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과 상실에 대한 마거릿 렌클의 글은 무척 슬프지만 아름답다. 책을 읽으며 지금껏 내가 겪었던 상실들이 떠올랐다. 그리고, 상실을 짐작한다는 게 가능한 일은 아니지만, 앞으로 겪게 될 상실들을 떠올려 보며 그때의 내 마음은 어떨지 마거릿 렌클이 되어 생각해봤다. 주변에서 함께 어울려 살아가는 동물과 식물들을 바라보며 오늘도 삶을 생각하고 살아간다. 좋은 책들이 있어 감사하고 행복하다.
구태여 나오지 않았어도 되었을 속편. 전형적인 속편을 위한 속편으로 새로운 갈등과 위기를 만들고 주인공을 밑바닥으로 다시 떨궈놓는데 작가의 의도가 뻔히 보이다보니 중후반이 지날 수록 읽기가 버거워진다.
정보가 넘쳐나는 시대이니 멀고 먼 나라 이야기라도 알 방법은 많지만, 중동 각국의 정세를 정확히 파악하는 게 나에게 가능할까 자신이 없다. 어설프게 좀 뭘 읽어도, 워낙에 각 국의 이해관계 + 미국이랑 러시아 관계가 얽힌 덩쿨같고 상황도 계속 변해가고...그런 와중에 집어본 책이다.
내가 살고 있는 곳도 아니건만 읽으면서 등골이 서늘해지는 대목이 참 많다. 현실은 정말 복잡하고 냉정하며 영화보다 영화같다. 권말의 옮긴이 해제까지 읽고나면 착잡하다. 앞으로 뉴스를 보면 조금 더 이해하면서 볼 수 있을 것 같지만, 이런 소수의 집단이 만드는 거대한 국제관계 속에서 일반 시민 A는 그 흐름에 끌려갈 뿐이니...현재진행형인 사우디 아라비아의 변화를 그저 화면 너머로 지켜볼 뿐이다.
이 책은 화성에 사는 고양이들의 이야기다. 이 이야기는 현실과 아무런 상관이 없다. 저자는 이 책을 초현실주의적 자동기술법으로 서술했으며 스스로도 만족스럽지 못하다고 비판했다.
그렇기에 이 책은 모든 것을 다룰 수 있었다. 아편의 수입으로 고사해가는 국내 경제, 틈만 나면 서로에게서 무언가를 훔칠려는 소시민들, 현실을 반전시킬 능력이 없는 비관주의자들, 외국인 문화와 물산에 종속된 국토, 희망을 잃고 나약해진 기성 세대, 아무런 대안도 없이 그저 사회주의만 외치는 청년들, 무능한 교육계 덕분에 어떤 교훈도 얻지 못하는 어린 아이들, 혁명 이래로 수십 년이 지났지만 아무 것도 이루지 못한 정부와 유력자들, 끊임없이 이어지는 국내의 내전, 이 모든것을 짓부술 외국의 침략까지. 화성에 사는 고양이들 이야기였기에 망정이지 조국에 대한 풍자가 목적이었으면 잡혀갔을 것이다. (판사님, 이 소설은 고양이에 대해서 다루고 있습니다!)
이 소설을 쓴 라오서는 20세기 중국 문학사에서 가장 유명한 인물 중 하나다. 그러나 이 소설은 2021년이 되서야 한국어로 번역되었다. 이 소설이 당시의 중국 환경에 대한 이해가 결합되어야 완전하게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을 감안하면 놀라운 사실은 아니다. 그러나 10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읽혀질만큼 처절하면서도 잔인하게 조국의 모습을 그대로 묘사하고 있다. 중국 역사에서 드문 디스토피아 소설일만큼 기회가 된다면 읽어보는 것은 분명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 타인의 고통에 응답하는 공부 / 김승섭
📌 "나는 할 줄 아는 게 이거 하나였다고, 그리고 공부가 가진 힘을 믿는다고 답했다. 공부가 당장 사회 변화를 만들어 내거나 속 시원한 말로 문제를 두고서 실패와 성공을 반복하며 오랫동안 쌓아온 지식을 면밀히 검토하면서 얻게 되는 통찰이 있다고. 그 통찰의 힘이 장기적으로는 우리가 보다 나은 선택을 할 수 있도록 안내하는 길잡이가 되어준다고”
<당신이 옳다>에서 정혜신은 공감에 대해 ’분명해질 때까지 두려워하지 않고 차분하게 물어봐야, 안다.‘고 했다. <타인의 고통에 응답하는 공부>의 김승섭교수는 자신의 연구를 통해 공감을 실천하고 실현하는 사람이었다. 차별받는 이들의 고통에 공감하고, 질문하고, 공부하며 그들이 사회속에서 함께 살아갈 수 있도록 돕고 있었다. 그의 거리감은 무감하지 않고, 덥석 다가오지도 않는다. 고통에 고통을 더하여 울지 않고 묻고 미래로 나아갈 길을 염두해 두고 있었다. 그 걸음이 귀해서 마음이 뭉클했다.
