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투를 속죄하는 이들은 눈썹이 철사로 꿰매져 고통 받는다. 질투가 시각에서 비롯되는 거라면, 현대인들은 훨씬 더 쉽고 크게 그 죄에 빠져들 테지. 인터넷 덕분에.
분노를 이기지 못한 이들은 스틱스 강의 진창에서 서로 물어뜯고 온몸으로 난투를 벌인다. 그러나 늪에 빠져 있기에 그들의 외침은 단테에게 제대로 들리지 않는다.
근래 몇년 동안의 출판 트렌드인건지 아님 최근에나 내 관심 영역에 들어와서인지, 언제부턴가 과학자에 대한 이야기 혹은 과학사를 다룬 책들이 많이 나오고 있는 것 같다.
양자 역학을 위주로한 1900~1945년까지의 물리학과 물리학자의 이야기인데 의외로! 가독성이 꽤나 높다. 물론 '양자 역학을 모두 이해하며 읽겠다!는 욕심은 살짝 옆으로 치워두고' 라는 전제 하인데, 전문적인 지식이 없더라도 독서에 크게 무리되지 않을 만큼 일반 대중서로도 충분히 매력적인 책이다.
<찬란하고 어두웠던 물리학의 시대 1900~1945> 라는 부제에서 이미 책의 결말이 예상되지만, 그 의도치 않았던 결말까지의 과정에서 볼 수 있는 과학자들의 고민, 서로에 대한 존중과 갈등 등이 흥미롭고 무엇보다 그 갈등을 서로가 충분히 토론하고 서신으로 교환하는 부분은 꽤나 부러운 모습이기도 했다. 과학자들의 대화라기보단 철학자들의 대화같던 장면들인데, 하긴.. 언제부터 그 경계가 뚜렷이 나뉘어졌나 싶기도 하다.
p.222
아인슈타인은 세계가 저기 밖에 정말로 존재하고, 인간의 상상력이 그 세계를 철저히 파헤칠 수 있다고 확신한다. 하이젠베르크는 일상 세계를 넘어서는 상상을 신뢰하지 않는다. 수가 맞아야 하고 공식이 맞아야 한다. 그래야 우리는 상상에 대해 말할 수 있다.
p.316
아인슈타인의 생각은 달랐다. 우리가 과학이라고 부르는 것은, 오직 한 가지 목표를 추구한다. "무엇이 존재하는지 결정하기." 물리학은 모든 관점에서 독립적으로 객관적으로 현실을 이해하고자 한다. 이것이 아인슈타인과 코펜하겐 사람들의 차이이다. 하이젠베르크가 말한다. "원자 또는 원소 입자 자체는 실제가 아닙니다. 그것들은 사물 또는 사실의 세계가 아니라, 잠재성 또는 가능성의 세계를 형성합니다." 관찰을 통해 비로소 그 가능성이 현실이 된다고, 보어와 하이젠베르크가 말한다. 그것은 자연과학이 아니라고, 과학은 자연을 발명하지 않고 연구한다고, 아인슈타인이 말한다.
누군가에겐 한낱 사소한 주제일 수 있는 한 분야를 누군가는 온 생을 바쳐서 고민하고, 그들만의 언어로 세상을 읽는다.
하지만 그들도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다. 인간관계로 상처 받고, 존경하는 대상이 어느 순간은 가장 자신을 힘들게도 하고, 누군가의 성취로 열등감에 휩싸이고, 불확실한 시대의 한가운데서 예측치 못한 방향으로 삶이 뒤틀리기도 하고.
수없이 상처받고, 환희하고, 또 좌절하고.. 그런 과정으로 쌓아 올린 세상을 지금의 내가 살고 있다. 그것도 역사상 가장 안전하고 풍요로운 시기를.
엄청난 큰 행운인 걸 잊지 말아야지.
디아블로4는 3장을 거의 끝내가는데 3장부터 등장 인물의 밀도가 높아지면서 이야기의 몰입감이 높아진다. 사실상 1장부터 2장까지는 setting에 가까웠던 듯. 그럼에도 서브 퀘스트를 플레이 하는 동안에는 드라마를 틀어놓고 있는데 남편사망정식이 밈이 된 마당이 있는 집을 재생하게 되었다.
김태희와 임지연은 한국 영화계에 있어서 가장 연기력에 문제가 있는 여배우들로 손꼽히는 인물들. 임지연은 최근 더글로리를 통해 이 연기력 이슈를 어느 정도 증명했다고는 하지만 김태희의 경우는 결혼 이후 오랜 공백기를 지나 복귀하는 작품이기 때문에 여전히 물음표를 안고 있는 배우. 어떻게 이런 리스크 높은 더블 캐스팅이 진행되었는지(캐스팅 등 프리프로덕션 기간은 더글로리 제작 전으로 추정) 드라마 프로젝트의 과 정이 궁금하다.
드라마 연출 자체가 배우 연기에 포커스하기 보다는 과도한 미술과 카메라 앵글에 중심을 두고 있는데 정작 게임 플레이 하느라 드라마 화면을 잘 못봐서 김태희의 연기가 개선되었는지 확인은 할 수 없었다.
