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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괴물-고레에다 히로카즈

자꾸 마음이 쓰인다.


간만에 여운이 깊은 영화여서 이 마음을 남기고 싶은데 마음만 일렁이고 뭐라고 써야할지 모르겠군.


난 역시 아이한테 약하구나

(알고는 있었지만 이렇게 치명타를 입을 줄 몰랐다)


맨홀 뚜껑에 달라붙어 있던 요리와 미나토의 뒷모습이 자꾸 아른거린다.


다음에 연인이 생긴다면 괴물을 좋아할 줄 아는 사람을 만나고 싶다고 생각했다.


괴물이 아니라고 말해주고 싶은데

사실 이런 말을 할 필요가 없는 세상을 만들어야 할테지.


살아남아버려서

결국 어른이 된 나는 괴물이 아닐 수 있을까.

836. 아무튼, 술 (김혼비)

저렇게 자주 드시면 안 될 텐데, 하고 생각하면서도 재치 있는 입담에 웃음을 터뜨리며 즐겁게 읽었다. 독서 에세이 다음으로 많이 읽은 에세이가 술 에세이인 것 같다. 음주에 대한 책들도, 단주에 대한 책들도 읽었는데 대체로 음주 찬가에 가까운 책일수록 신명나더라. 좋아하는 것에 대한 글이 거부해야 하는 것에 대한 글보다 더 즐겁게 읽히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겠다. 그런데 음주 에세이 작가들이 문장도 더 맛깔나게 쓰시는 것 같더라. 단주는 심각할 수밖에 없는 소재여서일까? 음주 에세이 분야는 경쟁이 보다 치열해서일까?

아무튼, 술 - 오늘의 술을 피하기 위해서 우리는 늘 어제 마신 사람이 되어야 한다
아무튼, 술 - 오늘의 술을 피하기 위해서 우리는 늘 어제 마신 사람이 되어야 한다
835. 일곱 색의 독 (나카야마 시치리)

‘얼굴값 못하는’ 이누카이 하야토 형사 시리즈 두 번째 작품. 단편 일곱 편의 제목이 각각 색 이름으로 시작하는데 그게 나름 중요한 의미다. 작품들의 길이가 길지 않은데도 갖출 건 다 갖췄고 수준이 떨어지는 편도 없다. 나카야마 시치리는 시간이 없어 취재를 전혀 하지 않는다는데 늘 묘사가 그럴듯해 보인다.

일곱 색의 독
일곱 색의 독
콘크리트 유토피아

90년대 헐리우드 블록버스터의 엔딩이 지구 온난화를 가속시키는 대폭발 씬이었다면 2000년대 중반 이후 20여년간 한국 영화의 엔딩은 신파와 3분 이상의 통곡 씬이다.

콘크리트 유토피아: 아카이브 북
콘크리트 유토피아: 아카이브 북
23-073 | 고선경, 샤워젤과 소다수

문학동네시인선 202 (231127~231210)


❝ 별점: ★★★★☆

❝ 한줄평: 힘들고 고단하지만 그래도 웃어보자고 다독여주는

❝ 키워드: 여름 | 상큼 | 씁쓸 | 추억 | 현실 | 내일 | 희망

❝ 추천: 쉴 새 없이 웃음이 터지는 시가 궁금한 사람


🫧 시인의 말


너에게 향기로운 헛것을 보여주고 싶다


2023년 10월

고선경


———······———······———


📝 (23/12/10) 우필사 이벤트로 받은 시인선 다섯 권 중 고선경의 『샤워젤과 소다수』를 가장 먼저 꺼내 들었다. 우연히 보게 된 시 한 편에 완전 반해서였다. 


✦ 시인은 현실적인 문제들(집 보증금이나 월세, 빚 등의 돈 문제, 고용과 노동 등)로 분위기가 조금 무거워지려 하면 ‘그런데 천국에 가지 못하면 어쩌지? / 괜찮아, 너만 못 가는 거 아니야’(「알프스산맥에 중국집 차리기」, p.52)라든가 ‘여기서 팁 하나 / 장례식에서 하면 안 되는 행동 1위는 부활이라 한다 / 죽었다가 살아나면 모두가 무안해지니까 // 다시 죽어! / 네! (철퍼덕)’(「땅콩다운 땅콩」, p.58) 같은 유쾌하고 웃긴 농담으로 쉴 새 없이 웃음을 유발한다. 특히 이런 재미가 극대화되는 시가 「스트릿 문학 파이터」였다. 


