 않는 손』(홍주영 옮김, 타커스, 2015)에 나온다.

 

원고를 꼼꼼히 살피고 유용한 조언을 해준 문학동네의 정민교 편집자님, 『지극히 사적인 초능력』을 일본어로 옮겨 준 기라 가나에 번역가님, 과분한 추천사를 써주신 천선란 작가님과 소설과 관련된 대담을 함께해주신 홍성욱 서울대 교수님께 감사드린다.

내내 곁에서 응원해준 아내, 김혜정 그믐 대표에게도 진심으로 이 말을 전하고 싶다.

사랑해요.

 

2023년 여름,

장강명

 


당신이 보고 싶어하는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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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공비행

하라켄야의 동명 블로그 글 모음집. 자율주행 시대의 관건에 있어 자동차 공유의 과정에 발생하는 '청결함' 서비스가 관건이라는 부분이 최근 읽은 서윤빈의 '마음의 날개 따윈 없어서'가 떠오르면서 인상적.

저공비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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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린 나이트

데이빗 로워리 감독의 영화. 개인적으로 기이한 영화 체험이었는데 이 영화의 마지막 5분을 피트니스 러닝머신에서 봤다. 엔딩을 본 이후에 처음부터 다시 전편을 보게 된 케이스. 데이빗 로워리의 피터와 드래곤에 나오는 드래곤도 녹색.

Sir Gawain and the Green Knight
Sir Gawain and the Green Knig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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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급 천장> 함께 읽으실래요? <세상은 이야기로 만들어졌다> 함께 읽으실래요? <빌리 서머스> 함께 읽으실래요?
🎯"우리 골목을 광장으로 만드는 법" 떠오르는 책을 추천해주세요!
[성북구립도서관] 2024년 성북구 비문학 한 책을 추천해주세요. (~5/12)
세계적 사상가 조너선 하이트의 책, 지금 함께 읽을 사람 모집 중!
[그믐북클럽Xsam] 15. <바른 마음> 읽고 답해요
이 계절 그리고 지난 계절에 주목할 만한 장편소설 with 6인의 평론가들
다음 세대에도 읽힐 작품을 찾는 [이 계절의 소설] 네 번째 계절 #1다음 세대에도 읽힐 작품을 찾는 [이 계절의 소설] 세 번째 계절 #1다음 세대에도 읽힐 작품을 찾는 [이 계절의 소설] 세 번째 계절 #2
직장인이세요? 길 잃은 직장인을 위한 책들 여기 있어요.
[김영사/책증정] 천만 직장인의 멘토 신수정의 <커넥팅> 함께 읽어요![김영사/책증정] 《직장인에서 직업인으로》 편집자와 함께 읽기[직장인토크] 완생 향해 가는 직장인분들 우리 미생 얘기해요! | 우수참여자 미생 대본집🎈[생각의힘] 어렵지 않아요! 마케터와 함께 읽기 《커리어 그리고 가정》
어서 오세요. 연극 보고 이야기하는 모임은 처음이시죠?
[그믐연뮤클럽의 서막 & 도박사 번외편]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 이반과 스메르자코프"[그믐밤] 10. 도박사 3탄, 까라마조프 씨네 형제들@수북강녕
💌 여러분의 마지막 편지는 언제인가요?
[책 증정] 텍스티와 함께 『편지 가게 글월』 함께 읽어요![그믐밤] 6. 편지 읽고, 편지 쓰는 밤 @무슨서점[이 편지는 제주도로 가는데, 저는 못가는군요](안온북스, 2022) 읽기 모임
🍵 따스한 녹차처럼 깊이 있는 독후감
종의 기원(동서문화사)브로카의 뇌도킨스, 내 인생의 책들코스믹 컨넥션
🌘 5월 7일 그믐달이 뜨는 날, 온라인 그믐밤 채팅 함께 해요.
[그믐밤] 22. 가족의 달 5월, 가족에 관한 책 얘기해요.
🎁 여러분의 활발한 독서 생활을 응원하며 그믐이 선물을 드려요.
[인생책 5문 5답] , [싱글 챌린지] 완수자에게 선물을 드립니다
이 봄, 시집 한 권 🌿🌷
여드레 동안 시집 한 권 읽기 11여드레 동안 시집 한 권 읽기 9여드레 동안 시집 한 권 읽기 8여드레 동안 시집 한 권 읽기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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