사회역학이라는 분야는 생소했다. 한국이 얼마나 이런 분야에서 부족한지 예상은 했지만, 이 정도 일 줄이야... 차별과 소외, 혐오가 팽배한 사회 속에서 연구의 다양성과 확장성이 인상깊었다. 당연하다고 여겼던 것들이 차별이나 연구의 대상이 될 수 있다니. OECD회원국의 평균 장애인구 비율이 24.5%이고, 한국이 5% 수준이라는 것이 한국사회가 얼마나 장애를 가진 이들을 우리 눈 앞에서 치워버렸는지 실감하게 한다. 사회가 그들 모두를 안을 수는 없겠지만, 존재를 지우지는 말아야 하지 않을까?
최근에 읽은 <한국요약금지>가 한국의 ’명明’‘이라면 이 책은 한국의 ’암暗‘이 다뤄지고 있었다. 작가의 시선을 통해 나의 무지를 발견하는 일은 부끄러웠으나, 정책과 행정, 의료 같은 기본권들이 침해되고 있는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있음을 이제라도 알게 되었기에 다행이다. 정의로운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라 타인의 삶에 대해 조심스러움을 가진 사람들이 많아지기를…
이승섭저자의 외로운 길이 더 많은 사람들과 함께 하고 다음 세대로 이어지길 바라며…
📌"희망은 어떤 에너지이고 의지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내가 다 열심히 해봤는데도 세상이 바뀌지 않고 더 이상 희망이 없는 것 같을 때, 세상에는 희망이 없어“라고 말할게 아니라 ”나는 지쳤어“ 라고 말하는 게 정확한 것 같고 그러면 이다음에, 아직 에너지가 남아 있고 아직 그만큼의 좌절을 겪지 않은 다음 세대가 바통을 이어받아서 또 다른 싸움을 해줄 거라고 믿거든요. 그렇게 역사는 이어달리기처럼 연결되는 거라고 생각해요."
출판사 지원받은 도서입니다.
📚 여우의 계절 / 차무진 mit 그믐
📖 귀주대첩, 속이는 자들의 얼굴
📌 "세상에 없는 것을 믿고, 세상에 없는 것을 생각하고, 세상에 없는 것을 이용해야만 저 무형식의 침략자들을 이길 수 있어. 저들보다 더 파격이어야만 이 무서운 싸움에서 이길 수 있다고. 그게 공자의 말이든, 귀신의 말이든"
전쟁에서 이기고자 하는 자의 간절함을 가늠할수 있을까?
고려라는 낯선 나라에 강감찬이라는 역사 속 인물.
3차 고려거란전쟁 마지막 20일 죽화, 매화, 각치, 원숭이탈의 여정.
드라마 ”고려거란전쟁“에 빠져 있던 아들을 위해 그믐에서 냉큼 신청했다. 나에게는 귀주대첩이 <여우의 계절>로 기억하게 될 듯 하다. 첫 장면 애꾸눈부터 푹 빠져 들었다. 초반에 용어들이 낯설어서 머릿속에 그림이 잘 그려지지 않았다. 사건의 등장이 조금 늦게 등장해서 혹시 책이 2편이 있나?라는 합리적 의심도 해보았다. 하지만 이후 내용이 빠르게 전개되어, 남은 책장이 아쉬울 정도였다. 특히 후반부 등장인물들의 다양한 욕망이 혼란스럽게 불타오르는 것처럼 느끼지며, 하늘을 나는 풀이 자연스럽게 그려질 때 좋았다.