✦ ‘쓰러진 풍경을 사랑하는 재능’(「샤워젤과 소다수」)을 가졌고, ‘희망이 심장의 무게 추라는 것을 기억’(「Come Back Home」)하고 있으며, ‘돈을 많이 벌고 싶고 사랑도 잘하고 싶은’(「돈이 많았으면 좋겠지」) 화자. 어린이는 절대 아니지만, 그렇다고 아직 어른이 된 것도 아닌 어정쩡한 화자가 어쩐지 나 같다는 생각으로 시집을 읽었다. 가끔은 외롭고 슬프기도 하지만, 힘들고 고단하지만, 그래도 웃으며 내일로 가보자고 다독여주는 듯한 화자. 그런 화자에게 많은 힘을 받았다.


✦ 해설 ‘망할 세상에서 농담하기—스트릿 문학 파이터 분투기’에서 시인이자 문학평론가인 박상수는 고선경을 ‘불가능한 사랑과 함께 새로운 시작을 상상하고 망할 놈의 세상과 싸우는 스트릿 문학 파이터’라고 불러도 좋지 않을까 라며, ‘자본주의 리얼리즘이 지배하는, 체념과 무기력만 남은 것처럼 보이는 이 세상에서 농담을 던지고 깔깔 웃는 방식으로 아무도 지지 않는 게임을 하려는 사람, 설사 지더라도 웃으며 다음으로 넘어가려 애쓰는 사람’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쓰러진 풍경마저 사랑할 줄 아는 사람, 죽을힘으로 죽으면 억울하지 않을 것 같다고 거짓말하면서도 살아남아 뭔가가 되는 사람. 이런 시인을 어떻게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문학동네 우필사 특별반 이벤트 당첨자로 선정되어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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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빗방울은 창문을 깨뜨릴 수 있다

   세상에 존재하는 거의 모든 것이 빗방울을 깨뜨리겠지만

   소녀는 희망이 심장의 무게 추라는 것을 기억해낸다

/ 「Come Back Home」 (p.47)


❝ 그래 나는 여전히 술을 좋아하고 제정신일 리가 없다! 친절한 태도로 거절당한 날에는 혼자 맥주를 마시면서 운다 땅콩을 안주 삼아서 운다 나는 왜 이렇게 벗겨지기 쉬운 껍질을 가진 걸까 흑흑거리다가 껴안을 게 없어서 버섯모양 전등을 껴안고 아 뜨거워 욕지거리를 내뱉는다


   친구들은 내게 어른스럽게 굴라고 말했다

   그러나 어른스러운 어른이라는 말은 사랑스러운 사랑이라는 말만큼 이상하다

/ 「땅콩다운 땅콩」 (p.57)


❝ 우리가 궁금한 건 더 재미있게 놀 방법이었는데

   사람들은 우리에게 살 걱정 죽을 걱정을 하라고 한다

   별걱정을

   다

/ 「우주 달팽이 정거장」 (p.84)


❝ 왜

   죽을힘을 다해 살아야 하지 죽을힘으로

   죽으면 억울하지 않을 것 같아


   거짓말


   나는 살아남아

   시인이 됐다

   처음으로

   뭔가가 되어봤다

/ 「숨어 듣는 명곡」 (p.154-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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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좋았던 시 


1부 | 여름 오후의 슬러시

✎ 「샤워젤과 소다수」 ⛤

✎ 「유통기한이 지난 약은 약국에 버려주시면 됩니다」

✎ 「오! 라일락」

✎ 「내가 가장 귀여웠을 때 나는 땅콩이 없는 자유시간을 먹고 싶었다」

✎ 「밝은 산책」 ⛤

✎ 「Come Back Home」


2부 | 소다맛 설탕맛 돌고래맛 혼잣말

✎ 「알프스산맥에 중국집 차리기」 ⛤

✎ 「돈이 많았으면 좋겠지」

✎ 「땅콩다운 땅콩」

✎ 「스트릿 문학 파이터」 ⛤

✎ 「살아남아라! 개복치—몰라 몰라 내가 죽은 진짜 이유를」

✎ 「사이버 시옷시옷」 ⛤

✎ 「긴 주말」 ⛤


3부 | 진짜로 끝나버렸어 여름!

