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산 출판사의 2015년 개정판을 읽었다.
앤드류 고든의 “현대 일본의 역사”는 도쿠가와 막부에서 부터 시작해 21세기, 최근까지의 역사를 다루고 있다. 이전에 읽었던 마리우스 B 잰슨의 “현대 일본을 찾아서”와 패전 이후의 일본 사회의 성격을 분석한 존 W 다우어의 “Embracing the Defeat”과 중복되는 부분도 있어 쉽게 쉽게 책장을 넘길 수 있었다.
아무래도 이 책의 장점은 21세기 최근까지의 역사를 다루고 있어 오늘의 일본을 이해하는데 훨씬 더 유용한 관점을 제공해 주고 있다. 예를 들면, 일본에서 야구가 1890년대 부터 인기를 끌고 있었고 戰前(전전)에 이미 프로 야구단이 있었다는 사실은 이 책을 통해서 처음 알게 되었다.또, 가미카제 특공대원은 출격을 기다리며 “미국과 싸우는 녀석들이 재즈를 듣고 있네, 재즈가 그리워서라도 빨리 평화가 오면 좋겠다.”라는 시를 썼다고 한다. 이것도 마찬가지로 일본의 대중문화가 미군정 점령 이전, 전전부터 미국문화의 수용 정도를 알게 해준다. 또, 자민당의 독주가 1955년부터 시작되었고 그것은 사회당 계열의 좌파의 모험주의 때문에 민심이 돌아선 결과라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생각보다 일본의 민주주의는 메이지 유신 이래 상당히 탄탄한 기반 위에서 착실히 성장해 왔다는 인상을 받았다.
하지만, 일본이 세계적 리더로서 UN의 상임 이사국 자리를 노리면서도 위안부 문제, 교과서 문제 등을 포함한 ‘과거사 문제’등에 대해서 퇴행적이며 옹졸한 태도를 보이면서 주변국의 신뢰를 확보하지 못했던 這間(저간)의 사정도 시계열별로 확인할 수 있었다.
일제의 강점기와 내전 등을 거치면서 우리가 갖고 있는 피해의식 또는 트라우마 만큼이나 후발 자본주의 국가인 독일, 이탈리아, 일본이 갖고 있었던 필사적인 두려움과 그로 인한 팽창 동기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이해와 공감을 가져갈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로 인해 어떤 국가는 포식자가 되고 또 어떤 국가는 먹잇감이 되었던 것이기 때문이다. 19세기의 역사는 산업혁명으로 인해 21세기의 세계화만큼이나 계급간, 국가간의 격차를 확대시키는 약육강식이 노골화된 시기였던 것이다.
일본은 러일전쟁 이후 영미의 견제를 계속 받게 된다. 특히, 1차 대전 이후에도 승전국임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견제를 받게 된다. 이에 내각은 신중했지만 일본 육군은 일본이 중국에 대한 배타적인 이해가 있다고 믿고 있었고 이를 관철시키기 위해 무리하게 중일전쟁을 시작한 것이었다. 즉, 중국에 대한 미국과 일본의 이해의 충돌이 중일전쟁의 원인이었다.
마리우스 잰슨과 마찬가지로 이 책에서도 일본의 ‘천주교’탄압을 자세히 서술하고 있지 않다. 스페인의 필리핀 총독은 일본을 다른 아시아 국가들처럼 무력으로 정복할 수 없다는 정세 판단과 함께 가톨릭의 세례를 받은 영주들을 포섭, 반란, 쿠데타 등을 통해 유럽의 세력을 확장시켜야 한다는 전략 등의 내용을 담은 서간을 본국에 보내게 되는 데 이런 사실이 밝혀지면서 대대적인 탄압에 들어가게 되고 이후 기독교는 일본에 더 이상 뿌리를 내리지 못하게 된 것이었다.
미군정 하에서 재벌 해체의 노력은 실패로 끝난다. 개인 소유의 지주회사는 해체 되었지만 재벌계의 기업군은 해체된 연합체의 멤버였던 은행을 중심으로 해서 그룹으로서 재결성하게 되었다. 또한 이들 옛 재벌 기업군은 국가관료와의 협력에도 적극적이었다. 이렇게해서 그후 수십년간 존속하게되는 은행 중심의 자본주의와 관료의 결제활동 지도라는 하나의 패턴이 정착했다.
그런데, 이 책에서 언급한 내용은 아니지만 미국은 이와 같은 은행 중심의 일본 자본주의의 약점을 파악하고 바젤규제를 들고 나와 일본 자본주의의 발전을 막고 있다는 것이 일부 일본 사람들의 주장인 것처럼 보인다. 21세기 미국과 중국이 치고 나올 수 있었던 것은 첨단산업을 이끄는 벤쳐 기업 등에 대한 투자였다. 그런데 일본은 미국과 같은 벤쳐 캐피탈과 같은 특수 금융기관이 아니라 전통적인 메가 상업은행에서 기업을 육성하는 시스템이었기 때문에 현재 그 은행들이 해체되고 난 뒤 일본에서 혁신산업의 성장은 정체되고 있다는 진단인 것이다.