📌"욕망이란 그런 거다. 늙은 나도, 젊은 너도 전부 구린내가 나지. 선한 욕망은 없다. 인간은 선하지 않으니까. 그러면 나도 물어보자. 넌 어떤 욕망이 있지?“
원숭이탈의 염원은.
죽은 자를 만나는 것도
매일 아이들에게 연을 날리게 하는 것도
분열을 알고 있으나 묵인하는 것도
밀접자의 정체를 알고 있으나 이용하는 것도
단 한가지 목적을 향한 것이었다.
죽화는 무엇을 바랐을까?
모두의 소원을 이뤄주는 신은 없었다.
신은 인간이 만들어냈으니…
출판사 지원받은 도서입니다.
📚 크로노토피아 / 조영주
📖 엘리베이터 속의 아이
📌"이 세계로 가기 위해 실험 중이야.
나는 이 아파트로 이사 온 후 불행해졌거든.”
규칙1. 지진이 일어나는 순간 엘리베이터를 타야 10층으로 돌아갈 수 있다.
규칙2. 소원이 돌아가는 순간은 현관문 너머에 사는 인물이 가장 후회되는 때.
정확히 언제부터 인지 알수 없지만 회귀물, 루프물, 다중우주물이 인기를 끈다. 개인적으로도 좋아하는 장르다. 이런 장르가 유행하는 이유는 아마도, 사람들이 지금 자신의 삶에 불만족하며, 인생 특정 시점의 자신의 선택을 후회하기 때문일 것이다. ’만약 그때로 다시 돌아간다면‘ 다른 선택을 할 자신을 상상하고, 경험해 보지 않은 세계로 갔을 때 긍정적일 거라는 기대를 하게 한다.
책의 제목인 ”크로노토피아(Cronotopia)“는 시간과 공간이 교차하는 상상의 세계를 가리키는 개념이다. 이 용어는 ’크로노스(Chronos)‘, 즉 시간을 나타내는 그리스 신과 ’유토피아(Utopia)‘, 이상적인 세계를 의미하는 말인 ’유토피아‘의 결합으로 이루어져있다. 작가는 그림자 아이인 소원을 통해 2023년 7월 17일을 반복한다. 엘리베이터 괴담에서 시작된 이 불규칙적인 이동. 이 세계를 경험하는 것이 소원이 처음이 아닐지도 모른다.
소원은 반복되는 상황과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들을 구할 수 없는 상황, 그리고 자신이 죽음에 이르지 않는 영원할 것 같은 시간 속에서 지겨워졌고, 죽고 싶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지막 소원은 자신을 학대했지만 가장 사랑했던 엄마의 아들로 돌아가 행복하게 모자로 살고 싶어했다. 어린시절의 해결되지 않은 결핍. 인간은 10대 까지의 삶의 시간들을 어른이 되어 추억하고, 스스로 위로하고, 보상하며 평생을 사는 듯 하다. 그저 대충대충 적당히 적당히 살라는 할머니의 충고를 나는 받아들일 수 있을까?
오늘 엘리베이터 5층에서 젊은 여성이 탄다면, 그녀와 함께 내 마지막 순간을 보러 가보고 싶다.
📌"’딱 들어맞는 이야기는 믿을 수 없다. 진실은 좀 더 허술하고,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하는 그런 것들에 가깝다."
🐙🦀🦈🐡🪼🐳
📚 지구 생물체는 항복하라 / 정보라
‼️ "착하거나 나쁜 동물 같은 건 없습니다.“
해양 수산물을 좋아하는 위원장님은 잠결에 <문어>를 잡아 먹는다. 덕분에 해양 생물체의 말이 들리는 나는 그와 함께 자주 검은 정장의 사람들을 만나게 되는데… 위원장님은 이제 남편이 되어 언어적 <대게> 노동자의 구조를 위해 나서고, 호갱님이 될뻔한 ‘나’는 포항 죽도시장 터줏대감 어머니 덕분에 신기술 업체 바이오피스트릭스에서 무사히 빠져나올 수 있었다. <해파리>에게 선택받은 내게 검은 덩어리들은 위험을 경고하는데…
🔖 "Права рабочих существ никто не хочет уважать.
노동하는 존재의 권리는 아무도 인정해주지 않아요.”