인문학자가 본 인류의 초기 역사. 도킨스를 대차게 깐다. 농업혁명 전에 이미 정착문화가 있었다는 최근의 고고학 발견은 ‘하부구조가 상부구조를 규정한다’는 유물사관에 치명타를 가하는 얘기 아닌가?
샤갈의 ‘십자가 처형’ 시리즈도 비중 있게 다루는데, 창세기 회화보다 더 흥미롭다. 유대인인 샤갈은 이 주제에 매혹됐고, 메시아가 아닌 ‘고통 받는 유대인 순교자’로서 예수를 그렸다고.
이 책들을 다 읽었다는 것은 물론 아닙니다;
국제콩쿨 참여자들의 흥미진진한 스토리!
온다 리쿠의 <꿀벌과 천둥> 절찬리 읽는중^^
볼렉스 8미리 카메라를 작별 선물로 주고받고 아리플렉스 16미리 카메라를 가정집에서 하나쯤 구비해 두고 살았던, 미국이란 나라가 역사상 가장 풍요로웠던 시절의 이야기. 심지어 카메라가 새삥이라 밀폐도 잘 되어서 덕트 테이프 없이도 촬영이 잘 된다.
내가 책을 좋아하는 만큼, 누군가의 책에 대한 애정을 엿볼 수 있는 책들도 좋아한다. 첫번째 독서 기록이니, 책에 관한 책으로 시작.
스무 살 부터였을까, 서른 살 부터였을까.. 나이가 든다는 건 어느 순간부터, 나보다 어린 현명한 누군가를 자주 마주하게 되는 거라고 일찌감치 깨달았다.
SNS나 유튜브를 즐겨하지 않으니 유튜브를 통한 책 소개에도 괜한 거부감이 있었는데, 이걸 전업으로 하는 청년이 있다니!
큰 기대없이 접했던 겨울 서점은 내 예상과는 달랐고, 무엇보다 김겨울이라는 사람이 얼마나 책을 좋아하는지, 그리고 그 좋은 걸 얼마나 사람들과 나누고 싶어하는지는 분명하게 느껴졌다. 그럼에도 완독하지 않은 책에 대해서는 선뜻 유튜브로 먼저 접하고 싶진 않은걸 보면, 난 역시나 아날로그적이다.
<책의 말들>을 읽고 다시 한번 느꼈다. 이거 봐... 아무리 겨울 서점이 재미나고 좋아도, <책의 말들>이 백배 더 좋잖아. 겨울 서점만 몇 번 보고 김겨울을 몰랐으면 어쩔 뻔 했어.
p117.
네모난 것을 생각한다. 네모난 것, 그 안이 검고 붉게 빽빽이 채워진 것, 작은 직선과 곡선으로 촘촘히 직조한 것을 생각한다. 나는 핀셋을 들어 종이에서 네모난 글 뭉치를 조심스럽게 분리해낸다. 살짝 흔들면 찰랑이는 글의 물결, 정갈한 글에서는 쉼표 하나 떨어지지 않는다. 페이지마다 분리해 낸 글을 모아 한편에 쌓고 재봉틀을 꺼낸다. 두 편의 글을 핀셋으로 가져와 재봉틀에 0.5센티미터 정도가 겹치게 놓아두고 두르륵, 박음질한다.
나는 돛을 지을 요량이다. 커다란 삼각돛을 지으려는 것이다. 뒤에서 불아오는 바람에는 몸을 싣고 앞에서 다가오는 바람에는 방향을 이리저리 틀어 가며 앞으로 나아갈 계획이다. 잘 지어진 글은 아주 튼튼해서 나를 멀리 데려다준다. 돛을 믿고 먼 곳까지 나아갈 것이다. 한 번도 보지 못한 곳을 탐험하고 자주 다녔던 곳을 더 샅샅이 둘러보고 몰라던 파도를 맞고 알았던 맛을 볼 예정이다. 돌아온 뒤에는 돛을 떼어 잘 접어서 차곡차곡 쌓아 둘 생각이다. 그러면 그 탑을 바라볼 때마다 잊을 뻔했던 항행의 기억이 새록새록 들려올 테다. 돛의 노래, 새로운 노래, 나를 바다로 던져 줄 노래, 노래가 들려온다.
꽤 흥행했던 영화인데 늦게 봤다.
아무도 죽지 않고 갈등을 해결하고 미션은 완수하고 사랑을 얻고 오해를 푼다. (설마 이게 스포이려나?)
한 마디로 판타지다. 세상이 꽃밭으로 묘사되는 이런 류의 영화를 그닥 좋아하지 않는데 탑건은 왠지 싫지 않았다. 사실 눈물까지 흘리면서 봤다. ㅎㅎ
왜 흥행이 되었는지도 얼핏 이해가 되었다.
언젠가 파일럿이 없어지는 날이 올거야. 먹고 자고 싸고 명령에도 불복종하는 파일럿들.
책 읽는 사람은 사라지게 될 걸세.
그럴지도 모르죠. 하지만 오늘은 아닙니다. (TopGun 그믐 v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