✎ 「우주 달팽이 정거장」 ⛤

✎ 「메론 껍질에 남은 향기와 과육을 갉아먹는 벌레들」 ⛤

✎ 「부루마불」 ⛤

✎ 「메론소다와 나폴리탄」 ⛤

✎ 「사랑의 달인」


4부 | 미워서 하는 말이 아니야

✎ 「외계인이 초능력을 쓸 거라는 생각은 누가 처음 했을까?」 ⛤

✎ 「시집 코너」 ⛤⛤

✎ 「세기말을 떠나온 신인류는 종말을 아꼈다」 ⛤

✎ 「숨어 듣는 명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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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워젤과 소다수
샤워젤과 소다수
23-072 | 미즈노 루리코, 헨젤과 그레텔의 섬

읻다 (231207~231209)


❝ 별점: ★★★★

❝ 한줄평: 지금은 떠나온 어린 시절 동화의 섬을 추억하며

❝ 키워드: 동화 | 섬 | 바다 | 하늘 | 동물 | 전쟁 | 꿈 | 죽음 | 나무 | 알 | 달

❝ 추천: 한 편의 아련한 동화 같은 시집이 궁금한 사람


❝ 그것은 작고 투명한 유리잔 같은 여름이었다 그런 여름을 사람들은 사랑이라 부르는 듯했다 ❞

/ 「헨젤과 그레텔의 섬」 (p.21)


📝 (23/12/10) 그림 형제의 동화 『헨젤과 그레텔』을 배경으로 한 산문시와 그에 이어진 여러 편의 연작 산문시들, 짧은 시들과 꿈의 시간을 재현한 시들(<한국어판 서문> 중)이 실린 시집이다. 


✦ 시인이 어린 날 겪은 전쟁의 공포와 두려움, 일찍 숨을 거둔 다섯 살 터울의 오빠와 함께 한 추억을 떠올리며 쓴 시집은 ‘어느 여름날, 기억의 바다 깊은 곳에서 돌연 작은 섬처럼 떠올랐다’는 시인의 말처럼 꿈에서 유영하는 듯한 자유로운 상상력의 나래가 펼쳐진다. ‘그림을 그리는 아이’ 이미지가 시집 곳곳에 등장해 시도 한 편의 그림처럼 눈앞에 생생하게 떠오르는 듯하다. 


✦ 동화 같은 섬은 밤마다 바다로 잠기거나(「헨젤과 그레텔의 섬」) 섬의 마을을 하늘이 숨기기도 하고(「도라의 섬」), 생김새가 그날그날 바뀌기도(「코끼리 나무 섬에서」) 한다. 섬에 사는 코끼리, 거대한 새, 물고기, 나무들은 화자들의 꿈속으로 들어오기도, 그들을 꿈으로 데려가기도 한다. 섬과 바다, 하늘, 꿈의 경계가 구분되지 않는 동화 같은 섬. 그러나 그 섬은 아름답기만 한 곳은 아니다. 발이 없는 코끼리(「나무의 집」)와 날개가 없는 새(「모아가 있던 하늘」), 쌓인 눈 밑에 죽어 있는 커다란 물빛 조개(「그림자」), 열이 나는 아픈 아이의 가슴속 작고 눈먼 물고기들(「물고기의 밤」). 생생하면서도 섬뜩한 이미지들이 가슴을 아리게 한다.


✦ ‘물고기나 사람이나 언젠가 치유될 필요가 있음을 알았다  어른들의 비밀은 거기 있었다’(「헨젤과 그레텔의 섬」)는 구절과 ‘우리도 언젠가는 한 그루 나무가 되는 거라고 오빠가 말했다’(「코끼리 나무 섬에서」)는 구절이 기억에 오래 남을 것 같다. 상처와 아픔, 슬픔과 고통이 언젠가 위로받고 치유된다면 우리는 한 그루의 나무가 될 수 있을까? 그 모든 것이 ‘사랑이라 불리는 작고 투명한 유리잔 같은 여름’으로 기억될 수 있을까? 이 시집이 내게 그런 위안을 주기에 충분하단 것은 분명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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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빠는 말했다   도라는 세계의 미숙한 원형이란다   코끼리에서 새에게로   새에서 도마뱀에게로   도마뱀에서 조개에게로   조개에서 인간에게로 끊임없이 전송되는 나선형 음계가 보인다   도라에게서 발신되어   무한히 이어지는 녹색 모음 계열은 다시금 도라의 귀로 되돌아가고   도라는 듣고 있다   우리 안의 ‘ㅏ’를 수런거리게 하고   표표히 떠도는 우리의 ‘ㅣ’를 끌어들여   느릿한 모음의 리듬이 구형의 하늘을 맴도는 것이다