줄거리만 읽어서는 이게 대체 무슨 횡설수설 어드벤처인가 싶지만, 담고 있는 문제의식이 가볍지 않다. 고등교육법 개정안 일명 강사법, 노동자, 간병인,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러시아의 제국주의 그 한가운데서 저항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이어서 타원형 얼굴과 장엄한 몸통이 물 위로 솟구쳤다. 점차 맑은 푸른색이 번져가는 새벽하늘에 비친 고래는 머리부터 꼬리 끝까지 한 점 얼룩도 없이 흑진주처럼 새까맣게 반짝였다.”
외계 생물체가 외계인이 아니라 문어라서 오는 친근함.
작가의 전문분야(러시아관련 배경지식 및 러시아어)의 포진.
문체에서 오는 속도감. 발상의 기발함.
주제의식에서 뻗어나오는 확장성.
사랑스러운 주인공들. 그래서 빅 재미.
📌"해파리성운을 생각했다. 죽음과 삶은 언제나 가까이 있다. 인간의 소멸이 인간이 아닌 생명체들에게는 진정 자유로운 삶의 시작인지도 모른다.”
인간이 망가뜨리는 자연 앞에서 검은 덩어리는 바다로 돌아간다. 그것은 항복일까? 인간이 이겼나? 아닌거 같다. 생명을 가진 모든 것들이 소멸로 향해가는 것일까봐 두렵다가도 이런 순환이 자연의 섭리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 이 별이 마음에 들어 / 김하율
📌"나성은 공장 사람들이 풀빵을 먹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는 니나를 멀리서 바라보았다. 입가에 미소가 걸릴 듯 말 듯 입꼬리가 살짝 올라간 표정이었다. 나성은 니나가 조금씩 인간이 되어가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것도 선한 인간이."
우르알 출신의 감정 없는 외계인 니나가 대한민국 서울에서 1978년 불시착한다. 형체를 변형할 수 있는 능력으로 액화 물질이 되어 외형은 자연스럽게 가장 고등한 생명체인 인간이 되었지만, 갈길이 멀다. 본 것을 그대로 따라 하는 등의 효율이 극대화시켜 재단사 되기. 실감나는 주먹밥 특강으로 소셜스킬 오욕칠정 배우기. 밥 대신 광합성 하기. 마성의 떡볶이와 라면맛을 알아버린 그녀. 김치 없이 못 사는 외계인! 🤣
의류공장이라는 배경을 1부에서 유쾌하게 그렸다면, 2부는 그곳의 노동자들의 처절한 삶을 보여준다. 니나의 사랑은 빛났지만 너무 짧았다. 지구에서의 삶을 살아가는 자들의 치열함. 처절함. 그리고 2034년 그녀의 아들 장수로 이어지는 노동현장.
읽기 시작하면 멈출수 없는 재미있는 책으로 1978-79년의 묘사가 실감나서 작가님 나이를 살짝 의심했다. 작가소개 사진을 몇 번이나 다시 보았다. 맛을 향한 작가님의 애정이 듬뿍 담겨 있어서, 책 읽으며 라면 유혹당한 책. 🍜
출판사 지원받은 도서입니다.
📚 이효석문학상수상작품집2023
"안쪽과 바깥쪽, 앞 문과 뒷문, 훈육과 학대. 연수는 그런 것들에 대해 잠시 생각했다. 손쉽게 구분되는 것 같지만 기준점이 조금만 바뀌어도 완전히 달라지게 되는 것들에 대해서."
주인공들의 이야기들은 개별적으로 살아있었다. 살아 남은 승주, 학교를 떠난 연수, 날선 재아, 다가가는 장희, 할머니를 기억하는 나, 우유니로 떠나는 은재, 조옥을 기억하는 성자, 레인코트를 끌어안는 나.
작품 속 주인공들은 나아간다. 그들의 방향에는 정답이 없다. 잃어버린 것에서, 지워버리고 싶은 것에서, 그리운 것에서 머물지 않는 듯 보인다. 정지한 것 같은, 뒷걸음질 치는 것 같은 인생도 실은 다방면으로 뻗어 나아가는 것 아닌가? 한 가지 길이 아니라 다행이다. 도달하지 않아도 괜찮다. 길을 선택한 것 만으로 큰 용기이며 삶의 또 다른 기회라는 생각이 든다.
"사람에 대한 말은 어떤 것이든 다 대수롭다."