일본은 세계 최대 순채무국이다. 즉, 돈이 아주 많다는 얘기다. 일본 경제의 정체가 금융시스템의 병목현상 때문이라고 한다면 이 문제는 조만간 해결 가능한 문제일 것이라고 본다.
그리고 전두환 대통령 시절 일본으로부터 40억 달러의 원조를 받았다. 1965년의 ‘한일협정’으로 더 이상의 배상 청구를 할 수 없었던 것으로 알고 있는데 도대체 무슨 명분으로 받아낸 것인지 미스테리일 수 밖에 없다. 아무튼, 88올림픽 이후 한국 경제의 급격한 성장을 하는데는 이 돈이 중요한 마중물 역할을 한 것은 충분히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알루보물레 스마나사라 라는 승려가 제창한 명상법이다. 이 명상법이 가장 좋운 것은 제일 먼저 자신의 행복을 기도한다는 점이다. 자기 자신의 행복을 모르는데 다른 누군가를 행복하게 할 수는 없다. 나는 누군가를 행복하게 하려는 생각 자체가 교만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내 행복의 연장선에서 누군가의 행복도 있는 것이라면 그건 정말 좋은 일이라고 생각한다.
클라이맥스 스튜디오에서 제작하고 있는 콘크리트 유니버스의 마동석 액션물. 세계가 멸망 이후 트라우마로 사람들의 정신 세계가 이상해졌는지 80년대 대사들이 가득하다. 이런 식.
"짧은 인생 종 치고 싶어?"
80년대 대사라기 보다는 쓰다가만 대사 느낌.
운동이 뇌 건강(우울증, 노화, 기억력, 뇌세포 생성 등)에 미치는 영향에 관한 스웨덴 정신과 의사의 책. 러닝과 같은 유산소 운동이 두뇌의 생물학적인 개선에 전방위적으로 효과를 보인다는 이야기인데 너무 치트키 같아서 실증에 기반한 전개에도 불구하고 주춤하게 됨.
반려 동물의 투병과 장례 절차에 관한 가이드. 사람의 투병이 개인마다 다르듯 동물 역시 제각각인데 일본인 특유의 정례화로 기술되었다.
도서관에 갔다가 사전 정보 없이 무턱대고 들고 온 책 <경우>
미나토 가나에의 <고백>을 워낙 재미있게 읽어서 기대가 컸는데 예상외로 조금 실망스럽다. 작가가 무언가에 쫓겨 급하게 쓴 것 같다는 느낌, 몇 장면은 대사도 전부 생략하고 스케치처럼 묘사하는데 드라마나 영화화되기 좋으라고 그냥 영상을 글로 대충 옮겨 놓은 느낌이 난다.
번역도 조금 아쉽다. 바로 앞에 빼빼로라고 번역했으면 그대로 쭉 이어가는 게 맞을 것 같은데 다음 장엔 포키 과자라고 나오고. 이 책을 미나토 가나에의 첫 책으로 읽었다면 아마 다음 작품으로 손이 쉽게 가지 않았을 텐데 그래도 <고백>이 워낙 좋아서 이 한 편으로 단정 짓기는 조금 이른 듯.
우루과이 공군 571편 추락사고는 90년대에 얼라이브라는 제목의 헐리우드 영화로 제작된 적이 있었다. 인육에 관한 자극적인 소재이고 이야기의 쿨타임이 지나서 스패니시를 하는 배우들로 다시 제작되어 베를린 폐막작에 이어 오스카 후보에도 올랐다. 이런 터무니없는 트라우마를 겪은 이들의 남은 삶을 훑어보게 되는데 의외로 다들 장수.
미야자키 이치사다는 너무나 저명한 일본의 동양사학자다. 그의 사학은 사회경제사라는 토대 위에 근거한다.책 후미의 跋文(발문)에 따르면 그것을 景氣史觀(경기사관), 다시말해 화폐의 유통량에 중점을 둔 경제사관이라고 부연한다. 중국사 대신에 동양사라는 지칭은 동아시아 대륙의 역사가 농경의 정주민과 북방 유목민이 서로 拮抗(길항)하며 만들어낸 역사이기 때문이다.
미야자키 이치사다는 문화적 일원론을 주장한다. 인류 문명의 기원은 다양한 곳에서 동시 다발적으로 발생한 것이 아니고 중근동의 서아시아, 한 곳으로부터 발원했다는 것이다. 수메르 문명을 시작으로 메소포타미아 문명 등이 동서 방향으로 전이, 유럽과 인도, 중국으로 퍼져 나갔다는 것이다.
그런 맥락에서 그의 시대구분을 이해할 수 있다. 통상적으로 서양에서는 고대, 중세, 근대라는 삼분법이 일반화되어 있는데 반해 그는 고대, 중세, 근세, 최근세사라는 사분법을 주장한다. 당연히 고대는 중근동에서 가장 먼저 시작되었지만 근세사는 중국에서 제일 일찍 전개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모두가 다 아는 것처럼 최근세사는 산업혁명과 함께 한 18세기 말 이후 유럽의 역사를 말한다.