/ 「도라의 섬」 (p.23, 25)


❝ 깊은 어둠 아래서 지금도 우리를 올려다보는 눈이 없는 악어   우리를 뒤쫓는 발이 없는 코끼리   우리를 부르며 떨어져 내리는 새   우리의 손이 우리도 모르게 그려나간 그 생명체들은 어디서 온 것일까   나무의 집 내부는 그들의 가쁜 숨소리로 가득하다   그들을 빛 속으로 데리고 나오기 위해서는   단 한 줄의 선   단 하나의 점을 더하는 것으로 충분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내겐 그만한 시간이 없다

/ 「나무의 집」 (p.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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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좋았던 시


I

✎ 「헨젤과 그레텔의 섬」 ⛤

✎ 「도라의 섬」

✎ 「모아가 있던 하늘」

✎ 「코끼리 나무 섬에서」 ⛤

✎ 「나무의 집」


II

✎ 「그림자 — 클레의 ‘겨울 이미지’에서」

✎ 「물고기의 밤」

✎ 「회색빛 나무」 ⛤


III

✎ 「봄의 모자이크」

✎ 「알」

✎ 「분주한 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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헨젤과 그레텔의 섬
헨젤과 그레텔의 섬
죽여 마땅한 사람들 - 피터 스완슨

책은 지루하다는 사람들에게 이 책 한 번만 읽어보세요 라고 권해주고 싶은 책.


전자책으로 총 몇 페이지인줄도 모르고 읽기를 시작해서 3일간 정신없이 손가락을 옆으로 슬라이딩하다 보니 끝났다. 인터넷 서점의 도서 정보를 찾아보니 452페이지라고. 워낙 재미있어서 질주하듯 읽다 보면 남겨진 페이지가 쑥쑥 줄어든다. 


공항 라운지바에서 비행기의 탑승을 기다리며 낯 모르는 이를 만나 자신이 죽이고 싶은 사람에 관해 털어놓는다는 초반 설정은 어쩔 수 없이 패트리샤 하이스미스의 <열차 안의 낯선 자들> 을 떠올리게 된다. 하지만 교차살인으로 서로의 알리바이를 만들어 준다는 뻔한 방식으로 전개되지는 않는다.

 

잘 짜여진 스릴러지만 군데군데 조금 이해가 안 되는 설정들도 있긴 하다. 예를 들면 아내를 죽이고 싶어하는 억만장자 테드는 비행기의 비즈니스 클래스를 타는 것이 자연스럽지만 여주인공 릴리는 평범한 학교의 교직원인데 비즈니스 클래스 탑승이 자연스러운가 하는 점들. 그래서 앞 부분에 릴리와 테드의 만남이 절대 우연이 아닐 거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그녀의 외모보다도 비범할 정도의 초연함과 윈슬로의 숲에서 책에 둘러싸여 사는 생활 방식이 더 매력적이었다. 그녀는 혼자서 쓸쓸하게 살아갈까? 아니면 살면서 다른 인간을 필요로 하지 않는 별종일까? 

 

 

죽여 마땅한 사람들
죽여 마땅한 사람들
834. 나오미와 가나코 (오쿠다 히데오)

덤덤한 소설이라고 해야 할까, 자극적인 소설이라고 해야 할까. 신기한 소설이라고 해야 할까? 덤덤하기도 하면서 자극적이기도 하니까. 플롯이 복잡한 것도 아니고 화끈한 액션이 펼쳐지는 것도 아니고 스케일이 큰 것도, 깜짝 놀랄 만한 뒤집기가 있는 것도 아닌데 제법 두툼한 분량의 책에서 눈을 뗄 수가 없다.

나오미와 가나코
나오미와 가나코
833. 샤일록의 아이들 (이케이도 준)

일본의 한 은행을 배경으로 하는 연작 소설집인데, 각 단편의 독립성은 조금 애매하다. 일본 회사에서는 정말 이렇게 일하나? 아니면 은행에서는 정말 이렇게 일하나? 그것도 아니면 일본 은행에서는 정말 이렇게 일하나? 읽는 내내 등장인물들 모두에게 “사표 내고 도망치라고!” 하고 외치고 싶은 심정이었다. 먹고사는 게 참 힘들구나.

샤일록의 아이들
샤일록의 아이들
23-071 | 천희란, K의 장례

현대문학 (231207~231207)


❝ 별점: ★★★★☆

❝ 한줄평: 내가 선택한 나의 ‘진짜’ 이름은

❝ 키워드: 죽음 | 인생 | 선택 | 약속 | 비밀 | 속박 | 이름 | 정체성 | 자유

❝ 추천: 이름, 정체성, 그리고 인생에 관해 생각해 본 적이 있는 사람


❝ “우리 둘 다 언제 벗어나고 싶어질지 모르는 이 인생에 새로운 이름을 붙여봅시다.” ❞ (p.41)


⚰️ 첫 문장: 나의 이야기는 K의 죽음에서 시작되었으며 K의 죽음으로 끝난다. 이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그 누구도 두 번 죽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p.9)


📝 (23/12/08) 현대문학의 핀시리즈 소설선과 자음과모음의 트리플 시리즈는 어떤 작가의 작품을 처음 읽어볼 때 단편이나 중편으로 가볍게 입문하기 좋아서 자주 찾게 된다. 천희란 작가님의 어떤 작품을 먼저 읽을지 고민하다가 핀시리즈 소설선 45 『K의 장례』를 읽어보기로 했다.


✦ 제목에서 알 수 있듯 ‘죽음’에 관한 이야기다. 그러나 이 죽음은 여러 의미를 담고 있다. 한 ‘사람’의 죽음, 한 ‘인생’의 죽음, 한 ‘정체성’의 죽음, 그리고 한 ‘이름’의 죽음. 어쩌면 죽음이라는 단어보다 소멸이라는 단어가 더 적절할 지도 모르겠다. 하나의 ‘이름’, ‘정체성’, ‘인생’이 소멸한다고 해도 그게 목숨이 끊어진다는 의미는 아니니까. 첫 문장의 강렬함을 오래 기억하게 될 것 같다.


✦ ‘선택할 자유’에 관해 생각해 보게 되었다. 한 사람의 인생을 훔쳐 사용하는 대신 엄청난 거금을 주겠다고 하며, 언제든 떠날 자유를 준다는 제안. 과연 그게 정말 온전하게 ‘전희정’에게 ‘선택할 자유’가 주어진 것이라고 할 수 있을까? 거대한 속임수에 빠져버렸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는 이미 너무 멀리 와버린 게 아닐까.


✦ 또 다른 ‘선택할 자유’는 K의 딸에게도 주어진다. K의 영향 아래 있던, 태어날 때 받은 이름인 ‘강재인’을 버리고 자신이 선택한 이름 ‘손승미’를 사용하며 삶을 꾸리고 관계를 만들어가는 사람. 새로운 이름을 선택하게 된 건 K의 영향이 있었을 수도 있지만, ‘손승미’라는 새 이름은 오롯이 그의 것이고, 그가 ‘선택한 자유’다.


✦ 나의 이름으로 나의 인생을 살아가는 것. 특별한 것 하나 없는 평범한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이 소설을 읽으며 그 또한 누군가에겐 쉬운 일이 아닐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선택한 나의 진짜 이름으로 나의 인생을 살아갈 것. 마지막에 ‘전희정’이 아닌 진짜 이름이 나올 때, 그를 응원할 수밖에 없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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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해서는 안 된다는 금기가 말해질 수 있다는 자유 속에 방목되어 있는 것, 그것이 사람들을 비밀의 함정에 연루시킨다. 나는 가망 없는 비밀의 본색을, 비밀의 유일한 공모자가 사라지고 난 뒤에야 깨닫게 된 것이다. (p.36)


| 그런데도 나는 시간이 흐를수록 거대한 속임수에 빠져버린 기분에 사로잡히고는 했다. 이미 주어진 조건 속에서의 선택이 과연 자유를 전제한 것이었다 할 수 있을까. (p.41-42)


| 아무도 내게 묻지 않으리라. K가 내게 약속했던 것, 그가 내게 준 것, 그것들로 만든 내 15년. 누구도 궁금해 하지 않을, 상상조차 하려 하지 않을 내 인생 이면의 인생, 아니 내 진짜 인생. 그것은 내가 K가 없는 미래를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홀로 온전히 결정해야 한다는 걸 의미했다. (p.45-46)


| 앞으로도 내가 고등학생 시절 옮겨 적었던 그 문장의 시선으로 살아가야만 한다는 게 아이러니하게 느껴졌다. 나를 사랑에 빠지게 한 대상을 사랑할 수 없는 운명에 순응도 저항도 할 수 없다는 사실이. (p.84)