근세사라 함은 고대의 부활 또는 회귀와 같은 르네상스 시기를 말한다. 미야자키 이치사다는 보통 삼국지 시대로 잘 알려진 후한 멸망 이후, 魏晉南北朝(위진남북조) 시대부터 唐末(당말)까지를 중국의 中世(중세)로 파악한다. 이 시기 인구는 급격하게 줄어들었다가 宋(송)에 이르러 획기적인 생산력의 증대를 통해 인구가 한나라 시기 약 1억명 수준으로 다시 회복했으며 이때를 근세사의 기점으로 파악한다. 중국 고대가 서아시아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다고 추정한다. 마찬가지로 송대 이후의 동양사가 서아시아, 유럽의 역사에 상당한 임팩트를 주었음을 설득력 있게 주장한다. 몽고제국의 세계 지배를 생각하면 이것은 어렵지 않게 않게 납득할 수 있는 추론일 것이다.
주자학의 창시자 주희는 공자의 해석에 있어 원전 자체에 충실해야만 한다고 주장했다. 물론, 결과적으로 공자에 대한 그의 그런 자의적 해석이 이후 동아시아 역사 전체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가는 우리 모두가 잘 이해하고 있다고 있다. 이 주자학의 殘滓(잔재)가 한반도에는 19세말까지, 아니 어쩌면 21세기에도 여전히 잔존하기 때문에 문제의 심각성이 커보인다. 실질과 이해를 무시하고 허망한 대의명분에 집착하는 악습은 모두 주자학에서 비롯하기 때문이다.
아무튼, 먼저 읽었던 오카모토 타카시의 ‘중국 근대사’에서 양자강 유역의 수전농업을 통해 송대에 비약적 농업생산력의 증대가 있었다는 사실을 잘 알 수 있었기 때문에 송대가 근세사의 출발점이라는 이론을 순순히 납득할 수 있게 된다. 그리고 송-원, 명-청은 송대 이후 질적인 변화 없이 그 역사가 평행적으로 반복되어 온 것이라고 한다.
유럽도 중세는 게르만족의 이동에서 시작한다. 그리고 서양 중세시대 동서간의 교역을 중개했던 이탈리아 도시 국가들에서 르네상스가 시작된 것은 이와 같은 동서양의 교류와 역사 전개가 무관하지 않음을 추측케 하는 대목이다. 하지만, 19세기 제국주의적 팽창 이래 인종적 우월감에 여전히 사로잡혀 있는 서양 패권이 이런 사실을 순순히 인정할 때까지는 좀 더 시간을 두고 기다려야만 할 것이다.
조금 도약을 해서 20세기 초 일본과 미국의 관계가 틀어지기 시작한 것은 남만주 철도에 대한 미국의 중립화론을 일본이 거부하면서 시작된 것임을 알게 되었다. 미야자키 이치사다의 표현을 빌면 일본이 1차 대전에 연합국 편에 서서 벼락부자가 된 것을 미국과 영국이 달갑게 생각하지 않았다고 한다. 미국의 대공황으로 세계 경제가 어려워지면서 영국은 인도, 미국은 남미라고 하는 안정적 식민지가 있어 타격이 상대적으로 적었던 반면 독일과 일본은 그렇지 못했기 때문에 일본의 중국에 대한 배타적 권리에 더욱 집착했었다는 주장이다. 황화론과 함께 일본인에 대한 미국 이민에 대한 금지 그리고 미국 재류 일본인들에 대한 재산권 침해 등이 있었던 것은 이 시기의 인종주의racism의 실태를 충분히 짐작할 수 있게 해준다.
하지만, 이것은 결코 남의 일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남북 통일에 있어 한국의 힘이 지나치게 강해지는 것을 막기 위해 남북통일에 부정적 기류를 흘리며 연방제 통일안을 제시한다던가 아니면 다행히 우리의 소원대로 통일이 된다 해도 만주에 있어 일본의 선례는 앞으로 그 지역에 통일 한국의 이해를 관철하는데 있어 수많은 장애의 전조를 예측할 수 있는 좋은 참고자료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 책은 거장만이 쓸 수 있는 통사의 모범처럼 보인다. 마치 수필을 써내려 가듯이 가벼운 터치로 중국의 全史(전사)를 개관하고 있다.
프리온 이야기. 『호모도미난스』를 쓸 때 참고했다. 원제는 ‘The family that couldn′t sleep’인데 프리온이 일으키는 병 중 하나인 치명적 가족성 불면증을 가리키는 말이다. 치료약이 없 는 희귀한 유전병이고, 발병하면 무조건 사망하며, 그 사실을 아는 채로 잠을 자지 못해 괴로워하다 죽는다.
흥미진진하게 읽었고 이 책에서 알게 된 ‘측두엽 인격’에 대한 부분을 『표백』에서 인용했다. 그런 별명으로 불리는 환자들은 ‘철학적이고 신학적인 주제들에 강박적으로 집착’하며, ‘평범한 사건들을 매우 자세하게 기록’하는 경향이 있고, 그런 특징을 ‘글쓰기 중독’이라고 부른다고 했다. 나도 좀 그런 성향이 있다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