| 그것을 받아  직후 나는 분노와 혼란에 휩싸였다그럼에도 끝내 나는 그것이 내게 도달했다는 사실에 안도한다. K의 문장을   있을 만큼 거듭 읽은 후에도 나는 여전히 나로서 K 기억하기 때문이다손승미나는  이름을 선택했고그녀는 K 영향 아래 있지 않다나는 K 떠올리지 않기 위해  감지 않는다. K 그의 자리에 앉아 있고나는 때때로 그 자리를 무심히 스쳐 지나간다. (p.111-112)


| 다만 저는 이 이야기를 제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전희정 선생님의 이야기도 아닙니다. 이제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어떤 유령의 목소리일 뿐이죠. 전희정 선생님의 진짜 목소리는 제가 읽은 것의 그것과는 다르리라고 확신합니다. (p.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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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의 장례
K의 장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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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나눔 이벤트] 지금 모집중!
[책 증정] <자화상 내 마음을 그리다> 읽고 나누는 Beyond Bookclub 6기 [책증정] 작가와 작가가 함께 등판하는 조영주 신작 <마지막 방화> 리디셀렉트로 함께 읽기[책 증정] 텍스티와 함께 『편지 가게 글월』 함께 읽어요!
💡독서모임에 관심있는 출판사들을 위한 안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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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믐 새내기를 위한 가이드
그믐에 처음 오셨나요?[그믐레터]로 그믐 소식 받으세요중간 참여할 수 있어요!
단순 생활자 황보름 작가님과 함께 읽으실래요?
<계급 천장> 함께 읽으실래요? <세상은 이야기로 만들어졌다> 함께 읽으실래요? <빌리 서머스> 함께 읽으실래요?
🎯"우리 골목을 광장으로 만드는 법" 떠오르는 책을 추천해주세요!
[성북구립도서관] 2024년 성북구 비문학 한 책을 추천해주세요. (~5/12)
세계적 사상가 조너선 하이트의 책, 지금 함께 읽을 사람 모집 중!
[그믐북클럽Xsam] 15. <바른 마음> 읽고 답해요
이 계절 그리고 지난 계절에 주목할 만한 장편소설 with 6인의 평론가들
다음 세대에도 읽힐 작품을 찾는 [이 계절의 소설] 네 번째 계절 #1다음 세대에도 읽힐 작품을 찾는 [이 계절의 소설] 세 번째 계절 #1다음 세대에도 읽힐 작품을 찾는 [이 계절의 소설] 세 번째 계절 #2
직장인이세요? 길 잃은 직장인을 위한 책들 여기 있어요.
[김영사/책증정] 천만 직장인의 멘토 신수정의 <커넥팅> 함께 읽어요![김영사/책증정] 《직장인에서 직업인으로》 편집자와 함께 읽기[직장인토크] 완생 향해 가는 직장인분들 우리 미생 얘기해요! | 우수참여자 미생 대본집🎈[생각의힘] 어렵지 않아요! 마케터와 함께 읽기 《커리어 그리고 가정》
어서 오세요. 연극 보고 이야기하는 모임은 처음이시죠?
[그믐연뮤클럽의 서막 & 도박사 번외편]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 이반과 스메르자코프"[그믐밤] 10. 도박사 3탄, 까라마조프 씨네 형제들@수북강녕
💌 여러분의 마지막 편지는 언제인가요?
[책 증정] 텍스티와 함께 『편지 가게 글월』 함께 읽어요![그믐밤] 6. 편지 읽고, 편지 쓰는 밤 @무슨서점[이 편지는 제주도로 가는데, 저는 못가는군요](안온북스, 2022) 읽기 모임
🍵 따스한 녹차처럼 깊이 있는 독후감
종의 기원(동서문화사)브로카의 뇌도킨스, 내 인생의 책들코스믹 컨넥션
🌘 5월 7일 그믐달이 뜨는 날, 온라인 그믐밤 채팅 함께 해요.
[그믐밤] 22. 가족의 달 5월, 가족에 관한 책 얘기해요.
🎁 여러분의 활발한 독서 생활을 응원하며 그믐이 선물을 드려요.
[인생책 5문 5답] , [싱글 챌린지] 완수자에게 선물을 드립니다
이 봄, 시집 한 권 🌿🌷
여드레 동안 시집 한 권 읽기 11여드레 동안 시집 한 권 읽기 9여드레 동안 시집 한 권 읽기 8여드레 동안 시집 한 권 읽기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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